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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pr 18. 2020

나는 오늘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우린 우리 인생의 하루하루를 항상 함께 시간 여행을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뿐이다. 


- 어바웃 타임 - 





건너 건너 누군가의 병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인간의 신체 멀쩡하던 몸은 갑작스레 사고를 당하게 되거나 병치레를 하다 보면 고장이 난다. 하물며 나이를 들어가며 노쇠해지는 건 자연의 섭리겠다. 노쇠함은 잔병들을 가지고 오기 쉬운 신체로 되어 가는 수순이기도 하며,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그 나이 듦에 따라 하루라는 시간을 산다는 건 결국 하루 죽어간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죽음'을 언제나 마음 깊이 담아두고 사는 '나' 로서는 그렇기에 건너 건너 그 병환 소식에 한편으로 많은 생각들을 스쳐가게 만든다. 



인간의 삶은 '생로병사' 라 하였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네 가지 고통인 사고()라는 것도 결국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어찌 보면 아주 보편적인 고통임은 알겠다만 한편으로는 태어나는 것이 고통이라는 표현은 조금 슬프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태어나지 않으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을 테니까 어찌 보면 고통의 시작이 바로 탄생이 맞기도 한가 싶고. 이토록 역설적인 인간의 삶에서 '병'을 얻는다는 것은, 속절없이 슬프고 현실적으로는 '당황' 스러울 수 있을 테다. 여하튼 건너 건너 타인의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며 속물인 나로서는 한편으로 내가 얼마나 가진 것이 많은,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는 인간이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비교에서 오는 행복은 진짜 행복이 아닐 테지만 

그럼에도 나의 현재가 얼마나 복된 삶인지를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이렇게 주어지면, 그럴 때면 나는 늘 생각한다. 나는 참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라고. 얼마나 복이 많은지를, 그래서 한없는 감사와 한편으로 이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음에 미안함과 겸손함을 동시에 머금게 된다. 현재 내가 누리는 이 시간들이 누군가가 가지지 못한 결핍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마노라면. 



꽃을 꽃으로 느낄 수 있는 편안한 마음도... 불안한 누군가에게는 가지지 못한 최고의 선물인 것처럼. 



지금 가진 것들을 잠시 나열해보자니, 새삼 감사해서 눈물이 맺힐 뻔했다. 

아직 곁에 살아 계셔 주시는 양가 두 부모님들, 내 삶의 이유인 아이들, 그들의 무탈한 건강함, 가끔 (아니 종종) 나의 생지랄(?) 조차도 이제는 투덜거림 없이 오히려 평일 독박 육아(?) 한다고 고생한다며 잘 받아주는, 인내력과 포용력이 넓은 편에 속하는 배우자의 존재. 서로가 아빠이자 남편으로서, 엄마이자 아내로서, 부부이자 부모로서의 역할과 기능적 기본 책무에서부터 물심양면 서로의 사사로운 고충들에 되도록 대화를 나누며 귀를 기울이고 필요하다면 같이 소통하며 최선을 다하려는 우리 부부의 성실하고 건실한 생활 경제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의 긍정력... 물론 언제나 대화를 먼저 걸며 '쫑알' 거리는 역할 수행자는 여전히 '나'라는 한 사람 쪽으로 기울여있지만, 뭐 이제는 아무렴 어떤가 싶고. 



어디 이뿐일까. 

오늘 마트에서 산 소소한 먹거리들, 최근에 아이들의 발 사이즈에 맞춰 새로 장만할 수 있었던 새 아기 신발, 겨울엔 난방이 나오며 여름엔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에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고마운 우리 집,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국가에서도 틀면 언제든 나오는 온수와 냉수의 존재. 시간 여유가 되면 꺼내볼 수 있는 책장 속 책들을 소유한 사람, 하물며 배우자의 배려(?)에 잠시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면 바로 꺼내 쓸 수 있는 노트북, 쓰고 싶은 글들을 쓸 수 있는 열 손가락, 보이는 두 눈,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 보고 싶은 이들을 볼 수 있는 실명되지 않은 두 눈, 하고 싶은 것, 해내고 싶은 꿈들이 여전히 적혀 있는 다이어리의 존재까지도....



계절의 순리를 다시 맞이한다는 것도, 누군가는 아쉬운 시간이고 소중함이고 그리움일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해보니 참 가진 게 많다는 걸 느낀다. 

그중 제일은 역시 '사랑'이지 싶었다. 오늘은 그랬다. 죽어서 '나'라는 존재를 애도할 수 있는 그 사랑들의 존재가 오늘이라는 시간을 나와 함께 같이 살아주고 있다는 것. 그 이유가 이상하게 오늘따라 나로 하여금 성큼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어 준 걸지도 모를 일이다. 병원에 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현재이던가를... 불평하고 불안하며 우울하고 슬퍼하며 그 고통을 가끔 토로해서 곁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나'라는 스스로에게조차도 상처를 만든 못난 행동들을 마음 깊이 반성해보기도 한다.




가족으로 살아가며 내가 아닌 타인과의 결합으로 인해 

우리는 분명 적잖은 고충도 많이 겪을 테지만, 한편으로 생로병사를 겪는 이 '삶'에서 그럼에도 가장 남는 존재는 결국 '가족' 뿐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픔과 고통을 함께 겪어가며 그 시기를 견디고 이겨내서 더욱 단단한 오늘을 만들려는 건실한 가족의 존재.... 그것이야말로 나를 가장 큰 '부자'로 만드는 최고의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하물며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우리 두 사람은 이렇게 열심히(?) 가정 경제 지켜내며 더 성장하며 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조금 우습지만 그와 나의 가치관은 다른 면에서 다름을 보여도, 경제 가치관 하나만큼은 서로의 goal 이 한결같고 일관된 선명함이 있었던 터라 한편으로 무척이나 고맙고 감사하다... 



결국 '돈' 이 아니라 '사랑' 이 남는 게 '삶'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관 속에 들어갈 때, 뼛가루가 되어갈 때 우리가 마지막에 떠올리는 건 종이 화폐가 아니라, 주식 가치가 아니라, 보유 부동산이 아니라, 바로 '사랑'이고 '가족'이고 '사람'이고 '추억'이며 좋았던 '기억' 일 테니까... 물론 돈은 중요하고 소중하고 고마운 삶의 수단이자 도구이다. 사랑의 다른 표현은 '입금, 이체, 계좌에 찍힌 숫자'로 증명될 수도(?) 있다. 그만큼 재화적 물질적 여유는 행복의 기회와 양질의 환경과 더욱 피어나는 사랑을 만들어 주는, 생존과 풍요한 삶에 필수 불가결한 것일 테고. 그렇지만 절대적인 돈의 양이 행복과 사랑을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와 상실의 고통을 돈이 대신 없애줄 수 없는 것처럼... 진실로 사랑하는 이와의 무병장수가 참된 '부자' 일 수도 있는 것처럼. 



파도를 같이 헤쳐나간다는 것, 같이 흔들림도 견디고 이겨낸다는 것. 그 경험은 최고의 자산이자 재산이 되어 줄 거라 믿는다.




새삼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건강하게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월급 번다고 고생하고 주말에 아이 보느라 같이 고생해줘서 고맙다고... 이제는 9년 차 부부의 성숙미가 서로 생기는 덕분인지 그 또한 고맙다는 말을 보태며 머쓱한 칭찬을 더해주었다. 오랜 시간 회사 다니며 아이 출산하고 살림 챙기고 가계 재정 살펴줘서 고맙다고. 둘이 잘 살려 노력했으니 이 정도 사는 것이라고... 이상하게 부끄러워진 나는 웃었고 그도 덩달아 웃어 주었다. 그리고 장난을 치자며 앉기는 아이들을 보며 새삼 눈물이 핑 돌려했다. 



그렇게 우리 네 명은 '하나'가 되어 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니, 문득 나는 오늘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이제야 조금씩 진짜 부자가 되어 가는 느낌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한참이지만, 새삼 어떤 영화가 떠오르며 그때의 감동과 교훈을 마음 깊이 새기려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뿐"이라고... 

아프지 않게,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남은 생을 서로 부족함 없이 보살피며 

서로의 존재에 깊은 감사를 느끼는 관계의 '우리' 이기를, 아울러...



내가 당신에게 여전히 소중한 '의미'이고 '필요' 이기를 또한... 바랐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남은 시간 동안 부자로 사는 '부부의 세계' 이기도 하듯이.  



우리가 같이 맞이한 석양의 세월이 앞으로도 성숙하게 잘 나이 들고 여물기를... 기대하며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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