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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09. 2020

습관

아들에게

잘 지내고 있니. 채광이 잘 들어오는 거실을 바라보며, 식탁에서 편지를 쓰고 있는 주말, 엄마는 이 순간에 문득 큰 감사함을 느낀다. 이런 시간이야말로 '행복' 같기만 하니 말이다. 물론 행복이란 일시적이고 짧고 또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 또한 알기에 짧지만 강렬한 기쁨을 느끼는 것이겠지... 오늘 네게 말해보고 싶은 것도 어쩌면 앞서 말한 이 문장들과 닿아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일상의 행복과 현실, 그걸 만들어 주는 의외의 것. 바로 습관에 대해서다. 

아마 계속해서 좋은 습관의 여러 종류들에 대해 누차 남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너로 하여금 지겨운 잔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이 '부모'가 '자식' 에게 남기고 싶었던 '사랑'의 또 다른 형태였음을, 깊은 시선으로 이해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겠다. 원래 누군가의 말이나 언어라는 것을 '이해' 한다는 것은 말이지. 열린 마음과 자신의 무지에 대한 자각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통하지 않거든. 그런 의미에서 아들... 나는 너와 통하는 인간으로 남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좋은 습관을 만들어야 해. 

만든 좋은 습관은 되도록 오래 유지하려 노력이라는 걸 하고.  

반대로 나쁜 습관은 반드시 각성해야 한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상태에서, 그 모든 걸 반복하는 거다. 좋은 습관은 오래, 나쁜 습관은 덜어내기를. 



자신만이 할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 바로 혼자 있을 때의 습관이 '자신'을 말한다.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은 그렇다면 뭘까. 

아들, 사실 그 질문은 네 스스로 해내야 한다. 난 네가 아니고 네 삶을 대신 살아주지도 못한다. 또한 내 삶의 방향이나 기준은 네 것과 같을 수가 없다. 다른 종류의 인간이니까. 아무리 부모 자식이라도 말이다. 그러니 네 기준에서 좋고 나쁨을 구별할 줄 알아야겠지. 다만 나는 바랄 뿐이다. 네가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는 진실된 눈을 가진 사람이기를. 



만약 네가 너 자신을 헤치지 않기를 바라는 인간이라면

아울러 보다 현실을 잘 살아낼 힘을 가지면서 동시에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를 바라는 인간이라면, 네 가족과 네 사람들을 지키고 싶은 사랑을 품고 살기를 바라는 건강한 인간이라면. 넌 분명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으리라 믿어... 그리고 그런 너라면 넌 이미 분명 좋은 습관이 좀 더 많은 '지금'을 살지도 모르겠구나.  



흔히 습관이 무섭다고, 또 중요하다고 말들을 하지. 왜 그런 줄 아니?

우리는 모두 '현실'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속 몽상 속에서만 살 수가 없다는 뜻이다. 낭만주의적 감수성과 몽상이 그렇다고 나쁜 건 절대 아니란다. 참고로 엄마는 지극히 낭만주의적인 인간이기도 해. (혼자 있을 때는 언제나 그랬단다..)  다만 엄마는 네게 이 말을 해 주고 싶을 뿐이야. 습관이 필요하고 또 좋은 습관이라는 것들이 네게 체득되는 삶이기를 바라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이 때문이란다. 



인생이란 죽음 이전까지 멈출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생이라는 건 다름 아닌 '꿈'을 꾸는 게 아니라 '현실'을 살아내는 걸 말하지. 흔히 이 나라의 '단계' 적인 '현실'을 잠시 살펴보자면, 아마도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네. 엄마도 통과 그리고 앞으로 통과할 것들이기도 하구나. 학창 시절의 입시, 상위 교육기관으로의 진학, 그 이후의 사회로의 활동, 취업, 승진, 이직, 그러다 누군가를 만나 법적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면 결혼, 그리고 2인 이상의 단체를 이루어 낼 각오가 되어 있다면 출산, 그 이후에 죽음 이전까지 노후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인생은 어쩌면 현실 속에서 영원한 의무들의 연속이면서 무한한 전진밖에 없는 것 같지. 그래서 현대인은 때로 이 무한반복 궤도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채 '의무' 로만 살게 되면 소위 빈 껍데기로 살게 된단다... 그러니 조심해야 하지.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현실 속 나쁜 습관들은 자신을 소멸시켜버리기 쉽다. 



아들.., 아마도 넌 계속해서 '다음'을 요구받는 시대를 살아갈지도 모른다. 

아마 시대가 변해도 크게 바뀌지 않은 것들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어. 현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마 십 대를 거쳐 이십 대 어디쯤까지는 마치 다음 과정 들을 끊임없이 해야 할 미션을 수행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엄마도 한때,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것처럼.  학창 시절을 거쳐 무사히 졸업을 하고, 일정 수준의 학위를 받은 이후, 돈은 버는 시기를 거쳐, 그 돈이라는 걸 벌고 모으고 불리려 하는 과정. 아울러 그 과정 속에서 결혼이라는 걸 했고 너희 둘을 가졌고, 가임기를 거쳐 출산, 양육, 그리고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노후에 대한 준비까지. 그렇게 살아보고 있는 과정 속에도 뭐랄까, '다음 미션' 수행하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지. 마냥 낭만주의적 감수성을 지니며 살기엔 도저히 살아지지 않는 게 다름 아닌 '현실'이었다. 



'현실'을 살아내는 일은 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네 현실을 보다 좋게 만드는 것. 

그게 다름 아닌 현실 속, 습관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 습관이란 누군가에게 보이거나 인정받기 위해 만들어진 아니라 바로 자신, 스스로. 마음이 진정 움직여서 직접 만들어낸 습관이어야 비로소 진정한 힘을 발휘해 낸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 네가 어떤 너의 습관을 정말로 사랑하게 된다면 그건 오래 속에서 가지고 가게 될 거다. 가령 내가 10년 넘게 가계부를 관리하는 여자로 살게 것이라든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식의 습관은, 바로 지금 이 글을 쓰고 앉아있는 '나'를 만든 것처럼... 난 그 습관들을 원했고 언젠가부터 하물며 스스로 즐겼고 좋아했고 사랑하기도 했다. 각해보니 세 가지가 유일하게 10년 이상 습관들이었던 같기도 하구나... 



어쩌면 '어른'의 위치에서 사는 너라면, 이 사회에서 너는 개인으로서'만' 살아낼 수 없을지 몰라. 

'역할' 들이라는 게 주어지지. 네가 이 사회와,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들을 맺어간다면. 그러니 그런 너라면 더욱 이 '현실'  속에서 어떤 의무들이 많아질 거야. 그 의무에 종사하면서 일종의 '책임'이라는 걸 질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게 바로 '어른' 이 되는 과정을 겪어내는 중일 것이고.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기쁘게... 




그런 시절을 통과하면서도.. 나아가야 해. 어쩔 수가 없다. 태어나 주어진 사명 중엔 삶을 살아내는 책임이라는 게 있거든..




그 의무들은 힘들 거야. 쉽지 않거든. 그래서 그래. 그 힘듦을 그럼에도 짊어지고 지탱할 수 있는 힘. 

바로 그 현실을 살아내는 힘은, 네 오랜 습관들이 널 도와줄 거야. 어떤 습관이 우연이든 필수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졌든, 사소한 너의 습관들이 모여서 바로 너를 만든다. 그리고 때로 그 습관들이 네 삶을, 네 현실을 도와주기도 하지. 그리고 대단하고 신기한 바로 습관이 '시간'과 만나서 오래 따라다니고 너도 습관을 아끼다 보면 습관 자체는 어느새 자신이 되어서 결국 '지금' '오늘'의 너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 



어때. 그러니 약간 무섭기도 하지 않니? 오늘의 습관이 바로 자신, 그리고 널 돕기도 헤칠 수도 있다는  점.

그래서 나쁜 습관을 덜어내거나 없애버리는 게, 좋은 습관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보다 때로 더 필요하단다... 나쁜 건 중독성이 강하고 그 중독에서 헤어 나오는 건 정말 어렵거든... 그래서 헤치는 아니라 도울 있는 습관을 꼭 만들어주었으면 해...



네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을 때도, 널 꺼내올 수 있는 소박한 현실 속 의식. 

너만의 좋은 삶의 리추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좋은 습관과 좋은 일상 속 반복되는 의식과 같은 과정들은 말이지. 우리의 현실을 책임지고 살아가는 면에 있어서 일종의 오래 버티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거야. 가령 나로서는 읽거나 쓰는 습관이, 하루에 따뜻한 물을 자주 많이 마시는 습관이, 커피를 못 마시지만 대신 따뜻한 얼그레이를 마시던 오랜 습관이, 좋은 문장의 말을 하려고 노력하던 습관이, 고맙다는 말을 달고 살기 시작한 어떤 습관이, 음악을 듣던 습관이, 식구가 다 함께 집에서 가급적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집밥을 먹는 우리들의 습관이. 



그런 습관들은 현실의 진흙탕에 빠졌을 때, 충동적 방종과 일탈로 도피하려는 나를 지탱해 주기도 했어. 

도피적 쾌락에 빠져 있어도 그런 오랜 습관들은 내게 남아서 아주 천천히... 다시 현실로 돌아가려는 나에게 모든 현명함을 만들어 주는 대단히 현실적 행위라고나 할까. 스스로도 미처 모를 정도로. 정말 오래된 습관들은 무의식적으로 마치 밥을 먹거나 양치를 하듯, 내게 돌아오지. 



인생은 의외로 짧으면서도 길게 느껴지는 '길'을 걷는 것 같으니까. 그 길을 걷는 데 습관이 널 구원해줄지도 몰라. 



좋은 습관은 그래서 더 많을수록 나를 살린다. 나쁜 습관은 그렇기에 덜어내야 한다. 반드시... 

나쁜 습관이 많아질수록 너의 심신은 여러 면에서 피폐해지고 건강하지 못한 너를 만들게 될 거야. 현실을 살아간다는 건 사실 별 게 없는 것 같으면서도 엄청난 용기가 때로 필요하다. 그런데 그 용기마저도 나약하고 나태하고 자기 주도적이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주기도 하지. 나쁜 습관은 정말 무섭단다... 그것이 오래 쌓이면 한순간 너를 파멸시킬 수도 있지. 현실 속에서 나로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엄청난 지혜와 인내, 끈기와 현명함이 총동원돼야 하는 것 같다. 그러니 그 현명한 지혜를 유지하는 데에는 쉽지 않겠지만 네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쁜 습관은 덜어내고 반드시 좋은 습관이 필요한 셈이지. 



아들... 좋은 습관을 지니라는 생각 하나로 이런 장문의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한편으론 네게 별 거 아닌 걸 가지고 잔소리를 늘어놓은 것 같아서 미안하다... 그렇지만 꼭 알아주었으면 해. 오늘, 너의 좋은 습관이, 그리고 남들이 보지 않는 순간에도 네 혼자서 지속하는 바로 그 지금의 습관이, 너 자신이라는 것, 지금의 너를 만들었고 내일의 너를 만들 것이라는 것. 



오늘을 살아가는 너의 습관은 무엇일까... 

부디 좋은 것들이 너를 지켜내 주기를. 

응원할게. 어제의 너보다 오늘의 네가 조금 더 나아지기를. 

문득 나의 습관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쓰는 습관 덕에 이런 편지를 남길 수 있는 지금의 나에게도.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반복되는 것. 우리의 습관이 오늘보다 빛났으면 좋겠다. 






# 너희 둘의 한 때, 먼 어린 시절의 주말 습관은 

이른 기상, 집밥이라는 식탁, 아빠와의 산책, 몇 시간씩 어린 너희들의 손을 잡고 걷던 시간. 

그게 너희 둘을, 아니 우리를, 나를... 한 때 살리던 모든 것들이었다. 



많이 그리울, 지금 너희 둘의 천진난만한 습관들....오래 함께 보고 느끼고 걸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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