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은 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일단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마치 우주 만물이 나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신기할 정도로 일이 척척 진행되었다.
상담센터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예전에 진료를 받았던 정신건강의학과에 전화를 걸었고, 운이 좋게도 바로 다음 날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사실, 2년 전에도 나는 번아웃 상태였고, 그때도 일을 쉴 것을 권하셨던 의사 선생님은 나의 결정을 두 손 들어 환영하시는 듯했다.
직장에 나의 의사를 전달하였고, 인사 결정과 관련해서 몇 번의 상담을 거쳤다.
며칠 후, 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마친 후에는 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고, 진단서의 병명 란에는 다음과 같은 두 줄이 적혔다.
스트레스에 대한 급성 반응
중등도 우울 에피소드
살기 위한, 나를 지키기 위한 저항의 몸부림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객기였을까?
모든 일을 처리하는 동안... 내게는 '일을 쉰다'는 목적만이 보였다.
그 뒤의 일은 어떻게 감당할지, 지금의 결정이 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병휴직' 상태가 되었고, 계획에 없던 갑작스러운 '휴식'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휴식의 첫날.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나 돈 걱정이었다.
'가계 수입이 줄었는데 어떻게 하지? 너무 대책 없이 질렀나? 그냥 더 참아볼 걸 그랬나?'
가족들이 출근과 등교를 모두 마치고 홀로 집에 남자, 불현듯 외로움과 불안이 밀려왔다.
'뭘 해야 하지? 그냥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정말 괜찮은 걸까?'
몸은 집에 있지만... 생각은 습관대로 혼자 출근해 버린 것 같았다. 말 그대로 정신이 나가버린 사람처럼 느껴졌다.
'혹시 급한 연락이 오지는 않을까? 별일 없겠지?'
내가 왜 이런 걱정이나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핸드폰을 수차례 들여다보고, 단톡방을 들락거렸으며,
'지금 쯤 다들 점심을 먹겠구나... 오늘도 회의가 있었을까? ... 이제 곧 퇴근 시간이네.'
마치 원치 않는데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처럼, 미련이 뚝뚝 떨어졌다. 미련스럽게.
'이게 맞나...? 잘 한 결정인 걸까...?'
언제나처럼 의문이 가득하다.
이미 결정을 내렸고, 되돌릴 수도 없는 일. 그러니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가고 싶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한 '휴식의 시간' 동안, 나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지...
짙은 안갯속에 갇힌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멍하니 서서 두리번거릴 뿐, 단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다.
그동안 잘 숨겨왔다고 믿었던 병적인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들고, 내 모든 감정을 압도한다.
세수를 하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잠을 청하다가도.
갑자기 서러운 울음이 터져 나왔다.
기어이 용기를 내서 나간 산책 길에서도, 불현듯 눈물이 줄줄 흘러 고개를 들고 걸을 수 없었다.
중등도 우울 에피소드.
맞다. 나는 지금 우울증을 앓고 있다.
그래, 이 상태로 일을 계속하는 건 무리였을 거다.
그러니 결국 잘한 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