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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03. 2020

자본주의  

아들에게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너의 '현재'가, 편지를 쓰고 있는 나의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너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을 거라 생각돼. 그 전제 하에 몇 자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 보려 해. 남겨 주고 싶은 이야기는 사실 산더미이고, 그래서 엄마의 성향 상 감성적이면서도 계몽주의적인, 네가 상상했던 지극히 '엄마' 로서, 따뜻한 용기와 희망적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왜냐면... 



너희의 밝은 미래는, 아직 알 수 없는 그 내일은, '오늘'을 제대로 알고 살아야

비로소 만들어질 수 있는 '내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극히 뜬구름 잡는 자기 계발적인 척, 몽상가들이 흔히 쉽게 내뱉을 수 있는 계도적 내용으로 채우는 건, 나로서는 너희들에게 남길 수 있는 진짜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도 한몫했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것, 가장 이 시대의 모든 이들이 대부분 한 번 정도는 고민하고 또 괴로워하기도 하는 것, 그것으로 인해 이 세계가 유지되는 것. 그것에 대해 말해보기로 한다. 



바로 '돈' 그리고 '자본주의'다. 

아마 앞으로 종종 이 화두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만. 오늘은 네게 이 두 마음을 남겨보고 싶었어.



- 자본주의를 알아라. 똑바로. 계속해서. 경험하면서. 

- '돈' 보다 '가치'를 추구해라. 여기서 중요한 전제는 '남'의 가치 말고 '너'의 가치를 말한다. 



네가 다치지 않기를, 기죽지 않기를, 웃어 주기를. 나는 죽기 전까지 그런 마음일것 같다. 그건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겠지..



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 시스템을 말한다. 

만약 이 말을 건넸을 때  '이미 다 알고 있거든요'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다행이야... 그러나 네가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구나. 사실 엄마도 여전히 알아가고 있는 중이라 내가 보고 겪고 느끼고 지식적으로 아는 것만 말해줄 수 있으니 안타깝구나. 그래도 만약 우리가 알아가고 있다면, 어쩌면 다행이겠지. 모르는 게 약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태어난 현대인이라면 그것을 알아야 최소한 억울(?) 하거나 분노하거나 슬퍼하지 않을 '힘' 이 역설적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해. 왜냐하면 자본주의를 말할 우리는 결국 '돈'을 떠올리기 때문이지. 



'돈' 이 뭘까. 

그건 어쩌면 자본주의를 사는 우리에게 필수 불가결한 것 같기만 하다. 당장 오늘 아침에만 해도 그랬지. 너희 둘과 대화를 하다가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에게 어떤 선물을 받으면 기쁠 것이냐고 물었었어. (참고로 내가 편지를 쓰는 '지금'은, 너희가 산타클로스를 믿었던, 인간이 인생을 살며 순정한 마음과 사랑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너무 짧은, 그래서 훗날 몹시 그리울, 어린 시간과 함께 하는 중이다...)  



다시 돌아가자면, 오늘 네가 말한 '아이스크림'과 '용사의 황금 검' 은 누군가 만들고 팔아야 한다. 

그리고 돈이라는 화폐로 그 물건만큼의 '가치'를 주고서 산다. 그러면 가지는 것이지.  물론 선물을 받는 경우도 있겠지. 산타클로스가 너희에게 올해도 선물을 주는 것처럼. 그러나 그 산타클로스도 결국 어딘가에서 '얻어야' 되지 않겠니. 결국 아이스크림과 황금 검을 만드는 생산자 (공급)가 있고 그리고 그것을 파는 판매자를 거치거나 혹은 만드는 이에게 바로 사든, 소비 (수요) 해야 해. 그러니 생각해보면 이 세계는 만드는 사람과 사는 사람, 그들이 모인 '시장'이라고 하는 '판'에서의 거래 (교환, 매매, 판매 등)로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지. 그리고 또 중요한 것 하나. 그 '가치' 를 판단하는 '기준' 도 다양하다. 조금 더 미리 말해두자면 그 '가치'는 때로 왜곡되고, 또 만들어 진다는 것도. 진짜가 가짜가 되기도 하고 가짜가 진짜가 되기도 한단다. 판매하는 사람 '마음' 과 보여지는 것에 달리기도 하지..(쓰고 보니 중요한 말 같기도 하구나...)  



세상을 돌아가게, 또 내일을 향해 만드는 또렷한 규칙 같다. 그것들은...




어찌 생각해보면 간단할까? 자본주의 체제가 돌아가는 시스템 말이다. 

사실 엄마는 경제학자도 아니고 그렇게 많은 공부를 한 인간도 되지 못하는 터라, 그저 단순 무식하게밖에 설명할 수 없음에 이해해 주기를 바랄게. 그러나 어쩌면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진리이자 이 세계의 규칙이 되기도 하잖니.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어. '자본주의'에서 빠져서는 안 될 인물. 바로 '노동자' 다.  아이스크림이 그냥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하고 만들어지지 않지. 보통은. 우리는 신이 아니라서. 그래서 누군가 그걸 만들어야 해. 바로 생산을 하는 사람. 그런데 이 생산을 하는 사람이 직접 만들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일을 시키기도 해 (자본가, 고용주) 바로 그 일을 하는 사람. 장본인. 바로 '노동자' 다. 



수많은 해석이 파생될 수 있겠지만, 이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인물은 어쩌면 '노동자' 같아.

이 노동자는 결국 자신의 노동의 대가로 흔히 돈을 얻게 되거든. 혹은 그에 상응하는 현물적 '대가'를 얻게 될 테고. 그리고 살아야 하잖니. 그러니 노동자도 '소비'를 하지. 결국 노동자가 자본주의의 '소비자' 이기도 한 셈이란다. 여담인데, 그래서 노동자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그런 이들이 공존하는 일터에서 노동을 하면 그나마 덜 힘들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자본주의 내 이윤창출이 우선인 '기업' 이 국가의 GDP에 영향을 주기도 하니 이 소망이 완벽히 이뤄지기란, 무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엄마도 그리고 아빠도, 너희의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모두 노동자이고 소비자로 살았고 살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 편지를 읽는 지금의 너도 그럴지도 모르겠지. 극단적인 비유일 수 있지만 인간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있는 한 어딘가에 속해지잖이. 자본가 혹은 생산자, 노동자, 그리고 소비자...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이 세계.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곳. 그래서 알아야 하는 것들.. 



그래서 우선 아주 큰 틀에서 이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최소한 알려 하기를 바랐어. 

'인간' 으로서의 너희를 바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 갑자기 웬 뜬구름 잡는 소리냐고? 사실 자본주의를 알다 보면, 정말 자세히 들여다보고 궁금해하고, 때로 감정을 섞어 '분노' 하기도 하거나 슬퍼하기도 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하거나 그러다 보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에 너무 빠지지 않으려는, 자신을 지키려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여러 사유들이 네 안에서 파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기 의심과 자기 검열, 그리고 '경계'에 서려는 철학적 노력과 사고를 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엄마는 그게 바로 자본주의를 사는 우리가, 인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는

인본주의적 사유를 지키는 시작이라고 생각해... 좀 역설적이지? 어쩔 없네. 엄마는 그랬거든. 자본주의를 알고 그걸 똑바로 직시하는 상태에서 일이라는 걸 하고 돈을 모으고 쓰기도 하고 불리고 어떤 가치들은 놓치거나 버리기도 하면서... 여러 생각을 하면서 살아서 그런가 보다. 



돈보다 가치를 추구하라는 말은, '돈' 은 그저 '수단' 임을 명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어. 

'돈은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미국 속담이 있단다. 한 국가에는 지불의 도구이고 계산의 단위가 모두 달라. 그걸 각기 다른 '통화'로 규정해 뒀지. 대한민국은 한화, 미국은 달러라고 말하는 것처럼. 국가마다 '가치' 도 다르단다. '차이'가 발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셈이지. 강자에겐 큰 가치를 부여하고 약자는 그 강자를 따라갈 수 밖에 없는, 나름 약육강식이 예의바르게 되어 있는 국가적 자본주의도 있을 테고. (이런 얘기는 앞으로 좀 더 쪼개서 계속 해 볼께) 아무튼 한 국가에서 우리가 돈을 버는 노동자로 살면서 늘 경계해야 하는 게 있는 것 같아. 바로 돈을 버는 것, 그 자체를 유일하고도 가장 큰 삶의 보람이자 걱정으로 생각하는 그 '생각' 말이다... 



모든 걸 손에 쥘 수 없는 법이거든... 다 가질 수 없는 게 인간인데. 우린 그걸 자주 잊고 살기도 해



물질주의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그래서 '돈' 보다 너의 '가치'를 따르라는 말이 남게 되는구나. 아들... 네가 살면서 물론 돈은 필요하고 또 중요하기도 할 것이다. 돈이 없으면 많은 기회를 잃거나 아예 기회라고 생각조차 못하고 살게 되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 '돈'이라는 것을 모두가 쫒는다면 아마 이 사회는 유지되지 못할 거야. 마르크스 아저씨가 자본론에서 하나 놓친 게 있다면 어쩌면 그가 정의한 자본주의적 '가치'에서, 인간이 자본으로는 절대 해석할 수도, 정량화할 수도 없는 게 있다는 거야. 바로 '사랑'이지. 자본주의와 돈에는 '사랑' 은 빠져 있거든. 물론 해석하기 나름이다만. 예컨대 그 사랑을 '돈'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장난 같다. 쓰고 보니)  



남의 가치가 아닌 너의 가치를 따르라는 말을 한 이유는, 욕망 때문이었어. 

인간의 욕망은 절대 채워지지 않는대. 자크 라캉이라는 철학자도 말했다지. 인간은 남의 욕망을 따른다고, 욕망을 욕망하는 게 인간이라고. 아들, 한번 생각해볼까. 



여기 두 사람이 있어. 

한 사람은 '갖고 싶은 게 이만큼 있는데 (수요) 이것밖에 없다 (공급)'라고 생각하면서 살아.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이것밖에 없지만 (공급) 그것에 맞춰 갖고 싶은 것을 (수요) 줄이면서 살아보기도 해. 좀 말장난 같이 들리겠지만 결국 엄마는 '욕망'에 초점을 맞춰서 말해보고 싶었어. 영원히 충족되지 않은 것에 대해 불평한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건데, 그게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말이 되게 인간을 흔들어 놓거든. 지금 엄마가 살아가는 2020년은 인스타그램의 시대이고 유튜브와 페이스북과 같은 SNS 소비 시대이고 이미 별 거 아닌 것 하나가 이야기를 만나 엄청나게 변하기도 하는 마케팅의 시대이며 소비자를 끊임없이 현혹시키는 광고의 시대에서 살아왔고 여전히 살아보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살아가게 될 것 같아. 이 편지를 읽는 너도 그럴까. (어쩌니 우린 정말... 어쩔 수가 없구나) 





우리의 선택지는 결국 단 두 가지일까 싶기도 해.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채우려는 그 생각이 물론 좋은 동기 부여와 자극,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이 사회에서 어느 한쪽은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편안하게 사는 쪽을 선택하기도 하지. 결국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단 두 가지일지도 모르겠네. 물론 이 두 가지는 시시때때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겠지. 내가 예전에 전자로 열심히 살아오다가 요즘 들어 조금씩 후자로 갈아타는 것 같으면서도 자꾸 경계에서 멈춰 있는 것처럼. 



편지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오늘은 이쯤에서 줄이려 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를 꼭 읽어봤음 해. 아들. 이미 읽었다면 정말 다행이다... 그건 어쩌면 이 자본주의의 노동자를 위한 책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네가 노동자로 살든가 혹은 살아보고 있다면 말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삶은 모든 게 '노동'이라고 생각된다. 좀 엉뚱하지만, 나로서는 말이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관계들을 맺는데, 그 관계 속 '사랑' 도 지키려면 결국 서로 간 '노동' 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왜 그런지는 차차 알려줄게. '노동'의 의미도 다양하게 해석이 될 수 있어서...



자본주의가 임금노동에 기초한 경제체제라 주장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살면서 한 번쯤 읽어봐 주기를.

보다 보면 자본주의에서의 가치는 '교환'을 통해서 비로소 존재하고 나타난다 해. 그리고 그 '교환'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도. 생각해보면 종이 화폐인 '돈'으로 교환을 할 수도 있지만 아주 옛날엔 '물물'로 교환을 하기도 했잖니. 그래서 엄마는 문득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내게 있어 최고의 부자는, 인간으로 생존을 위한 '의식주'를 충분히 스스로 만족스럽게 자급자족할 수 있는 인간이야말로 정말 부자가 아닐까 싶다고 말이야. 어때, 근사하지 않니? 집도 스스로 짓고 식재료 공급도 자급자족이 되며 옷도 직접 만들어 입을 수 있는 사람이라니. 맙소사. 그런 사람은 뭐 아쉬울 게 없을 것 같구나... 요즘 내 생각은 아무튼 그래. 



오늘도 이 자본주의에서, 너의 진정한 가치를, 순정한 사랑을 빼앗기지 않고 잘 살아내 주기를. 

그 마음이 강해서 이런 편지까지 쓰게 되었나 싶다. 너그럽게 열린 마음으로 읽어봐 주면 기쁠 거야.  

있다 봐, 아들... 너희 둘을 곁에서 볼 수 있어서, 행복한 오늘이다... 



혼자 태어나서 결국 혼자 간다지만, 그 혼자의 길에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주면 얼마나 기쁠까. 엄마는..그렇다. 




덧) 기억하니. 2020년 크리스마스. 아들. 너희 둘은 아이스크림케이크와 황금색 용사의 검을 보자마자 환호성을 질렀어...그리고 너희 곁에 내게는 그 미소가 바로 그 해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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