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이 좀처럼 침착해지지 않는다. 나는 먼저 2주 동안 보지 못했던 단비와 봄비를 만나기로 했다. 문을 여는 순간 단비는 신음소리를 내며 머리부터 꼬리까지 난리 법석으로 흔들며 나를 반겨주었다. 아마도 단비와 함께 살았던 11년 동안 처음으로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단비와는 성격이 다른 봄비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눈인사를 하더니 살며시 다가와서는 꼬리로 다리를 스치듯 하며 지나간다.
반갑다는 뜻일 게다.
한동안 단비를 쓰다듬어주고 이내 진정이 되었다.
이제 드디어 한별이를 소개해 주는 시간이 왔다. "단비야 엄마 뱃속에 있던 한별이가 나왔어. 단비 형아 됐어." 현관문이 열리고 아기바구니에서 곤히 자고 있는 한별이를 보여줬다.
단비가 냄새를 맡는다. 익숙한 냄새다.
한별이가 살짝 눈을 뜨고 응애~하자 처음 듣는 소리에 단비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어쩔 줄을 몰라하며 한별이 곁을 서성인다.
"단비야, 아가야. 단비가 형아니까 잘 지켜줘야 해."
몇 년 전 단비아빠가 2박 3일 예비군을 가게 되었다.아빠는 나가면서 단비에게 "엄마 잘 지켜줘 단비야."라고 얘기하고는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 후 단비는 2박 3일 동안 현관문 앞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밖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눈을 번쩍 뜨고는 2박 3일을 꼬박 날을 새었던 기억이 났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강아지도 다크서클이 있다는 사실을...
갈색 푸들이었던 단비는 눈두덩이가 검은빛으로 쾡해졌다. 그리고 아빠가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자 그제야 단비는 거의 하루 내내 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우리 집 단비는 이런 강아지였다.
한별이와의 첫 만남, 그리고 "지켜줘."라는 말에
단비는 밥 먹을 때와 배변판에 다녀올 때 외엔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한참 동안 한별이 침대를 바라만 본다.
그리고 드디어 한별이가 분유 먹는 시간이 왔다.
남편과 내가 늘 단비에게 하는 잔소리가 있다.
"단비야, 단비 머리엔 90% 가 먹는 생각이구나!"
우리 집 먹보 단비가 젖병을 건드리지 않을까 걱정했던 염려와는 달리 단비는 한별이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고 오히려 엄마 아빠의 귀염둥이 포지션에서 한별이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는 스스로 자처해서 이인자로 포지션을 갈아타고 있었다.
때때로 새벽잠이 고단해서 한별이가 잘 때면침대 위로 올라와 잠시 눈을 부치는데 한별이 곁에 아무도 없으면 아빠 엄마를 한 번씩 쳐다보고는 단비가 침대에서 내려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는 한별이 곁을 지켜주곤 했다.
아직은 아가라 저만치 떨어져서 나름 한별이를 지켜주고 있는 단비가 너무 우습기도 하고 정말 사랑스러웠다.
"단비야, 한별이가 단비 형아한테 너무 고맙데,
엄마 아가, 엄마 껌딱지 단비야,
한별이한테 신경 쓰느라 단비한테 이전처럼 놀아주지 못해 너무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11년 동안 단비가 받은 사랑처럼 한별이도 엄마사랑이 많이 필요해."
한별이가 자는 시간, 침대에 눕히고는 거실에 나와 소파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그리곤 그제야 단비가 이전처럼 내 무릎 위로 올라왔다.
기쁨도 잠시 한별이의 우는 소리가 들리자 나보다 단비가 더 빨리 알아채고는 순식간에 내 무릎에서 내려왔다. 엄마가 한별이한테 가야 한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분명 내가 내려가라고 하기 전에 단비가 먼저 무릎에서 재빠르게 내려왔다.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단비도 엄마 아가인데, 이제 한별이한테 양보하기로 마음을 먹은 거다.
단비는 많이 혼란스러울 거다. 11년간 독차지했던 사랑을 한별이한테 양보하고 자연스레 흘려보내야 될 텐데, 부디 엄마 아빠의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지 않길, 부디 빼앗겼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