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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pr 27. 2021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를 기르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려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 19호실로 가다 - 

 



'너희들끼리 잘 살아. 정말 그만하고 싶다...'라고. 

기어코 폭언을 뱉고 말았다. 그러하다. 분명 그것은 폭언임에 틀림없다. 상대적으로 연약하고 취약한 아이들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임에 분명했을 테지만. 밀려오려는 감정을 차단함에 실패하고 말았다. 시종일관 다시금 반복되는 아이들과의 사투 앞에서. 지쳐만가는 체력적 한계와 정신적 환멸이 서로 정신없이 교차하는 순간, 그 찰나의 감정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이내 음성은 소리 높여 일그러지고 말았다. 마음에도 없는 - 정말 마음에 없다고도 말할 수는 없을 - 문장들을 이내 내뱉고 난 이후엔 이상하게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호흡을 가다듬어보지만 회복은 쉽지가 않다.




인내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어린 아이이지만 한편 절대 어리지 않은 듯 느껴지고 마는 쌍둥이 형제의 우렁찬 에너지는 해가 갈수록 성장하는 중이다. 한쪽의 건강한 성장이 강해질수록 한쪽의 심신은 조금씩 감내하기 벅차오름을 여실히 느끼고 만다. 힘들다...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시련이겠다. 아이를 낳고 1년간은 거의 2시간을 연속적으로 잘 수 없었던 수면 고문에서 겨우 탈출해서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탈출했다는 인식적 오류...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의 착각... 



출산 이후의 시간들 덕분에 - '때문에'라는 부사는 어딘지 모르게 죄스러워서 자꾸만 교묘히 피하게 된다 - 평생 상상하지도 못했던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우고 또 체득하게 되었지만. 좋은 것이 있다면 반대로 해로운 것도 분명 생긴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다. 가령 스트레스성 섭식장애라든지 경미한 조울증 증상이라든지 가뜩이나 울보가 더 많이 울어버린다든지 기타 등등의 것들... 



한 세계를 차단한 채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기분을 종종 느낀다. 다른 세계...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지만 반대로 되고 싶었다는 말 또한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다만 그와 결혼을 하면 틀림없이 어떤 예고장이 날아오리라는 그런 막연한 생각이 있었을 뿐. 열심히 살아온 미혼시절의 삶이 온통 부정당하는 것 같은 처절한 고통을 그는 여전히 잘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안다. 신생아 시절 24시간을 매일같이 인내하며 살리고 키워냈던 건 사실 당신은 아니었으니까. 여자 둘이서 해낸 것들이었으니까. 




우리가 생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생이 우리를 형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기치 않았던, 때로는 소망치 않는 방향과 형식 속에 생이 형성해 놓는다. 

작은 우연이 일생을 결정하기도 한다.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혜린, p. 31



악마가 춤을 추듯 아이들에게 완벽히 맞춰져 복종하고 마는 일상 속에서는 이런 말을 읊조리곤 한다.

소망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선을 다해서 이런 형태의 삶을 원했던 건 아니었다고. 반대로 간절히 원했던 건 당신이었는데 왜 내가 지금 간절히 '집'이라는 공간에서 시종일관 그들에게 매달려 살아야 하는가를... 어리석은 인간은 그런 무쓸모 하고 너저분한 생각을 여전히 달고 산다. 멍청이가 따로 없다. 



가족이 두 얼굴을 지닌 존재들이라면.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특히 아이들은 이제 내 삶의 방향성에 확실한 지표가 된 존재이자 사랑의 종착지임이 분명할 텐데. 또 한편으로는 가능하다면... 정말이지 그것이 가능하다면 되도록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그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어 짐을 느끼는 건 도대체 왜일까.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이 머저리 같은 감정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만의 '19호실'을 찾으려 같아서 두려운 날에는 글을 쓴다. 

'틈'을 찾기 위해 나만의 공간으로 숨어 버린다. 그리곤 문득 누군가를 진심으로 부러워했었다. 지금의 나 보다 자유로워'보이는' 모습이 떠올라서. 무책임하게 '부럽습니다'라는 말을 해 버리고 난 이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떠올려선 안 된다는 걸 감지했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거실을 바라봤다. 치워야 할 시간이다. 다시. 매일. 또다시... 



석양은 옳다. 시간은 지나가니까. 이 시절의 유일한 구원자. 멈추지 않는 시간.... 그리고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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