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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10. 2020

글쓰기 너머의 인간, 그 인간의 글쓰기

인간의 글쓰기 

'무엇'을 쓰느냐가 아니라 '무엇이라도' 쓰는 것이 된다. 

눈이 없는 손가락은 구태여 '무엇'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 인간의 글쓰기  -





생각을 하든, 글을 쓰며 생각을 하든, 아니면 글이 먼저든 생각이 먼저든

하여튼 지간에 '나'라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이 '현재' 속에서 물이 넘치듯 범람하는 생각 끝에서 종종 벌어지곤 했던 흔한 생활 속 몸부림은 다름 아닌  '쓰기'였다. 아무것도 몰랐던(?) 이십 대는 머리에 든 것이 많은 걸 위시하거나 과시하고 싶은 얄팍하고 비겁한 마음에 '그럴듯하게' 쓰는 편을 택했고, 그렇게 그럴듯하게 반듯하게 써낸 글들은 모두 읽히지 않은 문학 혹은 시 혹은 혼자 읽는 텍스트들에 그쳤다. 



그 반복이 너무도 외롭고 지리멸렬하던 끝에, 나는 생활 속 글쓰기를 택했다. 그게 서른 즈음의 일이었다. 

에세이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슬픔의 격정적인 나날을 그저 토해내려 했던 여전히 우매한 글쓰기의 시작이나 다름없었다. 아주 놀랍고도 슬펐던 건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글들은 혼자 읽혔고 (재미가 없었던 걸까) 정말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나의 그늘진 솔직함 그 이면의 공격적인 날카로운 심리와 우울 진 생활들이 적당히(?) 곁들여진 실화들은 이상하게 자주 읽히곤 했다. 아주 작았지만 '상'이라는 걸 처음으로 '글'을 통해 받아보던 그 시절은 그랬다... 



서른 중반이 넘어 이젠 마흔에 가까워지는 나로서는 여전히 '글'을 쓰는 인간으로서 

요 근래 '여성'에 대한 정체성, 혹은 여성의 글쓰기, 그 이면의 여성 인간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잡다한 생각들이 범람하는 중이다. 그런 나의 배경 상황을 전후로 살펴보자니 이런 생각도 가능한 걸지 모르겠다만....... 몇십 년을 혼자 어설프게 집요하게 독하게 쓰든, 같이 모여서 제대로 써 보려는 노력을 하든, '글'과 함께 했던 시절을 통과하다 보니, 꽤 두꺼운 연 노란색의 이 어여쁜 책의 존재는 다름 아닌 글쓰기 수업을 만약 받는다면 최소한 반항기 수준의 교양 글쓰기 철학 지식서(?)를 총망라하는 듯한 '선생님'을 만난 느낌이다... 서평조차 써내기 부담스러웠을 만큼. 좋은 책일수록, 양서일수록, 서평을 쓸 수 없다는 아이러니함은 뒤로한 채... 



인간의 글쓰기, 김영민, 글항아리, 2020.05.01.



'지식인'의 글쓰기에 대한 단상, 아니 글 그 너머의 '인간'과 인간사, 생활과 철학까지 두루두루 아우르는

이야기들이 가득이었기에 사실 책 한 권을 읽는 것만 해도 한참 애간장 끓이듯 초집중을 여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책이었지만, 한편으로 이 책 이후의 '글쓰기'는 어떻게 변해갈까, 아니 변할 수는 있을까, 변하고 싶은데.... 어떻게?라는 화두만 엉뚱하게 남아 버리고 만다.. 왜냐하면 속물적인(?) 자본주의적 글쓰기를 행하기도 하며 동시에 그 속물적 현대인의 허위 허세적 면모를 모두 깨끗하게 날려버린 채 그저 순수한 '인문적'글쓰기를 행하고 싶어 하는 내면 깊숙한 곳의 '자아'가 건드려져 버리고 말았기에...




논문 중심주의 및 글쓰기와 관련된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일을 그 주요 소임으로 택한 이 글은, 당연히 그 비판의 근거이자 대안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글쓰기에 대한 비전을 자신의 켤레 글로서 요청한다. 실상 논문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내가 구상하고 있는 우리 인문학의 새로운 글쓰기 방식 (이른바 '잡된 글쓰기)의 동인이 되었던 것이고, 또한 이 글쓰기는 내가 주창하고 있는 '복잡성의 철학'과 직접적인 상보 관계에 있다.  p.48



첨단의 레저생활을 즐기고, 떼를 지어 여행을 다니며 이국 동경을 충족시키고, 각종 문화 행사에 단골 고객이 되고, 노래방이나 단란 주점을 정복하고, 주말이면 낚시나 등산을 다니며 자본제적 스트레스를 풀고, 명상원이나 사원을 들락거리며 육체 이후의 가능성에 대비하는 우리 삶, 그것으로, 그것만으로 근대성의 각질을 부드럽게 하고, 자본주의의 그물에 구멍을 내기에 충분할까. p.379



이미 시대 속 글쓰기 중 반 이상은 '자본주의적인 글쓰기'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다. 나 조차도 반은 그 경계에 걸치고 있으니..



생활 속 '잡된'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는 중이지만

한편으로 통속적인 그 생활의 지루하고 비참한 숨겨진 면을 날카롭게 '글'로 드러내고 싶은 '욕망' 이 발현되다 보니, 나로서는 여전히 '어리석은 글쓰기' 그 이상의 우아함을 지닐 수 없게 되고 만다는 생각이 나를 언제나 붙잡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작가님을 말씀하신 내용대로라면 요즘 나의 글쓰기는 '삶을 도외시한' 게 아니라 지극히 정상(?) 적으로 삶을 너무나도 정면으로 직시하고 응시하고 고통스러워하다 보니 자연스레 탄생하는 글감의 성과(?) 라 꿰맞추듯 이해하려 하자면... 어쩐지 이상하게 위로를 받는 기분에 빠져버리기도.. 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위로를 받고 싶어서 억지로 그렇게 생각했던 독자의 의도였을지도 모를 일이고. 




집 짓기도 결국 사람의 일이고 따라서 문화적 활동의 패턴을 따르는 작업이라면, 이를 글쓰기와 마음 쓰기에 빗대어서 함께 논의해 보는 것도 뜻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땅 위의 집 짓기나 종이 위에 글쓰기나 마음 위에 마음 쓰기를 한통속으로 몰아붙여 따지려는 발상도 그저 유비로만 볼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하는 말이다. p.134



삶을 도외시한 앎, 그것도 백인들로부터 수입한 앎만을 위한 글쓰기가 논문 중심주의이고 이 논문 중심주의를 뒷받침하고 있는 마음 씀씀이가 형식 성과 과학성에 매춘하는 수세 강박적 허위의식 라면, 나 자신이 인근에서 매일 목격하고 있는 집짓기 역시 이 같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p.137



잡된 글쓰기는 배회 자체에서 즐거움을 구하라는 명제에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것이 범상치 않은 성숙을 이룬 소수에게 해당되는 권면이며, 일반 대중을 위한 글쓰기 철학으로 정착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할 뿐이다. 삶이든 글이든, 즐거운 방황과 은혜로운 헤맴을 운위 하는 것은 장삼이사나 필부필부가 쉽게 바라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잡된 글쓰기는 단순성과 추상성의 단선적 질서를 넘어서 복잡성과 구체성의 현실로 돌아가는 경계 지역이나, 혹은 그 경계 지역에서 짧은 순간 느낄 수 있는 해방의 희열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p.199



글을 잘 쓴다는 것, 제대로 쓴 다는 것의 의미....



삶의 현장이 주는 투박한 직시, 나는 나의 삶을 응시하고 바라보며 투쟁하듯 써 내려가는 

여전히 덜떨어진 면모조차 과감하게 글로 과시(?) 해 보기도 하는 어설픈 글쓰기를 주장하는 중이다. 얼핏 보면 굉장히 별로이고 재미도 없고 한편으로 불필요해 보이는 자잘한 혼잣말이나 일기 같은 유치하고 번잡스러운 느낌마저 들지 모를지언정. 한편으로 글 쓰는 사람의 '반 미친 정신' 마저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는 한편으로 글로 인해 생활을 밀도 있게 사색하고 철학하며 성찰하는 자세가 아니라면, 절대 단순하지 않은 삶을, 복잡함을 인정하고 그 복잡한 삶을 순수한 단편으로 엮어낼 수 있는 '위대함'  없이 어떻게 좋은 글이 나올 수 있겠는가라는 어설픈 핑계와 반문을 곁들여 보면서...




현실의 복잡성에 대처하는 잡된 글쓰기는 구체성의 글쓰기를 지향한다. 또 앞서 살펴본 대로, 우리의 복잡다단한 현실을 고르게 다독거려주는 구체성의 글쓰기는 이미 글쓰기의 문제를 넘어서서 지식인들의 분열된 의식과 삶을 치료하는 하나의 실질적인 방안으로 승화될 수 있다. p.227




다만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부실 공사가 집을 짓는 데 위험하다 하듯

작가가 말씀하신 '부실한 텍스트'에 대한 경보를 경종 삼아 조금 더 내실 있고 밀도 있는 생활의 글쓰기로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글자와 문장에, 단어에 생존하듯 매달리면서도, 글이 나를 쓰는지 내가 글을 쓰는지 모를 지경에 이르러서야 차올랐을 때 비로소 손가락을 떼 내고 마는 나로서는.... 어느 정도의 진지한 '텍스트' 자체의 진심을 조금 더 생각하며 성숙한 글쓰기로서의 '내일'을 그려볼 뿐이다..



'인간의 글쓰기'는 결국 '인간' 으로서의 '나'의 분투하는 듯한 삶을 그려내는 글쓰기라서..

그래서 아픈 글쓰기라 하더라도.. 



쓰면서 쉬는 그 찰나의 현존에 그저 감사함만 지닌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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