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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pr 03. 2020

노동 시장의 기쁨과 슬픔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 

내가 생각해도 너무 단순하다. 하지만 일의 보람이란 사실은 단순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그 일로 감사를 받는 것. 

얼마 전 호소미 부장이 내게 물었던 목표와 보람. 그게 답일지도 모른다.


- 병아리 사회 보험 노무사 히나코 - 





'경제 소설'이라고 표현했던 옮긴이의 말의 단어가 여전히 서평을 쓰면서 내내 남는다. 

읽는 이로 하여금 극 공감을 연출하게 만드는 '허구'의 배경은 그 안에서 허구 대신 '현실'을 보기 때문이겠다. 직장 생활을 꽤 오래 했고 이제 막 퇴사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더더욱 이 노동 시장의 끝판이자 축소판과 다름없는 '소설 속 에피소드'를 지켜보면서 씁쓸한 잔상이 밀려오기 일쑤이기도 했다. 히요코 ('병아리' 의 일본어) 같은 '히나코' 신입 사원의 '노동시장' 안에서 직장 내 각종 인사 총무의 끝판왕 - 사회 보험 전반과 관련된 서류 작성이나 제출을 대행하고 노무 관련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련의 과정들 - 겨인 그녀의 '업무'로 인해 엮이게 되는 인물들 한 사람 한 사람들의 사정은 비단 허구의 이야기는 아니지 싶었고.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 미즈키 히로미, 작가정신, 2020.03.24.



히나코는 비정규직 파견 직장을 거쳐 힘들게 노무사 자격증을 따 정규직에 입사한 신참 사원이다. 

그런 그녀이기에 어쩌면 노동 현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 나는 처우나, 일련의 작업장에서 행해지는 은밀하게 드러나지 않은 차별과 시선들... 아마 울분을 들끓게 만들면서도 한편으로 냉정하게 그녀 또한 '정규직'의 입장에서 '사측'의 입장에서 철저히 진위 여부를 파악해야 하는 웃픈 현실에 봉착하기도 한다. 노동시간의 위장이라든지, 반대로 비정규직의 열정을 착취하는 악덕 기업의 행태라든지. 하물며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 그에 따른 육아나 출산휴가의 문제, 산재 직장 내 괴롭힘 등등은 비단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의 오늘의 모습일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연애도 하지 않고 오로지 기출문제를 파고들며 공부해 세 번째 시험에서 겨우 합격했다. 내 나이 스물여섯. 앞으로는 내 손으로 일을 선택하겠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기업이나 사무소 채용 공고에 몇 번이나 지원했지만 간신히 입사한 것은 자격증을 딴 지 반년이 지난 4월 중순의 일이었다. 사회인이 되고 맞이하는 다섯 번째 봄. 벚꽃은 져도 새로운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 있었다.  p.13


바쁜 일상이 좋다. 고용된 몸이라고는 해도 내가 딴 자격증으로 나의 담당 분야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는 무슨 일을 해도 '거기 직원' 아니면 '그쪽 여자'로 취급되기 일쑤였고, 거래처에서는 내 이름도 외워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감사하다는 인사도 받는다. p.15


내 입장은 기업 측이다. 노동기준법 등의 법률에 근거해 실수 없이 인사 업무를 수행하고 기업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컨설팅을 하고 있다. 이전에 불안정한 파견직에 몸담았던 만큼 부당 해고를 당했다거나 당연히 받아야 하는 급여를 받지 못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의분이 끟어오르지만 이번에는 초노사무기기에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p.30




소속 여부를 떠나 노동의 과정들은..순항만 있는 건 아니다. 인생이 그러하듯. 




한편으로 여전히 소설을 읽다가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장면도 그려지기 일쑤였으니.

일본이든 한국이든 여전히 '여성' 의 '일' 에 대한 보수성과 가부장적 면모는 여전히 노동시장 내부에서 은연중에 달고 사는 형편없는 형편이 아닐 수밖에 없는 것인가라는... 다소 에너지 낭비하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에너지가 쏠리는, 감정에 잠시 빠져보게도... 되고 만다. 여성의 일, 여성의 커리어, 출산 그 이후의 '경력 단절'에 봉착한 나라서 괜한 자격짐심인 걸까 싶고. 



경리는 여러모로 쓸모가 있지 않습니까. 특히 여자가 하는 일로는. 


-모든 회사가 다 육아휴직을 주고 있나? 일에 복귀할 수 없는 회사도 있을 텐데. 어린이집에 맡기가 힘들다는 애기도 있고.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이야. 

-그런데 말입니다. 국립 사회보장 및 인구문제 연구소가 실시한 최근 조사에 따르면 첫아이를 낳은 후에도 일하는 여성이 50%를 넘었어요.

-처음엔 말이야. 취업규칙이란 이런 규정으로 일하는 거라고 조건이나 대우를 명확하게 하는 거라고 말했잖아. 현실에 적용할 수 없는 규정을 적어봤자 소용없는 거 아닌가.  p.123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에요. 모리타 과장에게 확인했더니 성희롱 발언도 완전히 없던 것은 아니더라고요. 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혹은 우리 회사는 사고방식이 낡으니까, 하는 이유로 대강 처리했다고. 일상이 되면 깨닫기 힘들다. 모리타 과장도 다나베 차장이 내게 했던 발언을 외부 사람이었기에 실례라고 느꼈지만 내부 사람이라면 '일일이 상대하지 마 그게 이익이야'라고 넘겼다고 했다.  p.237






히나코는 애를 쓴다. 

그럼에도 같은 처지에 언젠가 '놓이게' 될지 모를 것 같다는 어떤 불편함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던 것일까.... 히나코를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 젊은 미혼 여성으로서의 커리어를 유지하는 히나코가 그 상대 기혼 여성의 입장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도.. 싶었다.... 내가 미혼이었을 때 일을 그만둘 위기에 처했던, 퇴사를 했던 여자 과장님이나, 퇴사하지 않고 존버했던 여자 차장님의 마음을 전혀 몰랐듯이... 




병아리 씨는 애 같은 소리를 하네. 환영이든 불만이든 0이나 100으로 나눠지지 않아. 어떤 사람은 80퍼센트 환영, 어떤 사람은 50퍼센트 환영이지, 안 그래 


예하고 끄덕였다. 사람의 마음에는 다양한 빛깔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때의 기분이나 어떤 계기로 움직이기도 한다. 안경 쓴 여성의 마음도 어떤 일이 생기면 흔들리겠지.


하지만 그것은 내 일이 아니었다. 내 일이 아니지만, 내 마음 역시 다양한 빛깔 속에 있었다. p.151




아마 노동시장의 기쁨과 슬픔은 계속해서 현직에 종사하는 직장인들이 더 잘 알지 않을까.

이제 나는 그 현직이라는 곳에서 잠시 멀어졌기에 (잠시인지 영원인지 알 턱은 없다만). 다만 옛 추억을 그리듯 소설 한 편을 읽으면서도 자꾸 직전 회사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려져서 화가 나기도, 마음이 쓰이기도 걱정이 되기도 한편으로는... 그저 남겨진 좋은 동료들이 안녕을 빌어줄 뿐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단순하다. 하지만 일의 보람이란 사실은 단순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그 일로 감사를 받는 것. 얼마 전 호소미 부장이 내게 물었던 목표와 보람. 그게 답일지도 모른다. 그때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는 거라고 했던 대답이 너무 교과서 같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번 일로 말이 아니라 피부로 느꼈다. 강력하게 잡은 손에 진심 어린 만족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계약으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 


상대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된다. 첼리치타카발로의 옷도 그럴 것이다. 

칭찬이라고 생각하며 산 사람도 기쁘고 만든 사람도 기뻐해 주니 기쁘다. 




그들의 일이, 단순한 월급을 받는 그 행태 그 이상의 

서로의 '기쁨' 이 되어 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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