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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01. 2020

죽은 자의 집 청소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이 죽음에서 고통과 절망을 보았다면, 여태껏 손 놓지 못하고 품어온 내 인생의 고통과 절망을 꺼내 

이 지하의 끔찍한 상황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 


- 죽은 자의 집 청소 - 





죽음을 치우는 일을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이야기 치고는 굉장히 문학적 감수성이 다분했던 책이었기에, 나는 이 책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원체 '죽음'이라는 키워드는 두고두고 매일 같이 마음에 묻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최대의 관심사이기 때문에. 죽음을 '정리' 하는 그의 일은 사실적으로 어떤지, 아울러 그 '영혼' 이 머물렀던 현장을 목도하는 이의 심정은 어떠한지 정말 궁금했었다. 읽고 나니 알 것 같은 것과 여전히 감히 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즐비하게 마음에 남을 뿐이지만... 하나는 분명히 더욱 선명해지더라. 우리는 하루 살며 하루 죽어간다는 것을, 우리의 삶에서 '생' 과 '인'을 뛰어넘는 물질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헛된 죽음이 많아진다는 것 또한.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김영사, 2020.05.30.



나의 큰삼촌은 고독사 하셨다. 자살로 추정되는 고독사였다. 

그는 착했지만 공부를 잘 못했다 했다. 주변엔 나쁜 친구분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돈을 뜯겼고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가족과 멀어지고 혼자 도망치듯 살다가 필요하면 찾곤 했다. 사람을 때리기도 했지만 고의든 선의든 그를 둘러싼 환경이 나는 늘 언제나 아쉽고 안타까웠고 화가 나기도 했었다. 아니, 어쩌면 삼촌이 곤궁에 빠졌을 때 언제나 그의 편이 되어 모든 힘든 수발을 들어야 했던 친정엄마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엄마가 그로 인해 힘들고 아프고 슬퍼하는 그 모습을 보는 게 나로선 가장 큰 고통이었기에.... 



여하튼, 그랬던 그의 허무한 죽음을 책을 읽자마자 내내 떠올라,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숨죽이고 책을 넘겨야 했었다. 빈곤과 곤궁에 처한 구렁텅이 속 인생을 지내는 이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는 쉽게 닥친다는 생각을 줄곧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작가님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죽음을 청소하는 일을 통해 그가 깨달은 어떤 철학들, 그 이야기들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착한 여인은 어쩌면 스스로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죽인 사람이 되어 생을 마쳤다. 억울함과 비통함이 쌓이고 쌓여도 타인에게는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남에겐 화살 하나 겨누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향해 과녁을 되돌려 쏘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죽일 도구마저 끝내 분리해서 버린 그 착하고 바른 심성을 왜 자기 자신에겐 돌려주지 못했을까. 왜 자신에게만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 그녀를 부단히 찔러온 것은 아닐까? p.27



가난해지면 필연적으로 더 고독해지는가? 빈궁해진 자에게는 가족조차 연락을 끊나보다. 옆집에서 풍기는 이상한 냄새를 의아하게 여긴 이웃의 신고로 주검은 뒤늦게 발견되고 경찰은 그제야 사망의 원인을 규명하고 유족을 찾아 나선다. 혼자 죽은 채 방치되는 사건이 늘어나 일찍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고독사 선진국 일본. 그 나라의 행정가들은 '고독'이라는 감정 판단이 들어간 어휘인 '고독사' 대신 '고립사'라는 표현을 공식 용어로 쓴다. 죽은 이가 처한 '고립'이라는 사회적 상황에 더 주목한 것이다. 고독사를 고립사로 바꿔 부른다고 해서 죽은 이의 고독이 솜털만큼이라도 덜해지진 않는다. 냉정히 말해서, 죽은 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자 편에서 마음의 무게와 부담감을 덜어보자는 시도이다. p.43



죽어서 남겨지는 걸 망자는 보지 못한다. 빈 몸으로 태어나 빈 몸으로 가는 게 '삶' 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죽은 현장을 직접 본 경험은 아주 어린 시절, 눈앞에서 옆집 아이가 버스에 치여 즉사를 했던 장면이다. 

나는...... 그 이유 때문에 여태 운전을 하지 못한다... 일종의 트라우마일까.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죽음의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본 건 그게 전부다. 그랬기에 작가님이 생생히도 묘사하신 부분이 너무나도 문학적이고도 뚜렷해서 내내 상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듯 한 이야기를 서술할 때 섬세한 감각과 표현력, 그리고 관찰력을 가진 이들의 글을 사랑한다. 아이러니하나 그래서 '죽은 자의 집 청소' 가 더욱 매력적인 책이 아닐 수 없었던 건.... 이런 일종의 이유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묵직한 이야기가 서술되나, 영화를 방불케 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런 글은 나로서는 '진짜 작가' 들의 글이다. 





죽은 사람의 몸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출한 것처럼 잠을 자듯 온전하게 유지되지 않는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 같은 심혈관계 질환이나 폐색전증 같은 허파 질환으로 사망한 경우 이삼일만 내버려 두면 엄청난 양의 피와 액체가 몸에서 쏟아져 나온다. 또 목을 매고 숨을 거두면 직립한 채로 늘어진 사채가 근육을 조절하는 힘을 잃은 탓에 온갖 오물을 배설해놓는다. '인간의 육체는 유기적인 화학 공장과 같다'라는 표현은 상투적이지만 꽤 적절한 비유 같다. 사람이 죽으면 박테리아가 증식하여 온갖 장기가 부풀어 오르고, 풍선이 팽창하다가 폭발하는 것처럼 복부가 터지며 온갖 액체를 몸 밖으로 쏟아낸다. p.97-8



남은 음식을 치우는 일은 가볍고 쉬운 것, 죽은 사람이 남긴 육체 조각과 혈흔을 없애고 냄새나는 살림을 치우는 일은 무겁고 엄숙한 것이라고 누가 선을 그을 수 있는가. 특수 청소를 하는 것은 남다른 일, 특별하고 어려운 행위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대한 처치일 뿐 그 일 자체가 특별하지 않다. 누구라도 해야 할 일을 누군가가 대신하는 것뿐. 그래서 세무서가 발행한 사업자등록증엔 이 사업의 형태를 '서비스'라고 표기한다. p.134



누군가의 마지막을 그렇게 마무리 한다는 건..어떤 느낌일까....




자본주의가 팽배해질수록, 기술이 발달할수록. 반대로 인간의 영혼은 피폐해져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가난하면 쉽게 죽임을 당하기도, 죽기에도 노출된 환경이 꽤 손쉽다는 역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미디어 속 사건 사고 현장은 늘 그렇지 않은가. 그랬기에... 돈은 삶을 뛰어서는 안된다고 언제나 생각하는 편이다. 돈을 모으고 불리는 과정 속에서 내내 영성과 철학 책을 아이러니하게도(?) 계속 근처에 배회하듯 기타 경제 경영서와 같이 섞어서 읽는 습관을 초반부터 길러왔던 이유는, 돈'만'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의 세계에서  '삶'이 빠진 부는 진짜 부가 아니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잘 살자고 돈도 버는 게 아닌가. 무엇이 잘 사는 삶인지, 무엇을 더 줄 수 있는지를 먼저 선행되어 철학적 고민 없는 부의 증식은 의미가 없다고도 보기에. 




내가 청소를 맡은 현장은 유독 돈 문제로 자신과 배우자의 직계존속 간에 앙심을 품거나, 우발적인 다툼이 일어나 파국을 맞이한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존속살해처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사건일수록 인권 서비스가 주저 없이 손을 내밀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건 현장일수록 우리 같은 청소부가 곧잘 부름을 받는다. 동생이 형을 찔러 죽이고 남편이 아내의 목을 졸라 죽이고 남편이 아내의 언니를 때려서 죽였다. 귀한 가족의 인연으로 맺어졌건만 돈에 얽혀선 원수보다 못하다. 돈을 더 달라고 죽이고, 돈이 없다고 무시해서 죽이고, 주기로 한 돈을 갚지 않는다고 죽인다. p.226



지성을 가진 도구의 인간, 호모 파베르가 그 지성으로 자살 도구를 고른다. 참으로 잔혹한 아이러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아이러니는 인간의 생사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등을 맞댔을 뿐, 사람의 생명과 죽음은 결국 한 몸통이고 그중 하나를 떼놓고는 절대 성립하지 않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다.  p.237




다시금 오늘 하루를 잘 살아가려는 의미와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덜 후회하기 위해 잘 살자는 것이라는 생각과 아울러... 죽고 싶은 사념이 자신을 휘몰아치는 순간에도 생의 존엄함이나 이 한 몸이 태어난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자면, 그리 쉽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또한 한편으론 죄가 아닐지... 기타 등등... 좋은 책은 질문을 남긴다. '죽은 자의 집 청소' 와 같은 '진짜 책' 들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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