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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pr 30. 2020

글을 쓰는 막막함 앞에서

네 번째 원고 

내가 쓰는 단어 하나하나가 모조리 자신이 없고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고에 갇혔다는 느낌이 든다면, 

절대로 써내지 못할 것 같고 작가로서 재능이 없다는 확신이 든다면, 

내 글이 실패작이 될 게 뻔히 보이고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다면, 

당신은 작가임이 틀림없다. 


- 네 번째 원고 - 





글을 쓰고 싶은 순간은 나로 하여금 언제나 '끓어오름' 이 차올랐던 바로 그때였다. 

그때...'빌어먹을' 그 순간 때문인지 덕분인지 하여튼 지간의 나는 언제나 엉망진창이어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누가 보든 말든 차라리 보지 말아 줬으면 싶은 쓴 이후의 자괴감과 자책감, 절망이 찾아올지언정 그 '차오름'의 감정은 이젠 어쩔 도리 없이 나로 하여금 키보드 위에, 노트 위에 기어코 손가락을 올리게 만들어 버리곤 한다. '빌어먹을'로 시작한 글은 결국 나를 살리는 글이었고 그로 인해 '미안하고 고맙다'라는 감정은 뒤늦게 찾아오고 다시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의 나로 돌연 변하고 만다..... (하-) 



네 번째 원고, 존 맥피, 글항아리, 2020.04.16.



'네 번째 원고'를 읽고 나서 뭔가 가슴이 빵 하고 터지는 기분이었다. 

한편으로 반성도 엄청 하게 만드는 '글쓰기 선생님'의 이야기는, 어쩌면 이 분의 근력과 유지력은 아주 오래전 그의 스승이 내준 그 숙제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결국 글쓰기는 '유지'이고 '습관'이고 그것이 오래 차오르고 또 경험하고 실패를 숱하게 반복해서 결국 '글력' 이 되고 '필력' 이 되고 만다는 그 사실을 나는 여전히 믿고 싶기에. 




졸업반 때 우리를 가르친 선생님의 수업 계획서와는 확연히 달랐다. 매키 선생님은 우리에게 일주일에 세 변씩 글을 쓰게 했다. 그중에 이를테면 추수감사절이 낀 주도 있었으니까 정확히 매주는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3년간 거의 매주 세 편씩 글을 썼다. 주제는 뭘 쓰든 자유였지만 선생님이 처음에 짜라고 일러준 글의 구조적 윤곽을 모든 작문에 첨부해야 했다. 형식은 상관없었다. p.60



사실적 글쓰기에서 구조에 접근하는 방식은 저녁때 요리할 재료를 사 가지고 슈퍼마켓에서 돌아오는 일과 비슷하다. 부엌 조리대 위의 재료를 늘어놓았을 때 거기 있는 것이 내가 다루어야 할 대상이자 전부다. 그중 빨갛고 둥근 뭔가가 있다 해도 그것이 파프리카라면 토마토인 척하고 써버릴 수 없다. 작문의 구조는 글을 어느 정도 좌우하지만 또 어느 정도는 그렇지 않다. 자유재량이 있으면 흥미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p.62-3



써야 뭐 알지... 일단 써야...



부끄럽지만... (그다지 팔리지 않은) 책 몇 권을 출간한 이력이 있음에도. 

정말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나는 어떤 글의 '구조'를 딱 정해놓고 쓰는 편의 작가는 되지 못했고 여전히 되지 못한다. 다만 나만의 어떤 이상한(?) 습관은 있다. 한 꼭지의 원고를 쓰기 이전에 무언가 쓰고 싶은 단상 혹은 장면 혹은 글감이 떠오르면 몇 가지 그와 관련된 '키워드'를 연상하는 편이다. 그것을 머릿속에 그리든 아니면 노트에 적든 (주로 핸드폰 메모장을 사용하는 편) 일단 몇 개의 단어를 일렬로 적는다. 그리고 그것을 순서에 맞춰 꿰맨다. 일종의... 나만의 아주 이상한 (절대 따라 해서는 안 될) 글쓰기 구조라면 구조일까.... 그런 의미에서 '네 번째 원고'는 나의 구조, 나의 글에 대한 '프레임' 그리고 그 '시작'에 대한 어떤 깊은 반성과 한편으로는 꽤 그래도 구조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아주 작은 '어깨 으쓱임'을 잠시 선물해 주셨..... 다... 




독자들이 구조를 눈치채게끔 해선 안 된다. 구조는 사람의 외양을 보고 그의 골격을 짐작할 수 있는 만큼만 눈에 보여야 한다. 내가 모든 구조의 근본 기준으로 삼는 것을 이 구조가 예시해 주길 바란다. 구조에 글감을 억지로 끼워 맞추면 안 된다는 얘기다. 구조는 글감 속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이 닫힌 순환형 구조가 내게는 도움이 되었지만, 아무 사실 자료에나 무작정 끼워 맞추려는 이에게는 장해물이 될 수도 있다. 구조는 쿠키 자르개가 아니다. p.82



노트를 여러 번 검토하고 자료를 충분히 숙지했어도, 도입부를 쓰기 전까지는 구조의 틀을 잡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노트들을 힘겹게 헤집고 돌아다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다. 패턴이 보이지 않는다.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럴 땐 모든 걸 중단하라. 노트를 들여다보지 마라. 좋은 글머리를 찾아 머릿속을 뒤져라. 그리고 써라. 도입부를 써라. 만일 글 전체가 그리 길지 않다면, 그 길로 풍덩 뛰어들어 반대편으로 나와보니 어느새 초고가 완성되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용과 복잡성과 구조적 병치를 어떻게든 결합해서 결실을 보려는 글이라면 그런대로 무난하고 쓸모 있는 도입부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모든 도입부는 - 어떤 종류이건 간에 - 견실해야 한다. 뒤에 나오지 않는 내용을 약속해서는 안 된다.  (중략) 도입부는 약속이다. 도입부는 글이 이런 모습을 띨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러지 않을 바에는 도입부를 쓰지 않는 편이 낫다. 도입부는 통상보다 훨씬 더 길어지기도 한다. 비단 첫 문장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장면을 설정하고 이야기의 범위를 암시하는 첫머리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는 몇 단어일 수도 있고 수백 단어일 수도 있다. p.103-5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나는 제일 어렵더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맺어야 할지.



사실 글을 쓰는데 방법이 어디 있을까. 

여전히 고수하고픈 단 하나의 기술이라면 기술은 '일단 쓴다'라는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오히려 글쓰기의 화려한 '스킬'을 익히려고만 하는 것보다 일단 엉망진창이어도 일단 쓰면서 시작하는 것. 그렇게 쓰다가 도저히 못 봐주겠을 '구조'라든지 '묘사'라든지 '어폐'라든지 '비문'이라든지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네 번째 원고 덕분에 작가님께 하나 배웠다. '기타 등등'이라는 표현은 모두를 아우르는 환상적인 글쓰기 기법! 맙소사) 



혼자만의 착각일 수 있으나 나는 약간의 '개성' 이 조금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지극한 사견이나 이 '색깔' 은 분명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엉뚱함, 재치 발랄함, 때로는 엄청난 좌절로 인한 우울감과 예민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문장, 상대를 그 절망에 같이 빠져들게 만들 수 있는 날카로운 잿빛 문장들.... (너무 지나치면 안 되지만) 감정적인 나의 글쓰기가 정말 싫을 때가 참 많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언젠가 무기로 빛날 순간을 위해. 



'끓어오름'과 '차오름' 덕분에 '글' 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이 글쓰기는 이미 나에게 최선의 구원이 되어 주었기에.... 나는 결국 이 불행으로 인해 시작하고 말았던 나의 글쓰기를 여전히 사랑한다... 그리고 쓰레기나 마찬가지일 나의 첫 번째 초고와 기어코 고쳐 쓰고 말아 '네 번째 원고'에 도달했을 때까지의 글을 향한 분투의 시간 또한. 앞으로도 사랑할 것만 같다... 



그러나_여전히_좀_잘쓰고_싶은데_힘들다...




작가님의 뉴요커 칼럼을 찾아보게 되었다. 덕분에... 종종 읽어보고 싶다. 글 공부 차원에서..

(그나저나 동양 서양 매력 있는 글에 대한 기준이 조금 틀린 듯도;)   


https://www.newyorker.com/contributors/john-mcphee


https://www.newyorker.com/culture/culture-desk/john-mcphee-my-first-dr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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