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May 14. 2020

생각하는 여자

이 서평은 망했다는 것을 미리 선포하며. 

'생각하는 여자'는 실존한다. 그녀는 살아남아 있고 잘 지내고 있다. 


- 생각하는 여자 - 




사랑, 놀이, 일, 두려움, 경이, 우정. 

나 또한 '거의 페이지마다 멈춰 생각해야 했다'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애초에 정확히 갈라놓을 수 없이, 여성의 세계 안에서 저 6가지는 보이지 않게 옅게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았기에. 곱씹게 되고 생각을 요하며 때론 반문을 스스로에게 되묻는 동안 어느새 책은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라 있었다. 정답 없는 질문만을 남기며 그 이후의 사색할 시간과 공간을 바라듯 떠올린 채로... 



생각하는 여자, 줄리엔 반 룬, 창비, 2020.04.24.



모순. 

언제나 인생의 딜레마에 따라붙는 것. 이 그림자는 우리의 뒤에 들러붙어 있다. 책이 말하듯 '우리 가운데 그 누가, 한순간이라도 곁에 있는 이의 팔에 안겨 다른 사람을 욕망해보지 않았겠는가' 라던 작가의 거침없는 문장 속에서 한편으로 '사랑' 뿐 아니라 '시대' 자체의, '인간' 내면의 여러 '모순'을 떠올리게 된다. 온라인 속 광고들 속에서 자본주의적 캐릭터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숨기듯 드러내는 위선과 기만. '월 천만 원' 이, '작가'가 조금만 '스킬'을 알면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소위 개나 소나) 그러저러 이러쿵저러쿵 너무나도 시끄러운 시대... 최저임금에 미치지 않아도 '노동'을 했던 누군가는 소위 '갑질'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시대. 경비원의 소리 소문 없이 죽음을 선택하기 전의 그를 둘러싼 그 환경은 과연 누가 만들었던가... 연예인이라고 돈을 잘 번다고 소위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신봉' 하듯 '찬양' 하는 그 세태는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나의 노동이나 노동력이 곧 내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인가가 된다. 노동력, 노동할 능력은 각 사람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일부이지만 그 사람과 동일하지는 않다. 노동력을 인격과 분리해 취급할 수 있다는 생각은 단지 개념적인 연습이 아니다. 이런 생각은 존재와 몸의 존재론적인 분리를 수반하는데, 이는 그것이 존재의 본성 문제, 즉 노동자란 대체 누구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인격과 분리된 것으로서 노동력이라는 개념은 몸/정신을 가치 절하하거나 말 그대로 비인격화한다. 그리하여 자본 없는 노동자, 즉 생계로 삼고 판매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자신의 노동밖에 없는 이들에게는 철학적이자 체제에 대한 수많은 문제들을 가져온다. p.136





자꾸 멈추게 만드는 챕터들 중에서 예전 같았으면 '사랑'을 더 생각했겠지만, 

요즘의 나는 '일'을 생각하게 되고 말았다. '팔리는 나를 만들어 판다'는 말이 책으로 버젓이 나오는 이 시대는 이미 '돈과 섹스'가 모든 걸 대변하고 마는 것 같기에. 나는 그 '주류적 '사고방식에서 자꾸만 벗어나고 싶은 것일까... 이태원 클럽에 간 젊은 성인 직장인, 강사.... 그들은 아무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그들로 인해 피해를 받은 것은 1살 베기 된 아기일 수 있으며 치사율에 근접한 거의 노년 말기의 병든 노인일 수 있으며 가임기 여성일 수도, 혹은 영유아 및 취학 자녀를 둔 부모일 수 있다. 입학은 또 늦춰질까. 그들로 인해. 이태원 프리덤....



이게 바로 '인간' 아닌가. 

자신의 욕망에 부합하게 행동하고 그 이후의 타인의 삶은 그저 타인이기 때문에 선 긋고 마는 인간의 본성.... 여성만 보아도 '뷰티' 욕망에 '질투'라는 감정에 사로 잡힌다. 그것은 스스로를 파괴시키는 트리거가 되기 쉽다. 반대로 그런 여성의 심리를 이용해 그저 '한번 해 보려' 하는 이들은 얼마나 다양한 이 시대의 '성상품화'를 개발하고 돈을 벌어 들이는가. 대단한 '디벨로퍼'가 아닐 수 없다. 이성의 '성' 상품은 그들에게 얼마나 대단하던지.... 



사람이 자기 자신을 팔아치우지 않으면서도 제 자아의 일부를 판매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지배보다는 자유의 실천이라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심장부에 있는 허구는 사람들이 다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저항하지 않는 사이에 모든 것의 상품화로 이어졌다. 이는 우리 삶의 가장 내밀한 영역들을 침범한다. p.143



여성과 어린이들의 경우, 직접적인 생활환경에 대한 통제권이 현저하게 부족하므로 두려움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종종 복잡한 문제다. 더욱이 우리 문화에서 유통되는 두려움에 대한 지배적 서사는 자주 우리 여성들을 분명히 겨냥해 만들어지는 듯 보인다. 그것들은 우리를 상대적으로 무력한 곳에 묶어두는 역할을 할 수 있다. p.172-3




선한 영향력? 정말 선한 사람들은 자기가 선하다는 걸 모른다. 그걸 반대로 알고 말하는 이들은 이미 그걸 이용하려는 자들 아닌가. 자신이 선한 영향력이라니.... 자기 자신을 안다




책을 읽으며 별 생각을 다 하게 되고 만 나는 결국에 스스로 잠시 '닫힐 것'을 선언해 버리고 말았... 다.

뭐랄까. 신뢰를 잃어버린 기분이기 때문일까. n 변방의 탄생이 어디 비단 지금 뿐이었던가. 여성 성착취로 인해 감방 가는 연예인들은 다시 시간이 지나면 복귀하기도 또 쉬운 시대, 왜 우리는 경력단절 남자라는 호칭을 거론하진 않지만 경력단절 여성이라는 호칭이 고유명사가 되어버렸던가? 그건 결국 비율적으로 객관적 통계 수치가 드러내는, '메인 양육자' 로서, 저임금 노동자의 젠더적 비율이 보여주는 '결과' 아닌가. 노인. 아동. 그리고 여성. 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그 환경 자체를 수용하지 않고 분노하는 이들에게 '열등의식이 있다'는 식의 저열한 의견을 내다 받치는 젊은이들이 (젊은 미혼의 여성 혹은 무자녀 기혼녀조차) 사실 얼마나 많던가. '돈과 섹스'가 '메인'인 그 너머의 '인간'을 볼 줄 모르는 그 대단히 잘나신 젊은 꼰대들에게 늙은 꼰대들은 결국 가만히 있어야 '강북구 경비원'처럼 당하지 않은 시대가 아니던가... (오늘 나의 서평은 그냥 접기로 한다..'생각하는 여자'는 나로 하여금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셨다는 핑계 삼아) 




낭만주의자들에게 일이란 신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의미가 있어야 한다. '진정한' 자아란 스스로 형성한 자아라는 생각, 오늘날의 문화에도 여전히 깊게 뿌리박고 있는 신화가 이때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야 나는 다시 한번, 내가 직장생활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오랫동안 이 생각이 담당해온 중요한 역할을 알게 되었다. 직장에서 능률을 내는 데에 실패한다면 자아형성이라는 기획도 실패라는 느낌이 있는 것이다. p.155




타인이라는 인간들의 잔인한 본성들이 지긋해진 나는 '생각하는 여자'로 인해 '생각'이 범람하고 만다. 

월 천만 원을 금세 만들어 낸다는 대단하신 우리 인플루언서님들과 유튜버님들과의 세계로부터 떨어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 (유튜브를 거의 보지 않는 나지만) 출판을 한답시고 1:1 컨설팅을 도와주겠다는 '있어빌리티'의 그럴싸한 '코칭 멘토'로 자청한 이들의 몇 백대에 달하는 (백만원대 이상의 거액 컨설팅의 실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 '돈' 이 어찌 투자라고 생각을 하는지? (자비 출판을 차라리 하시든지 아니면 그 돈으로 뭐든 책을 혼자 사서 보고 제발 혼자 '생각' 을 하고 실천하는게 훨 낫다고 보는 나로서는...) 결국 그게 선심이 아닌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사업화'라는 것을, 과연 얼마나 알고도 '속아' 넘어 주는 것인지, 그것이 참된 소비자 혹은 독자로서의 시대를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자본가' 적인 시대를 더욱 부 축이는 건 아닌지. 이미 돈은 삶을 뛰어넘어버린 것 같다. 보이는 시대는 왜 그러할까.....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미천한 개미 한 마리의 생명과 동등한 미약한 인간인 나는, 

마더 테레사님의 이 말을 기억할 뿐이었다. 



If you want to change to world, Go home and Love your family. 



그리하여 나는 나의 집, 댁 내. 가족 구성원. 이들만을..... 떠올리며 이 참담히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다독이듯 달래 본다. 이들만이... 내 세계의 구원이라면, 이들을 생각하기에도... 벅찰지도 모르기에...... 

여성 이전에 나는 이미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 너머의 인간, 그 인간의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