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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비 May 04. 2022

불편함이 주는 소중함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상이 이토록 소중할 줄이야..


아기가 새 식구가 된 지 6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의 삶은 360도로 변해갔고

처음엔 모두가 혼수상태였지만

이제는 그럭저럭 지낼만할 정도로

차차 익숙해져 가고 있다.


반려동물 단비와 봄비 말고는

육아가 처음인데 그것도 조그만 사람 아기가 이렇게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을 줄은 정말 몰랐다.

첫 3개월은 아기 때문에 힘들어!

아기 때문에 밥을 못 먹어! 아기 때문에 잠을 못 자! 아기 때문에 외출을 못해!

아기 때문 에라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냥

그렇게 몇 개월을 보냈는데,

아기와 함께 한지 5개월쯤 지나고 나서야 

가족 모두가 아기만 바라봤던 삶에서

슬슬 아기와 함께 하는 삶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3개월간의 고단했던 삶이 

원래의 내 삶이거니 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그동안 아무것도 아니었던 범한 일상들이

너무나 고맙고도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아기 머리에 손수건 받쳐놓고 먹는 기술과 아기업고 먹는 기술 습득

밥을 굶는 일은 빈번했지만

식탁에 서서 아끼 띠에 아기를 안고

밥을 먹을 수 있는 희열감을 경험하다 

이제는 5분에서 10분 정도지만,

점퍼루나 울타리 안에 아기를 놓고

 의자에 앉아서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온다.

물론 밥을 먹는 내내 나의 시선은

아기에게 집중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아기가 뱃속에서 나오기 전엔

 매일 매시간 제대로 앉아서 꼭꼭 씹어 먹는 밥상이

 이처럼 소중한지 정말 몰랐다. 

단비는 일주일에 5~6번은 꼭 산책을 하는 강아지였다. 어쩔 땐 나가 자고 해도

앞에서 뭉그적거리며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날도 있었고,

 현관까지 나가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해서

 다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아기가 집에 온 후로 단비는

일주일에 한두 번 산책을 나간다.

아빠가 쉬는 날을 기다리며

 일주일을 버티는 것 같다.

단비는 잠을 너무 좋아해서

남편과 내가 출근하면

퇴근해서 돌아올 때까지

밥이나 물먹거나 배변판에 올라가는 일 외엔

 줄곧 잠을 자던 강아지였다.


아기가 집에 오고 나서

단비도 나와 함께 밤을 꼴딱 새우는 날이 많았다.

 날씨가  따뜻해져서 아기만 데리 나갈 때면  단비가 서운해할까 싶어 마음이 불편했는데 

요즘 단비는 아기랑 내가 나가는 시간을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다.

그 시간이야 말로 단비에게도  시간이

아기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육퇴(육아 퇴직)!

 늘어지게 꿀잠을  잘 수 있는 

황금 시간이었던 것이다.

요즘엔 아기와 함께하는 삶에 적응이 되었는지 아기가 울어도 단비가 잘 잔다 ^^

가끔 친정 언니나 부모님이 아기를 봐주실 때

 나에게 주어진 두 시간을 나는 일분일초로 쪼개서

 제대로 누리는 습관이 생겼다.

단 30분이라도 육퇴의 꿀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어서이다.


밥의 소중함, 시간의 소중함, 잠의 소중함,

외출의 소중함, TV를 보거나 운동을 하는

여가의 소중함 그리고 편히 샤워를 하거나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는 소중함 들을

 몸소 체험 중이다.


이제야 하나하나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

온몸이 담이 걸린 듯해서

살기 위해 필라테스를 가고 싶은데

100회를 끊어놓고서도 못 가는 현실...,

생각 없이 의미 없이 보던 바보상자를

요즘엔 정말 보고 싶었던 것만

꼭 꼭 챙겨보게 되고,

남편이 쉬는 날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핸드폰을 할 여유 따위는 필요 없이

오로지 잠을 자기 위해 정신줄을 놓는데,

그때는 아기가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홀린 듯 수면의 마법에 걸린다.

정말 해야 하는 그 일에 집중하며

단조롭지만 진득하게 움직이는 요즘이다.


갓난아기 육아가 여러모로 불편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면서 하루 중 잠시라도

내게 주어지는 자유의 시간들을

나는 진지하게 누리고 있는 중이다.

미용실 갈 시간이 없어서 헤어디자이너 남편님이 아기업고 머리해 주는 기술 습득

아마 단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매일 습관처럼 다녔던 산책을 온 맘을 다해

그 시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마침내 외출을 하는 순간

아낌없이 영역표시를 하며 사방팔방 온 동네를

 단비의 냄새로 물들이고 다닐 것이다.


아기가 아프기라도 하는 날엔

하루 24시간 중에 단 5분조차

 마음대로 쓸 수가  현실이 찾아온다.

그 간절한 5분을 어느 날엔 밥 먹는 데쓰고,

어느 날은 화장실에서,

어느 날엔 집안일을 하는데

요기 나게 사용하기도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나는 이 일상의 소중함을 건네주고 싶다.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밥상,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꿀잠,

언제라도 정주행을 할 수 있는 주말과

화장실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여유가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한 선물임을...,

우리 집 댕댕이와 냐옹이도

 이제 아기와 상관없이

이 일상의 소중함 들을

각자의 방법대로 틈틈이 누리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한결 놓인다.

한해 한해 아기가 자랄수록

나에게 주어지는 자유의 시간들도

 길어지겠지, 하지만 잊지 말자.

일상의 순간들이 결코 의미 없이

반복되는 습관이 아닌,

매일같이 나에게 주어진

아주 소중한 선물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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