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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비 Sep 15. 2022

화가 나는 진짜 이유를 찾다

엄마 성장기

반려견, 반려묘와 함께 아기를 키운 지 10개월이 되었다. 첫 아가를 키우는 한 달 한 달이 참으로 힘겨웠지만 아마도 댕댕이 단비와 야옹이 봄비 또한 아가와 지내는 시간들이 만만치 않았을 테다.


아기가 누워있을 때는 몰랐는데 기어 다니기 시작하니 매 순간 아찔한 위험들이 우리의 삶을 도사리고 있었다.


잠시 한 눈을 팔면 아기는 콘센트에 연결된 반려동물 정수기에 손을 담그고는 물장구를 쳐서 온 바닥이 한바탕 물난리가 난다.

야옹이 비는 캣타워가 있어서 사료그릇을 높이 놔둘 수 있지만 단비가 밥을 먹고 나서 바로 치우지 않으면 아기는 금세 기어 와서 과자처럼 집어먹고 있다.


욕실도 예외는 아니다. 깜박하고 문을 열어놓으면 어느새 날아오는 속도로 기어와 강아지 배변판 위에 앉아 열심히 배변판을 두드리며 놀고 있다.


한 번은 2층으로 올라는 계단 밑에 단비의 물건들을 숨겨놓았는데 아기의 머리통보다 작은 공간을 어떻게 기어서 들어갔는지 나오지를 못하고 앉아서 엉엉 울고 있는 게 아닌가! 앉아있는 아기의 이마를 뒤로 재쳐서 발목을 잡고 끌어내려고 해도 아기는 뒤로 넘어가질 않고 더 꼿꼿하게 버티는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 119를 불러야 하나 생각하다 나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계단과 계단 사이의 틈으로 내 얼굴과 양손을 넣었다. 그리고 아기를 안아서 눕힌 후에야 두 다리를 붙잡고 꺼낼 수 있었다.


놀란 아기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데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 쪼끄미를 혼내야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 아기를 안고 달래며 조곤 조곤 할 말은 하고야 만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화를 내는 이유가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피해를 주면 그 누군가가 미워져서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내가 화가 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아기가 다칠까봐서 였다. 


이따금씩 단비도 우리가 없을 때면 현관에 버리지 않고 놓아둔 쓰레기봉투를 신나게 분리해 놓는다. 집에 오면 단비는 웬일로 나를 반기러 나오지 않고 얼음이 되어있다.

순간 싸늘한 직감으로 문을 열면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온갖 지저분한 쓰레기들이 난리 장판이 되어 있다. 그리고 신나게 입으로 쓰레기를 파헤쳤는지 축축하게 젖어있는 단비의 입이 클로징 된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그 순간 나는 묵묵히 쓰레기를 치우고 집을 환기시킨 후에야 단비를 마주한다. 이 멍멍이가 또 나를 고생시키는구나!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단비를 한껏 째려본다.



아기를 기르면서 화가 나는 진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내가 진짜 화가 나는 이유가 뭘까? 결코 나를 고생시켜서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로 인해 상대방이 잘못될까봐 걱정이 드는 마음이 커서였다. 아기가 잘못될까봐, 단비가 쓰레기 더미의 상한 음식을 먹고 탈이 날까봐였다.


그렇다! 내가 진짜 화가 나는 이유를 먼저 생각하면 야단이 먼저가 아니라, "괜찮아?"가 먼저 나왔어야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치밀어오르는 화를 잠재우고 교양있게 "괜찮아?"를 먼저 물어보는 나를 토닥여본다. 더 신기한 일은 순간의 화를 잠재우고보니 원인을 제공한 나의 탓이 버젓이 보이는 게 아닌가!


그래! 계단 밑에 단비의 물건을 두는 게 아니었어, 계단 밑을 아기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놓지 못했어! 쓰레기 봉지를 바로 버리지 않아서 단비가 쓰레기봉투를 파헤치게 되었어!


결국 내가 화를 내는 이유는 누군가로 인해 내가 피해를 입어서가 아니라 나의 모자람으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 것에 대한 방어기전이었던 것이다! 순서를 바로 잡고 나서야 굳이 화를 낼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모자람을 수습하는 꼴이 되어 버렸으니 이제 잘못을 전가하던 나쁜 습관은 끊어내고 나의 모자람을 용기 있게 대면하고 상대방이 괜찮은지를 먼저 바라볼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바래본다.


_봄 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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