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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l 13. 2021

시시포스의 형벌

그녀는 다른 것에 관심을 기울였었다.

결연하고 탐닉적인 관심을 아이가 아닌 다른 것에 기울였었다. 죄.


- 디어 라이프 中 일본에 가 닿기를, p. 39  -





아이들과 다시 고립상태에 빠졌다. 집이라는 섬을 향해.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가는 중이다. 나만 겪는 현상이 아님을 물론 안다. 왜 아니겠는가. 난데없이 떠오른 확진자로 인해 어린이집의 폐쇄 공지가 뜬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된 이후 기관은 휴원 조치까지 내려진 상태다. 기약은 있지만 기대는 하지 못하는,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는 시간에 대해. 아이들은 꽤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오히려 좋아하기도 했다. 집에서는 그야말로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라고도 했었으니까. 그리곤 그들이 내게 묻던 질문에 - 엄마도 좋지 라던 - 바로 대답하지는 못했다. 잠깐 주저했다. 마냥 좋다고만도 할 수 없는 곤궁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지도.



서로가 서로에게 그야말로 한 시도 떨어져 있지 못한 채로 실내에서만 지내야 하는 일상은 뭐랄까. 아무리 사랑으로 엮여있는 관계라 할지언정 이것은 정말이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역설을 경험하고 있다고 밖에는 느껴지지 않고 만다. 거리두기를 위해 누군가들은 거리를 두지 못한 채로 살아야 하는(?), 모두의 건강을 위해 누군가는 분명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되는 듯한 기묘한 기시감.



부지런하게 기상하는 아이들이 때로는 아쉽지만 그 덕분에 하루는 정말 일찍 시작된다. 6시에 일어나는 아이들을 차례로 앉아준다. 7시에 간단히 샌드위치나 시리얼 혹은 과일이나 죽 등으로 본격적인 아침을 맞이하면 그때부터 끼니 전쟁은 시작된다. 9시정도가 되면 다시금 2차 아침을 한다. 11시가 지나면 슬슬 점심을 궁리해낸다. 면류인지 밥류인지 아니면 인스턴트식인지 서양식인지 매번 랜덤식으로 돌아가는 메뉴 리스트로부터 좀처럼 탈출하지 못하면 그 또한 묘한 무능함을 느끼고 만다. 그렇게 메인 끼니와 한 두 번의 간식을 오전 오후 저녁 세 번의 사이클에 맞춰서 키친에서 냉장고와 도마와 불 앞에서 삶거나 볶거나 튀기거나 구워 내다 보면 어느새 하루는 지나가 있다.



주방 창문 바깥으로 석양을 바라볼 때가 잦다. 그 시간이 가장 좋으면서도 뭔가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한다.



물론 먹기만 하는 건 아니다. 근처 슈퍼라도 같이 다녀오고 나면 중간중간 샤워도 몇 번 해야 하고 함께 블록 놀이를 하거나 - 거의 지켜보며 말을 건네는 미안한 수준이지만 - 영어 동요나 그림책 몇 권을 같이 읽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끼니에 맞춰 지나가 있는 것이다. 박진감 넘치는 형제의 난이 없을 때는 시간이 그나마 잘 지나가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그야말로 거북이 시간이 되어 가기 일쑤인 것이다. 물론 그뿐이던가. 틈틈이 청소와 빨래는 기본 미션이다. 여름엔 젖은 수건이 많이 나오니 날이면 날마다 쌓이는 수북한 빨랫감이 담긴 세탁기가 나를 기다린다. 세탁물을 분리하며 다용도실에서 조용히 중얼거려본다. 이게 어떤 의미일 수 있을까 라고. 이것이 어쩌면 시시포스의 형벌이 아닐까 라고도. 밀어 내고 또 밀어내도 끝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큰 바위를 혼자 옮겨내는 것 같은 시간은 도대체 어느 시절의 속죄로 인한 것이었더라. 생각이 잘 나지 않아서 또한 느껴지는 무력감...



에어컨을 하루 종일 틀어놨어도 시원해지지 못하고 마는 마음의 시간은 더디게 흘러간다. 치워도 어질러져있고 접시는 닦아도 또 닦아야 한다. 해도 해도 빨래는 계속 쌓이고 아마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반복이 되어 갈 것이다. 물론 안다. 이것이 결혼의 현실이고 또 생활이라는 것을. 낭만을 찾기에는 아주 열악한 환경이라 만약 그럼에도 지키고 싶다면 부지런히 한 눈을 팔아야 겨우 찾아지는 것이 바로 잡히지 않는 낭만이라는 것을.



한쪽 배우자 또한 비슷한 '반복'을 다만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이들과 겪으며 행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조금은 분하지만 이런 것일지도 모를 테다. 적극적으로 주체적으로 어떤 정복을 하고 있다는 의미. 그는 자신의 에너지를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생산하며 소비하고 있을지 모를 테지만 정말이지 아무리 생각을 좋게 하려 해도 가사와 양육은 그렇게 생각이 잘 되지 못하고 만다. 어디까지나 사적인 열정이자 합리화에 그치고 만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현재를 그저 영구적으로 반복하며 끊임없이 굴러 내려오는 바위를 밀어 내고 또 밀어내며 무언가와 싸우고 있다는 기분과 자주 봉착할 뿐.



'불행하게도 저는 심장을 입으로 끌어올릴 수 없나이다.


- 리어왕, 코델리아의 -



오필리어의 최선은 심장을 물 속으로 밀어 넣어버리는 것이었을까... 누구에게나 최선의 형태는 다르다. 체감하는 만큼의.



햄릿의 오필리어는 입으로조차 끌어올릴 수 없어서 불행히도 심장을 물속에 띄워야 했을지언정. 누군가를 사랑하여 행하는 모든 행위들에는 적절한 희생과 노력과 애씀들이 있다지만 가끔은 그 사랑으로 인한 책임과 의무가 정말 사랑스러울까 싶은 생각에 시시포스를 떠올리고 말다가 한껏 우울해지자 귀가하고 돌아온 그이에게 저녁을 차려주며 요 근래의 감정을 오랜만에 털어놨었다. 부모가 되면 시간은 개인의 편이 될 수가 없다고. 내 의지대로 흐르지 못하는 시간... 사적인 시간을 포기할 줄 알아야 살아지는데 때때로 한껏 붙잡고만 있기에 괴로워지기도 한다고. 이 생활의 연속이 버겁고 힘들다고도...



그는 말없이 어깨에 손을 대어 지그시 등을 쓸어주며 말했다. 인생에 기복이 있고 상황이 마냥 안 좋게 흐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믿어야 한다고. 의지가 되어 주지 못한 채 오히려 칭얼대는 배우자를 보는 그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기도 했기에... 그렇게 나의 어리숙함을 들킨 것 같아서 더 이상 말을 건네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풀리지 않은 심연의 갑갑함은 숨긴 채로. 다만 그이를 그저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애먼 오이소박이를 더 담아 주며 맛있냐고 물었다. 그게 다 였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전부. 그 이상의 것은 하지 않기로 한 채로.



심장을 입으로 더 이상 끌어올리지 않기로 했다.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심장은 때때로 집 '밖'을 향하고 만다는 것을. 혹은 가사와 양육 이외의 '시간'을 늘 갈망하고 열망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이미 일종의 '죄' 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 것 같았지만. 한편 속이지도 못하고 만다. 모두와의 시간을 지키려 할수록 혼자의 시간을 떠올리다 울적해지는 나를. 과연 평일 저녁 7시가 내 편일 수 있을까를 궁금해하며...



그래도 시간은 유일한 약이고 편이고 위로라는 걸..믿는다.



#BGM, FreeTEMPO,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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