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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04. 2020

대화

그것이 쓰든 달건 진실은 상처를 줄 수가 없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으니까. 


- 가만히 부르는 이름 - 





농담을 주고받는 부부 사이야말로 건강한 관계라고. 

운전을 하고 있는 그에게 대뜸 말을 건넸고 궁금한 표정으로 잠시 나를 쳐다보는 그이를 발견한 뒤, 그제야 나는 몇 가지 '언젠간 해야지' 싶었던 말들을 잇기 시작했다. 가끔 이렇듯 생경한 시작으로 대화는 발화되고 처음엔 그를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었으나, 시간이 꽤 많이 흐른 지금은 서로가 제법 익숙하고 또 재밌게 즐기기까지 하니. 우리는 얼추 이제야 '부부'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요즘 들어 제법. 정말 여러모로 제법... 



- 오전에 그런 농담 했었잖아. 결혼기념일 선물로 '애인' 선물해 달라고. 

- 그랬지.

- 어땠어 그 말 들었을 때?

- 어떻긴. 작가님이 또 시작했고만 싶었지 

- 들켰네... 아무튼. 최근에 빠진 소설이 있어. 어떤 인물 하나에 푹 빠져서 지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어. 허구이고 가상인데, 자꾸 생각이 나는 거 있지. 내 멋대로 마음속에서 상상해 버리고. 그래서 그런 거였어. '그런 애인' 선물해 달라고. 

- 그렇고만. 핸드폰 좀 있다가 줘보시라. 

- 너무 쉽게 건넬 수 있어서 아쉽다...



함께 주고받았던 대화가 그리 아픈 것만은 아니었음을.. 




계속되는 대화가 재미있었는지 

그이는 운전을 하면서도 계속 대화를 이어가려 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보따리가 주르륵 풀리더니  '생활', '육아' '생존' '돈'부터 시작해서 '불륜'이나 '인간 본성' 및 '죽음'에 이르기까지. 두서없는 소재들이 묘한 연결고리를 통해 툭툭 이어나갔지만 제법 우리의 대화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미처 몰랐던, 혹은 알고 있었지만 다시금 어떤 그 '안다'는 것에 대한 신뢰나 확신, 혹은 '의외'의 마음마저 들게 만드는 '서로'를 알 수 있는 것만 같았으니까. 다만 너무 솔직하게 말을 잇다 보니 결국 그의 '침묵'에 다다랐을 때, 나는 아차 싶었다. 한 사람의 투명한 목소리가, 또 한 사람에게는 상처가 된 걸까 싶어서. 물론 재치 있게 맞장구 해 주는 그이라 대화를 계속 이을 수 있음에 미안함보다 감사함을 더 기억하고 조심(?) 하는 나이기도 하지만.  



- 그런 남자, 세상에 없을 것 같지만.

- 여기 있잖아. 

- 그러게. 있네. 나이는 그에 비하면 좀 많고, 일하고 육아하기 바쁜 나의 성실한 남자. 곁에 있는데도... 자꾸 '한솔' 같은 사람, 그리워한다니까. 

- 그리운 게 뭐 한 두 개여야 말이지. 그리고 그 소설 속 인물, 나도 좀 보여주시라. 얼굴 좀 보게. 

- 잘 생겼는데 잘하기도 하고 심지어 연하라니. 내 참, 설정값 한번... 못됐어. 그래도 그런 사람 생기면 좋겠다...

- 그럴 리가. 

- 그럴 수도. 

- 제발 현실을 지켜 주시라. 

- 가끔 지키기 싫어해서 미안.

- 둥이들 잘 지켜주니 그걸로 됐다. 

- 내일 도시락 반찬 4찬! 

- 밥은 좀 제발 반만 담아주시라

- 그건 사랑이다. 

- 사랑이 과하면 해롭다.

 



- 진실이 쓰거나 달아도요 

- 응. 그것이 쓰든 달건 진실은 상처를 줄 수가 없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으니까. 너한테는 오로지 가감 없이 진실만을 이야기할게. 너도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은 솔직하게 다 해주었으면 좋겠어. 


가만히 부르는 이름 中 




솔직함에도 적정선이 필요하다지만, 솔직해도 해롭지 않은 우리를 바랐다. 



어쩌면 나는 불행하다 생각했던 예전의 결혼 생활에서, 그간 잊고 지낸 무언가를 이제야 조금씩 찾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의 '대화' 속 오고 갔던, 너무 진지하거나 투명해서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으나, 결국 서로를 생각하고 마는, 진실된 무언가에 대해서. 



목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에 감사하자 싶었다. 

다시 듣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가장 먼저 생각날 목소리는 

바로 그 목소리... 내 곁에 존재했던, 그, 사랑의 목소리일 테니까... 



그리울 목소리와는 되도록 좋은 대화를 주고받을 것. 특히 당신과는 반드시 그러할 것을... 결심했단 걸, 알까.. 



# BGM, Stay with 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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