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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pr 15. 2020

전업주부 '놀이'를 한다는 그녀에게

내가 약해지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지니까.

열심히 할 겁니다. 모두들 그렇지 않습니까. 


- 스토브리그 - 





아이들의 요구사항을 수시로 들어주다 보면 어느새 하루는 금세 지나가 있다. 

휴일엔 아침과 점심, 저녁의 세 끼, 평일의 기관에 보낼 수 있는 날에는 아침과 저녁이라는 두 끼. 끼니를 챙기는 건 사실 별로 어렵지 않다. 음식이야 만들면 그만이다. 오히려 많은 에너지와 정신적 강인함을 요하는 부분은 아이들의 들어주기 쉽지 않은 요구사항에 대한 설득과 타협점의 찾음이다. 그 협상에 실패하게 되었을 때, 협상 결렬로 인한 후폭풍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찢어지는 울음소리, 쉬이 잠들지 못하는 아이들의 성화의 다독임, 그로 인해 스스로 상당수 인고하고 인내하다 기어코 같이 폭발하고 마는 괴물 본성, 그 이후의 자책감, 슬픔, 고통.... 등등. 일종의 '내부 고객' 일 수 있는 가족구성원의 '돌봄' 은 그러하다. 가족이기에 더 한 '일' 일 수 있다고 늘 생각하고 산다... 



그랬기에 돌봄과 양육을 전적으로 도맡아야 하는 '전업주부'는 무보수 노동자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다니며 아이 둘을 볼 때도 사실 '전업주부'의 상황에 놓인 '나'를 가끔 상상했었다. 두 손 두 발 들 정도의 긴장감과 스트레스가 찾아올 게 분명했고, 그래서 언제나 전업주부의 일상을 보내는 이들이 대단해 보였다. 특히 기관에도, 양가 부모님에게도, 기타 타자인 도우미의 손을 빌리지 않고 아이들을 잘 기르는 전업주부는 필시 여전사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었다. 전사.... 자신을 내 던지며 전쟁터에서 살아남아야 하며 지켜낼 것은 지키는 사람... 




등에 엎은 '가족' 이라는 전우를 지켜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의 전사, 그것이 전업주부 아니던가. 



그랬기에, '전업주부 놀이'를 한다던 누군가의 글은 심기를 건드리기 충분한 불편함을 주기 시작했다.

잠시 쌍둥이 둘이서 잘 놀고 있는 것을 지켜보며 틈새 시간을 쪼개 블로깅을 하던 중 어떤 이의 글을 접하고 만 것이다. 아이 명으로 추정되는 그녀는 부동산이라는 소위 그쪽 업계에서는 난다 긴다 하는 스타 강사 명이었다. 그녀의 '놀이' 발언이 이상하게 속상했던 건, 누군가에게 그저 시덥잖고 가벼울 수 있는 '놀이'가 누군가에게는 처절한 사투이자 '노동' 이 될 수 있다는 걸 별로 개의치 않은 듯한 무례한 가벼움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업주이기도 한 그녀이기에 전업주부는 돈을 버는 노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걸까... 



사실 불편함의 원인은 같은 '여성' 이 하는 '놀이발언' 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는 집안일'만' 하는 여성들의 노동에 대해 사업주로서의 그녀가 한 번이라도 제대로 생각을 해 보았다면 전업주부의 수월치 않은 일상이 어찌 놀이로 쉽게 대변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사실은 적잖은 실망감이 더한 '감정' 일 것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던 때의 나는, 사실 워킹맘보다 전업주부가 극한 직업일 수 있다고 언제나 생각했다. 



'전업주부'의 정체성은 정의를 내리기 상당히 애매모호한 노동자나 사실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비경제활동인구에 속하면서 상당수는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여성이 대부분이며, 하물며 자발적인 자처함일지언정, 그들은 경제활동인구에 속하는 가족 구성원을 대신하여 조용히 가려진 그늘 뒤에서 묵묵히 댁 내의 일상을 지원해야 하는 그림자 노동자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제 조건은 몇 개 있다. 너무 많은 기관에 '외주 청탁' 을 맡겨 버리는 게 아닌, 도우미나 가족의 도움 없이 '온전히 스스로, 주체적인 전업주부'의 일상을 해내야 하는 이들이라면...



주 양육자가 부모든 기관이든 외주 청탁된 '타자' 이든... 아이들은 엄마를 찾곤 한다...



그랬기에... 다시금 그녀의 '전업주부 놀이' 글을 스크롤을 내리며 지켜보며 사실 분노했고 가소로웠다. 

게다가 한 명... 취학 아동으로 추정되는 자녀와의 온라인 개학으로 학원조차 쉬이 보내지 못해서 힘들다던 그녀의 발언이 몹시 불편하다던 그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 '놀이'에 대해서. 누군가는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을 하며 댁 내 모든 대소사와 일상 가사업무를 하는 통에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 현상이 심각한 정신적 우울감을 동반하고 마는 '병' 이 될 수도 있으며, 또 누군가는 네 명의 엄마로 다둥이를 외국에서 홀로 키우느라 갖은 애를 쓰면서도 자신의 정신력 하나로 하루를 버티는 일상이건만, 물론 '놀이' 삼아 해내는 '긍정력' 이라면 그럴수 있지만. 그렇지만.......



누군가의 놀이는 누군가의 사투이고 투쟁이 될 수 있다.

사업주로 성공한 이들의 화려한 경력과 일상이 한편으로는 실소를 자아내게도 만드는 것은, 바로 자신의 힘으로만 그 '백그라운드'가 달성되었다고 생각하는 겸손하지 못한 자세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에게 돌봄이라든지 육아와 같은 노동현장은 사실 그리 절망적인 상황이 아닐 수 있다. 아마 동감도 잘 되지 못할 것이다. 왜 그리 엄마들이 '고통' 스러워하는지를. 그들은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혹은 대단히 적극적인 주체적 활동자로 참여하지 않은 '리그' 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가 해 봐야 아는 '그라운드' 가 있다... 



리그에 참전을 뼈 저리는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통감해본 자들은 그래서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할 말을 잃고 만다. 말을 아끼게 된다. 아픔을 아는 자들은, 누군가의 아픔을 함부로 말할 수 없기 때문에.... 한편으로 그녀의 글을 읽으며 쌍둥이를 키워봤다면 그녀가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 뉴질랜드에 사는 아들 네명을 키우는 나의 친구가 그 글을 보았다면 기가 찰 노릇이기도 했을 것 같고. 여하튼 요 근래 예민해진 나는 괜한 기분 탓인가 싶어서 생각을 하지 않으려 블로그를 닫아 버리고 실소 이후에 잠시나마 반대로 스스로 어떤 반성을 해 보게 되었다. 나 또한 월급이라는, 수입이라는 돈 몇 푼 버는 행위로 인해 아이 돌봄의 지원을 해 주신, 전업주부를 자처해 준 친정엄마께 함부로 말하고 행동했던 적은 없었는지를...



이 일상을 전혀 놀이로 생각되지 않는 나로서는, '열심히 할겁니다' 라는 어떤 드라마 대사가 생각이 났다. 

그럼에도 '열심히 이 일을 할 거다'라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놀이로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그건 한계가 있기에. 오래 유지되려면 처절히 노동으로 인식하고 그 노동에 대한 대가에 대해서도 '자신' 에게 부여해야 바람직할 것 같기에. 삶의 최대의 과업일 수 있는 극한의 직업이고 고도의 멀티 플레잉을 요하는 '노동자' 일 수 있는 전업주부라는 책무에 대해, 나는 어제와 오늘처럼, 아마도 내일 또한, 놀이가 아닌 '노동'으로 시간을 대하는 '전업주부' 로서의 어떤 슬픈 각오를 마음에 담는다. 많이 예민하다고, 누군가는 또 말할 지 모르겠지만. 



나의 두 사람, 그들의 웃음과 성장을 지켜낼 수만 있다면....





폭풍성장...
지켜내겠다. 이 미소. 
사랑한다...1분 2호. 우리 이제 화해하며 더 잘 살자...T_T 



#놀이는_개뿔_나원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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