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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08. 2021

서서히 깊숙한 기억

결국 추억이라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그 상대를 대했던 자기 자신의 옛 자세를 반추하는 것일까


- 먼 바다 -



살면서 누군가와의 우연한 장소가 그리웠던 옛 시간과 겹쳐지는 우연은 얼마나 될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나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고 마는 그런 우연이 있을까. 오늘.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장소를 향하며 발걸음을 옮기면서 익숙한 풍경과 낯익은 간판들이 시야에 들어오자 마음이 잠깐 조급해졌었다. 어째서 좋은 사람들은 다 비슷한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것인가 싶은 생각을 하자 잠시 미소를 머금게 되고 그렇게 그 시절의 나를 조금씩 소환해내려 했었다. 그러자 아무 말을 할 용기가 생길 것도 같았다. 정말이지 이젠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은 아무 말들을. 웃으며 말하겠지만 절대 웃지 못할 시절의 이야기들을. 그리하여 그렇게 잠시는 해방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여름에 가까운 6월의 한낮, 오전 10시 카페에서의 시간이 마치 휴가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에서 흔히 가질 수 있는 시간일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러지 못하고 마는 시간이어서 특별히 만들어야 그제야 즐길 수 있는 휴가라고 생각이 되었던 걸까. 그 시간대의 그런 장소에서 어떤 이야기를 당돌하게 꺼내고 마는 '나'는 인생에서 그렇게 흔치 않았다는 것을. 장소든 시간이든 만나는 대상과 주고받는 이야기의 밀도든 정말이지 '흔치 않은' 시간이어서 귀하고 그래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통 유리의 카페라서 더 좋았던-



시원한 얼음이 담겨 있는 히비스커스 한 잔을 앞에 두고 시종일관 종알거렸다는 걸 혼자 돌아가는 도중 다시 생각하다가 알 수 있었다. 나의 미성숙함이 라떼를 마시며 귀를 더 많이 내어준 아름답고 품위있는 성숙한 그녀에게 얼마나 실례였을까 싶어서 귀가 길 버스 안에서 한참을 잠시 후회하고 말았다. 좀 더 입보다 귀를 열어둘 걸. 그랬다면 한쪽으로 기울어지려는 이야기와 마음에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 사이의 균형이 잡혔을지도 몰랐을 텐데. 한쪽의 깊은 배려와 친절한 사려 깊음이 아니라면 절대 일방적인 한 사람의 목소리를 인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법일 텐데.



한 때 잃어버린 사랑도 그러했고, 현존하는 그이와의 사랑도 그 사이의 불균형과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던 때는 대부분 일방적인 목소리가 존재했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로서는 도무지 고쳐지기가 영 쉽지 않은 고질병 같은 버릇은 왜 여전히 툭툭 튀어나오고 마는 걸까. 여전히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어째서 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지는 대상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마음이 새어나가게 되는 걸까. 상대를 깊숙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로. 어째서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기어코 옅게라도 드러내게 되는 걸까. 절제를 잘하는 그녀 앞에서 자꾸만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던 이유는 아마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견고한 침묵이 있기 때문일 것일지 모른다. 오늘 그래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걸. 부디 상대가 알아주기를 기원할 뿐이었다. 그녀 덕분에 그리운 '나'를 잠시라도 홀가분하게 떠올릴 수 있었기에...




No day shall erase you from memory of time

시간의 기억에서 당신을 지우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 공지영, 먼바다, p. 168 -



편지를 좋아하는 건, 그 시절의 기억을 봉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억이 박제되어 보내지면 어떻게든 남겨지니까.



만약 인생의 어떤 시절이 하나도 멋지지 않다고, 그야말로 엉터리 같다고만 생각하며 사는 시절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그 삶의 주인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시간 말이다. 지나가야 아는 것, 지나가야 보이는 것, 지나가야 그제야 그 시간은 결국 되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 그 시절의 '나'를 언젠가는 그리워할지도 모른다는 것. 그 시절의 내가 다시 다른 형태로 시작될지도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인생 앞에서 그 무엇도 함부로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니. 그러니 어느 시절의 아픈 순간들 조차도 인내하며 견뎌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들 덕분이 아닐까 싶었다. 편지를 주고받는 요즘,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오늘 다시금 이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시절은 나라는 사람이 내가 아닌 사람으로'도' 변할 수 있다는 것. 다름 아닌 사랑과 사람 '때문에'. 아니 그것들 '덕분에'. 때문이라는 아픔이 아니라, 지나고 나니 모두 덕분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 시간들 사이에서 스스로 겹겹이 만들어가는 삶의 이야기들 덕분에. 그리하여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대면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시간이 흘러 어느 시절의 기억을 반추했을 때 절절하게 그리워지는 무언가들 덕분에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질 수도, 미성숙한 인간이 그제야 성숙하게 침묵하고 절제할 수 있는 인간으로도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을. 가령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시절이나, 아내에서 다시 여자가 돼 보고 싶어지기도 하는 것들이 과연 그런 풍요롭고 아름다운 것들에 속할 수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그이는 이제 몸보다 머리와 등, 손을 더 자주 도닥인다. 그것들 조차 덕분이라 믿고 싶은 것이다. 때문이 아닌 덕분일거라고.



인생에서 뜻하지 않게 마주하게 되고 마는 풍경과 장면, 사람과 마음. 인연과 이야기. 그것들이 한 시절을 묵묵히 견디듯 지내보는 누군가의 마음에 통과되고 말 때. 서서히 깊숙이 스며드는 어떤 기억들은 그 혹은 그녀에게 결국 잊기 쉽지 않은 '추억'을 선물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선물. 바로 시간의 기억... 어느 작가가 알려준 그 문장대로라면 지우는 날이 쉽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런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것이 때로 얼마나 큰 원력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지지대, 마음의 안전 기지가 될 수도 있는지를. 물론 좋았던 기억이라면 더더욱 그 지나간 시간을 벗 삼아 앞으로 나아가게도 만들 것이고, 비록 떠올리면 여전히 아파서 마음이 절절해지는 기억이라 하더라도 그 덕분에 입술을 꽉 깨무는 힘을, 조용히 담담히 겪어낼 어떤 강건함을 선물해주기도 한다는 것을. 그러니 인생에서 어느 시절 하나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해가 지날수록 조금씩 더 선명하게 깨닫곤 한다.



서서히 깊숙해지는 기억들을 전부 소화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 기억은 분명 살면서 여러 의미에서의 원천이 되고 만다는 걸 아직 나는 믿고만 싶어 진다. 그 기억들은 때때로 격렬하게 글을 쓰게 만들기도 하고, 한편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석양을 기다리는 시절일지언정, 웃으면서 일상을 기대하듯 살아가게 될 테다. 가령 커튼으로 가려야 될 법한 오후 5시의 창가로 쏟아지는 햇살이라든가, 강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윤슬이 시야 안으로 들어와서 마음을 철렁거리게 만든다던가, 한낮에 혼자 입가에 대 보고 마는 매실주라든가,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통을 혼자서 전부 먹어버리면서도 그 미안한 단 시간을 다시 기다리고 찾게 될 것 같은 것처럼. 머리를 쓰다듬는 소극적인 사랑의 형태든 깊숙이 들어오고 마는 희소해서 격렬했던 몸짓의 기억이든, 전부 한 시절의 소중하게 스며드는 기억들이라면 그 모든 것들을 다 껴앉듯 살고 싶어질 뿐이었다. 돌아오는 길...



오랜 시간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피하고 싶어도 피해지지 않을 기억들은 그대로 마음에 간직한다.

서서히 깊숙한 마음 한 켠에서. 그 기억들이 한 시절 누군가에게는 구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에.  



방 밖으로 나가면-
바다가 펼쳐진다. '나의' 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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