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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05. 2020

자유롭지 않더라도, 괜찮을 자유  

지혜란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여행을 한 후, 스스로 지혜를 발견해야 한다. 


- 마르셀 프루스트 - 





시작은 모래놀이였다. 

'옥토넛 모래놀이'를 거실에 끌어들인 것이 원인이었다. '설마'는 나를 잡았다. 역시 설마는 사람을 잡기 마련이다.  그들이 돌봄이 필요한 5세 남아 둥이라는 것을 잠시 잊었던 나를 그저 원망해 본다. 모래놀이를 하고 싶다던 아이들의 호응에 '다정한 보호자'가 되어 주고 싶은 '욕망' 은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그 욕망 덕분에 아이들에게 흔쾌히 장난감을 가져다주거나 뽑기를 하기 위한 동전을 선뜻 건네주거나 하는 '나'를 만난다. 



한편으로 그 욕망이 나를 힘들게 만드는 때도 있다. 

가령 그 '보호'를 잘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과 더불어 '적당히'라는 수식어는 왠지 용납하고 싶지 않은 나와 대면해주기도 한다. 적당히라는 생각을 한번 하게 되면 뭐든 적당히 할 것 같아서 신생아 시절부터 뭐든 적당히는 없었다. 그랬기에 나는.. 생지옥을 겪어내기도 했다. 적당히 하려고 하지 않았기에 생긴 것들 이리라. 좌절이나 고통, 가끔은 천국이 아닌 웃픈 지옥을 불방케 하는 도무지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영혼의 영유아 육아 돌봄의 쓴 맛이란. 



석양이 좋아진 건 아마 너희들을 낳고 더 그렇게 변한 거 같기도 하다... .저녁이, 밤 공기가, 하루의 마무리가 간절했기에...



모래로 난장판이 된 거실과 소파 패드를 하나하나 치우면서 나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친정 엄마. 그녀를 떠올리면 나의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슬픔이 조금은 누그러뜨려지기에. 아이들에게 최대한 화를 내지 않으려, 감정을 억누르며 엄마를 떠올렸고, 그러다 자꾸만 생각이 들이치고, 그러다 결국 눈물을 훔치는 나를 발견한다. 엄마가 되어서 그녀의 말이 얼마나 가슴 아픈 것이었는지, 차마 쉽게 내뱉을 수도 없었던 목소리였는지를 나는 깨닫는다. 그래서 우나 싶었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법했기에. 




- 엄마는 왜 이혼 안 해?

- 무슨 소리야. 쓸데없이. 

- 그냥... 난 가끔  엄마가 불쌍해 보여서...

-... 엄마 없이 살 수 있어? 

-.... 아니... 요. 

- 그래서 안 해.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밥 먹어. 그리고 나 말고 아빠도 생각해라. 아빠는 더 힘들어 

- 미안해... 미안해요. 

- 네가 커서 자식 두 명 정도 낳고 돈 벌어봐. 그럼 그때 지금 내 말, 알 거다. 




엄마의 말이 옳았다는 걸... 한참 뒤에나 깨닫게 된 나는

한 때 내 존재가 미안하고 그래서 미워했었다. 누군가의 자유를 빼앗고 있다는, 죄스러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철이 좀 일찍 든 건지, 아니면 환경이 그랬던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내 일상 속 한 여성에게 '해방' 감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던 걸까. 연년생 남매의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의 1인 담당자로서 그 어떤 전문 기관 및 외주 하나 맡기지 않은 채로 홀로 양육과 교육, 훈육과 보육 그 외 살림과 가족 구성원들의 '치다꺼리'와 관리, 그뿐일까. 큰 며느리로서의 댁 내 대소사의 챙김 까지 기타 등등 등등, 그 와중에 부업으로 여러 단기 계약직일을 거쳐 틈틈이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서 공인중개 일을 시작한 후 더더욱 생활력이 만렙을 찍어 가던, 때로 냉정하고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법 해던, 그녀 앞에선 그저 고개가 숙여지고 마는, 나의 친정 엄마....




당신이 자유롭지 않았기에, 우리가 자유롭게 잘 컸다는 걸....이제는 내가 압니다. 엄마. 내가 알아요..알게 되었어요. ...




그녀의 시간이 가혹해 보였다.

물론 노동자로서의 한 평생을 살아오신 아버지에 대한 연민도 있었지만, 솔직히 그녀를 떠올리는 것보다는 덜한 마음이었다.  세 사람의 안위를 신경 쓰며 직업적 시간을 동시에 유지하는 그녀의 삶이 안쓰러웠으니까. 그랬던 나였기에 친정 엄마 정도는 해야 (?)  '워킹맘'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내내 달고 살았고, 어쩌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경제적 독립과 같은 '부모님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갈망은 거의 갈증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게 나로선 그녀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걸까...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걸지도 모를 일이지만...



치워도 치워도 모래알은 자꾸만 거실을 비롯해 가구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소파 패드와 연이은 식구들의 빨랫감을 세탁하고 치우고 정리하는 시간 동안, 나는 자주 갈망한다. 어떤 허락되지 않을 '자유' 들에 대해서. 갈증을 느끼면 괜히 눈물이 나온다. 눈물의 양과 비례하여 이렇게 보호자가 되는 기분이기도 하다. 유자녀 기혼 제도 안의 외벌이 4인 식구 중 비경제 활동 인구에 편입한 성인 여성 가족 구성원인 '나'는... 여전히 손주 걱정을 하는,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부모님을 떠올리니. 유자녀 기혼자들의 삶에서 완전하고 완벽한 개인적 자유를 찾는다는 것은 오히려 그 생에 있어서 역대급 역설이 아닐까 싶었던 거다. 그 '자유'를 갈망하는 것 자체에서 차오르는 죄의식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 또한....



원한다고 원하는대로만 다 흘러가면 아마 세상은 무례함만 가득하지 않을까. 지키는 자들 덕분에 평화로운 것이겠지..싶다. 




허리를 숙이고 걸레질을 하고 있던 나에게 아이가 등을 타고 올라와 말을 건넸다. 

사랑한다고..... 했다. 결국 막무가내로 다가오는 그들의 고백에 여전히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린다. 그 어떤 슬픔과 좌절과 고통과 분노는 사라지진 않을 테지만 '잠들기' 시작했다. 언젠가 다시 깨어날 테지만... 그들의 사랑한다는 장난기 섞인 짧은 목소리로 하여금 나는 다시금 '속임'을 당한다. 자식이라는, 그들의 사랑 덕분에 부모라는 누군가들의 자유는 자칫 박탈당하기 손쉬운 생일지라도. 부모로서의 이 길이 한편으로는 그리 나쁜 (?) 것은 또 아닐 것이라는 어설픈 '희망'을 떠올린다.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한다' 고 말하는 타인을 삶에서 만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그러니 자유롭지 않더라도 괜찮을 자유가 생긴다. 나는 허리를 닦던 걸레를 내려놓고 아이를 앉고 말했다. 사랑한다고... 다음에도 모래놀이 또 하자고... 이것이 현재의 나로서는, 지금 이 순간을 통과하는 생의 '지혜' 같았기에.






시작할땐 행복했다. 


그 시작만 생각하겠다...ㅋㅋ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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