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그 안에 속내
브런치 매거진을 개설하고 나니 사뭇 아이 한명 더 키우는(?) 듯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하나 발행해 내는 데에도 이 정도의 시간과 공력(?) 을 꽤나 정성스럽게 들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다니. 이건 마치 딸 하나 더 낳은 듯한, 그래서 애지중지 하고 싶은 그런 느낌이다.
뭘 써 내려갈까 하다가 '나만의 그 날'들을 기억해 보게 되었다. 지금으로선 과거다. 그리고 기록물들을 유심히 쳐다보니 아래와 같은 글이 정제되어 다시 이 곳에서 탄생되었다. 꽤 말끔하게 고쳤다고 생각했으나, 여전히 지극한 개인 사건들과 상념들이 자유 분방하게 이곳저곳 표현된, 그래서 어딘지 모를 불만족도 존재한다.
타인을 의식하기 때문일 지 모르겠다. 이 글을 접하시는 불특정 다수의 사랑하고 싶은 당신들 때문에. 이것도 나의 또 다른 글과 글로 만난 인연들을 위한 애정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합리화 해 보며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새벽 5시
여느 때처럼 냉장고 문 앞에 서며 오늘이 식단표를 보고 그 옆에 붙어있는 아이들 사진 한번 쳐다본다. 그 다음에 거실 한 켠 창문 틈에 세워진 시계와 달력의 날짜를 확인한 후, 비로소 오늘의 요일을 인지하며 그렇게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오늘의 점심 식단은 북어국, 그럼 아침 저녁 도시락은 겹치지 않게….음 된장국’
중얼거리면서도 귀차니즘이 발동하는 게으른 엄마인 나는 어제와 거의 흡사하거나 똑 같은 반찬 준비에 여념이 없다. 달걀, 버섯, 가지, 호박과 기타 그 날의 과일 몇 가지들은 냉장고에서 마구잡이로 꺼내어져 나의 가슴팍에 쓸어 담겨져 바빠지기 시작하는 나의 손놀림 틈에 가만히 있을 겨를이 없다.
7시와 8시 사이
아빠에게 등원을 시키고 남은 집안일과 대충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버스를 탄다. 8시가 채 되지 않은 아침, 드디어 회사 건물로 들어가는 계단과 맞닥뜨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내리는 나는 도착한 직후 책상 위에 놓여진 노트북과 여러 문장들이 두서 없이 휘갈겨져 있는 수첩을 들고 복도로 나온다. 오피스 내의 항상 똑 같은 그 장소는 어느새 나의 아지트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복도와 복도 사이의 조경 시설이 거대한 통 유리 너머로 보이는, 무미 건조하게만 보이는 회사라는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은 조합의, 그러나 그래서 좋은 그 곳으로 향한다. 그렇게 긴 원목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올려 두고 화면을 키는 순간부터 나의 하루는 덧없이 훌쩍 지나가기 시작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오전 9시와 오후 5시 사이
때론 여유 있는, 그러나 몰아치면 끝이 없는 문서들과 작업해야 하는 제안 서류들, 각종 회의와 해외 법인과의 전화통화, 점심 시간의 간단한 샐러드 도시락과 동료들과의 한두 번 정도의 티타임을 지내다 보면 어느새 도달하는 시간. 오후 다섯 시가 지나면 그때부터 마음이 부산스러워 진다.
오후 5시 30분, 그리고 그 이후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그 날의 1차 업무를 회사에서 마치고 2차 근무지(?) 인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시간, 오후 5시 30분이 지나있는 그 시간. 따가운 햇빛에 바람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끈적이는 여름 날 이면 특히 더욱, 나의 가방을 든 손목과 다리 종아리가 이상하리만큼 무겁게 느껴졌고 다리는 뻣뻣해진다
오후의 끝, 그리고 저녁의 시작인 6시 반 어딘가
나의 쌍둥이들은 약 13kg 가량으로 우량 하게 잘 커주고 있다. 그 ‘둘’이 탄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약 15분 여 정도의 산책길은 더 이상 산책의 수준을 벗어난 지 이미 오래다. 온 몸이 땀 범벅이며 입고 있던 연하늘색 블라우스는 이미 마치 나를 가여워해 주듯 그렇게 내 몸에 찰싹 달라 붙어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머리는 뜨겁고 신경은 한껏 예민해져 있는 상태가 되면 오후 6시 반이 막 되려 하는 시간 어딘가 쯤이다.
엄마의 속내, 행복과 욕망 사이
불행하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꽤 심하게. 그래서 더욱 행복을 욕망했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삶이었을까 조차 스스로 잊어버린 채 철저하게 나의 시간이 수동적으로 흘러가던 때. 엄마라는 순간을 맞이하는 굉장히 행복하면서도 동시에 우울감과 좌절감에 휩싸여 불행했었던 시작이기도 했다.
‘참 욕심이 많아. 너란 여자’
무슨 욕심이 많다는 걸까. 주어는 생략한 체 그저 형용사로 표현해 버리기 일쑤인, 나와 함께 사는 그이의 대수롭지 않은 한마디에 갑자기 울컥 치밀어 오늘 때가 많았던 건 유독 아이를 낳고 기르기 시작하던 일년 전쯤부터일 지 모르겠다. 엄마가 되면 모든 걸 포기하고 아이만 돌봐야 하는 건 물론 아니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를 돌봄이 우선 되야 한다는 침묵의 약속은 우리 둘 사이에 이미 정해진 룰처럼 있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 원치 않았지만 애 욕심(?) 은 많게 타고난 숙명인가 보다. 나란 여자'
신생아를 1명도 아닌 2명을 동시에 보아야 했던, 그것도 시간은 지나감과 동시에 안고 있으면 느껴지는 무게감과 거칠게 울어대는 아기의 용트림이 세찬 아들 쌍둥이를 가진 나였다. 지난 1년 반 정도의 그 시간은 마치 10년 같기만 한 무거움과 우울감을 내게 안겨 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예전의 나는 이미 죽어버리는 것 같아서 미처 읽지 못한 임신 했을 때의 책이 바닥 한 구석에 찢겨진 채 나와 마주했을 때, 화장실로 뛰쳐 들어가 숨죽이며 오열 했던 그 새벽의 나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불안했고 불만족스러웠고, 불행하다는 생각만이 나를 감싸고 도는 시간들이었다. 그랬기에 더욱 예전의 스스로 자신감과 자존감이 꽤 충만해 있었던 내가 사무치게 그리운 시간들이기도 했었다. 눈물이 많은 어린 아이 같은 나는 잠든 아가들보다도 더 어린 생각을 하기 일쑤였었다.
“엄마….나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서 나오고 싶지 않아. 그럴 수 없겠지 이제”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얘가, 1시간밖에 못 자니깐 그래. 시간 지나고 잠 좀 자면 나아져. 밥이나 먹어 어서. 둥이들 잘 때, 곧 일어나겠다”
무미건조한 여자 둘의 대화가 짧게 지속 되다가도 어김 없이 배고프다고 기저귀 갈아 달라고 심심하다고 혹은 어딘가 불편하다고 울음으로 의사 표시를 해 대기 시작하는 아이 둘을 대하기 시작하면, 대화는 자연스럽게 끊긴다. 그리고 다시 반복 또 반복이다.
심신이 지칠수록, 이상하게도 이런 불만족스러운 일상에서 벗어나서 뭔가 만족스러운 시간을 상상하다 보니 상대적인 비교를 하게 되어 나를 괴롭히기 일쑤인 삭막한 나날의 나를 기억한다. 그러나 그랬기에, 지금의 나 또한 존재함도 알고 있다.
손에 넣어야겠다는 욕망이 참 많이도 꿈틀해서 내 마음을 괴롭혔었다.
‘인생 별 거 있어 결국 소고기 묵는 거지’ 라는 말로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진, 시간에 대한 욕망, 만나고 싶은 사람에 대한 욕망들을 억누르면서 지내야 했다. 못 먹고 못 입고 못 만났으며 무엇보다 못 읽고 못 쓰는 삶이 반복되다 보니, 무기력감은 물론이며 내가 주체적으로 하고자 했던 모든 행동을 부정 당하는 기분, 그래서 바닥을 쳤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나라는 여자 꽤 근성 있는 인간이라는 것. 우울감에서 헤어 나오려 그럼에도 악착같이 노력했었다. 아무 변화나 행동도 시도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이 너무나 아깝다고 생각했기에.
솔직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내 마음 속, 솔직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육아를 해냄에 있어서도, 일을 해냄에 있어서도 솔직함이라는 감정은 사람과 사람을 보다 마음 속 깊은 어느 곳에서 연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감정도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다 보면 어느새 자신을 부정하는 자아를 발견하게 되고, 그건 즉 삶의 전체적인 부분에 꽤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내 안에 잠들어 있는 화, 분노, 눈물과 같은 어두운 감정들이 몸 안에 쌓여 간다. 그리곤 아파오다가 결국 곪아 터진다. 우울감과 상실감에 젖어서 어느 날 문뜩 또 다른 어두운 자아가 불쑥 튀어나오기 십상이다.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나의 새로운 모습은 갑자기 나를 찾아오고, 그렇게 터져 나와버린 나도 알지 못했던 강하게 억압되어 참지 못해 나온 감정은 사랑하는 사람을 급기야 상처 입혀 버린다. 그 모습과 대했던 나를 기억한다. 그래서 무서웠고, 다시는 상처 입히지도 나 또한 상처 입고 싶지도 않았다. 솔직하고 싶었다.
‘말 하고 싶어, 읽고 싶고 쓰고 싶어…. 그럴 수 없는 환경이란 건 나만 알 수 있겠지만….’
시간도 공간도 모두가 제약적이고 한계에 부딪혔다.
엄마가 되고 나서의 나의 삶은 360도 바뀌었던 순간들은 나를 억눌렀다. 이건 마치 다른 세계 사람이 되어 세계관을 다시 짜맞춰야 하는 그런 미지의 영역이었다. 물론 경이롭고 행복한 순간도 분명 존재한다. 그건 꽤 강렬하게, 아이를 돌봄으로부터 나오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의 사랑들 - 이건 좀 더 다른 글에서 집중적으로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그럼에도 엄마는 엄마가 가지고 싶었던 감정들에 솔직해 지기 이전에 상당히 현실에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며 때론 감정을 숨긴 채 본분에 충실해야 하는 순간들이 대부분 내가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이었다.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순간엔 항상 엄마와 아내라는 역할에 부딪혀야 했다.
내가 솔직해짐으로 인해서 대신 사랑 하는 가족들, 지인, 기타 타인의 따가운 시선과 눈초리을 나는 감수해 낼 자신이 사실 없었다. 반대로 진정 하고 싶은 말을 억누르고 싶지도 않았다. 그건 즉 스스로를 미워하고 부정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가급적이면 전자였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해왔다. 그래서 였을지 모른다. 내가 솔직해질 수 있는 힘을 가지기를 바라서 줄기차게 써 내려갔던 (거의 휘갈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노트 속의 거친 단어들이 그 시절의 나를 대변해 준다. 솔직한 엄마가 된다는 것은 좀 더 성숙한 어른을 향한 시작점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성숙한 엄마란, 우습지만 스스로 이렇게 정의 내려 본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들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다만 새롭게 주어진 환경에 확고한 나만의 주체적인 가치관 위에서 꽤 단순하게 그냥 솔직한 나를 조금씩 보여 줄 수 있는 엄마라고.
명상이 별걸까 싶어서 시작한 나만의 일상명상일기
나의 글쓰기의 방향과 문장, 단어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그때쯤 이었던 것 같다. 출산하고 반년이 지나 드디어 독박 아닌 독박 육아를 몸소 실천해 보이리라는 강한 의지가 섰을 때. 진정한 독립적 엄마로서 살아내야 함을 온 몸 절절히 깨달아야 했던 때. 사실 그때부터 나는 그저 버티는 게 아니라 솔직하게 이왕이면 잘 살아 내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통한 나름의 일상 명상을 (아주 초보적이지만) 일기 형식으로 줄줄이 써 내려가면서 글을 통한 일종의 분노/스트레스/힐링 도구로 쓰기 시작해온 것도 어쩌면 요 근래부터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이지만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그렇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심리/철학/명상 그리고 죽음과 관련된 가볍고도 깊이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섭렵해 내려가기 시작한 나는 지금도 그 일상은 연장이 되어 ‘오늘’이라는 시간을 맞이한다.
조금씩 깨달아 가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는 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지. 그러나 우리 모두는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는 잠들어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한다. 다만 그 힘을 깨닫기 이전의 우리 본연의 모습은 유리잔처럼 너무나 나약하다. 그래서 보이지 않은 채로 현실을 살아가기 십상일 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동기에 의해 (그게 어떤 사건이든지간에) 내가 살아가는 이유, 삶의 본연의 흐름에 나를 맡기는 때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 삶을 대함에 상당히 나약한 존재들이나, 그 나약함을 스스로 인정해낼 때 비로소 힘을 낼 수 있다는 것까지도. 이 모든 게 우리 삶의 진리일 수 있다는 느낌을, 나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아마도 큰 이변이 없는 한 내일도 한 글자 한 문장 적어 내려 가면서 스스로 질문하고 또 답을 해 보며 그렇게 나의 오늘을 여행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새삼 고마운 지금 이 순간
뜻밖이 선물을 받은 오늘 오전 하루가 유난히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선물 때문이렸다. 그러나 선물 이전에 그것들을 감사하게 생각할 줄 아는 내 마음이, 그렇게 조금씩 치유되어 웃을 줄 아는 오늘의 내가 고마워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열 손가락이 살아 있음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또한 약간의 허세를 더하여 그 시절 앞이 너무나도 막연해서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어둠을 달려나가는 듯한 상실감과 우울감에 빠져서 허우적대었던, 삶을 통째로 부정해버렸던 나의 지난 시간들도 이제는 고맙다. 덕분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덕분에 나는 이 글을 마치면서 미소 짓는 오늘의 내가 거울 속에 비치니 말이다.
나도 그냥 '내'가 여기 있는 걸 확인하고 싶은가봐.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남길께. 나의 오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