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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30. 2021

한계적 자유

불확실함과 불안이라는 장벽을 극복하게 해 줄 유일한 힘은 열정이다.

열정은 아픔이라는 친구를 이끌고 나타난다.


- 사랑은 왜 아픈가 -




오전 9시여도 정오 같은 한낮이라 느껴지는 계절이 다가올수록 본능적으로 긴장을 하고 만다. 더워지는 시기의 돌봄은 다른 계절에 비해 더욱 만만치 않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아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 끼의 끼니와 두 번의 간식. 가족의 영양과 댁 내 청결을 유지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란 의외로 어렵다는 걸 매번 느끼며, 이상하게도 해가 지나가도 도무지 나아지는 법이 없다 생각된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고 마는 것들이 있는 것이다.



설거지를 하다가 주방 쪽에 열어둔 작은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밤공기의 미풍을 그런 식으로 맞이하면서. 청소를 하다가 아이들의 장난감 검에 발이 찔려도 무덤덤하게 청소를 마쳐야 하는 상황이. 칼질을 하다가 베어 버린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그대로 입술로 빨아먹으며, 딴생각하면서 요리를 했다는 게 들통이 난 것 같아서. 두 아이의 샤워를 시키고 나서 녹초가 된 몸이 되어 욕조 안의 물에 맨 몸이 담가지는 순간... 괜찮다가도 괜찮지 않은 감정이 밀려오고 있다는 증거처럼 괜히 축축하게 젖어드는 눈가에 맺힌 물. 그런 것들.



그래서 바다사진이 좋은 것이다. 다 밀려가는 기분이라. 감정들이 전부. 파도에 휩쓸려- 전부.



행복하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려는 어떤 애씀은 도무지 한 사람만큼은 속이지 못하고 만다. 단 한 사람만큼은 여전히 속이지를 못해서 우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오늘은 뭘 먹고 뭘 하며 지낼지를 고민하는 한 인간의 의식체계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워터파크를 예약하고 괜히 들떠보기도 하며 아이들과 그이의 다음 주 병원 일정을 한번 더 확인하며 달력에 표시하는 인간의 행복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지를 궁금해하면서...  



이른 아침의 공원은 한적했다. 구름 조차 없이 깨끗한 파란 물감이 칠해진 것 같은 하늘이 보였다. 킥보드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들과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묘한 뿌듯함과 행복감을 느꼈다. 언제나 그렇듯 기쁨은 찰나의 형태로 지나간다. 요즘은 음악에 부쩍 의지를 하고 있는 탓에 가족들과 산책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한쪽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이 꽂아져 있다는 걸, 플레이리스트의 음악이 들려서 그제야 알아챌 수 있었다. 한심하다 생각하면서 빼다가도 아쉬웠던 건 왜였을까.



공원의 하늘



평화로운 한 낯 몇 시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김밥을 만들어 가볍게 점심을 하고 아이들이 서로 투닥거리면서도 큰 싸움 없이 서로 잘 노는 틈을 타서 책을 읽으려 식탁에 앉았을 때. 그이가 매실주 한 잔을 건넸다. 문득 '왜'라는 부사가 머릿속에 붙어버리고 말았지만 아무 말 없이 술잔을 받았다. 그도 힘이 들었던 걸까. 아이를 돌볼 때는 철저히 술을 차단하는 게 버릇이 된 우리 부부였지만 오늘은 둘 다 그러고 싶지가 않았던 걸지 모른다. 우리는 그래도 괜찮다는 암묵적 합의가 이뤄진 채 마신 매실주 한 잔은 매우 독했지만 그래서 좋았다. 취기에 오후를 나름 잘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언제나 얕게 깔려 있는 우울감도 금세 없어질 것만 같아서.



아이를 돌보는 가정집의 견고함이나 윤택함, 가족 관계 안에서 흐르는 평온하게 느껴지는 안락함은 반대로 그 대가를 철저히 치루어야 한다. 완벽하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 언젠가부터 등가교환의 법칙을 잊지 않는 이유다. 얻기 위해서는 그와 동등한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 나를 미룰 수 있어야 하고 내면을 통제해야 하며 욕망을 적시에 억제할 수 있어야 하며 '어른' 다움으로 무장한 채 흐트러짐 없이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는 것... 흐트러지면 곤란하다는 것. 그들의 안전과 그들의 영양과 그들의 미소와 그들의 기쁨을 위해. 불안함과 갑갑함, 숨 막힘과 부자유스러움을 내놓아야 한다. 그들의 자유를 위해서. 누군가의 자유를 기꺼이 내어 놓는 것처럼. 사랑이라는 형태의 이름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은 이런 것인지. 가끔 의심하고말지만.



우리는 러브스토리를 갈망하며 이 특별한 감정의 내용이 강하고도 지속적으로 표현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판타지는 근대의 사랑과 결혼을 떠받드는 초석이다. 판타지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만들고 재생산하는 실천과 감정이라는 천을 직조한다. 사랑이 식어가다 끝나는 것은 이런 감정의 직조가 더는 일어나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 당사자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일상생활의 되풀이가 더 이상 오버랩될 수 없음을 인지한다.


- 에바 일루즈, 사랑은 왜 끝나나, p 320 -



블라인드가 쳐 진 거실 바깥으로 석양이 보이면 그제서야 마음을 놓는다. 그제서야...



평범한 주말을 지내면서도. 늘 비슷한 패턴으로 평온히 흐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어떤 답답함을 느끼고 말 때면 내내 밤 시간을 기다린다. 바다 사진을 볼 수 있는 시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는 시간. 연속된 시간으로 몰입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 틈새가 아닌 온전한 시간...키보드를 혼자서 지그시 누르면서 가라앉았던 마음을 일으켜내는 시간... 하루에 단 몇 시간. 단 몇 분. 한계적 자유에서 탈출하는 시간. 완전한 자유를 갈망하는 시간... 기어코 마음 깊이 바라는 어떤 장면들로 한가득한 판타지가 펼쳐지고마는, 이룰 수 없는 상상의 시간...



열정이 아픔을 동반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다 맞이하게 되는 아픔엔, 어떤 약을 주어야 하는 걸까. 하루를 잘 보냈어도 자꾸만 느껴지는 어떤 헛수고같은 갑갑함을 어떻게 건강하게 이겨낼 수 있을까. 이런 한심한 생각은 언제쯤 그만둘 수 있을까. 책을 그렇게 읽는데도 왜 슬픔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 것일까. 사랑하려 애쓰는 데도 사랑을 잘 하지 못하고마는 인간의 최후는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종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생각 끝에서, 오후의 매실주가 생각이 났다. 냉장고에서 꺼내 입에 대어 버린 매실주는 차고 시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로워지는 것 같았다. 이것도 해방이라면, 술에 기댄 한심한 한계적 해방이지 싶었다. 한계적 자유를 동반하는. 그래도 고마워해야 마땅한.



씻겨 내리는 정화. 해방. 비를 좋아하는 몇 가지 이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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