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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27. 2021

여행이 끝난 후

완전한 해방은 두려울 정도로 요염한 쾌감과 연결돼 있었다. 

완전한 해방이란 사적인 쾌감과 관계된 것이므로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여행의 참가자 모두가 그것은 '여행이었다'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인지는 사실 단언할 수 없겠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이를 위한 여행이었으니. 여행지 선정부터 모든 시간들이 전부 특정인에게 맞춰져야 했던, 일종의 여행 아닌 여행이랄까. 이렇게 말해 놓고 나면 상당히 부모'답지' 못한 궁핍한 생각으로 비칠 수밖에 없겠다만 반대로 개인으로서의 시간을 포기하지 못하고 마는 솔직한 성향의 인간에게는 완전한 부모의 마음으로 산다고도 말할 수 없지 않을까 싶었기에. 이제는 이런 가난한 감정 조차 순순히 인정하게 되고 만다. 초라하고 부끄럽지만 피하지도 못한 채로. 



평일의 워터파크는 예상했던 것보다 꽤 붐비었다. 대부분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로 추정되었는데 그래서 한편 뭔가 비슷한 처지의 여행자가 꽤 많다는 생각은 묘한 위안을 앉겨주었다. 오픈 시간부터 클로징 타임까지 어른들은 온몸으로 목청껏 최선을 다해 놀아준 덕분에 쉬어버린 한 사람의 목 상태가 증명하듯 열렬하게 수영을 즐겼던 시간들과, 평소에는 얻기 힘든 각종 불량식품들과 놀이기구와 밤의 산책으로, 마치 끊김 없는 와이파이의 5G LTE급 공유기가 주는 기쁨처럼 아이들의 만족도를 극대화시켜 주는 것은 분명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 행위의 주체자들이 나뿐이 아니라는 사실마저도. 누군가에게는 일종의 일상에서 벗어난 일탈이지만 전혀 일탈이 될 수 없는 '특별근무'로 느껴지고 말아서 그이와 서로 웃으며 자조적 농담을 주고받았던 시간들이 있었을지언정. 



- 일상 근무지에서 탈출한 특별 근무지는 어때. 우리 물둥이들 에너지 발산 제대로 시키려 나름 각오했다.

- 하하. 특별근무 맞지. 시원해서 좋으심 

- 근데 여보. 이런 생각 매정해도 어쩔 수 없지만 정말이지 나는 가족 여행이 여행으로 안 느껴져..

- 뭐가 또 불만이심 

- 그게 아니라... 왜 4인 가족 시간이 완전히 행복하거나 기쁠 수가 없는 건지 사실 자주 생각하거든. 이게 정말 우습고 못된 생각인 거 같은데  떨쳐버리기도 쉽지 않다는 거야. 그러니 엄마로 인간실격인 셈이고...

-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까. 시달린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 것이고. 

- 반대로 막상 아이들이 크면 뭔가 달라질까

- 반대로 나랑 둘이서 여행 가면 완전히 행복할 같아?

-..... 

- 거봐. 그냥 가족이 좋으면 좋은 거지. 별 거 없어. 

- 알아. 별 거 없는 것. 그래서 외롭기도 해. 결국 부모들은 좀 더 외로운 인간들이야. 그럴 수밖에 없어



Edward Hopper, Nighthawks, 1942



아이들이 다가오자 우리의 대화는 맥없이 끊겼다. 그래서 한편은 다행이지 싶기도 했다. 답 없는 의문과 언젠가부터 '가족' 이 되어 버린 그이와 나의 마음이, 우리들의 격렬하고 간절했던 그 초기 상태가 어느새 사라졌다는 걸, 아니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반대로 인정하게 되는 것도 같았기 때문에. 서로를 속속들이 탐험하고 그리하여 탐닉하고자 했던 우리가, 그 시절 속절없이 무턱대고 느껴지는 서로를 향한 '보고 싶음' 은 자꾸만 상실하고 있는 것 같아서. 어느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한다면 거기서부터 번뇌는 발생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다른 현실적인 것들에 집중한 채로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생활들에 좀 더 익숙한 우리는 이미 생활적 집단 무리적 가족 경제인이 다 되어 버린 기분이어서 아주 가끔, 그렇게 깊숙하게 분하다가 외로워지고 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그 순간 우리가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인생은 신비롭다. 그런 탓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다른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p. 150, 김연수 - 




'결혼하면 사랑일까'에서 저자는 어떤 독자들을 향한 헌사를 바쳤다. '아무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바쳐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고. 그렇다면 그 말을 빌려 달리 해석하자면 아이라는 존재에게 아무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바쳐버리고 마는 일종의 박애적 사랑을 행사하는 부모라는 인간들은 더군다나 낭만적인 영혼이어야 마땅할 텐데. 어째서 그들의 낭만은 오히려 더 종료되거나 사라지기 쉬운 것일까. 결혼으로 매듭지어진 기혼자들이 주고받는 사랑이란 서로 지속적인 정서적 신체적 유대관계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 '지속'이라는 것을 아무리 노력해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들고 마는, 그들에게 새롭게 노출된 환경과 사회적 상황들에 대한 것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일까. 



그리하여 나는 한 권의 책에서 쏟아져 나오는 문장들 이후에 생각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말아 종종 결혼과 출산과 양육이 선사하는 삶 속에서 수시 다발적으로 쏟아져내려 오는 우발적 이벤트들과 감정들에 대해서 여전히 사적으로 분하고 가끔 약도 오를 뿐이다. 어른 다움이라든지 가족 다움이라든지 어떤 생활적 예의바름으로 포장된 채 사랑의 상실을 그렇게 은은하게 느끼게 되고 말며, 감정의 종료 버튼으로 빠르게 다가가려는 어떤 관계들에 대해서, 그것이 온전히 두 개인 '탓' 으로만은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느냐고. 사회적 동물인 우리가 타고난 성별적 유전적 본능이, 우리가 처하고 마는 기혼제와 육아의 사회적 제도의 모순들이, 여행이 결국 여행이 아닌 여행이 되고 마는 지경에 처해도 '별 거 없어'라는 아량 깊고 자비로운 생각으로 승화시켜버리고 말아서 아예 어떤 대화나 생각조차 깊숙하고 진지하게 하지 않은 - 못한 -  채로 살며 그저 현재의 평화를 지키려는 암묵적 차단이 얼마나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었기에...



그러나 그 말은 한편 옳기도 하다. 강은 흐르고 해는 반복되고 어쩌면 사는 게 그렇게 별 게 없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여행이 끝난 후에도 일상은 멈춤 없이 계속된다. 특별근무가 일상 근무로 바뀐 것 이외에는 달리 바뀐 건 없다. 쌓인 세탁감을 세탁기에 돌리고 청소를 하고 남은 끼니를 챙기고 샤워를 시키고 아이들을 재우며 하루가 무탈히 흘렀음에 안도의 한숨을 돌리던 찰나. 그의 돌발적인 문장에서 약간의 신선함을 느끼게 되고 말았다. 올해는 밀린 마일리지를 쓰기 위해서라도 쉽게 가기 힘든 나라인 포르투갈로 단 둘이 떠나자 했던 그의 말은 꽤 신선했다. 이 시국에 비행기를 탈 수 있겠냐는 현실적 반문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백신을 대안 삼았다. 그렇게라도 멀리 떠난다면 좀 여행 같지 않겠냐 했던 그의 발언이, 여행 아닌 여행이라 했던 다소 불만족스러운 고객을 향한 솔루션적 일환인 것 같아서 역시 엔지니어 출신답다는 귀여운 발상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신선하고 고마우면서도 다소 미안했던 건 왜였을까... 



한편으로 다른 여행을 떠올리고 말았기 때문인 걸까. 돌발적인 드라마틱한 이국을 향한 솔루션이 아니라 소박하고 진부해도 서사가 겹겹이 쌓인 상태에서의 완전한 해방이나 쾌감을 바라는 어떤 강렬한 기억의 시간 여행이라면... 가령 '결혼하면 사랑일까'라는 책 한 권만을 가지고도 연필 한 자루가 거의 닳을 정도로 밑줄을 그어 놓은 책을 서로 펼쳐 놓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그렇게 짚어가며 독서 토론을 할 수 있는 허영심도 지적 쾌락도 한편 그만큼 농밀할 수 있을 여행이라면 어떨까. 게다가 '가야 한다'가 아니라 '보고 싶다'로 시작하여 무리할 만큼 보고 싶다거나 그 보고 싶은 대상이 바로 다름 아닌 삶의 가장 우선순위의 급한 대상이라는 태도로 점철된 시간에서 비롯되는 여행이라면 어떨까. 



여행이 끝난 후 다시 어떤 여행을 막연히 상상하고 마는 나로서는 가당찮지만 상상의 힘에 연약하게 기대볼 뿐일지 모르지만, 한 시절을 가장 그립게 만들기 쉬운 건 다름 아닌 그 여행의 시간, 그 기억 덕분이라면 삶에서 남겨지는 유일한 결정체는 바로 그런 형태의 여행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버리게 되고 말 뿐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서로 깊숙하게 정신과 몸, 앎과 알지 못함이 끼워맞춰지듯 교감하는 바로 그 시간, 그런 여행... 



하나의 여행이 끝난 후, 또 한 편의 별책부록 같은 여행을 바라고 마는 누군가의 마법은 이루어질까.

만약 상상이 현실로 변해버린다면, 어쩌면 바로 그 시절은 마법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지 모른다.

평생 있을 수 없을, 마법이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만 펼쳐지는,영원히 회자될 신기루와 같은 시절의 여행...




비행기를 타도 도착하기 쉽지 않은 여행지. 그건 어쩌면 희소하고 희박한 시간일지 모른다. 신기루 같은 마법이라고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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