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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Feb 24. 2021

시작. 아줌마 기획자와 지적자본론

다시 책을 펼치며  

어쨌든 기획을 세우려면 자유로워져야 한다. 


- 지적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 - 



다시 일을 하려 했던 건 '번쩍' 했던 내 안의 감각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입사 전, 처음 대표가 제시한 '비전' 은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 로 들렸으니. 원래 관심 있고 창업을 하려고 생각하던 분야의 '실험' 과 '도전'을 '월급' 을 받으며 경험해볼 수 있다는 속물적인 생각에 나도 모르게 '번쩍' 했던 것. 그렇다. 그 '번쩍' 하는 마음의 흔들림은 자연스럽게 why not! 을 외치게 했다....(경솔했나) 



"판교에 있는 스타트업에서 근무해요." 

지역의 네이밍과 '스타트업' 이라는 두 단어로 '포장' 된 저 문장은 내게 어떻게 다가왔던가. 사실은 가지고 싶은 문장이었다. 부끄러운 소유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문장이 뿜어내는 젊은 간지와 묘하게 있어빌리티를 자극하게 만드는 트렌디함. 과시욕을 뿜어내기 아주 적합한 저 문장을 '공식적'으로 발화할 수 있다는 것에 사실은 스스로 속은 게 아닐까....... 싶은. 그런 묘하게 겸연쩍은 생각을 하면서도 사실은 단순했다.  '에이 모르겠고 일단 go' 의 무뇌적 마인드. 



이런 느낌이 연상되시겠지만 막상 '일' 이란 절대 그런 것도 아닙니다만 '느낌' 은 어쩄든 그렇습니다; ㅎ



무식하게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애 키우며 일해야 하는 워킹맘' 에게는 가까워서 좋은 회사. 

정말이지 어린이집에서 출퇴근 15분 내의 교통편도 착한 초직주지. 엎어지면 코는 닿지 못하지만 그 거리는 나로서는 심적 평화(?) 를 앉겨 주었고 무엇보다 출퇴근 시간의 혜자스러움을 슬쩍 제안했을 때 적극 수락해주신 고마운 조직 문화. 그 두 가지 포인트가 입사를 결정지은 가장 큰 이유였다. 사실 머릿속에 '기획' 이라는 단어는 그때까지도 없었다. 입사 4일차,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기획' 으로 '브랜딩' 으로 '디자인' 으로 '컨셉' 으로 '소비자' 로 '트렌드' 로 '버닝' 하게 만드는 것인줄은...그때까지만해도. 



근무 1일차, 점심으로 갈비를 굽고 바로 퇴근을 했다. 

신입 경력입사자에 대한 나름의 단편적 웰커밍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날이갈수록 지속적 '점입가경' 이라 신선한 충격에 잠시 동공지진이 되고 말았다. 2일차엔 캔맥주가 놓여진 테이블, 3일차엔 외근으로 대표의 지인과 함께 기획을 도맡아 할 동료 K와 인스타 핫플레이스 같아 보였던 신도시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다녀오기까지. 



말하기도 뭐한 아주 작은 소규모 조직의 문화는 아무튼 뭐라도 잘 '챙겨주려는' 귀여운 느낌이었다. 

그래서 고맙고 좋았지만 한편 나는 '일'의 '실체' 가 궁금했다. 그들이 여태껏 어떤 '일' 을 '얼마나' 해 오셨는지를. 그리고 그 '실체' 를 보고 나서 사실 엄청난 Hole 을 발견했다...'왜 하려는가' 에 대한 그 본질적 '아이덴티티' 가 없이 '상세 아이디어' 만 즐비하게 늘어져있는 상황. 마치 던전 속에서 아이템을 발견하고 다시 그 아이템으로 미로만 잔뜩 만들어 exit door 를 찾지 못하고 마는 도돌이표 상황...느낌? 내가 간택된(?) 이유를 생각했고 그제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남 일 내 일 은근 경계를 넘나드는 오지라퍼에 뭐든 정리 강박증에 신묘하고 기괴한 아이디어를 툭툭 아무한테나 잘 말하고 한번 하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 필요했던 것...(이었나; 싶고) 



이래나 저래나 아무튼 시작


입사 3일차. 나는 진하게 느꼈다. 이 프로젝트는 '모두가 디자이너가 되야 하는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프로젝트 성격상 내 눈엔 '뻔' 한 biz model 과 기타 등등등이 예상되었다. 그 '기타 등등등' 을 '일' 로 가져 와서 어떻게 '브랜딩' 해서 '유저 자극' 시켜 '모객' 을 유도하고 지속적으로 기획 컨텐츠를 '발행' 하면서 계속적으로 '팬' 을 만들어 나가면서 '운' 이 닿으면 그게 '빵' 하고 터져서 유/무형의 브랜드 '자산' 까지 연결되는지. 사실 그 '업' 을 시도해 보고 싶었던 거라고. (스스로 자체 정리) 



이미 고정비가 투자되어 돈이 '태워지기' 시작한 상태.

내가 고민할 부분이 아니지만 정말이지 무적의 슈퍼 오지랖인지 아니면 창업마인드가 여전히 뜨거워서인지 내 사업같은 느낌(?) 이라 나는 입사 4일차에 '오지랖' 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동료 K 신입 매니저 2명. 오전 내내  '뚝딱' 하고 만들어 낸 기획 장표와 파일을 오후에 그들에게 보여주며 정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혼자 2시간을 떠들었더니 그제서야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이렇게까지 '일' 에 몰입할 수 있는 건 내가 그 일을 좋아하고 있다는 반증인걸까. 이전 직장에서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진해서. (대신 사이드프로젝트를 '이렇게' 했었지...) 



- 동종 업계 비즈 분석

- 해당 프로젝트의 정량적/정성적 목표 

- Project 일정 관리 및 전체 현황 관리표 (PMP) 

- 해야 하는 일 정리 (업무 Task 카테고리화) 

- 회의체 셋업

- 기타 등등등 (원래 이게 중요하다. 실무는 모두 '기타 등등등' .....) 



자료를 만들며 생각은 자유롭게 부유했고 나는 '일' 을 했다. 사실 입사 첫날부터. '지적자본론' 을 품고서.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스스로 고민하며 브랜드를 만들고, 그 정체성을 고민하고 기획하고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기획' 의 시작을. 사실상 말이 기획자지 그냥 기획 '뿐 아니라' 전략/마케팅/디자인/세일즈까지 일단 모두 '일당백' 이 되어야 겨우 '결과' 를 만들 수 있는 '그 일'......의 시작.... 



밤이 되면 파김치나..... 도통 눈을 감고 싶지 않은 요 며칠.... 미쳤나 싶었다. 



퇴근 후, 나는 '아줌마' 로 2차 근무 (육아) 를 하면서도 자꾸만 '기획자' 모드로 돌아가서 당혹스러웠다. 

그것도 초단기간의 '변화' 라니. 그야말로 정신과 몸이 파김치가 된 '오랜만'에 느끼는 이 환경 설정 속에서 당분간 워커홀릭이 될 느낌이라 스스로도 놀랍고 또 두렵기까지 하다. slow 할 것을 의식적으로 다짐하면서도 식탁 위에 책을 바라본다. 지적자본론을 보자 묘한 안도와 위로가 되었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행위는 당연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자유가 냉엄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런 의미에서다. 


하지만 자신의 꿈에 다가가려면 자유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아니, 반드시 자유로워져야 한다.

나는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어쨌든 기획을 세우려면 자유로워져야 한다. 


- 지적자본론 中 - 




최소한 '자유롭게 네 식대로 만들어봐' 라고 지적자본론은 말해주는 것 같았다..... 



#버닝시작  #즐거운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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