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May 05. 2020

당신 아내의 기록  

시작.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 


- 연애의 기억 - 






사랑을 더 하고 덜 하고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사랑의 세계 한가운데에 본의 아니게 우두커니 놓였을 때에는 이미 사랑에 빠져 버리고 만 순간일지도 모를 테니까. 선택이랄 것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리는 것, 그것이 어쩌면 사랑이 아닐까. 제어할 수 없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결혼 9년 차, 기혼의 유자녀 다둥이 2인. 그야말로 '현실부부'가 되어 버렸고 그렇게 지내는 중이다. 



한 때, 우리 부부는 그런 줄 알았다. 내내, 아니 꽤 오래 뜨거울 줄 알았다. 

식는 속도가 있다 하지만 제법 오래갈 줄 알았던 거다. '이 사람이라면...'이라는 서로의 환상이 있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그이는 나로서는 '기성세대'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식과 위선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의 그동안 마주했던 소수의 '어른 남자' 들은 대부분 '오빠' 소리 들으면 환장하는 멍청한 구석이 새어 나오듯 보였고 그래서 연상을 만나본 기억이 사실 단 한 번도 없다. (혹은 내가 멍청이었거나) 연상과의 만남은 그이가 유일했고 그 후 결혼을 했다. 중간 사연이야 어찌 되었든 그이는 나의 '첫 오빠' 이자 '배우자'가 된 것이다. 



반지로 약속하기에 결혼은 반지의 무게만큼 가볍지 않다. 




한 때 꿈꿨던 사랑은 곡예하듯 위태롭게 서로에게 빠져드는 격정적인 사랑이었다. 

다른 말로는 '환상' 정도로 해 두자. 환상은 도발적이거나 자극적이다. 일상이라든지 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먼 단어다. 결혼은 어쩌면 그 환상과 현실 생활 사이에서의 '선택' 일지도 모르겠다. 욕정에 따른 불장난도 아닐뿐더러 가벼운 연애와는 다소 거리가 먼, 오히려 너무 깊은 곳에서부터 얽혀 서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지 않는, 내내 순탄하고 평온하며 새로운 서로의 행복을 바라며 시작하는 관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정말 뜨거운 사람과는 결혼하지 못할 거라고 내내 생각했던 나의 편견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라는 사람을 넘을 만큼 사랑하면... 그 사랑을 오래 유지하기 힘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부부의 짤막한 일상 대화를 고백하듯 기록하며 기억하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서로의 마지막 사람이기를, 끝까지 행운으로 존재하기를 바랐던 나의 첫 마음을 다시 기억하고 싶어서. 사랑의 한가운데 있었던 과거의 시절을 떠올리다 보면 이미 콜라에 김 빠져 맹숭맹숭해져 버린 우리의 현실 사랑 속에서도 어쩌면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이것이 어쩌면 우리의 사랑을 존속시키는 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최선의 노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우리'로 맺어지기까지 필요했던, 한 때의 순도 어린 마음을 이렇게라도 기억하다 보면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 당신, 나 아직도 사랑해? 

- 사랑하니까 결혼했지. 

- 사랑하면 나는 결혼 못하겠던데. 

- 뭐야. 그럼 나랑 왜 결혼했어? 

- 그러게. 기억이... 안 나네. 내가 왜 했지?  

- ㅋㅋㅋ 엉뚱하기는. 



그이는 웃으며 넘겼지만 문득 대답을 하지 못했던 나는 스스로 조금 당황했다. 

정말 기억을 하지 못했고 딱히 어떤 대답을 할 수 없었고 어설프게 꾸미듯 말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이와의 사랑 끝에 결혼을 했고 그 이후에 현실 속에서 남겨진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생활 속에 침투하여 때때로 글을 쓰는 나로 하여금 끝내 손 끝에서 문장들로나마 전하고 싶어서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려 하는 것인지를. 



이젠 자고 일어나면 그이가 보이지 않는 시간이 대부분이 되어 버렸다. 



어쩌면 이것은 '단 하나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단 하나의 이야기이고 싶은, 결혼이 이번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고 그것은 모두에게 단 하나의 이야기라면, 이것은 분명 단 하나의 이야기인 것은 분명하다. 어떤 소설의 원제처럼...



아내로서의 기록을 이렇게 어설프게 시작할 줄이야... 



#가끔 19금 갑툭튀 사전 예고 

#이젠 멋대로 글쓰기 



작가의 이전글 어린 사람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