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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03. 2021

견디게 하는 것들

기억은 기억하는 사람의 요구에 따라 정리되고 걸러진다. 


- 줄리언 반스, 연애의 기억 - 





오전 10시. 그러니까 그 시간은 '내 시간' 이어야 했다...

지난달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혀 생소한 분야의 공부를 하는 중이다. 매일 오전 9시 반부터 4시간 동안 꼬박 4교시로 이루어진 그 교육과정은 다행히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중이다. 그랬기에 선뜻 도전하려 했던 걸지도 모른다. 자녀의 돌발적 건강상태나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 실시간으로 대응해야 하는 주양육자로서의 책무를 무시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면서도 놓치고 싶지 않은 어떤 끈 하나를 간신히 붙잡고 살듯 지키려 하는 인간의 마음이란. 우선순위는 어디에 있을까. 이미 정해져 있는 우선순위를 두고서도 가끔 되묻는다. 스스로에게. '나' 에게. 



어쩌면 결혼한 이후부터 인생의 무게중심은 달라지기 시작했던 걸지 모른다. '나' 에게서 '우리'로. 

가임기를 거쳐 출산에 이른 이후는 더 무얼 말할 수 있을까. 제1 역할은 '엄마'로 규정되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인생의 객체가 되어 감을 느낀다. 맞다. 그것이 사회적으로는 옳은 방향이라는 것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그 인정이라는 것이 과연 '자연' 스러운 걸까. 정말 '자연' 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나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될수록 고통스러워지는 건 자신일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쨰서 나는 그런 질문을 여전히 달고 살까 싶다. 오늘만 해도 그랬으니까.



기관은 제 역할에 충실하다. 아이의 수상한 신변 상태는 바로 보고된다. 컨트롤타워인 메인 양육자에게.

수업을 듣고 있던 중 전화를 받았다. 약간 배가 아파서 놀이를 하지 못하고 둘째가 누워 있다 했다. 가정보육을 권고받는 상황은 마치 답이 한 개 뿐인 객관식 질문을 받는 기분이다. 심장은 어느새 쿵쿵 뛰기 시작한다. 입술도 어느새 깨물어지곤 한다. 문득 회사를 다니고 있던 때가 떠올랐다. 기관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혼자서 전전긍긍 안절부절못하지 못한 채 친정어머니께 도움을 청하거나 휴가를 내기 일쑤였던 그때만큼의 심박수는 아니니 괜찮다고... 나는 '전업주부'가 된 나를 위로해본다. 위로 같지 않은 위로이지만. 



비가 언제부터 위로가 되어 버렸다. 씻겨내려가는 모양새라- 



집에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정말 다행인가, 정녕 그렇다고 할 수 있는가)  아이가 아프면 냉큼 달려갈 수 있는 이 환경설정이 얼마나 복된 것이냐고 (냉큼 달려가도록 프로그램화되어버린 그 '모성' 이 악질적으로 개인이라는 인간의 인생에서 남용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가. 정말 복된 것이라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가)  공부야 까짓꺼 언제든지 해도 그만이라고. 이 시절은 아이가 우선인 게 맞는 것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선순위를 결정한 건 과연 내가 맞는가. 자신이 맞는가.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1교시가 지나 쉬는 시간에 교육 담당자에게 결석할 것을 알렸다. 그대로 노트북을 닫고 아이에게 가는 길. 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다. 우산 없이 바로 나왔으나 사실 비를 좋아하는 인간이라 약간 맞는 비는 전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대로 좀 더 많이 내려줬음 싶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 마음의 사실은 뒤틀린다. 개인적 욕망은 사회적 바람으로 차단되어 버린다. 결국 바랐다. 비가 많이 오지 않게 해 달라고. 비를 좋아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고 비가 내리면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 힘드니 그래선 안 된다고. 그러지 말아 달라고...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문장이 떠올랐다. 줄리언 반스의 연애의 기억에서 이 문장만큼은 통으로 외워버리고 말았던 문장이었다. 육아가 힘들 때마다, 원치 않게 예상치 못하는 돌발상황들에 자주 봉착할 때마다 주문처럼 외웠던 문장이었다...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더 하든 덜 하든 사랑은 인간의 장막을 걷어내는 일..같기만 하다. 그로 인해 새로운 '나' 를 발견하게 되니까. 




에바 일루즈가 알려 주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자주권을 잃는다'는 것이라고. 

확실히 그렇다면 나는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 명백히 사랑하고 있다. 자주권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니까. 시간과 인생은 내 의지대로 흐르지 않는 법이라는 걸 너무나 절절히 깨닫게 되었으니까. 게다가 사랑은 '자아가 상대방의 의지 앞에 고개를 숙이는 모양새를 취한다고' 했다. (사랑은 왜 불안한가, p.63) 고개를 숙여야 살아지는 삶이라는 것도 있다는 걸 알게 해 주었으니 '결혼' 은 그리고 '출산' 과 '양육' 은 나로 인해 사랑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그런데 어느 철학자도 이런 말을 했다지. '모성은 여성을 노예로 만드는 가장 세련된 방법'이라고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맞다. 지극히 세련되었다. 지나치게 세련되어서 때로 거부하고 싶을 정도로... 세련된 노예제가 따로 없는 게 바로 지금 이 시절인가 싶어서 실소가 나오려 했다. 우는 것보다 웃으니 다행인가 싶으면서...




사랑에서는 모든 것이 진실인 동시에 거짓이다. 사랑은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한 가지 주제다. 사랑 자체가 절대 터무니없지 않다는 것. 그 참가자들 누구도 그렇지 않다는 것. 한 사회가 강요하려 하는 감정과 행동의 모든 엄격한 정통성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그것을 미끄러져 지나쳐버린다. 


- 줄리언 반스, 연애의 기억. p 304 - 




무언가 치달아오르려는 감정을 견디게 하는 것들을 떠올려봤다. 

강, 윤슬, 바닐라 아이스크림, 내리는 비... 그리고 어떤 문장들. '안 괜찮아'라든가 '보고 싶어'라든가 '가장 빨리 돌아오는 요일인 월요일' 이라든가 '예뻐'라든가... 결국 마지막에 떠오르는 단어. '엄마'... 아이는 언젠가 알까. 그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극과 극을 달리는 양가성을 품고 살아가기 일쑤였는지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사랑하고 싶지 않았는지를. '진실인 동시에 거짓'이었는지를. 피하고 싶었지만 피해지지 못하는 것이었는지를. 보고 싶지만 어떤 때는 최대한 보고 싶지 않았는지를. 그러나 결국 얼마나 사랑했는지. 몸이 먼저 반응할 만큼.... 그만큼....



글을 기어코 쓰게 만드는 것들은 결국 모두 '사랑' 하는 것들일지 모른다. 무엇이든-'빠지고마는' 것들..



집에 돌아와 당근 죽을 만들어 둘째의 점심을 챙기고 첫째에게는 볶음밥을 만들어 주었다. 배가 고팠는지 금세 먹고 난 후 어느새 서로 비명을 지르면서 거실과 소파, 장난감방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기어이 이불을 거실로 가지고 와 캠핑놀이를 하는 중이라며 아이들은 나를 놀이에 참여시키려 했다. 아직은 어떤 사랑의 너그러움이 모자란 나로서는 결국 참여하지 못한 채 다만 웃으면서 '미안 엄마 뭐 할 일이 있어' 라면서 설거지를 마치자마자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손으로 노트북을 열고 만다. 키보다 위에 손을 올려두고 문득 생각하고 만다. 억지로 놀이까지 하는 건 지금 이 순간 '나' 에게는 조금 가혹한 것 같다고... 지금은 이래도 괜찮다고. 진심으로 우러나오지 않은 것들을 '억지로 '하는 건 언제나 인생을 어긋나게 하기 일쑤라고. 그래서 오늘은 어느 정도 솔직하기로. 비록 사랑하는 너희들이어도. 미안하지만... 



아이들과 '집'에서의 친밀도를 쌓아갈수록 반대로 '밖' 으로는 어떤 성벽을 치고 고립되는 기분에 빠지곤 한다. 퇴사 후 일상에서 사소한 대외활동들을 되도록 만들며 집 '밖'에서의 '나'를 찾으려 애쓰지만 한편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아이 좀 일찍 데리고 오지, 아이가 아파 보인다, 아이는 괜찮니'라는 아이로 시작되어 아이로 끝나는 말들을 들으며 사는 날도 잦아질수록, 나의 어떤 보이지 않는 애씀들이 인생에서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에 우울해지곤 한다. 사랑이 넘치는 평등한 가정에는 일정 부분 어떤 개인의 불평등이 공존한다는 걸 철저히 무시한 채로. 그렇게 화목하다는 착각에 계속 마비된 채로. 그럼에도 견디게 만드는 어떤 것들을 기억하는 오후다. 



아침이 있다면 저녁도 있는 것이고, 주말이 지나면 드디어 월요일이 다가오는 것처럼...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고 거짓말하는 것들 사이로 '나는 안 괜찮아'라는 문장도 가끔 들리는 것. 

그렇게 견디게 만드는 것들을 떠올리며 흐트러진 지금의 기억을 정돈한다.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보며 동시에 내리는 비를 창문 밖으로 쳐다보면서.  



비 내린 저녁의 거리 풍경은 어떨지 상상해보곤 한다. 집 안에서 집 밖을 향해- 



#쓸 수밖에 없던, 오후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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