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기르면서 운동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운동을 가는 날 아기가 컨디션이 안 좋거나 아프기라도 하면 운동은 과감하게 포기를 해야 하고 운동을 하러 나가기 직전에 아기가 응가를 하거나 보채기 타임이 되어버리면 일분일초라도 아기에게 시간을 더 써야 하기에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필라테스를 가는 길은 늘 분주하기만 하다.
집에서 필라테스센터까지 가는 길은 도보로 약 10분이면 충분하다. 그렇지만 나는 늘 5분 전에 나와 빠른 걸음으로 경보와 달리기 그 사이의 속도로 센터를 향해 질주한다.
며칠 전 늘 가던 코스로 여전히 익숙한 속도를내어 경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느 날처럼 좌측으로 턴을 하는 순간 그야말로 어처구니없이 넘어지고야 말았다. 아니 자빠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싶다.
좌측으로 턴을 하는 위치에는 큰 오피스텔 건물이 공사 중이었는데 겉으로 보기엔 땅이 바짝 마른 상태였다. 하지만 전날 비가 와서 시멘트가 흘러내렸고 해가 쨍쨍하게 내리쬐던 오전 내내 땅이 마른 상태로 보였지만 힘차게 발을 내딛자마자 그대로 쭈욱 미끄러지면서 덜 마른 시멘트 흔적이 드러나는 게 아닌가!
정말 아픈 건 사실이었지만 너무 창피해서 곧장 일어나 까진 무릎과 쓰라린 발등을 모른 채하며 집으로 되돌아왔다.
아기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요즘, 나의 걸음걸이도 바뀌기 시작했다.
10개월에 들어선 우리 아가도 아빠 엄마의 손을 놓고 몸의 모든 체중을 발에 실어 일어서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한발 한발 걸음마를 연습하며 결국 스스로 바르게 걷는 날이 오고야 말 테다.
어른이 되었기에 당연히 잘 걷고 있다고 생각을 했건만 아기와 함께 걷다 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위험하고 분주하게 걸어 다녔던지 새삼 깨닫게 된다.
사실 단비를 산책시킬 때까지만 해도 바른 걸음걸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한 손엔 단비의 목줄을 잡고 한 손엔 핸드폰을 보며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보면 예기치 않게 위험한 순간들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막상 큰 사고가 일어난 적은 없었기에 나의 걸음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아기띠를 메고 아기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요즘, 나는 나의 한걸음 한걸음에 최선을 다해 걷고 있는 중이다. 최선을 다해 걷는다는 것은 내 걸음에 집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속도는 차분하게 걷고 걸을때 핸드폰을 보지않고 바닥을 확인하며 발뒤꿈치부터 힘을 실어걷는 연습을 하고있다.
혹시라도 무심코 가벼이 걷다가 발을 접질려서 아기와 넘어지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마흔이 넘어서 다시 걸음마를 배우는 일은 그동안 자유롭게 살아온 내 삶의 전반적인 틀이 재정비되는 일과 다름이 없는 것 같다.
운전을 시작할 때 스틱 수동 승용차를 운전하던 시절이 있었다. 초보운전 때는 속도가 올라갈 때마다 머릿속에서 계산을 하고 클러치를 밟으며 기아를 변속시키는 게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오토 승용차로 운전하는 요즘은 번거로울 것 없이 편하게 운전을 하지만 고속도로에서 앞 차를 따라 신나게 달릴 때는 내가 몇으로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속력을 올리고 있을 때가 종종 있다.
조금은 불편했지만 클러치를 밟을 때마다 속도를 인지하며 운전했던 스틱 운전 시절이 떠오른다.
1단에서 5단까지의 속도를 인지하며 조금은 긴장한 채 운전했었던 그때와 같이 내 걸음과 생각과 판단을 담당하는 뇌에도 클러치를 달아주면 좋겠구나 싶은 마음도 든다.
누군가를 내 품에 안는 일,
누군가를 지켜내는 일이 이토록 나의 삶 자체를 온통 뒤흔들어 놓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렇지만 흔들리고 정비된 내 모습을 마주하다 보니 조금은 더 어른스러워지고 성숙해가는 듯싶어 초보 엄마의 삶을 더욱 응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