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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l 26. 2017

3. 옥상의 민낯과 만났을 때

나의 루프탑 시공일기, 셋

시간이 흐르고 재빨리 그걸 녹여 내고자 글을 쓰다 보니 뭔가 소설(?) 의 스멜이 느껴진다. 읽고 계신 '당신'이 그렇게 느껴지신다면 대단히 유감이고 죄송스럽다. 사실 이건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실화'니깐.

그것도 지난 며칠부터 시작된 현재의 기준에서 과거가 되어버린 시간의 흐름을 최대한 끌어내어 (가뜩이나 떨어져 있는 기억력의 소유자가 되다 보니) 써 내려가는 (아니 사실 휘갈겨내고 있는) 역효과라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오늘도 나의 루프탑이 완성되는 날까지의 날들을 세세히 기록해 본다.  이 시간들과 마주하는 나를, 그리고 공간속 나의 이야기를.


그 날은 비가 내렸다.   

   토요일 새벽 5시. 누군가는 아직 금요일 밤의 연속일 수 있는, 혹은 누군가는 아직 이불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시간이던가, 아침의 시작을 알리는 자명종 소리가 들릴 지 모르는, 그런 주말 이른 아침. 창밖을 보니 이미 적셔진 도로가 보인다. 부슬비로 시작된 토요일이었고, 어김없이 기상하는 아기들과 하루를 시작하는 나를 맞이했다.   


  

  아기들은 다행히도 대단히 원기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 특히 침을 질질 흘리며 입 안에 생기는 수족구병의 일종인 구내염에 걸려버린 둘째 아가의 칭얼거림 덕분에 내 두 눈은 퀭했고 머리는 부스스한 게 어찌 보면 당연한 몰골(?) 이었다. 새벽부터 하루 종일 애미의 등과 품에 찰싹 달라 붙어서 칭얼대는 아기를 앉고 있으면서도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 보며 재빨리 톡을 보내야 했던 건 바로 우리집과의 첫 만남을 앞둔 문도호제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부슬비가 내리는 오전입니다. 대표님, 지난번 적어 드린 주소로 조심해서 천천히 와 주세요.”  


  부산스럽게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은 비슷하다. 매일 아침 고슬고슬하면서도 찰진 하얀 쌀밥을 시작으로 된장국을 끓이고 주말 특식 이라기엔 상당히 부끄럽지만, 소고기가 잘게 여며져 들어간 달걀말이와 우유가 적셔진 토스트를 한다. 다른 게 있다면 특별히 맞이할 손님 다과를 준비하는 정도.  

 

  손이 꽤 빠른 나는 (좀 덜렁대는 편이기도 하나) 대부분의 아침 집안일과 식사 준비를 마치고 시계를 바라 봤다. 8시 20분이 좀 지나져 있었다. 다 늘어진 흰 민 소매티에 후줄근한 핫팬츠를 입은 내 모습이 비춰진 거울에 비쳐진 여자는 거의 눈 뜨고는 못 볼 수준의 참담한 상태라, 성급히 씻을 준비를 그제서야 하는 게으른 엄마기도 한 나였다.   


  잠시 회사에 나가봐야 했던 신랑에게 첫째 둥이를 딸려 보내고, 여전히 미열과 아픈 몸상태 덕분에 엄마에게 달라 붙어 있으려 하는 둘째를 품에 앉은 채 다시금 핸드폰을 쳐다 보았던 오전 8시 40분. 답장이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지금 집 앞입니다. 천천히 일 보고 나와 주세요”  

  

옥상의 맨 모습과 마주했을 때  

  민낯을 보인 다는 건 얼마나 솔직해야 서로에게 서스름 없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멋지고 예쁜, 아름답고 활기찬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써 민낯을 감추고 싶은 어린 아이 같은 마음, 그러나 서로를 깊이 알아갈수록 마침내 보여지는 맨 모습조차 모든 게 좋은 면으로만 비춰지는 솔직하고 반가운 사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관계일 지 모른다.

비춰지는 모습 그대로 보이는 맨 모습의 시작

  ‘여기 HEAVEV’이 탄생되기 이전의 맨 모습을 처음 접한 대표님에게도, 부디 루프탑의 민낯이 그래도 썩 유쾌한 장소이기를 기대하며, 나는 둘째를 품에 앉은 채 약간의 긴장감과 설레임으로 현관 문을 열며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멀리 오시는 데 비가 내려서 많이 힘드셨죠.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어서 오세요”  

“여행 하는 기분이었어요. 역시 꽤 멀지만 뭐 괜찮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짧은 인사를 건네며 자연스럽게 계단을 올라 가고 있었다.

 

“2층이 저희가 사는 곳이고요 (어느새 도착해 버린  집 현관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들어가는 나였다)   

“아 네. “  

“옥상에 바로 올라가 보실까요 아니면 잠깐 날이 더우셨을 테니 2층에서 차 한잔 하고 올라가시는 게 어떠실지…”  

“뭐든 상관 없지만…가방을 놓고 가면 좋을 것 같아서요”  

“네 들어오세요. 신랑은 잠시 회사에 가서 곧 올 거고요. 기다리다 보면 같이 뵐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  


뭔가 어색함과 긴장감을 애써 뚫고자 줄기차게 이야기를 해 대기 시작했다.


“지금 둘째가 많이 아파서 제 품에 쏙 안겨져 있어요. 제 몰골이 좀 초췌한데 너그러이 양해를…”  

“아이구 힘드시겠습니다. 아기 둘을 보시느라..”  

“자녀분이 실례지만....?”  

“네. 한 명 있어요. 고 1 딸”  

“와….다 키우셨습니다 (부러움 열매 오드득)     


  호구조사를 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었지만, 약간의 어색함과 드디어 공사 전의 옥상과, 작업량을 파악하러 오셨기 때문에 (그건 즉 예산과도 상관 있는 첫 만남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뭔가의 긴장감이 날 스치고 지나간다. 그 느낌을 품 안의 둘째도 알아 챘던 걸까. 갑자기 칭얼대다가 조용해 지며 빤히 낯선 아저씨를 쳐다 보기 시작하는 둘째의 조용하고 따가운 시선이 대표님에게 전해졌을 지 모르겠다.   


“바로 옥상을 좀 볼까요”  

“아. 네 저도 같이 올라갈께요. 아가 잠깐 엄마랑 올라가보자”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지나쳐, 녹슬지만 않았을 뿐 거의 구식 철문이나 다름 없는 부끄러운 문을 열고 루프탑의 민낯을 세 사람이 맞이하는 순간이 뭔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꽤 넓네요”  

“네….”  


그리고 무언의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었던 걸까. 나는 변명 같은 소리를 해 대기 시작했다.  


 “신혼을 단독주택, 아니 다세대 주택에서 엉겁결에 시작해야 했어요. 설계부터 집안 구석구석의 동선, 인테리어 등, 사실 제가 상상하는 모습이 전혀 아니었어요...

  이유야 어쨌든, 저희 지하가 있고요. 이 옥상도 한번 잘 활용해 보라는 시부님 뜻에서 이렇게 만들어는 주셨는데 정말 공간을 ‘만들어만’주시고는 어떤 마무리 작업도 하지 않고, 정말 최소한의 방수만 해 놓은 휑한 상태네요.”   


“네 말씀 안 하셔도 대충 알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사실은, 옥상 방수도 몇 번 손 보긴 했어요. 워낙 물이 샜던 과거였던 지라…”  


“근데 여기 이곳, 좀 위험해 보여요 벌써 우레탄이 벗겨져 있네요.

흠...콘크리트 바닥이 보인다는 건방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니깐요.

혹시 최근에 비가 많이 왔을 때 새거나 하지 않으셨나요? 아까 2층 집에 검은 색으로 곰팡이 슨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부분에 결로가 생겨서 그런 걸 거예요”  


 역시 전문가였다. 

거주자의 입장에서 보는 단순한 우리 집과 옥상의 단면이 아니라 역시 보자마자 곳곳의 전기가 설치되어 있고, 수도관이 나와 있는 배수 시설, 그리고 방수가 벗겨진 옥상 바닥을 보자마자 걱정스런 눈으로 차분히 설명을 해 나갔다.   


“사진을 좀 찍어도 될까요?”  

“네 물론입니다”  


몇 장의 사진을 찍으며 옥상의 이곳 저곳을 차근차근 둘러보시곤

  

“이 지대의 건축법률을 좀 찾아 보았는데요. 3층은 무리이고, 단 부분 적인 천장을 설치하는 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사용하시고자 하는 구조를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모든 건축물을 설계하고 시공해 나감에 있어서 그 공간/건축물이 위치한 대지·구조 및 설비의 기준과 용도 등을 정한 법률을 따라야 한다. 이게 바로 소위 말하는 건축법이다.


“네. 지난번에도 말씀 드리긴 했지만 여기 이곳의 단차가 있으니 이런 단점으로 보이는 것들을 최대한 특장점으로 빼내어 제가 저번에 스케치하듯 그리며 말씀 드린 구조를 공간브랜딩 할 수 있도록 연출해 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공간브랜딩이라는 몹시 전문가틱한 단어를 뻔뻔하게 쓰는 나란 여자란!


“보시다시피 이쪽 부분을 기준으로 단차가 존재함 보이시죠. 이 단차를 기준으로 벽이 있는 이쪽에 스크린을 띄울 수 있고 긴 테이블을 중심으로 소규모 모임을 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날씨가 좋으면 제가 여기 나와서 제 작업/일(?) 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단차를 기준으로 아래 있는 공간은 휴식, 떄로는 포트럭 파티가 열리는 마치 루프탑 카페의 자유스러운 느낌이 연출되면 좋을 것 같은데…..”  


‘난 이 공간을 왜 만들려고 하는 걸까’  


말이 흐려질 수 밖에 없었던 건, 이 질문이 퍼뜩 내게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직도 전체 공간의 실용적인 사용성에 대해, 스스로 뚜렷한 그림을 그리지 못했기에. 다만 바라는 한 개의 장면만이 선명했기 때문일 지 모르겠다. (지극히 감성적이다. 이런)   


사실 옥상을 재구성 하자는 생각을 확정짓고 나서는 매일 밤 올라가 보았다. 그러나 허허벌판의공간을 마주할수록 나는 망설였었다. 만들기로는 다짐해 내었으나, 어떻게 공간을 배치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가 이상하게 생생하지 않고 막연하게 느껴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내려고 부단히 애쓰다가 지쳐 버리는 요즘의 내 심리 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런 나를 이해해 주셨던 걸까. 말이 끝나자마자 한번 둘러보시더니


“네.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 내고자 싶으신 건지는 사실 어느 정도 사연과 설명을 통해 심정도, 느낌도 충분히 이해했고요. 음… 스크린을 이쪽 흰 벽에다 띄우는 것도 좋지만 저는 이 공간을 보자마자 저쪽 반대편에 띄우는 것도 꽤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어요”  


아…순간 무언의 소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그러나 듣고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을 아니 훨씬 멋진 공간 배치 아니었던가. 그래서 비전문가와 전문가의 시선은 정말 다른 걸까.   


“이 단차를 이용해서, 객석의 느낌처럼 연출 해 내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어요. 그리고 옥상이 지금 상당히 좀 건조한 느낌인데, 혹시 조경을 생각하시나요?”  


“아… 네. 사실 욕심을 내자면 한도 끝도 없죠. 그러나 예산도 고려해야 하고 사실 저희가 이 집에서 평생 살 거라면 충분히 조경도 멋지게 만들 수 있겠지만, 최소 10년 안에는 이사를 한번 갈 계획이예요. 물론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만, 여하튼 이 집에서 사는 동안은 충분히 멋지게 사면서 활용해 보고 싶은, 마치 훗날 또 다른 공간 연출 전에, 시도해 보는 테스트 버전의 공간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말해놓고 부끄러웠었다. 소위 돈 지랄해대는 걸로 보이면 어쩌나. 그 돈이라는 게 그렇게 엄청 인테리어를 들었다 놨다 자유롭게 할 만큼의 여유가 있진 않은데 여하튼 별 걱정을 다 하는 나란 여자란 쌍둥이처럼 마음이 생기자마자 행동이 같이 앞서가는 정말 구제불능이다.  


“조경은 있음 좋겠지만 화분 수준..? 의 느낌만 상상이 되요"

“화분은 오히려 관리하기 힘드실 거예요. 어떤 느낌의 조경을 원하시는 지 알 것 같고요. 아무래도 식물이 몇 개 있다 보면 생명력이 돌기 마련이니깐요.”  

“네. 저도 환경 친화적인 느낌을 충분히 살려 주시면 why not 입니다!”  

“하하 네 알겠고요.. 일단 네. 불가능한 건 아니예요. 간단한 다과를 하시려면 이 쪽에 주방 시설을 배치하면 좋을 것 같긴 하지만, 오래 사시진 않으실 거라는 점과, 테스트버전이나 역시 모임과 가족들의 휴식 공간으로 적합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최대한 고려해 볼께요. 음….일단 대충 사진은 다 찍었고요  


이야기가 오고가던 중에 갑자기 아이가 칭얼대기 시작하며 갑자기 세차게 울어대는 탓에 나는 먼저 2층으로 내려와야 했다.   


“전 조금 더 둘러보고 갈 테니 어서 내려가 보심이 좋을 것 같아요”  

“네 그럼 먼저.....”  


그렇게 먼저 2층으로 내려와서 칭얼대는 아기를 품에 안은 채 간단한 다과를 준비하고 있던 와중에 내려오신 소장님이 보였다.

 

“저는 진짜 신경 안 쓰셔도 되는데…고맙습니다. 아이키우는 거 힘드시겠어요”  

“네 뭐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다 그렇죠. 아무튼…옥상 어떠셨어요? 작업량이 많은 수준일까요?”  

“아니요 그렇게 큰 작업량은 아니지만 어떤 공간으로 빼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좀 해야 할 것 같고요.

역으로 시간계산이 좀 필요한 데 최소한 공사 마무리를 언제쯤으로 하시는 걸 생각하실지?”  

“가을…..늦어도 10월말 전까지는 완성 되었으면 하는 바람 이예요”  


사실은 꼭 가을이었으면 했다. 

 4년 전의 가장 내가 사랑했던 내 모습이 살아있는 바람 부는 가을을 막연히 그리워 하며 공간을 생각한 처음 순간이기도 했으니깐…   

혼자가 된 가을의 시간이, 꽤 괜찮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어. 그치만 좀 더 친절한 공간이기를 바랐기 때문일지도.


“네. 저도 가을 정도가 적당할 것 같네요. 당장은 무리이고...”  

“혹시 공사 하면서 방수공사도 같이 들어갈 수 있을까요?”  

“네 불가한 건 아닌데, 보통 여름이 지나고 하는 게 좋으니깐요. 음…..”  

 

“예산은 어느 정도로 잡고 계실까요. 그것도 고려 해서 사용 자재물, 인테리어 등도 구상할 수 있어서요.”  

“아 네. 솔직히 제가 루프탑 시공은 처음이라, 저도 작업량을 보시고 견적을 받기를 원합니다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마지노선이라는 게 있으니 너무 막연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선 그러실 수 있어요. 그래도 대략 scope 을 알려 주셔야 도움이 되니깐…”  

“처음엔 얼토 당토하게 500 수준을 생각했었어요. 근데 왠지 제가 멋대로 상상해 버린 공간을 모두 연출해내는데 그 정도는 터무니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저도 좀 했던 지라 천 전후로 생각하고 있고요.


"사실은 너무 무리하지 않은 수준에서 연출된 공간이 마음에 든다면 어느 정도 예산은 수긍할 정도의 수준이면 문제 없을 것 같아요.”  

“아 네… 일단 그럼 저희가 공간 연출을 생각해서 역으로 견적을 일단 그 수준 기준으로 잡고 작업량을 고려해서 다시 말씀 드릴께요. 이해했고요. 음 혹시 실측을 하러 나오기 위해, 평일이지만 잠시 몇 번 더 댁에 다녀와도 될까요?”  

“아 네 물론입니다. 너무 죄송해서 어쩌죠 좀 더 느긋하게 여유 가지고 이야기 하면 좋겠지만, 저희가 바로 또 선약이 있어서….”  

“네 괜찮습니다.”  


1층 현관문을 열고 인사를 건네던 찰나, 다행히도(?) 회사로 잠시 노트북을 가지러 갔던 신랑과 첫째 둥이와 마주친 우리였다.   


“인사해요. 이 쪽이 문도호제 임 대표님이요. 마침 옥상 다 둘러보고 가려던 차였어요.”  

“아. 안녕하세요”  


  우리 부부 둘 다 경황 없이 첫째와 둘째를 품에 안고 유모차에 우산에, 부산스럽게 준비물을 챙기며 그렇게 대표님과 첫 번째 옥상에서의 미팅을 마쳐냈다.   


  2층에 다시 올라가 보니 식탁 위에는 미처 마시지 못한 물 한잔과, 손 대지 못한 다과들, 그리고드리려고 챙겨 두었던 두유 1팩이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떘어?”  

“사실은 나 되게 내 자신이 이상하게 부끄러웠어. 뭣도 모르고 덤벼만 대는 나와는 달리 역시 전문가더라. 내가 생각한 스크린과 테이블이 착석될 수 있는 공간을, 그 분은 다른 시선으로 마치 꼬아서 연출해 낼 생각으로 조언을 해 주시더라고. 무미건조한 옥상을 생명력 있게 약간의 조경도 생각하고 있고, 아 그리고! 방수 공사도, 보자마자 걱정하시더라 우리집 우레탄 벗겨진 부분 있잖아….”   


갑자기 터져버린 말을 막을 수 없어서 쉴 새 없이 조잘거리기 시작한 나였다.  


“그래. 예산은 어느 정도야?”  

“오히려 공간 연출을 우선 그려 보고, 그에 맞춘 작업량을 구상해야 견적이 나온다고 하더라. 그래서 일단 대충 마지노선만 천 전후로 말씀 드렸지. 모르겠어 견적은 나와봐야 알 것 같아”  


“나도 옥상 활용하고 싶었었으니깐, 제대로 해서 잘 활용하면 좋지. 예산은 일단 너무 무리하게 타이트하게 맞추지 말고 좀 투자해도 잘 만든다는 식으로 해 봐”  

“뭐야… 자기가 무슨 대부호(?) 느낌으로 돈은 상관 없으니 잘 만들라는 식으로 말하는 그 말투는 


어이가 없었다. 나는 굉장히 현실적인 아내인지라.


“하하. 그런 게 아니라..”  

“난 솔직히 이 집에서 평생 살 생각 없고, 진짜 제대로 통 단독으로 짓고 싶은 꿈은 자기도 있잖아. 그치만 사는 동안만이라도 옥상이라는 휑했던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어서 루프탑 공간도 상상했던거니깐…일종의 테스트 버전…실험실?”   

“그래. 옥상은 Heaven 거니깐 한번 잘 만들어봐”  


내 공간, 내 것.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문 너머로 보이는 '진짜 내가 솔직하게 될 수 있는 나만의 공간,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시간들과 함께 하는 나의 공간들..


  정말 가을이면 완성이 되긴 할 수 있는 건지, 그 안에 어떤 소소한 에피소드들과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과 여전히 존재하는 긴장감이 나를 감싸고 돌았다.   


  다음 만남은 기약이 없었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는 무언의 느낌이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첫번째 스케치된 ‘HERE HEAVEN’ 을 볼 수 있을테고, 난 그 만남이 이루어질 곧 다가오는 8월을 기약하며 그렇게 친정으로 떠나는 차 안에서 칭얼대다가 잠든 아기 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창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상상만 했던 루프탑 공간이 현실로 조금씩 나오려고 꿈틀대기 시작하는 지금이었다. 시작이 부디 끝까지 잘 마무리 되어 현실로 드디어 눈 앞에 마주치게 되는 뭉클한 순간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에 또 그려지기 시작한 토요일이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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