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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Feb 04. 2021

긍정

아들에게 

요즘은 행복한 건지 아니면 불안함이 덜한 탓인지. '글'을 서평 이외에는 잘 쓰지 않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부끄럽지만 너희들에게 고백하자면 글을 쓰는 나는 행복한 상태의 내가 아니었거든. 그랬으니 요 몇 달, 너희들에게 '엔딩노트'를 쓰지 않고 줄곧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요리를 하거나 빵을 굽는 내가 더 많았으니, 아마도 나는 제법 안온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렇다고 지금 평온하지 않아서 글을 쓰는 건 아니고. 문득 꼭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이 마음을. 

햇살 비치는 평일 한낮의 이 호사스러움을 아주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네가 이 '마음'을 부디 오래 두고두고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오전에 치즈 식빵과 쿠키를 굽고 나서 나는 이 말이 마음으로부터 흘러넘쳐서 어찌할 줄 몰랐다... 그러니 들어주겠니. 왜 이 말을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도. 



긍정해. 너 자신을. 오늘 너의 그 시간을. 

잘 살고 있다고, 잘 살 수 있다고, 반드시 긍정해야 한다. 

남들이 비웃고, 너 자신조차 진흙탕 속에 빠져있다 생각될지언정.

정신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야 해. '긍정'이라는 무기를 통해. 



어둠과 빛, 침묵과 소란은 같이 공존해야 그 '빛남' 이 더해지듯이. 부정한 시대일수록 '긍정' 하기를...




긍정의 사전적 표현이라 함은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옳다고 인정함' 이라거나 '바람직함' 이라지만 

사실 여기엔 더 많은 숨겨진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말이다. 뭐든 텍스트가 '나' 에게 주는 이해, 느껴지는 감정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잖니. 아무튼 오늘 나는 네가 부디 자신을, 네가 사는 그 시절을, 너의 오늘을 긍정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건 좀 사실 어이없지만, 믿을 수 없겠지만, 아주 역설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간절한 바람이었지. 그래서 오늘은 부디 '긍정하기를'이라는 말을 꼭 남기고 싶었단다. 너는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네가 노동의 주 활동자이자 시민으로 세금의 메인 부역자가 되는 시대는, 좀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을 문득 하자니 아들... 너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필수이자 기본인 무기는 다름 아닌 '긍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물론 생각해보면 힘들지 않았던 시절은 없었겠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동물이 아니고서야 (물론 동물 같은 인간도 더러 있는 세상이지만) 삶은 고통이라는 '일체개고' 함을 기억하며 살면 또 그리 힘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의 호사는 누군가의 고됨으로 인해 만들어진다. 자연의 섭리 같은 이 시대의 원칙 같은 어떤 것.... 



이 시절, 우리의 욕망은 하늘을 뚫을 기세로 열광의 도가니란다... 

2020년에 신생인구는 29만 명에도 못 미친다 하며 이미 출산율은 급감하기 시작했지. 하루가 다르게 집값은 치솟으며 대책은 몇 번이고 갱신에 갱신을 거듭하지만 그럴수록 더 뜨거워지는 현실,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마는 '불로소득' 시장에 너도 나도 뛰어들어야 바보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대중의 열광. 저 사람이 저걸 사기 위해 뛰네? (부동산, 주식) 나도 뛰어야 하나? 다들 뛰어가니 나도 빨리 쫓아가야지, 나만 뒤처지면 안 되니까. 자 달려! (그런데 그들은, 이 시절 우리는 어디를 향해, 무얼 위해 달리는지? 집은 이미 살아가는 공간이 아닌 '사는(buy) ' 것이 되었나...) 



우리가 속한 이 국가도 노인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선명해지더라. 

그래서 그랬어. 이 시절의 뜨거운 무언가가 후세대인 너희들에게, 훗날 세금의 주역이 될 너희 둘에게 얼마나 영향을 줄지, 그 생각을 하니 이상하게 아찔해지더라. 엄마가 사는 현시대는 조급함이 과감함으로, 그것이 설령 가짜임에도 진짜로 포장되기 쉬운 시대가 되고 말았어. 조금 원시적이고 저급하게 다시 표현하자면 우리는 더욱 어리석고 멍청한 의사결정을 하기 '쉬운' 인간이 되었고, 그 인간들이 만드는 시장경제는 하루가 다르게 살얼음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패닉 바잉' 행렬에 뛰어들고, 그걸 언론은 더욱 부추기듯 기사화하는 매일 하루는 뜨겁단다. 

하루가 다르게 정책은 바뀌고, 또 그 하루 사이에 집값은 고공행진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고 말들을 한단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그 '고가'라는 사실 여부에 대한 객관적 팩트가 나열되는 여러 기사들의 기준이 고작 서울 도심지의 '아리팍' 이라든지 '한남 더 힐' 이라든지 잠실 '파크리오' 라든지와 같은 고가 아파트들이 화두가 되고 마니. 우리의 조급함을 부축이는 어떤 '세력' 이 있는 걸까 싶은 '의심'을 나는 결국 할 수밖에 없단다. 시장은 예측 불가한데 말이지. 뭘 믿고 감히 그들은 '예측'이라는 걸 하면서 '전문가'라고 하는 양반들은 '집을 살 땐 오늘이 가장 싸다, 지금은 상승장이다, 대세다, 오를 거다'라고 하는 걸까. (그런 말을 해야, 정작 그들이 먹고살아야 하니 자본주의 생태계가 돌아가는 '꼴'을 알 것도 같지만 말이다) 



미끼를 문 물고기는 덫에 빠지고, 그 덫에 빠진 물고기를 먹고사는 인간. 생태계의 본질은 잔혹하나 단순하다.. 




빚이 많아졌다... 여전히 많아지고 있단다. 이 시절... 

바이러스가 창궐한 시대의 불운 '탓'을 하기엔 뭐랄까 이상하다. 무언가가 아주 오래전부터 조용히 그러나 끊김 없이 꾸준히 조용하고 은밀하게 쌓아 올려서 어떤 트리거를 만나 폭파하기 일보직전이라는 생각을 내내 할 수밖에 없단다. 



소위 '부채의 자산화' 말이지. 

엄마, 우리는 지금 빚이 없잖아요 라고 네가 말할지 모르겠지만 아니. 우리 집엔, 우리 가정엔, 우리의 통장엔 마이너스가 없어도, 누군가의 빚은, 국가의 채무는, 누군가의 빈곤은, 언젠가 다른 그 누군가가 메꿔야 하는 시스템이라면 어떨 것 같니. 시민으로, 노동자로서, 누군가를 다시 부양해야 하는 네가 '메인 가족 구성원' 이 되어서. 떠 앉아야 할 여타 수많은 '세금'을 통해, 과거. 어느 시절, 엄청나게 만들어 낸 누군가들의 빚은, 다른 누군가들이 무겁게 그 짐을 메꿔야 하는 시대가 온다면? 누군가의 호사와 편함은 누군가의 슬픔과 고통으로 이뤄내곤 하잖니. 마치 배달기술이 좋아져서 편리한 세상이 될 수록, 더욱 한 편에서는 누군가는 컨베이어벨트에 목이 끼어 죽어나가는 것처럼.... 



아.... 부디 엄마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거라면 좋겠지만 말이다... 부디 내 생각이 정말 틀렸으면 좋겠다.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걱정 말라고. 그러니 '긍정' 하라고. (그러나 우리가 어제오늘 받았던 '재난지원금'은, 같이 살아야 한다며 국가가 너나없이 쏘아대었던 그 현금 살포의 끝은? 끝은 창대할까? 정말 그럴까?) 



아들. 솔직히 나는 이 시절을 '긍정' 하지 않고 산다... 다만 긍정하는 건 바로 '시간' 이란다. 

매일 같이 새벽에 일어나 출근할 준비를 했던 네 아빠의 끈질기고 눈물 나던 긴 노력을. 그런 그를 위해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만들었던 나의 성실한 새벽을. 미취학 아동이었던 너희가 살갗을 먼저 비비며 우리의 품으로 달려와 '사랑해' 라던 말로 부모였던 우리 두 사람을 웃고 울리게 말았던 우리의 '시간'을.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던, 아주 짧지만 그만큼 강렬하게 주고받았던 너희들과의 시간, 가족으로서 우리들이 행복했던 '시간'을 긍정할 뿐이란다... 



하루가 무사히 흐르면.... 그 시간이 순하게 흘렀다는 사실이 정말 고맙고 행복했어... 언젠가부터 그것만 남는다.. 




살아낸 오늘의 시간을 긍정해야 비로소 내일도 살 수가 있으니까. 

지금 이 순간, 햇살이 비치는 한낮의 오후를, 눈이 내리고 난 이후의 청명한 하늘을, 우리들의 점심과 저녁을 위해 요리할 수 있는 식재료가 있는 현실을, 아침에 일어나 '사랑해 엄마'라고 말해준 너의 목소리를 긍정한다. 그래야 긍정하고 싶지 않은 '대중의 쏠림'에 강하게 반응하지 않을 또 다른 긍정적 '용기'가 샘솟거든. '그 판에 뛰어들지 않을' 용기 말이다. 자산 가격은 무릇 고점에 거래량이 폭발하고 어느 순간 서서히 하락 사이클이 시작되지만. 어느 미국의 현인이라 불리던 이의 '하지 않는 것도 용기'라고 했던 말이 무색한 의미로 퇴색된 채 콧방귀를 뀌는 뜨거운 시대가 되고 말았지만. 아들.. 기억해줄래.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고, 

휘둘리지 않을 용기가 있고

네 정신과 마음을 잘 지킬 수 있고 

나아가려는 내일이 타인들과 달라도 네가 행복하다면 네가 옳다고 

그 옳음이 바람직하다고 믿고, 긍정하기를... 



엄마 시대의 이 지나가는 뜨거움이 만약 한 순간에 너무 빨리 사라져서 (도미노식 디폴트) 

엄청난 냉기로 살얼음이 치는 현실이 너희들에게 다가갈지언정... 나는 최대한 내 선에서 너희들을 지키려 여러모로 준비를 하고 있지만, 개인의 준비는 늘 한계가 있고, 언제나 내가 속한  사회, 시대, 국가, 이웃의 빈 혹은 부와 모두 연결이 되어 있다... '연결' 이 되어 있어. 그게 중요하다. 나만 잘 사는 것이 진짜 잘 사는 게 아니라는 소리란다... 그리하여 아들... 



너와 나, 우리가 오늘도 함께 했던 이 생의 시절을 긍정하면서

어리석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나'를 기억하면서 (인간 본능, 충동, 광기, 탐욕, 욕망) 다만 어떤 진실되고 순정한 긍정이 우리를 살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긍정한다. 그러니 너도 긍정해줄래. 이 글에서 진심으로 누군가가 너를 걱정하며 지켜내고 싶었던, 한 인간의 어떤 뜨거운 진심을 말이다. 



겨울이 와도, 그 겨울은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긍정한다. 

내가 그랬듯, 너도 그러하기를... 



힘든 겨울이 찾아와도. 너라는 타인을 더 사랑했던, 널 위해 죽어도 아쉬울 게 없던 두 사람이 있었다는 걸,기억하며 긍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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