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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15. 2020

군중심리

아들에게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이 지났지만 요 근래 꽤나 포근한 가을 날씨가 지속되는 것 같다. 나의 지금은 그렇지만 너의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구나. 부디 좋은 날씨, 좋은 장소에서 이 편지를 읽는 너를 떠올리며, 오늘은 나로서도 조금은 섬뜩(?) 했고 그래서 스스로 지속해서 의심하는 습관,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는 식견을 쌓아야 한다는 강한 동기를 심어준 것들에 대해서 네게 말해볼까 한다. 난 처음 이런 개념들을 접하고 그 후에 행동심리, 행동 경제, 그리고 뇌과학, 심리학 등등에 대한 책들을 많이 찾아보게 되었거든. 표현이 쉽지 않지만.... 그런 류의 서책들을 찾아보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그것들이야말로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힘'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네게도 꼭 이 말을 남겨보고 싶었어. 



바로 군중심리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이 '군중심리'를 이야기하자면 인간이라는 동물의 심리까지 연결되고 그것은 '뇌과학' 과도 커다란 연결점이 있으니 너무 광범위하고 추상적이기도 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저 마음에 떠오르는 문장들을 두서없이 네게 전하고 싶은 마음에, 일단 손을 이렇게 부산스럽게 움직여 본다. 



'군중'이라 하는 '대중'을 경계하며 의심하기를. 

대중은 인간의 무리인데, 그런 인간이란 본디 '인지 부조화'와 '확증 편향'을 가진 동물이란다...

그들은 자신 (개인) 이 지향하는 신념이나 기준에 맞춰, 대중(다수)을 선동한다.

그런 인간들의 무리를 움직이는, '선동가' 들은 힘을 갖는다. 그것이 권력이든 돈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네가 대중에 속하더라도 스스로를, 그리고 다수를 경계하기를.

상황' 적 논리를 볼 줄 아는지, '인물' 적 추종이 있을 뿐인지도. 네 이성과 감정을 의심하며 바라보길. 



역설 같기도 해. 소수를 존중하는 다수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인간의 무리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 '군집' 하기 마련이니.



'군중 심리'를 접한 이후, 사실 공포스러웠던 건 바로 다음과 같은 특징들 때문이었어. 


① 무명성(): 군중 속에 일체화되어 자기의식을 잃는다. 

② 무책임성: 개개인의 행동이 불분명하므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 

③ 무비판성: 정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상상과 억측으로 판단한다. 

④ 감정성: 동인과 반응의 상승작용으로 격앙된 흥분 때문에, 또는 책임성과 비판성의 결여 때문에 감정적이 된다. 

⑤ 암시성: 군중의 관심이 하나에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의식의 범위가 좁아지므로 외부에서 가해지는 영향에 대한 저항성이 아주 낮다. 

⑥ 친근감: 무책임성·무명성·감정성 때문에 일체감과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일종의 커뮤니티나 대중이라는 어떤 '군집' 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 

반대로 '혼자' 의 공부나 습관을 좀 더 삶의 우선순위에 둔 계기가 되기도 했단다. 사실 습관이나 경험이란 결국 스스로 혼자 만드는 거지 누구랑 같이 만든다는 것 자체가 동기부여라는 말로 포장된 어리석은 선택 같아서 말이지. '대중' 속의 '나' 를 의심하고 경계하려 했고 조심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단다. 저 위의 특징들은 나로서는 좋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군중' 이란 결국 인간의 무리인데, 앞서 말했듯 '인지 부조화' 와 '확증 편향'에 사로 잡혀서  '궤변'을 만들어 내기 쉬운 '동물' 이 바로 '인간 본성' 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엄마는 그 이후부터 나 스스로를 의심해볼 수밖에 없게 되더라...  내가 속했던 학교, 직장, 단체, 숱한 커뮤니티 등등, 그 속에 살면서도 가끔은 어떤 갈증과 답답함을 가끔 느꼈었는데, 그게 다름 아닌 '군중 심리'에 휘둘리는 '나'라는 자아가 있으나 동시에 그 군중에 편입되고 싶지 않은 또 다른 자아 때문이 아닐까 싶고.. 아무튼 그랬단다. 



이것이 사실(팩트)이라는 것도 믿을 순 없다. 결국 출처 불명으로 밝혀졌지. 다만 그가 대중 선동의 심리학이라는 면에서는 관련 책을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참고하길. 



네가 이 편지를 읽을 즈음엔 아마 '어른'의 몸을 가진 사람일까, 

혹은 아직 교복을 입고 '학교'라는 고등 교육 기관에 다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그 '학교'라는 곳이 그래서 참 중요한 기관인데, 아쉽게도 지금... 2020년의 학교라는 곳은 (대학 기관 포함)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입시'라는 제도 때문에, 아울러 자본주의 시대에 '노동'과 '취업' 아울러 '돈'이라는 것들로 인해, 인간에 대한 학문적 탐구나 호기심을 막아 놨단다. 그걸 제대로 인정하고 세계 속에서 활용하도록 도와주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이 붕괴된 지 오래 같기만 해... 사교육은 두 말할 것이 없고, 영어가 국어보다 '먼저'라고 줄곧 말하는 '대중' 이 '커뮤니티'에 판을 치며, '학세권'이니 '학군 부동산'이니, 사교육이니 하는 것들은 이미 '대중'의 힘을 얻고 '선동가 (전문가) '를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어쩌겠니. 그러니, 그럼에도 깨어있고자 한다면, 스스로 공부할 수밖에 없다.  네 '자유'를 위해서. 

그저 엄마가 네게 바라는 게 감히 있다면, 그리고 지금의 나 자신에게도 언제나 바라는 게 있다면 정말 괜찮은 '어른'으로 살다가 좋은 죽음을 맞이하는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뿐이란다... 세상엔 어른의 신체를 가졌지만 사상과 신념, 생각과 행동에 있어서 어른 다운 '성숙'과 지속 '성장' 하도록 열려 있는 어른은 솔직히 주변에서 많이 보지 못했거든.... 언젠가부터 회의론자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지금부터 조금 더 중요하게, 강조해서 말하고 싶은 걸 적어 볼게. 아들... 네가 부디 조금 더 진지하게 너 자신을, 그리고 네가 속한 그 '무리'와 '대중'을 생각하면서 읽어 주면 고맙겠다..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난 후에는 어떻게든 그 선택이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믿으려 애쓰는 것. 

인지부조화로 인해 인간은 확연한 판단 착오였어도 끝까지 '나'라는 인간이 옳았다고 우기게 된다. 확증 편향도 마찬가지지. 쉽게 말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심리란다. 우리의 뇌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거나 결을 같이 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여서 그걸 하나의 '근거'로 만들어서 '스토리텔링'을 하지. 어떠니? 엄마는 사실 이 두 개념을 알고 난 이후, 다름 아닌 이 시대의 '마케팅'이라는 일종의 '사기' 술은 다름 아닌 이 두 심리 성향을 자본주의 시대에서 적절히 이용해서 '군중(대중)'을 움직이는 꽤 똑똑한(?) 수단이라고 생각했지...



결국 우리는 이런 '심리'에 속아서 '소비'라는 걸 하거나, 어떤 특정 인물을 '신뢰' 하거나 한편 추종하기까지 하는 '위험'을 저지르기도 하지. 정치나 종교는 그래서 닮았단다. 거기엔 논리라기 보다는 '수장' 의 논리가 있을 뿐 아닌가 싶구나. 인물을 추종하면 상당히 위험한데 말이지. 상황을 볼 줄 모르니 말이다. 아울러 일단 그 대중의 '팬덤'이라는 게 형성이 되면 (혹은 신뢰, 신용처럼) 인간은 결국 자기가 옳다고 믿기 시작한 '누리꾼' 이 되어 가기 쉽고, 그렇게 나 자신은 '대중' 이 되어 가지. 물론 나의 신념에 반대 증거가 '상황' 적으로 많이 나와도 인간이란 인지 부조화와 확증 편향에 빠져 결국 자기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확증 편향에 사로잡히면 이렇게 된다 하니, 어떠니 아들... 좀 무섭지 않니? 





다수의 힘은 개인을 꼭두각시로 만들기 충분한 힘을 가진다. 

그 꼭두각시는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 말을 잘 듣지. 개중에 만약 으르렁거리는 양 한 마리가 나타난다면? 다수가 짓밟아버리면 그만이란다. 소수의 존재는 사라지기 쉽지. 물론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내야 하는 게 또한 다수와 사회의 책무이지만, 어디 그게 쉽니... 더군다나 '자본주의'는 그게 쉽지 않단다. '가치'와 '가격'이라는 대중 간 '합의된 환상' 조차도 조작될 수 있다는 것에 (마케팅) 눈을 떠 버리면 말이다. 모든 세계의 시스템들을 믿지 못하게 되기도 해. (엄마가 너무 나갔구나... 다시 정신을 좀 가다듬어 볼게 :) 



지금 이 편지를 읽는 너의 선택, 혹은 엄마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선택하고 살았던 모든 의사결정.

그런 사고 과정들 속에는 결국 확증 편향이 개입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소위 이 시대의 용어로 '답정너'라고 하지? 마치 답을 정해놓고 거기에 내 믿음을 더 믿게 '만들어' 주는 '근거'를 끼워 맞추는 식의. 



그렇다고 그런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 심리나 시대를 비관만 해서는 안 돼. 결국 살아가야 하니까. 

인생이라는 원래가 종잡을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판에서 살아남으려면, 그것도 꽤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답은 없지만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세상의 '상황' 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식견을 계속 쌓아가되, 너 자신. 개인의 삶 자체를 긍정할 것.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어쩔 수 없이 '대중'으로 뭉쳐지기를 바라는 무의식적 성향이 있어서, 혼자라는 객체로서의 '나' 보다는 어떤 집단 혹은 무리나 다수로서의 '나'를 좀 더 편안해할 테지만, 그러니 더더욱 끊임없이 그런 내가 속한 '대중'을 경계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신념에 대한 옭고 그름과 다름들에 대해서 (다르다는 '포장'으로 그른 것이 옳은 것이 되기도 하는 우를 절대 범하지 않기를) 의심하고 경계하면서 주의를 두루 살피기를... 



개인으로서 설 수 있는 이들이, 결국 다수를 움직일 수도 있단다...  이 세계는 그래서 '복잡계' 야...



가끔 나는, 널 출산한 것에 대해서 너무나 미안하게 생각한다. 

태어난 순간부터 '일체개고' 한 삶이 바로 인간의 삶이라... 그래서 '부모' 로서의 내 책무는 다름 아닌 그런 너의 의식이 제대로, 바르게, 괜찮게, 너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인간으로 스스로 살아갈 때까지 지켜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부모라는 인간들의 삶은 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나'라는 1인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찬 데 '가족'이라는 '공동'을 지켜내는 이들은... 할 말을 잠시 잃게 만드는구나. (전제도 물론 있단다. 소위 '이상한 정상 가족' 이 아니라,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진정한 '가족'이라는 전제다) 



너무 앞서 걱정하거나 그렇다고 너무 뾰족한 긴장을 하면서 살 필요는 없어. 

다만 아들... 네가 부디 이 세 가지 개념에 대해서 너만의 좀 더 깊은 공부와 생각을 해 주면 좋겠어. 최소한 '알고 사는' 삶이기를 바란다. 이왕 대중으로 살아가게 될 현실이라면 그 대중으로서의 네 선택이, 좀 더 나은 대중을 위하면서도 나은 '개인' 으로서의 선택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구 말 대로 '절망할 시간에 맛있는 거 먹고 푹 쉬면' 되기도 하고 (훗) 


생각이 많아 보이는 엄마였어도... 사실 이렇기도 해 :) 아들...맛있는 거 잘 먹고 잘 자는 '우리' 였음 좋겠다. 




아참, 아들... 그거 아니. 어제와 오늘, 그리고 아마 내일까지도. 

내가 사로잡힐 인지 부조화와 확증 편향, 그리고 군중 심리에 놓인, 나라는 인간의 믿음과 신념의 기준은

다름 아닌 '너' 였다는 것을. 넌 나의 신(神)이었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나의 신을 향한. 







덧)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나심 탈레브 '안티 프레질' 

로버트 그린 '인간 본성의 법칙' 

웬디 우드 '해빗' 

마이클 모부신 '운과 실력의 성공 방정식'  '통섭과 투자' 


최소한 이런 책들은 살면서 꼭 읽어 보기를..... 

아들, 너와 책 이야기를 나눌 그 날을 난 진심으로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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