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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비 May 26. 2022

내 탓이오, 100%로 내 탓!

아기가 한창 기어 다니며 붙잡고 일어설 시기가 되었다.

은 욕조에서는 자꾸 밖으로 나오려고 해서 일어서도 되는 욕조로 갈아타고 한시름 놓았건만, 오늘 드디어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아기띠를 매고 욕조에 물을 받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목욕 준비가 안되어 있는대도 기어코 샤워기의 물소리를 듣고는 얼른 넣어달라고 발버둥을 치는 게 아닌가!

눈치코치 없는 단비는 자기 공을 가져오더니 한별이 옆에서 자기도 물놀이를 하겠다고 덩달아 조른다.

한동안 잘 놀길래 사진도 찍고 안정적으로 앉아있어서 큰 수건을 가지러 작은방에 다녀오는 순간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내 짐작으로는 수건을 가지러 간 시간이 5초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욕실로 가보니 아기는 타일에 벌러덩 내동댕이쳐진 상태로 울고 있고 단비는 옆에서 자기가 잘못이라도 한 냥 얼음 모드가 되어있었다.


아기를 안으며 "미안해, 엄마 탓이야."라고 재차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병원에 가야 할지 몇 초간 생각하는 찰나에 안고 있던 아기가 울음을 뚝 그치더니 다시 욕조로 들어간다고 발버둥을 친다.

너무 어리둥절해서 샤워기로 헹구고 나와야겠다 싶어 넣어주니 또 장난감을 만지작 거리며 잘 노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다친 데가 없는지 아기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너무 희한하게도 외상의 흔적은 없었다.


마침 아기가 자는 타이밍이라 분유를 먹이고 재우려는데 아무래도 근육통이 심할 듯싶어 아기 타이레놀 시럽을 같이 먹였더니 꿀꺽꿀꺽 맛있게도 삼키며 이내 쿨쿨 잠이 든다.


내 마음은 타들어가는데 단비는 아직도 요란하게 물놀이를 한참 즐기고 있는가보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당황스러운 일을 마주할 때면 늘 핑계를 대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내 탓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탓도 단 몇 프로는 있을 거라 가정하며 습관처럼 책임을 전가시켰다.

대상은 우리 집 네발 가족 단비와 봄비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끔 중문을 제대로 닫지 않고 외출할 때가 있는데,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는데도 단비가 보이질 않는다. 단비야~하고 불러도 나오질 않는다.

느낌이 쐐~~ 한데 중문은 열어져 있고 발을 내딛는 순간 여기가 어딘가 싶을 만큼 깊은 한숨을 내 쉬고는 쓰레기로 난장판이 된 거실을 한참 동안 바라만 본다.

아침에 깜박하고 미쳐 버리지 못한 쓰레기봉투를 현관에 놓은 채 나갔다 온 것이었다. 

쓰레기 더미 파헤치는 놀이는 단비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다! 수많은 맛있는 냄새들이 뒤섞여 하나하나 파헤치는 재미로 온 세상을 다 얻은 듯이 한참을 뒤지다가 운이 좋은 날이면 날짜 지난 빵이나 먹다 버린 음식들로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는 이내 엄마, 아빠에게 혼날걸 생각하며 단비 방석에서 얼음 모드로 혼날 시간을 마주하곤 한다.


쓰레기로 난장판이 된 거실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고 청소하는 일이 처음부터 그럴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처음엔 정신이 혼미해져서 보자마자 단비와 봄비를 매몰차게 혼줄을 냈다.

몇 번이 반복되고 나서야 온전히 단비와 봄비 잘못이 아니란 걸 알고는 원인제공을 했던 스스로를 자책하곤 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요즘은 눈앞에 이 기괴한 풍경이 펼쳐져도 "엄마 잘못이지!" 하며 단비를 탓하지 않는다.




어느 날은 퇴근하고 집에 오니 내가 정성스레 빚어서 만든 기와 접시가 바닥에 깨져있었다. 분명 단비가 닿지 않는 높이고, 그렇다고 봄비가 들어서 내동댕이칠 정도의 가벼운 무게도 아닌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아마도 봄비와 단비의 합작일 듯싶은데 어찌 됐든 접시 위의 군고구마는 단비의 입으로 들어가고야 말았다.

깨진 접시를 정리하며 봄비를 혼내니 단비는 저 멀찍이서 자는 척을 하고 있고 봄비는 큰 눈망울을 껌뻑이며 억울한 듯 기가 죽어있더랬다.


남편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쩌면 나의 가장 편한 책임전가의 단골 대상이기도 했다.

14년의 결혼생활 동안 집안일부터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이 맘처럼 되지 않을 때마다 남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은 가장 흔한 나의 수법이었고

남편은 나와는 다르게도 나의 불만사항들에 토를 달지 않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은 기꺼이 해결해주는 성격이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지적질하는 내 모습이 차츰 부끄러워지기 시작했고 네 탓이야! 보다 내 탓이야가 더 편해지는 알고리즘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갓난아기를 키우면서 삶의 많은 부분들이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삶은 더욱 치열하고 분주하고 힘겨운데도 엄마라는 존재의 내면은 큰사람이 된 듯 안정되고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아기가 울면 곧바로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싶어 스스로를 되뇐다. 이미 아기의 잘못은 단 1%도 없다고 가정하고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관대한 적이 있었던가!

오늘도 역시 백 프로 내 탓인 것이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나약한 나를 직면하는 동시에 아기가 자라는 만큼 아가도 나를 더 큰 사람으로 키워주는듯 싶다.


혹독한 육아 시절을 보내고 있는 지금,

나는 아기에게 무척 관대해져 있고 책임전가의 습관들을 야금야금 죽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아기가 스스로 판단하고 알아들을 시기가 오면

몇 프로의 책임전가 습관을 야금야금 꺼내어 써버릴지도..



탓을 찾아내려 온갖 머리를 굴리던 내가, 엄마가 된 이후로는 내 탓을 먼저 인정하고 주변엔 자연스레 면죄부를 주며 살아가고 있다.

참 놀라운 일이다.

백 프로 내 탓이라고 하면 억울할 것 같아 주변의 책임을 물어가며 살아왔건만 남을 탓하지 않고 전부 내 탓이라 여기고 마무리를 지어도 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되려 위로해주며 다독여주는 이들을 보며 홀로 책임을 지는 일이 이리 홀가분한 일인가도 싶었다. 


그래, "내 탓이야"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건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걸 거야!


_봄 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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