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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04. 2020

어린 사람의 날

 

시간은 빨리 흐른다. 

특히 행복한 시간은 아무도 붙잡을 새 없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 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부끄럽지만 이십 대 초반까지 나의 친정은 '어린이날'을 기념해 주셨다. 

부모님께 나와 동생은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는 '공식 성인'이었음에도 '어린이'였다. '자식' 은 부모에게 다 컸어도 '어른' 이 아닌 '어린 사람'으로 보이나 보다. 아니면 다 컸음에도 몸만 자랐지 물가에 내놓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라 그런 걸까. 감사하게도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사랑을 주려는 사람들, 인내하는 사람들, 고통과 좌절을 자식들 앞에서 감추려는 사람들, 말 뿐인 사랑보다 경험적 생활력과 그 속의 사랑의 주고받음이 간절했던 사람들...



부모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형태는 그랬다. 생활과 사랑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었다. 

그랬기에 현재 '어린이'였던 그 시절의 나는 '어른'의 모습과 동시에 '부모'의 길을 걸어가 보고 있는 중이다. 아이와 함께 자란 지 이제 꽉 찬 4년이 지나 5년 차를 바라보는 중이다. 5세 아들 쌍둥이와 함께 했던 지난한 시간을 생각하면...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은 좌절의 터널이 있었지만 반대로 그랬기에 한껏 아프게 성장했던 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곁엔 또 다른 아이들의 두 번째 부모나 다름이 없었던 나의 부모님이 있었다... 



어버이 날이 다가오면 괜히 먹먹해진다. 어린이날을 챙기려던 엄마의 한결같음... 그게 너무 커다란 사랑이라는 걸... 알기에. 



없는 살림에도, 엄마는 적금을 쪼개 불입했고 소액이었지만 불리고 모아서 피아노를 장만해 주셨었다. 

당시 동네에 피아노가 있는 집은 딱 두 집뿐이었다. 나는 보답을 하고 싶었던 건지 그 피아노를 가지고 꽤 오랫동안 콩쿠르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다. 상을 받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부모님께 웃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어른'이고 싶었던 '어린이'의 마음이었던 걸까.



할머니가 된 엄마는 여전히 어린이날을 챙긴다. 

지금은 딸이 아닌 손주를 향한 기념비적인 날이나 다름없는 날, 한편으로 엄마가 된 딸은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을 동시에 챙기는 중이다. 두 여자는 그렇게 변하고 있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우리들의 역할은 변해갔다. 어설프게 잡아 보고 싶었던 과거라는 시간은 이미 지나가 있었다. 가끔 망상 속의 그리움만이 어린 시절 떠오르는 사물들과 조각난 장면 장면들과 함께 부유하는 떠오를 뿐이다. 어린 시절의 피아노가 그랬고 어린이날에 처음 먹어본 피자가 그랬으며, 처음 먹어본 하얀 생크림 케이크와 대학 시절 도서관 앞에서 엄마를 떠올리며 울면서 먹었던 단팥빵과 우유, 출산 후 질리도록 먹었던 엄마의 미역국이 그랬던 것처럼... 



정말 그리운 것들은 쉽게 흑백이 되지도 않을지 모른다. 여전히 생생한 색깔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주는 것에 익숙한 엄마는 여전히 뭔가를 주려 한다. 

그것이 못내 서글픈 건지 나는 '엄마'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여전히 눈물을 흘린다. 언젠가 받지 못하는 '마지막'을 떠올리기라도 하는 순간이면 금세 왈칵 눈물이 쏟아지니까. 그래서 언제나 은밀한 나만의 소원은 엄마보다 하루 먼저 죽는 것이지만... 이제는 그 소원을 조금씩 접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제 나는 쉽게 죽을 권리 조차 없는 누군가들의 '엄마' 이기에. 아이들을 떠올리면 뭐든 할 수 있는, 누군가의 어린이는 이제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기에....



쌍둥이들과 산책을 가며 그들의 등을 바라보다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 같은 엄마가 돼주지 못하는 여전히 철없는 어른인 나일지라도,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은 다름 아닌 고가의 선물이나 화폐가치적 물질적 유산이 아닌, 바로 잊히기 쉬워도 내내 고수하고 유지하려는 일상의 '사랑' 이리라. 언제나 그러하듯 일상을 지킨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를 요하며, 그 일상 속에서 사랑을 받기보다 주려는 이들은 더할 나위 없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하기에... 그것이 엄마가 된 내가 깨달은 교훈 중에 하나다. 



세 사람이 지나간다. 우리들의 시간을 잘 지켜내 가자... 



'행복한 시간은 붙잡을 없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말은 정말이다. 

현재의 좋은 시간들도 결국 과거라는 흑백사진이 되어 버린다. 결국 모든 시간은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을, 유한한 삶의 '본질'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새삼 떠올리다 보니 언젠가 아주 훗날, 나에게 언제나 어린이날을 기념하려 했던 그녀와도 마지막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괜히 뜨거워진 눈시울을 닦아내는 수밖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시절, 내가 받았던 사랑은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한 사랑으로 번지는 중이다. 

속절없는 두 여자의 사랑이 이제는 공통된 두 사람에게 포개진다는 걸, 엄마도 아실까. 어린이날 최고의 선물은 바로 다름 아닌 여자들의 사랑이라는 걸, 언젠가 아이들알까. 그리고 어버이날 최고의 선물도 다름 아닌 이 '자녀' 들의 평온과 무탈한 행복이라는 것을... 부모가 나는 이제야 그들의 바람을 알 것만 같다. 엄마가 내게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를. 



'네가 좋으면 엄마도 좋아' 라던 목소리의 의미를... 



엄마. 그 때 하셨던 당신의 목소리는 이제 나의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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