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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까스와 스페이스 바주카

by 김남훈 해설위원

“남훈아. 지금 어디냐. 와라.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와라.”

전화 너머로 들리는 관장님의 목소리는 언제나 무뚝뚝했다. 어딘가 조금 급하고, 조금 거칠고, 그래서 더 진심 같았다. 몇 년을 알고 지냈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호출은 처음이었다. 나는 대림역, 관장님은 건대입구. 7호선을 타면 곧장 연결된다지만, 서울의 거리란 본래 시간의 문제보다 마음의 문제다. 가까워도 멀고, 멀어도 어쩔 수 없이 간다. 관장님의 말에, 나는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하지만 일말의 기대는 있었다. 대체 뭘 먹는 것일까? 맛집 프로그램에 갑자기 대타로 불려나가는 심정이 이런 것일까.


체육관에 도착하자 관장님은 언제나처럼 카운터에 앉아 계셨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주위를 긴장시키는 기운. 190cm가 넘는 키, 130kg의 육중한 몸. 한국에서 역발산, 일본 레슬링계에서 ‘스트롱머신 2호’. 신일본 프로레슬링 링을 누비던 시절, 그는 복면을 썼다. 팬들은 그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링 위에서 그의 존재는 압도적이었다. 기계처럼 움직이고, 괴물처럼 타격을 날리고, 가끔은 무너졌다. 실제로 보면 눈 앞에 63빌딩이 서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황금색 거대한 것이 링 모서리 턴 버클 꼭대기에서 돌려차기를 하면서 링 중앙까지 날라간다. 그것뿐이랴. 링 밖 장외에 있는 상대를 향해 탑 로프를 뛰어넘어 날라간다. 탑로프 플란챠.그 엄청난 박력에 일본 아나운서는 ‘스페이스 바주카’라는 애드립을 날렸고 당대 최강 안토니오 이노키도 그 기술을 받아들이기를 포기하고 도망갈 정도였다. 그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건 기술이 아니라 선언이라고.

그런 사람이 오늘, 나를 부른 것이다. 그리고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했다. 마음이 들떴다. 기대는 자란다.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우리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관장님의 차는 벤츠였다. 번쩍이는 검은 차체가 무심히 놓여 있었고, 그 앞에서 관장님은 못 하나를 주워 들었다. “멀쩡하네. 쓸 수 있어.” 그는 그렇게 말했다. 한때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싸우던 사람도, 지금은 땅바닥의 못 하나를 아까워했다. 그 순간, 나는 이해했다. 이 사람은 흘리지 않는다. 벌어도 흘리지 않고, 잃어도 체념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를 ‘살아남은 자’로 만든 것 아닐까.


차는 출발했다. 조용한 실내, 탄탄한 서스펜션. 네 사람 같은 두 사람의 무게를 덜컥임 없이 받아내는 독일의 기술력. 올림픽대로를 타는 듯하다가, 곧바로 빠져나가 한남대교로 향했다. 어디로 가는 걸까. 미슐랭 스타 식당? 방송에 안 나온 숨겨진 맛집? 머릿속은 자꾸 상상 속의 매치업을 그렸다. 장충체육관에서 시합을 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도쿄돔이다. 입장로를 향해 가는데 검정색 펜슬스커트를 입은 여인이 갑자기 달려들더니 ‘팬이에요’라고 외친다. 설마 그럴리가. 고개를 몇 번 훠이 훠이 돌리니 신사역 근처의 어느 오래된 골목이다. 간장게장으로 유명한 식당가를 지나 더 안쪽으로. 그리고 도착한 곳은… 놀랍게도 돈까스 전문점이었다. 관장님은 익숙한듯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문을 열고 성큼 성큼 들어가 안쪽에 앉는다. 주인과 종업원인듯한 사람들이 살갑게 대하지는 않지만 전혀 놀란 기색도 안 보이는 것을 보니 단골이긴 한 것 같다.


“여기 생선까스가 맛있어. 두 개 주세요” 나한테는 묻지도 않고 주문을 끝냈다. 그의 시그니처 기술인 파워 슬램처럼. 빠르고 정확했다.

실망은 컸다. 기대가 높았기 때문이다. 생선까스. 그리 나쁘지 않았다. 바삭했고, 부드러웠다. 나는 묵묵히 포크를 들었다. 그 옆에서 관장님은 별말 없이 식사를 이어갔다. 침묵이 흘렀고, 그 사이로 튀김옷이 바스락거렸다. 고작 이걸 먹으러, 내가 여길 온 건가. 고작 이걸 먹자고, 부른 건가. 마음속에서 작게 마찰음이 일었다.

하지만 명태살이 잘게 씹혀 식도를 몇 번 타고 들어가면서 관장님의 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이 아닌 곰같은 커다란 손이 나이프로 생선가스를 자르고 포크로 찍어서 타르타르소스에 적신후 입으로 운반했다. 정교하고 정밀한 작업. 이 생선까스는 음식 그이상이 아닐까. 일본에서 지내던 시절, 링 위에서 얻은 상처들, 싸움이 끝난 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작은 정식집. 어딘가 외로웠을 그날의 자신에게 위로가 되었던 한 접시의 따뜻한 생선까스. 남미 출신의 레슬러 ‘집시 죠’는 일본에 머무는 동안 소고기덮밥을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에게 덮밥은 그를 불러준 또다른 고향 일본에 대한 기억이자, 생존의 증표였다. 얼마 전에는 추성훈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리베라 스테이크’ 이야기를 했다. 그곳은 꽤 오래전 부터 외국인 프로레슬러,격투가들이 찾던 곳인데 오너와 친분이 생기면 가게 로고가 들어간 야구 점퍼를 선물받기도 했다. 그렇게 손에 넣은 ‘리베라 스테이크’가 새겨진 야주점퍼는 일종의 보증서 이기도 했다. 파이터를 볼 줄 하는 오너가 인정한 강한 사람이라는 증명. 링에서 인생을 걸고 싸우던 이들이 시합 끝내고 먹었던, 기운을 다시 불어넣던 단백질 덩어리. 그것은 근육의 연료이기도 했지만, 삶을 붙들던 의식이기도 했다.


음식은 때로 사람을 견디게 한다. 누군가에겐 엄마가 끓여주던 된장찌개가, 또 누군가에겐 야근 끝에 혼자 먹던 편의점 삼각김밥이, 삶과 직결되는 유일한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그날의 생선까스는 아마도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다시금 관장님의 얼굴을 바라봤다. 말이 없고, 표정도 없었다. 하지만 그 속에 많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링 위의 시간, 고국과 타지 사이의 균열, 그리고 겨우겨우 붙잡아낸 한 사람의 중심.


지금도 생선까스를 먹을 때면 그날이 생각난다. 기대와 실망, 그리고 조용한 존경이 교차했던 점심시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특별한 음식을 먹는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었던 순간.

그때부터 얼추 20년은 훌쩍 지난 2025년 5월 초 평택의 PWS 도장에서 젊은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봤다. 그들이 훈련을 끝내고 땀이 식으려고 하던 차에 내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라고 네이버 지도로 검색했던 인근에 있는 중국집으로 데려갔다.


“오늘 내가 낼테니까 아우님들은 먹고 싶은거 시켜. 난 짬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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