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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비 Apr 28. 2022

괜찮은게 아니었어

새침데기 야옹이라 괜찮은 줄 알았지..

우리  야옹이 봄비는 내 품에 안기기까지 5년의 시간이 걸렸을 만큼 새침한 고양이였다.


길냥이였던 봄비를 처음 만났을 당시 200g 정도의 무게로 그야말로 새끼 고양이였다.

남편과 카페를 하던 시절, 카페 바로 앞에는 차선 도로가 있었고 그 건너편 동네가 모조리 재개발구역이 되어 매일같이 건물을 부수는 소리가 한창이었고 공교롭게도 봄비 가족들의 은신처가 재개발 구역 안에 있었다.


그날 역시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발음이 한창이었고 오래된 건물들을 부술 때 바퀴벌레나 쥐를 박멸하기 위해서 약을 쳤다고 한다.

봄비의 가족들에게 밥을 주셨던 분의 말에 의하면,

봄비의 아빠는 검정고양이, 엄마는 고등어 고양이였고 형제자매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그날 봄비는 그 가족들이 머물던 터전에서 홀로 빠져나와 차선의 도로를 건넜다.

건너편 생선가게는 아직 재개발 전이었는데 생선가게 사장님이 봄비가 차선 도로를 건너는 장면을 목격하셨더란다.

200g 정도로 세상에 나온 지 한 달도 채 안된 봄비가 도로를 건너 가는데 처음엔 쥐가 지나가는 줄 알았다고 한다. 놀랍게도 도로 위를 달리던 버스기사님이 새끼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봄비가 차도를 건너는 동안 차를 멈춰주셨다고 한다.

그렇게 봄비는 목숨을 걸고 차도를 건너왔고, 도착한 곳이 바로 우리 카페 문 앞이었다.

가게로 들어오던 손님이 "사장님 카페 앞에 새끼 고양이가 있어요."고 말해주었고 그 순간이 봄비와의 첫 만남이 되었다.

그 후에 들리는 얘기로 봄비의 가족들은 쥐와 바퀴벌레를 박멸하기 위한 약을 먹고 가족 모두가 한 날 동시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마도 비는 살 운명이었기에 목숨을 걸고 도로를 건너 우리를 만나러 온 것이 틀림없었나 보다.

길냥이 가족으로 태어난 봄비는 유독 겁이 많아, 사람들을 무서워했고 온 몸이 곰팡이균으로 가득해서 털도 많이 빠져있는 상태에 눈곱에서는 고름도 나오는듯해서 급히 동물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처음엔 치료만 해주리라 싶었는데, 곰팡이 균은 완치가 되려면 격리해서 일주일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봄비를 데리고 카페로 돌아왔고 카페에서 함께 지내던 단비 역시 봄비와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다.


신기했던 건 단비의 반응이었다.

손님들이 새끼 고양이를 보려고 반응을 보이면 단비가 큰 덩치로 봄비를 가려주고 아무도 만지지 못하게 지키고 있는 게 아닌가!

봄비를 데리고 3일이 지날 때쯤 우리 가족은 모두 곰팡이균에 전염되어 온 몸에 피부병이 생겼는데 단비도 예외는 아니었다. 단비는 머리에 땜질도 생겼지만 지극정성으로 봄비의 곁을 지켜 주었다.

집에 데려와서 봄비가 처음 사료를 먹을 때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길에 있는 쓰레기 음식물을 먹다가 생전 처음으로 음식 같은 음식을 먹어서인지 봄비는 사료를 먹는 내내 너무 맛있다는 듯 소리를 내며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는 곤히 잠이 들었고 단비가 봄비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봄비는 남편을 잘 따렀지만 단비가 제일 좋아하는 나는 같이 사는 사람, 밥을 주는 사람으로만 대해서 단비가 질투 없이 봄비와 잘 지내게 된 것도 같다.

우리는 봄비가 단비의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란 마음에 결국 봄비를 키우기로 했고 올해 나이로 봄비는 아홉 살이 되었다.

단비는 봄비와 지내면서 이제 혼자 집을 지키지 않았고, 단비에게 봄비는 친구이자 동생이자 애기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봄비는 아직도 낯선 사람이 우리 집을 방문하면 부리나케 2층으로 올라가 숨었다가 손님이 가고 나면 그제야 내려온다.

또 우리와 함께 지낼 때도 단비와는 달리 놀아 달라고 보채거나 식을 달라고 떼쓰는 일이 거의 없고 2층에 테라스로 나가 건물 지붕을 하염없이 홀로 산책하고 돌아오거나 장롱 위에 올라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때가 많아서 봄비는 새침한 성격이니 아기가 자는 안방 출입을 금지하거나 육아로 인해 예전처럼 챙겨주지 못해도 자연스럽게 이해해줄 거라 믿었고, 괜찮을 거라 믿었는데 결론은 괜찮은 게 아니었다.

생각해 보건대 가까이 오지만 않았을 뿐이봄비는 항상 한별이 근처에 있었고 나름 우리와 함께 하고 었던 것이다.

봄비는 처음 우리와 가족으로 만났던 그때처럼 봄비의 속도대로 아기에게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고 아기한테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나에게도 그랬듯이 쉽게 다가가지 못했을 뿐 적당한 거리에서 늘 아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몇 주전이었다. 여느 날과 다르게 이른 아침 봄비는 야옹야옹 하며 아빠 엄마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밥을 채워달라는 소리인 줄 알고 봄비에게 다가갔는데 봄비의 오른쪽 눈에 동공이 풀어져 있는 것이었다. 드디어  것이 왔다!

고양이의 동공의 크기를 보면 낮인지 밤인지를 알 수있을 뿐만 아니라 기분도 파악할 수있는데 동공이 확장이되면<공포,호기심,스트레스>의 상태, 동공이 수축되면 <화남,불안>을 의미함

고양이의 동공은 밝기와 기분에 따라서 확장되기도 하고 수축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는 패턴을 유지해야 되는데,

간혹 동공이 한쪽 또는 양쪽이 열린 채로 계속 유지된다면 고양이가 아픈 상태일 수 있어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봄비와 9년 동안 살면서 봄비가 아파서 병원에 간 적이 딱 한 번이었는데 제주도로 이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갑자기 생활환경이 바뀌자 봄비는 큰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동공이 풀어져서 24시 동물병원에 달려갔더니 안약을 처방해 주었고 다행히도 하루 만에 정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외엔 크고 작은  질병 없이 9년간 건강하게 지내던 봄비가 아프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고양이는 강아지와 달리 아픈 게 눈에 보이면 이미 병이 깊어진 상태가 되어 손을 쓰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사실은 아마도 그만큼 방치했다는 자책으로 겁이 난 건지도 모를 일이다.


급히 고양이 인공눈물과 안약을 넣어주고 아빠가 정성스레 봄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더니 봄비는 온 힘을 다해 쪽쪽이와 꾹꾹이를 원 없이 해댄다.

리고 놀랍게도 몇 분이 채 안돼서 봄비의 동공은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휴.... 그렇다. 결론은 엄마, 아빠의 관심과 사랑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아마도 참을만큼 참았을테다. 새침데기라고 생각했던 봄비가 새침데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겁이 많고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봄비는 그저 자기의 속도대로 천천히 한별이를 알아 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봄비가 한번 아프고 나서야 이제는 봄비의 야옹 소리에 재빠르게 반응하게 된다. 또 피곤하다는 이유로 손 한번 내어주는 일이 힘들어서 몇 번씩 모른채 했었는데, 남편은 봄비의 쪽쪽이와 쭉쭉이 시간을 정해주었다.

그리고 쮸르간식 양을 반으로 나눠서 횟수를 늘려주고 쮸르에 질캔과 영양제를 타주게 되었다.

봄비가 관심받고 있다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


"봄비야 엄마, 아빠한테 받았던 사랑 이제 아가한테도 조금 양보해 줘야해, 봄비를 만났을때 단비가 엄마, 아빠 사랑을 봄비에게 나눠줬던 것 처럼 말야. 그리고 봄비도 한별이랑 좋은 친구해줘, 봄비야,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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