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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01. 2021

이제부터 시작이야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 남아있는 나날 - 



날씨가 맑은 평일 오전 8시는 아이들의 발동을 걸기 좋은 시간대다. 킥보드를 타고 산책을 하듯 집에서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시간은 단 몇십 분에 불과하지만, 그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나아갈수록 새삼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일상은 그렇게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네 인생은 순순하게 흐르고 있다고도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은 것이다. 나와 너, 우리들의 신체가 건강하기에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함께 뛰거나 걸으며 대화하는 시간의 기억이 많아질수록, 아이들은 성장을 하고 나는 그들의 한 시절을 함께 누리며, 울고 웃고 슬프고 기쁜 시간들을 공존한다는 것. 그렇게 현존하는 이 순간을 사랑하려 한다는 것이라고. 아직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라고도. 



조금 쌀쌀한 듯했지만 그래서 더 상쾌하고 경쾌한 아침의 공기가 느껴졌다. 아이들은 웬일로 기분이 좋았는지 부쩍 대화를 걸어왔다. 언제나 그러하듯 아이들과의 대화는 즐겁고도 난해하며 경이롭고도 뭉클한 문장을 자주 발견하곤 한다. 그들의 맑은 목소리에서 나오는, 어른인 나로서는 절대 하기 쉽지 않은 평범한 듯 특별하게 느껴지고 마는 문장들을 자꾸 반복해서 따라 말하고 그렇게 마음에서 외우게 된다. 잊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그대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순정하고 투명한 그들의 문장을 닮고 싶지만 그러기엔 이미 몸도 마음도 적당한 때가 묻어 버린 어른으로서의 나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쌍둥이들의 문장은 나를 울고 웃게 만든다. 그들이 자라는것처럼만 나도 따라갈 수 있다면...



아이가 신나게 킥보드를 타고 있을 때였다.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다가는 자칫 넘어질 것 같은 아슬한 속도감이 뒤에서 느껴졌기에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나로서는 계속 그들을 따라가야 했다. 덕분에 힘차게 달리고 있었고 그런 내 모습이 스스로 꽤 괜찮게 느껴졌다. 잘 달리는 엄마의 목소리의 발성과 데시벨은 이미 높은 대역대에 자리하여 '조심히 천천히'라고 말을 건네고 있었다. 물론 듣는지 마는지 절대 조심하지도 천천하지도 않은 아이들이었지만. 



기어코 둘째 아이는 가다가 넘어졌다. 크게 넘어진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넘어진 당사자보다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며 냉큼 달려가는 동안 내 심장이 더 바쁘게 뛰어야 했다. 그때 아이가 말했다. 이 문장이 어찌나 오래 남겨지면 이렇게 글로 그 순간의 기억을 남기고 싶을 정도인 걸까... 



- 괜찮아 엄마. 나 이제부터 시작이야.



아이의 문장은 자주 나를 놀라게 만든다. 속상할 때든 기쁠 때든. 슬플 때든 화가 날 때든. 이상하게 아이들과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 혹은 어떤 대상의 표현이나 상황 묘사는 어른인 내가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세계의 영역에서 그들의 '외계어'를 꺼내 오는 것만 같다. 새삼스럽지만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말들 중 가장 투명하고 순수하고 본질적인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아이의 문장과 맞닿으면 나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보석보다 더 빛나는 것. 강이나 바다위의 윤슬보다 사실 더 그리울 것들은 우리들의 한 시절, 그 시간의 목소리일지 모른다. 



아이들은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자란다는 것. 성장하고 있다는 것. 신체와 생각, 마음과 의식, 그 모든 면에서. 그것은 정말이지 다행이면서도 감사해야 마땅한 자명한 사실이다. 물론 반면에 자주 밀려오는 한 사람의 슬픔과 눈물, 때때로 찾아오는 환멸과 무력함을 먹고 자라는 게 아닌가 싶은 안타까운 생각은 여전히 떨치지 못하고 말지만. 어쨌든 아이들은 씩씩하게 부쩍 자라고 있다는 것을 오늘 아침 길 위에서도 발견하고 문득 새삼 상기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고 만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는 것. 인생의 어떤 강인하고 견고한 법칙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은 어른인 나보다 훨씬 강하고 씩씩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만 같다. 재빨리 일어나 킥보드와 자신의 몸을 일으켜 다시 앞으로 씽씽 나아가는 둘째 아이의 명쾌하고 우렁찬 목소리. 그 아이는 가다가 잠시 멈춰 서듯 속도를 줄이며 다시 말을 걸었다. 



- 빨리 와 엄마. 여기서 기다릴게. 



아이의 성장을 기다리는 것에 무척이나 취약해서 자주 슬픔에 빠지고 마는 나는 오늘 아이의 이 문장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넘어지더라도 매번 다시 일어나면서 또 다른 시작을 하려는 나아가는 마음을. 앞으로 달려 나가려 하다가도 누군가를 기다릴 줄 아는 그 사랑스러운 태도를. 나는 아이를 기다리지 못하지만 아이는 나를 기다려주는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화끈거리고 미안한 나머지 괜히 또 눈가에 물이 맺히려 했다. 내내 저녁만 기다리는 울보 엄마라 미안한 이 시절이지만 한편 정말 오래 기억하고 싶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우리들의 투명한 시절도 다름 아닌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안다. 



뜨고 지는 시간들. 그 모든 지금을 잘...지내야 한다. 후회를 덜 하도록. 



아이의 문장은 마음의 오물을 씻겨 내리듯, 잃어버리려 하는 용기를 선물해주는 것만 같았다. 지난 아픔도, 심난함도, 서글픔도, 슬픔도 그 모든 것들에 주저앉아 휘청거리고 그렇게 삶을 흐트러지게 만들더라도. '이제부터 시작이야'라고 씩씩하게 확언한 그 순간부터, 보이지는 않지만 삶은 그렇게 앞으로 조용히 나아가게도 된다는 것을.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라 했던 저녁... 석양을 기다리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우리가 주고받았던 한낮의 사랑도, 저녁의 눈물도, 그 모든 순간을 함께 지냈던 '우리'를 오래 기억하고 싶었던 나를, 먼 미래에 다시 들여다볼 것만 같았다. 과거는 힘이 없다지만, 절절하게 그리운 과거엔 분명 어떤 힘이 있을 테니까. 과거의 그리움을 붙잡고 내일이라는 기다림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그리움은 기다림이 되고 마니, 과거는 힘이 있어.. 우리가 함께 지낸 저녁이 쌓아질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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