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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비 Apr 22. 2022

두 달 후, 단비가 눈에 들어왔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단비가 눈에 들어온다.

신생아와 함께 한지 두 달이 지났다.

첫 한 달은 아기가 예쁜만큼 힘겹고, 어렵고, 두려움도 컸다.

아가는 배앓이를 하느라 매일 밤 끊임없이 울었고, 우리는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울음을 달래느라 애를 먹으며 밤을 새우는 날들도 빈번해졌다.


남편과 나는 드디어 좀비 모드에 이르렀고 그 옆엔 항상 단비가 함께 했다. 단비는 귀가 밝아 우리보다 아기의 울음소리를 먼저 감지한다.

아기가 울면 우리와 같이 깨서 같이 날밤을 새는 날도 많았다.

남편이 떡실신이 되어 잠이 든 그 옆엔 언제나 단비도 실신 모드로 잠이 들곤 했다.

우리만 좀비모드가 아니라 잠을 좋아하는 단비 역시 우리와 같이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렇게 두 달의 시간은 흘렀고 여러 차례 분유와 젖병을 바꾸자 점차 배앓이도 잡히기 시작했다. 평화가 찾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방은 한별이 방이 되어있고, 식탁은 한별이 분유를 타기 위한 식탁이 되었고 거실엔 한별이의 장난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무렵 특별한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고등학교 동창이자 육아 선배인 친구가 선물을 보내왔는데 다름 아닌 단비의 장난감들이었다.

한 상자 가득히 단비의 장난감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두 달이 지난 시점에서 생각해보니 단비에게 작은 장난감조차 사준적이 없었던 것 같다.


14년 만에 찾아온 아기라 주변의 지인들과 친구들 그리고 친척들과 직장동료들로부터 매일같이 수많은 택배들이 도착했고, 집안 한가득 한별이의 짐들로 채워지는걸 단비는 늘 지켜만 봤다.

박스를 뜯을 때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던 단비의 표정과 눈빛이 기억이 난다.


이번 역시 친구로부터 한별이의 선물을 받는 줄 알았건만 상자를 열자마자 친구의 손편지와 함께 단비의 장난감들이 가득 채워져 있는 걸 보고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환히 웃으며 단비에게 장난감들을 하나하나 오픈해서 건네주었다.


'나는 쌍둥이를 키우느라 골드 레트리버를 같이 키울 수가 없어서 시댁에 보냈는데, 단비는 한별이와 잘 지내주니 너무 기특하고 예뻐서 단비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어'

친구의 손편지를 읽는 순간 그동안 단비에게 무심했던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하면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단비는 여느 때처럼 박스를 오픈하는 동안 조르지 않았고 장난감을 오픈해서 입에 물려주니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일 년 남짓 수차례 뜯었던 여느 박스처럼 아마도 이번 역시 한별이 꺼라는 생각을 했었나 보다.

찍찍이 캔 장난감을 꺼내서 안에 간식을 담아 던져주었더니 그제야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한다. 정말 오랜만에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이제 거실은 단비와 한별이 장난감들이 뒤섞여 있다. 하지만 단비는 아기의 장난감을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원래는 단비 거실이었고 늘 단비 장난감들이 한가득이었는데, 이제 거실 한복판에 단비의 장난감들이 널려있는 것만으로 단비는 무척이나 신나 보였다.

"단비야, 두 달 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엄마,아빠가 예전처럼 많이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는 육아하는 일이 때때로 너무 힘들고 벅차기도 하지만 단비가 엄마 옆에 있어서 힘이 되고 위로가 돼. 우리 첫째, 엄마 단비, 늘 고맙고 사랑해, 엄마도 단비 장난감,간식 잊지 않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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