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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03. 2020

 해 봐, 해봐야 아는 거지

뽑기 앞에서, 너희들을 응원하며....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을 위해 써라. 

남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상관하지 말고, 글쓰기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 도리스 레싱 - 





집 근처 아이스크림 할인점 앞에서 아이들은 멈췄다.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함이 아니었다. 뽑기 기계 때문이었다. 참새가 방앗간에 드나들 듯, 빵순이가 빵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요 근래 5세 남아 쌍둥이들 또한 그 앞을 그냥 지나치는 법은 없었다. 오늘이라는 하루의 즐거움은, 엄마라는 이 어른 보호자가 과연 자신들에게 뽑기를 할 수 있도록 동전이라는 물적 자원을 손쉽게 주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는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동전이 생기면 무조건 배팅을 '하는' 아이들에게서, 나는 문득 단순하나 적확한 삶의 본질을 보는 것 같았다. 



결과가 무엇이든 아랑곳하지 않고 '해보는' 자세

퇴사 후 아이들과의 시간이 많아지며 저절로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지켜보는 시간도 쌓여만 간다. 그리곤 아이들은 나의 스승이나 다름없다는 걸 종종 깨닫는다. 뽑기 기계 앞에서의 행동 하나 조차에도 나는 뭔가를 얻는 듯싶었으니까 말이다. 100원짜리 동전을 넣었을 때, 비로소 수북이 쌓인 탱탱볼 속에서 단 하나의 공이 나온다. 재빨리 버튼을 눌러 (누른다기 보단 거의 막 치고 본다는 표현이 적합하나) 그 탱탱볼을 '골인' 지점으로 넣어야 한다. '노골' 이 되기 쉬운 게임의 구조. 대부분 실기할 걸 뻔히 알면서도 아이들은 그걸 염두하지 않고 '하면 언젠가 하나는 뽑힌다'는 자세다. 100원을 그냥 날려 버렸을 땐 '한번 더'를 외친다. 몇 번의 끝에 '골인'을 하게 되면 그제야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공이 나왔다고. 해냈다고...




비온 후 무지개를 기대하며 찾다가 결국 무지개를 발견한...뭐 그런 비슷한 기쁨 정도로 해 두자. 너희들의 순수함은 그랬다.



삶은 무릇 이런 '뽑기'와 닮아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선택의 기로점에 자주 선다. '한다'는 쪽으로 배팅했을 때, 그로 인한 결과가 그리 달콤하지만도 않다. 오히려 쓰린 위험을 감수해내기도 한다. 뭐든 '했을 때' 고통과 절망, 슬픔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는 게 '삶' 일지도 모르니까. 연애든 사업이든 취업이든 투자든 양육이든 공모든 뭐든. 어떤 도전이든 쉬운 건 없으니 말이다...



'뽑으려고' 하는 아이들은 '기대'와 '희망' 에 온 마음을 쏟는다.

아이들은 뽑히지 못한다는 걸, 아울러 원했던 게 뽑히지 않을 확률이 많을 것이라는 걸 알려줘도 덤볐다. 100원짜리 탱탱볼 하나를 뽑음으로 인해 실기할 위험을 알고도 몇 번을 계속해서 실패하고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도중에 포기하는 법이 좀처럼 없다. 복불복... 그러다 뽑혔을 때의 희열. 기대에 차지 않은 탱탱볼이 나왔지만 '다음'을 기다리는 마음, 한 번은 해냈다는 자신감....아이들이 열광하는 순수한 모습에서 뭔가가 다시 내게 다가오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좋고 기쁜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뭔가 잃어버린 걸 다시 찾는 것 같았다... 



다 떨어져나간, 이젠 별 볼일 없는 잎사귀 같았으니까...




퇴사 후 3개월, 그럼에도 '뽑기'를 하는 마음으로 뭐가 나오든 '해보려는' 내가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공식적인 '경제적 노동인구'에서 이탈했다는 현실에서 상당한 우울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무의식에서의 오기가 남겨졌던 건지, 나는 양육 이외의 뭔가를 '하는' 사람으로선 그래도 꽤 좋은 단기적 성과(?)를 얻으려 했던 걸지도 모른다. 이름만 들으면 알법한 브랜딩 기업들의 B2C 영업을 위한 대외 고객 자문단으로서의 활동이라든지, 출판사의 독자 기획단이라든지 기타 국립중앙도서관, 육아종합지원센터, 창업센터, 도 내 소비자 지킴이, 에너지복지, 경제과학진흥원, 기타 등등등의 '홍보 기자'로 활동을 해도 좋다는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물론 이런 활동들의 이면에는 여전히 나의 기준에서 '원고' 나 '글' 이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가독성 좋은 지식 콘텐츠' 정도의 글들을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지만 아무렴 어떨까 싶었다. 정말이지 아무렴 뭐든, 아무렴 어떨까...싶었던 거다. 




집 '밖' 이 그리웠던 걸지도 모른다. 

아정보나 동네 맛집, 혹은 교육과 같은 카테고리'만'의 세계에 갇힌 사람으로서만 충실하고 싶지는,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한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집' 을 지키는 것이 고결하고 위대한 업이라는것은 분명히 안다. 다만 뭐랄까, 아이들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 아이들처럼 '희망' 이 있는 어떤 '기대'와 '바람'에 맞춰, 그렇게 자신들의 순도 깊은 열정을 따라 세상 '밖' 으로 움직이며 살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간직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뽑기'  앞에선 주저 없이 동전을 건네보는 엄마가 되었고 아이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내가 되어 있었다. 



- 에이..... 안 나왔다. 

해 봐. 해 봐야 아는 거지. 



혼자가 되어 봐야, 떠나 봐야, 잃어 봐야 아는 것들이 있다. 




아이들에게 건넸던 이 말은 사실 나에게 제일 먼저 권하고 싶었던 목소리였다. 

나는.... 글을 쓰면서 종종 나에게 이와 같은 말을 건넨다. 최근 들어 다시 쓰기 시작한 문학 공모전들의 마감 날짜가 표시된 달력을 바라보면서, 원고 기획서를 쓰면서, 이력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늘 마음으로 생각만 했던 곳의 '상시 채용' 버튼을 클릭하고 어느새 자기소개서를 써서 제출 버튼을 누르면서도...



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것뿐이라면, 나는 역시 하는 편을 택하려 한다. 

그래서 여전히 힘들고 다치고 슬플 것이다... 삶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제법 아는 '어른' 이 되었기에. 경력단절은 시작되었고 원하고 기대하고 바라는 곳에는 더 젊고 유능한 이들이 즐비하다는 것도 아는 어른, 이대로 가다간 나의 40대는 아이들의 초등 교과과정의 편입과 더불어 내내 자녀의 교육과 그 외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10년이 훌쩍 갈지도 모를 거라는 예상이 현실적으로 다가오지만.... 



그러한들 저러한들 마음이 끌리는 것들 앞에선 쉽게 물러나지 않아 볼 생각이다. 

아직까지는.... 아직까지는 뭐든 '해보는 '나를... 선택하려 한다.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을 위해 쓰라' 했던, 도리스 레싱의 산문집 첫 페이지를 보며 통곡했던...



현재의 나를,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기에... 




언젠가 뽑힐 너희들의 보물을 지지하는 것. 물론 그것이 언제나 나의 최대 우선순위의 '일' 이고 나는 그 일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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