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지 못했고, 도망쳤고, 실망시켰고.

- 두 번째 상담에서 쏟아낸 마음들

by 너울

두 번째 방문한 상담센터.

지난 며칠간 여행에서 느꼈던 잔잔한 평온함과는 달리, 이 공간은 다시 현실이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나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춰두었던 무의식의 언어들과 수치스러운 감정들을 마주하게 된다.

문고리를 힘주어 잡으며, 나는 내 목구멍 언저리에 손을 넣어 물컹하고 끈적이는 어떤 덩어리를 움켜잡는 상상을 했다.

오늘 이곳에서 그걸 다 꺼내 놓고, 털어 버리고 갈 수 있을까...




상담 선생님께 일주일 새 일어난 일들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귓가에 닿는 건조한 내 목소리와는 달리,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다.

가슴과 머리가 따로 노는 기분이었다.

가슴은 끊임없이 괴로움을 호소하는데, 머리는 태연하게 묻는 것 같았다.

'왜? 도대체 또 뭐가 문제인데?'




"그래서... 일 년 정도 그냥 쉬기로 했어요."


내 이야기가 마침표에 도달했을 때, 상담 선생님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래서, 지금은 마음이 좀 어떠세요?"


"제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던 일이 사라졌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어쨌든 저는 직장에서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도망친 거잖아요. 더 잘할 수는 없었을까... 스스로가 실망스럽고...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떠넘기고 온 일들이 자꾸 마음을 불편하게 해요. 제 마음 편하자고 한 결정이,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줬을지도 모르고요."

"그리고... 가족들도 저에게 실망했겠죠?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잖아요. 다들 애써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데, 저만 이렇게 주저앉아 있어도 되는 걸까요?"


또 몇 마디 말 사이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뱉고 있는 것은, 언어일까 울음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까.


"부모님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저의 이런 감정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도 걱정이에요. 힘들어도 조금만 더 버텼어야 했나 싶고요. 부모님은 저한테 많이 실망하셨을 거예요. 그리고 아이들은... 저를 통해 '힘들면 그냥 포기해도 된다.'는 걸 배울지도 모르죠."


왜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갔는지 모르겠지만, 학창 시절부터 부모님의 기대만큼 해내지 못했던 기억들이 줄줄이 떠올맀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실망스러운 딸이었을까.


뒤늦게 알았지만, 약속된 시간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겨우 이야기를 끝내고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말이 멈춘 뒤 한동안 이어진 정적을 깨며, 상담 선생님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오늘 가장 많이 표현하신 감정이 '버티지 못했다', '도망쳤다', '실망시켰다'라는 거였어요.

하지만 저는 이 모든 말들에 조금도, 정말 0.001%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