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쓰든 달건 진실은 상처를 줄 수가 없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으니까.
- 가만히 부르는 이름 -
농담을 주고받는 부부 사이야말로 건강한 관계라고.
운전을 하고 있는 그에게 대뜸 말을 건넸고 궁금한 표정으로 잠시 나를 쳐다보는 그이를 발견한 뒤, 그제야 나는 몇 가지 '언젠간 해야지' 싶었던 말들을 잇기 시작했다. 가끔 이렇듯 생경한 시작으로 대화는 발화되고 처음엔 그를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었으나, 시간이 꽤 많이 흐른 지금은 서로가 제법 익숙하고 또 재밌게 즐기기까지 하니. 우리는 얼추 이제야 '부부'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요즘 들어 제법. 정말 여러모로 제법...
- 오전에 그런 농담 했었잖아. 결혼기념일 선물로 '애인' 선물해 달라고.
- 그랬지.
- 어땠어 그 말 들었을 때?
- 어떻긴. 작가님이 또 시작했고만 싶었지
- 들켰네... 아무튼. 최근에 빠진 소설이 있어. 어떤 인물 하나에 푹 빠져서 지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어. 허구이고 가상인데, 자꾸 생각이 나는 거 있지. 내 멋대로 마음속에서 상상해 버리고. 그래서 그런 거였어. '그런 애인' 선물해 달라고.
- 그렇고만. 핸드폰 좀 있다가 줘보시라.
- 너무 쉽게 건넬 수 있어서 아쉽다...
계속되는 대화가 재미있었는지
그이는 운전을 하면서도 계속 대화를 이어가려 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보따리가 주르륵 풀리더니 '생활', '육아' '생존' '돈'부터 시작해서 '불륜'이나 '인간 본성' 및 '죽음'에 이르기까지. 두서없는 소재들이 묘한 연결고리를 통해 툭툭 이어나갔지만 제법 우리의 대화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미처 몰랐던, 혹은 알고 있었지만 다시금 어떤 그 '안다'는 것에 대한 신뢰나 확신, 혹은 '의외'의 마음마저 들게 만드는 '서로'를 알 수 있는 것만 같았으니까. 다만 너무 솔직하게 말을 잇다 보니 결국 그의 '침묵'에 다다랐을 때, 나는 아차 싶었다. 한 사람의 투명한 목소리가, 또 한 사람에게는 상처가 된 걸까 싶어서. 물론 재치 있게 맞장구 해 주는 그이라 대화를 계속 이을 수 있음에 미안함보다 감사함을 더 기억하고 조심(?) 하는 나이기도 하지만.
- 그런 남자, 세상에 없을 것 같지만.
- 여기 있잖아.
- 그러게. 있네. 나이는 그에 비하면 좀 많고, 일하고 육아하기 바쁜 나의 성실한 남자. 곁에 있는데도... 자꾸 '한솔' 같은 사람, 그리워한다니까.
- 그리운 게 뭐 한 두 개여야 말이지. 그리고 그 소설 속 인물, 나도 좀 보여주시라. 얼굴 좀 보게.
- 잘 생겼는데 잘하기도 하고 심지어 연하라니. 내 참, 설정값 한번... 못됐어. 그래도 그런 사람 생기면 좋겠다...
- 그럴 리가.
- 그럴 수도.
- 제발 현실을 지켜 주시라.
- 가끔 지키기 싫어해서 미안.
- 둥이들 잘 지켜주니 그걸로 됐다.
- 내일 도시락 반찬 4찬!
- 밥은 좀 제발 반만 담아주시라
- 그건 사랑이다.
- 사랑이 과하면 해롭다.
- 진실이 쓰거나 달아도요
- 응. 그것이 쓰든 달건 진실은 상처를 줄 수가 없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으니까. 너한테는 오로지 가감 없이 진실만을 이야기할게. 너도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은 솔직하게 다 해주었으면 좋겠어.
가만히 부르는 이름 中
어쩌면 나는 불행하다 생각했던 예전의 결혼 생활에서, 그간 잊고 지낸 무언가를 이제야 조금씩 찾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의 '대화' 속 오고 갔던, 너무 진지하거나 투명해서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으나, 결국 서로를 생각하고 마는, 진실된 무언가에 대해서.
목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에 감사하자 싶었다.
다시 듣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가장 먼저 생각날 목소리는
바로 그 목소리... 내 곁에 존재했던, 그, 사랑의 목소리일 테니까...
# BGM, Stay with 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