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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l 16. 2020

쌍년의 고백

내 주위에는 많은 학생들이 출렁이고 그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론 모자라

 XX 학원, OO학관, XX 학원 등에서 별의별 지식을 다 배웠을 거다. 

그러나 아무도 부끄러움은 안 가르쳤을 거다. 


-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박완서 - 






5일장을 치르듯, 울고 또 울었다. 

공황장애가 이런 식으로 훅 다가오는구나 싶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의 북받침...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할수록 생각하게 되는 그 역겨운 목소리와 태도. 86년생 남성과 93년생 여성은 이미 나에게는 '개새끼'와 '썅년' 이 되어 있었다. 증오하고 또 증오해도 모자랄 만큼의. 갑자기 다가온 이 낯선 감정... '설마' 했던 감정의 실체. 단 몇 시간의 의도되고 기약된 만남 이전에 상상으로 예감했던 감정, 그것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한 여성이 절규하다 체념을 하기까지, 말로만 듣던 무언가를 비로소 스스로 체감했을 때 더럽게 비리고 쓰린 마음... 위장 끝에서 어떤 구역질과 함께 정말로 뱉어 버리고 싶어 냈던 어떤 더러움들... 그이의 살갑고도 현실적인 말 덕분에 아주 잠깐은 생각을 멈출 수 있었던 그 치욕스러움들. 



- ..... 내가 정말.....

- 너무 미워하지는마. 그럴수록 본인이 더 힘들어져... 그나저나 괘씸은 하네. 장모님이 속상하실만은 해... 어른 대할 줄 모르는 어린 셈 쳐. 부모나 우리를 꼰대로 알겠지만. 

- ...개새끼 ..썅년... 다시는 안 봐.

- 진정하시라. 




반박할 수 없는, 은근한 모멸적 문장과 사소한 행동을 또렷이 기억하기 때문인 걸까.

나의 기억력을, 예민한 관찰력을 저주했지만 어쩔 도리 없이 나는 자꾸만 몇 가지의 장면들과 목소리와 마주 서야 했다. '사기죄'로 고소하기 전에 돈이나 내놓고 각자 인생 살자는 조롱적 문장, 혼자의 힘으로 태어나고 자란 것처럼, 한 여성을 멸시하고 비난하는 식의 태도, 35년을 알고 지낸 혈육보다 1년을 채 알고 지내지 못한 여자가 옆에서 호소하는 고통만이 자신의 전부가 되어 버린 인간의 실체... 



이간질은 아니겠지만 '그 방면'에 능한 음탕하고 느글느글한 미소를 묻힌 그녀는 

'오빠' 이외의 그 어떤 '가족' 도 용납하지 않고 '우리 갈 길' 잘 살겠다는 식의 능글맞은 '선포' 적 단답식 문장을 구사했다. 초면의 상대를 앞에 두고도 관심과 호의는 보이지 않은, 자신의 행복과 기준'만' 이 전부인 체 자신의 고통의 원인에 대한 탓'만'을 해 대려 했던 볼품없는 태도의 여성, 내 집 마련에 돈 탈탈 턴 남성에게 그건 '당신 사정'이고 자신에겐 '당연히 어울리는' 듯 일천만 원 다이아반지를 굳이 받아내고야 만 대단한 의지와 퍽이나 화려한 성품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는 식의 그 대단히 잘나빠진 명품 가방의 꼴 마저도. 



격노한 슬픔과 분노가 동시에 다가오는 순간.... 마음의 파도는 거침없이 쉴 줄 모른다. 



단 몇 시간이었지만,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던 그 날 이후 

곱씹을수록 그들은 이미 내게 '개새끼'와 '썅년'으로 변해 있었다. 이후 '개새끼'가 내게 토했던 격렬한 외침 덕에 나의 오장육부는 이미 경련을 한참 일으키고도 남을 만큼 격렬하게 위가 역류하며 치솟는 듯한 분노와 함께, 그대로 신체 어느 부위를 건드려 그렇게 내내 5일을.... 울고 또 울었다. 그런 나를 보고 이제는 체념으로 말 조차 없어진 모친은 같이 눈시울을 붉혔고, 그저 자신의 탓으로 모든 걸 돌리려는 듯 미안하다는 말을 할 뿐이었다. 씩씩했던 기억 속의 그녀가 이제는 '개새끼'와 '쌍년' 에게는 볼품없는 노파 취급을 받아버리고 만 걸까 싶어서, 그녀의 생기 없이 울먹이는 목소리는 나를 더욱 오열시켰다...   마치 상을 치르는 듯한 기분으로, 그렇게 나는 그 '개새끼'를 보내주었다. '가족' 은 이제 3명이 되어 버리던 날이었다. 




- 걱정 마라. 엄마 괜찮다... 

-....

- 마음 접었으니까, 이제는 괜찮아. 그러니까 너까지 마음 쓰지 마. 엄마 괜찮다. 살아보면 알겠지...

-....

- 눈물 닦고. 괜찮다니까.

- 지 부모 앞에서 부끄러움도 모르는 개새끼....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은 참지 못하고 터져 버린 수도꼭지처럼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다. 그녀가 나의 육신과 영혼인 것 마냥 그 슬픔과 고통을 같이 겪을 때면. 마치 대신 말해주는 것처럼... 대신 울어주는 것처럼. 



- 어떻게... 어떻게 괜찮을 수가... 괜찮을 리가 전혀 없잖아! 안 괜찮은 걸 언제까지 괜찮다고 참으면서 살아야 하는데. 도대체 엄마라는 사람은 왜 그래야 하는데! 그 개새끼 죽어갈 때 살린 게 누군데! 일 하면서 집안일 챙기고 병원 들락날락거리면서 병시중 하고! 식구들이 왜 모두 저염식을 시작했는데! 식구들이 왜 모두 누구 눈치 보면서 살았는데! 그 새끼 밥 해주고 뒷수발 다 들고! 그래 놓곤 뭐? 사회생활 오래 해서 그 썅년 하나에게 눈 뒤집혀서 '갑질이나 하는 모진 모녀' 랑은 더 이상 볼 필요 없다고? 뭐? 그게 지금 말이야 막걸리야? 교수 '씩'이나 되면 그 대단히 잘 나빠진 그 이름이 그렇게 폐륜적인 말을 함부로 나불대고도 지들만 잘 살면 그만이야? 어쩜 사람을 골라도 왜 하필.. 왜 하필... 왜 하필 그딴! 썅년이나 개새끼나 세트라서! 그 나물에 그 밥이라! 제 눈에 안경이라! 



- 나는 이제 다 잊었다... 자꾸 생각하면 화병 나서 죽어... 그러지 마...


- 지 배우자 될 사람 가족들, 피눈물 나게 만들고 오만 정 다 떨어져 나가게 만들어 버리고. 말 그대로 연 끊고 살기를 '바란'  그대로 됐네. 오죽 좋아할까 지금? '365일 중 360일만 오빠랑만 행복하면 좀 불행해도 자기는 그걸로 만족' 한다고? 자기는 시금치의 시자도 원래 안 먹었다고? 하.. 뭐 몇 번 결혼을 해본 년처럼? 예쁨 받을 노력을 먼저 하지는 못할 망정 이미 '시댁' 은 불행한 걸 지레 겁먹고 전제로 깔고 가는 그 꽉 막힌 젊꼰년의 대단히 잘 나빠진 그 생각 머리를! 오히려 적반하장 아연실색하게 만든 그 '개새끼' 한테 이제 지 가족은 그 년이면 족하다는 식의 재수 없고 제 잘난 맛에! 지 혼자 태어났고 지 혼자 살아남았고 지 혼자 그 자리까지 올라갔지!  아들 새끼가!  그 하나밖에 없어서 할머니가 오죽 애지중지했던 그 아들 새끼 한 명이! 어떻게 엄마한테.. 어떻게 당신한테! 



눈물이....멈추지 않았던 요 며칠....... 정말 오랜만에 비는 계속해서 내리기 시작했다. 




나가떨어지기를 바랐던 그들의 계획은 통했고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두 여성은 그저 볼품없이 귀찮기만 한 '썅년'이라는 것을.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들이 한 어리고 어리숙한, 어리석고도 그럴듯한 속 빈 생각은 그들의 언사에 다 묻어 있었으니까. 그들은 모른다. 누군가를 마비시킬 정도의 피멍과 가슴앓이를 시키고도 남았을 그들의 선택에, 앞으로 얼마나 건강한 관계가 그들의 앞날에 형성될 수 있을지... 이제는 그 걱정조차 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먹은 날. 그럼에도 나는 걱정을 넘어선 저주와 격노를 여전히 감추지 못한 채... 저주하고 또 저주할 것이라는 좋지 않은 생각 때문에 온 심신이 마비되듯 휘청거리기 일쑤였던 며칠이 지나... 아득히 제정신을 차리고 보니, 5일이 지난 어느 날, 손가락만 부산스럽게 뭔가를 토해내고 싶었던 순간... 바로 지금. 




그러니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아득한 내일이 아니다. 마주 서 있는 지금이다. 

나는 오늘 주어진 일들을 생각하고 오직 그 모든 일들을 무사히 마무리하겠다는 생각만 한다. 

그런 식으로 길고 긴 내일들을 지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볼 뿐이다. 


딸에 대하여,  p. 197




찢고 찟겨진 기억조차 ..그럼에도 글로 남길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 사는 비극이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걸까. 




이미 '글'로 그럴싸해지고 싶은 욕망은 버린 지 오래라 다행이지 싶었다...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대신 사납기 그지없는.. 더욱 거세지고 사나운 문장을 앞으로도 얼마든지 토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나는 처절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의 진짜 목소리에 지고 만 채, 이렇듯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를 발견한다... 이렇게 서럽게 글로, 눈으로, 운 적이 언제였더라 싶었을 만큼. 이렇게 서럽게 우는 여자의 곡성이 이 세상엔 없겠거니 싶을 정도로...



가슴속에 분통을 간직한 채, 나는 정신을 차리려 애쓴다. 

아이들을 지켜보며... 지켜야 하는 사랑들을 또렷이 기억한 채. 

아끼고 위했던, 사랑해서 지키고 싶었던 한 명은 완벽히 사라진 채

이제 남겨진 사랑들만을 더 잘 지켜야 한다고 서슬 퍼런 어떤 의지가 샘솟으려 했다.  

더 강력히 잘 살아남아야겠다는, 어떤 의지가. 



신이시여...썅년의 고백을 토합니다. 그리고 저는 당분간 그들을 저주합니다.... 저주하겠습니다. 용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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