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Apr 14. 2020

지켜야 하는 것들

잎싹은 날개 밑에서 나오려고 꼼지락거리는 아기를 힘주어 안았다.

마당 식구들이 아기를 보면 더욱 화를 낼지도 모르니까.


- 마당을 나온 암탉 - 






등 하원을 병행하다 보니 종종 '마당을 나온 암탉'이나 '엄마 까투리'를 떠올리곤 한다 

오늘의 등원 길에서 다시금 잎싹이 생각났던 건, 내가 잎싹과 은 '품는 마음'을 지니기엔 여전히 너무나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말았기 때문이다. 다시금 요란스러운 아이들에게 화를 내버리고 말았기에. 아이들의 존재는 '화풀이'의 대상이 아니건만. 순수하고 맑은 영혼... 지켜야 하는 사랑의 대상, 고귀한 생명, 개체로서의 인권을 가진 소중한 사람...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쉬이 고조된 분노를 잠재우기가 요즘 들어 여간 쉽지 않다...



점심시간 즈음, 잠시 동안 친구와 짧은 대화로 안부를 주고받다 나는 요 근래의 마음을 토해내 버렸다. 

내면의 세계는 이미 불안정했기에.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나를 자꾸만 '분노' 하게 만들었음을. 그 분노의 표출은 가장 일그러진 인간의 본성 마냥, 가장 만만하고 나약한 존재에게로 간다는 것마저도. 너무나도 부끄럽고 낮 뜨겁지만, 친구에게 아이들에 대한 나의 양육 일상을 고백하며 한편으로 나라는 인간의 마음의 문제로 인해 아이들에게 종종 화를 내고 마는 '나'를 친구에게 알리려 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내가 따끔한 일침을 받기를 바랐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육아 선배인 나의 친구에게서라도... 나는 구원받으려 했던 걸지도 모를 일이다. 



- 이런 개인적이고 이기적이고 비겁한 속물인 내가 아이들을 기른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야. 

- 그럼 낳지를 말지 왜 낳았어 

-.... 나도 그러고 싶었어. 그럴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어. 근데 막상 낳아 놓으니 책임은 지금 혼자 지고 있잖아..

- 억울함이 쌓여서 그래. 지금. 

- 맞아. 억울함. 그래서 화가 나나 봐. 알아. 그이도 최선을 다한다는 거. 그렇지만 냉정하게 따지자면 한계야. 모든 게 한계적이지. 그렇잖아. 돈 벌어 생계유지해야 하니까 바깥일 하느라 바쁘니까? 그래. 그러나 돈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라는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문득문득, 아이들 키우다 힘들 때 떠올리게 돼. 그러면.. 이상하게 화가 나....

- 처음 새벽에 잠 못 자고 애 키운 게 너랑 너희 친정식구들이어서 그래. 배우자가 같이 있었어야지.

- 그랬어야 했어.... 주말 부부를 하는 게 아니었어.. 내가 미친년이었지... 엄마랑 나만 개고생 했지.....

- 자초한 거야. 혼자 고생할 거. 네 어머니랑 고생할 게 아니라 그걸 남편이랑 같이 했어야 그쪽 가족도 알지. 

-..... 맞아 자초한 거야 내가.... 그런데 정말 속상한 건, 사람이 사람을 낳아 기르고 낳고 살리려는 고통을 그이는, 그이 식구들은 여전히 이해를 못해. 이해하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면 내가 왜 그렇게 예전에 미쳐 날뛰었었는지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자기들 서운한 것만 생각하고 따졌었지... 내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를 하려는 사람들이 아니었어. 둘째 며느리? 쌍둥이 낳고 기르느라 개고생 하는 동서?... 애초에 그런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어 반대로 이해를 얻으려고 했었지. 애들 키우기도 버거운 나한테... 말이지. 

-.....




일렁임은 작은 파동으로 인해 큰 물결을 만들어낸다. 




친구에게 이야기를 토할수록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4인 가족의 평화를 지키려다 보니 한편으로 잠재된 감정, 분노, 억울함들이 다시 일그러지듯 찾아왔었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싶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 그 상황에 처해진 '나'를 견디지 못하고 나는 못내 또 일그러지고 만다는 것을. 너무 힘든 나머지 친구에게 두서없이 이야기를 내뿜고 있는 동안 친구는 말했다. 



- 어쨌든 하나씩 고치려고 해야지. 그래야 발전이 있어. 화를 안 낼 수는 없어. 모든 부모가 화를 내면서 키워. 네가 비정상이 아니야. 괜찮아. 화를 내도 부모가 있는 게 중요한 거야. 아이들은 또 만만한 사람이 '엄마' 니까 화를 내는 거야. 

-.... 뭘 해줘도 내가 밉대. '엄마 미워' 소리에 환청이 들릴 지경이야. 분해서... 내 시간 내 에너지 내 영혼, 모두 갈아 넣는 것처럼 일상을 지내고도 내가 밉다는 아이들이.... 나도 미워..... 아니, 사실 그 아이들과의 전쟁 같은 요즘이 이상하게 견디기가 힘들다...

- 그래도 엄마 있는 게 나을걸. 

-... 화를 내도 있는 게 나을까. 

- 당연하지. 

-.... 그러게. 그렇네.. 엄마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겠.. 지. 나도 우리 엄마한테 그랬으니까..

- 그게 가족이고. 

- 가족..... 

- 지금은 힘들어서 그래. 감정 조절도 안 되고. 조금만 견뎌봐. 시간 지나 봐라. 그 감정 또 없어지지

- 그래.... 그렇지. 시간은 언제나 그랬지...



시간은, 언제나 내 감정의 파괴자이자 피하고 싶었던 일상의 파괴자였다. 그래서 나는 고마웠다.

파괴자에게 고맙다는 표현이 멋쩍기도 했지만, 할 수만 있다면 깨트리고 싶은 일상이 있었다는 걸, 친구에게는 다 말하지 못했지만, 친구의 입에서 '시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나는 시간의 고마움을 떠올리고, 그 시간이 다시금 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고 마는 감정을 파괴해줄 것이라는 생각에 잠시간의 안도를 느꼈다. 




해 뜨고 지고 반복되는 자연의 섭리... 시간은 위대한 파괴자다. 




친구와의 대화가 그치고 하원을 하러 가기 전, 잠시 신문을 살펴보다가 한 기사를 접했다. 

모 그룹사 회장의 '애인' 이 아이를 가졌다는 걸 몰랐지만, 그 가십거리 기사의 요지는, 그 회장의 아내가 남편의 혼외자식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기사였다. 나는 그 기사를 읽고 나서 문득 엉뚱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누구는 혼외자식도 품는 마당에, 왜 나는 나의 아이들을 더 따스하게 품어주지 못하는 걸까....

나의 양육 그릇은 얼마나 비좁고 또 작은 것인지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화를 덜 내고, 되도록 웃으며 순한 아이들의 순수성을 훼손시키지 않고, 아울러 나의 괴물 본성을 다시금 꺼내지 않을 수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눈물을 보이고 싶지도 않은데 왜 오늘 또 등원 길에 눈물을 기어코 보이고 말아서 첫째 아이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게 만들었던 것인가를. 미취학 5세 아동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하물며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 그것도 혼외자식인 그 아이마저도 품는 대단한 그릇의 누구도 있는 마당에....... 



좋은 엄마, 좋은 아내는 사실 바라지도 않는다. 

도덕적인 엄마, 그리고 아내도.... 사실은 마음 한 켠에서는 버린 지 꽤 되었다. 화를 내고 보란 듯이 핸드폰을 기어코 집어던지고 말았었던, 오래전 내 모습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기에. 아이들을 기관에 잠시 보내 놓고 혼자 있을 때 여전히 그 시간이 떠올라 못내 눈물을 흘리며 식구들의 밥을 챙긴다. 끼니 때는 금방 돌아오기 마련이기에... 가끔은 지긋지긋한 일상에 몸서리가 쳐져서 맥주 한 캔에 의지를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이다. 좀처럼 기분은 나아지지 않는다. 




"잎싹아. 너는 훌륭한 어미 닭이야"

"아냐, 그런 말을 듣자는 게 아냐"

"그래도 말하고 싶어. 나는 날지 못하게 된 야생 오리고, 너는 보기 드문 암탉이야"

"그래 그렇다고 해도...."

"그러면 된 거야. 우리는 다르게 생겨서 서로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할 수는 있어. 

나는 너를 존경해" 


- 마당을 나온 암탉 - 





사랑....




잎싹만큼의 품는 마음은, 혼외자식도 품을 그릇의 마음은 되지 못하는 나이지만

나는 이 하나만은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4인 가족의 화평... 먹이고 씻기고 놀리고 입히고 재우고 다시 먹이고 씻기고 놀리고 입히고 재우고 다시 반복 또 반복.... 혼자만의 외로움, 혼자만의 안간힘, 그 와중에 무너지는 개인의 좌절, 고통, 슬픔... 그럼에도 나는 딱 하나, 그 딱 하나만은 지키려고 오늘도 애를 쓸 생각이다. 



'사랑'이라 믿었던 나의 선택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 모든 '현실' 들을. 

받아들이고 헤쳐나가야 하는 사람은 결국 '나' 하나뿐이라고. 

오늘의 4인 가족, 내 사랑의 결과물들은.... 그래서 지켜져야 한다고. 



언제나 그러했듯이 피해자는 없어야 한다. 

나의 이 일그러진 감정으로 인해 그 누구도 피해를 받아서는 안된다. 

설령 그 사실이, 그 절망이 나를 구속하고 강박하며 힘들게 할지언정. 



지켜야 한다... 반드시... 이렇게 초라한 나일지언정. 

삶은 이렇듯 지켜야 하는 것들과의 투쟁일 테니까.....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너는 엄마가 되었다고.  바보 같이 굴지 말고.... 지질하고 못나게 굴지 말고...... 헤븐...





작가의 이전글 [리치해빗 스터디] 슬기로운 경제생활, 신문읽기 2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