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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16. 2021

바다사진을 찾는 이유

낮에 꾸는 꿈이란 별건가. 

예기치 않은 일에 대한 기대가 즉 꿈일 수 있겠는데 

나는 그걸 기피하고 다만 시계처럼 하루를 보내기에 급급하다.


- 꿈,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中, 박완서 - 






설거지를 하며 창문 밖을 바라보니 이웃집 마당의 나뭇가지가 흔들거리는 게 보였다. 

바람이 분다는 증거였다. 바깥은 추울 터, 오늘도 외출은 없겠구나 싶었는데. 그이가 모처럼 쌍둥이 합체인 날을 기념하듯 (최근 2주까지, 여러모로 '분리'를 위해 쌍둥이 중 둘째는 외갓집에 가 있었다. 고로 3인 가족 체제였다는) 시댁에 아이들만 데리고 놀러 간다 했다. 처음엔 만류를, 그러나 반 거짓이었던 그 만류의 끝에서 나는 결국 마음에 지고 말았다. 은근한 반가움, 그로 인해 일사천리로 동시에 각종 옷과 장난감, 필요품들이 들어간 짐 가방을 준비해서 들려 보냈다. 세 사람이 탄 차가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들을 배웅하며 이 말을 마음 깊숙이 한 채로.



혼자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여전히 미안하다고. 

아이들의 부재가 인위적으로 생긴 순간엔 기쁘면서도 동시에 죄스러움을 떨치지 못하고 만다. 그들을 살피고 아끼며 살리는 책무와 동시에 마음 깊이 사랑하는 감정으로 인해 생기는, 가족을 향한 역설적으로 생기고 마는 어떤 감정선 이리라. 분리되기를 갈망하는 어떤 속내는.  '가족' 이라든지 '자식' 이란, 이제 이 생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존재가 된 것 같으면서도 '19호실로 가다'의 '수전'의 마음을 나는 이해할 것도 같았기 때문에. 비록 소설 속 인물이지만 그 화자가 겪은 감정선을 너무나도 공감하고 말았기에. 



쌍둥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수전이 향했던 그 19호실에서 가만히 있던 그녀의 마음을...알 것 같았다. 



꿈같다고 느껴지는 혼자의 오후. 

꿈은 아니고 현실인 그 오후에 블루투스를 켜고 음악을 틀었다. 책을 읽으며 오전에 구워냈었던 브라우니 한 조각을 입에 물었다. 맛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다 노트북을 열었다. 새로 산 식탁의 넓은 좌방석은 엉덩이로 하여금 안락한 착석감을 선물하더니, 그렇게 몇 시간을 앉아 있었다는 걸 어느새 어두컴컴해진 오후 7시가 돼서야 겨우 알 수 있었다. 서평 2개를 쓰고, 기타 원고 과제들을 몇 개 수행한 이후, 이력서를 제출하고 나니 어느새 밤. 해가 저물었고 겨울밤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꿈같은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고 시계는 말하는 것 같았다. 예기치 않은 고마운 꿈, 현실로 된 그 꿈의 시간이 잘 흘러가고 있다고. 남은 시간은 좀 늘어져도 좋다고.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챙기지 않아도 좋으니, 챙길 건 바로 당신, 나 자신. 자식이 아닌 자신뿐이라고... 




계획한 시간을 예기치 않은 일에 빼앗길까 봐 인색하게 굴다 보니 거의 시계처럼 살려니 꿈이 용납되지 않는다. 낮에 꾸는 꿈이란 별건가. 예기치 않은 일에 대한 기대가 즉 꿈일 수 있겠는데 나는 그걸 기피하고 다만 시계처럼 하루를 보내기에 급급하다. 시계처럼 산다면 제법 정확하고 신용 있는 사람 티가 나지만 시계가 별건가. 시계도 결국은 기계의 일종이거늘.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지 사람이 기계처럼 살아서 어쩌겠다는 걸까.


- 꿈,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中, 박완서  - 




아이라는 존재는 어느새 생활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개인의 중심, 그리고 공동체의 중심. 어디에서든. 

일자리를 찾는 데 있어서도, 자산을 증식시키려는 목적의 중심에 있어서도. 집에서 행복을 만드는 과정들의 한가운데에도. 그들이 존재한다. 물론 나쁘진 않다. 그들로 인해 오히려 배우는 게 더 많다고도 생각한다. '부모' 로서, '부부' 로서도. 그러나 한편 어떤 생각을 하고도 만다. 그들이, 특히 자식들이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어떤 생의 기쁨과 의미, 가치를 상대적으로 부여하지만, 한 인간, 그 개인으로서의 삶에서 원천적 존재의 요소가 될 수는 없다는 것 또한... 



순리대로 흐르는 바다와 같기를, 아이들과의 시간 속에서 언제나 바란다. 순순하게 흐르기를...




노트북을 닫기 전 나는 매번 바다 사진을 바라본다. 

'엄마'로 살기 시작하면서, 힘들었던 순간마다 이상하지만 바다 사진을 찾는 버릇이 생겼다. 습관이 되고 만 건지,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고만 싶어 지는 순간이 있다. 바다를 보러 간 적이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아득히 먼 옛날 마지막으로 본 그 바다를 떠올리면서. 사진으로나마 바다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어딘지 모르게 큰 위로를 받는 기분을 느낀다. 심연 깊숙하게는 요동치는 물결과 파도를 품고 있음에도, 수면 위에 잔잔하게 펼쳐지는 그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힘들었던 마음이나 고단한 기억, 불안과 외로움은 잠시나마 잊힌다. 

그것이 바다 사진을 찾는 이유라면 이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바다를 보고 있자니 무언가 나를 일으켜주는 것 같은, '일어나'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혹은 '괜찮다'라고 다독여주는 것 같아서. 바다의 묵묵한 존재는 누군가에게 큰 격려와 사랑으로 회자되기도 한다는 걸, 바다는 모르더라도 나는 알 것 같았다. 



그 시간대의 그 바다를, 떠올리곤 한다. 얼마나 멋졌으면 몇 년이 지나도 이렇게 선명하게 남을까.... 



언젠가 할머니가 되어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혼자 있을 땐, 바다 사진을 많이 보면서, 그렇게 나를 일으켜내며 너희들을 지키고도 싶었다고. 속에 뛰어들지 않고, 찾아가지도 않고, 찾아갈 수도 없는 그리움만 품었던 그 바다를 떠올리면서. 



너희들과의 시간을, 그렇게 바다사진을 보면서 견뎠노라고. 

우리가 함께 갈 수 있을 '그 날'을 상상하면서... 



우리가 자유롭게 함께 할 날이, 있기를. 분명. 꼭. 반드시... 너희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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