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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비 May 20. 2022

공동경비구역

강아지와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다.

이사를 면 단비와 봄비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영역싸움이었다.

되도록이면 자기의 영역을 넓혀가는 걸 좋아하고 자기 영역은 철저히 침범받기 싫어하는 단비와 봄비가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주었다는 건 정말 큰 배려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집 조그만 꼬맹이가 벌써 7개월이 되었다.

처음엔 우리 집 네발 가족들과 아기를 분리하기 위해 영역을 나누기에 바빴지만 댕이 단비와 야옹이 봄비랑 함께 지내면서 어느덧 우리에게 공동경비구역이 생겨났다.


단비와 제법 친해진 아기는 뒹그르르 놀다가 단비 옆에서 단비를 만지작하다 잠이 들기도 하고

아기의 놀이 공간에서도 단비와 봄비는 아기 곁에 자리를 잡고는 잠을 자거나 아기를 지켜보는 등 자기 할 일들을 하곤 한다.

아기만 보이면 캣타워 안으로 숨거나 2층으로 피신을 다녔던 봄비도 이젠 아기 곁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 날엔 아기를 목욕시킨 후 옷을 갈아입히고 나와보니 단비가 아기욕조에 들어가서는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지 않은가!


예전 집에 살 때는 테라스에 단비 수영장을 만들어주었었는데 열대야가 심했던 어느 날 새벽, 단비는 너무 더워서 잠이 오지 않았는지 문을 열어놓은 테라스의 방충망을 뚫고 수영장에 들어가서 한참을 놀다가 물을 흔건히 머금고는 침대로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유난히도 물놀이를 좋아했던 단비가 물놀이를 언제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에 단비에게 공을 던져주니 신이 나서는 욕실에서 거실까지 쏜살같이 왔다 갔다 뛰어다니며 사방에 물이 묻은 몸을 털고 다니며 맘껏 기쁨을 표현한다. 맞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십여 년간 욕실의 욕조는 단비 꺼였었다!!

7개월의 시간이 지난 지금, 단비와 봄비는 꼬맹이에게 자기들의 영역을 내어주고 이제는 함께 머무는 공동경비구역에서 아가와 함께 지내는 걸 보니 이제 아기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아기도 이제는 단비와 봄비가 시야에 들어오는지 꼬리를 흔들며 지나가는 모습만 봐도 까르르 웃으며 댕댕이와 야옹이를 관찰하기에 바쁘다.



곧 있으면 아기가 자유롭게 기어 다니기도 하고 걸어 다닐 텐데, 우리 가족 모두가 또 다른 불편함 들을 마주해야겠지만, 이 또한 잘 어우러져 가리라 기대해본다.


_봄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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