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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혹은 마음의 불을 옮기는 사람

by 김남훈 해설위원


이호선, 혹은 마음의 불을 옮기는 사람


세상에는 스스로 빛을 내는 사람과 그 빛을 받아 반사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타인의 축축하게 젖은 심지에 기어이 불을 옮겨 붙이고야 마는 사람이 있다. 내게 이호선 교수는 언제나 세 번째 유형의 인간으로 기억된다. 그를 생각하면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가 떠오른다. 신들의 영역에 있던 불을 훔쳐 어둠과 추위에 떨던 인간에게 건네주어 문명의 새벽을 연 거인. 그가 인간에게 건넨 것은 단순한 온기가 아니라, 스스로 도구를 만들고 어둠을 밝힐 수 있다는 가능성, 즉 '능동성'의 불씨였다. 이 교수가 내게 건넨 것 역시 그와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그와의 첫 만남은 10년도 더 전, 목동의 한 라디오 방송국 스튜디오에서였다. 백야처럼 길고 나른한 오후의 한가운데 시작된 방송은, 세상의 모든 빛과 소음이 스튜디오의 두꺼운 유리창에 막혀 희미한 풍경으로만 남는 그런 곳에서 진행되었다. 방송이 하루의 무게를 이고 서서히 저녁의 초입으로 접어들 무렵, 나는 종종 그의 시선이 허공을 향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유리창 너머, 빽빽한 아파트 단지 사이에 섬처럼 떠 있는 놀이터였다. 그곳에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을 그는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마치 온몸으로 태양전지판을 펼쳐 그 빛을 남김없이 빨아들이는 것처럼. 그렇게 한동안 에너지를 축전하고 나면, 그는 이내 고개를 돌려 마이크 앞에 앉아 누구도 생각지 못한 혜안 가득한 의견을 쏟아냈다. 나는 그 에너지가 그의 힘의 원천일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당시 그는 이미 ‘아침마당’이나 ‘동치미’ 같은 여러 방송을 종횡무진하며 대중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통하는 상담심리학의 권위자였다.

64638006_2844133338961078_7561716092737945600_n.jpg 이호선 교수 (사진출쳐 이호선 페이스북)

그의 말은 값싼 위로를 경계했다. 그는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으로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의 처음과 끝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그의 심리 분석은 차가운 메스가 아니라, 뭉친 근육을 정확히 찾아 풀어내는 숙련된 마사지사의 손길에 가까웠다. 놀라웠던 것은 조명이 꺼진 뒤의 그였다. 방송의 열기가 식고 모두가 파김치가 되어 흩어질 무렵이면, 그는 남아서 스태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곤 했다. 막내 작가의 해묵은 연애 고민부터 중견 PD의 고질적인 인간관계 문제까지, 그의 상담소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지식인의 권위나 방송인의 화려함 대신, 그는 기꺼이 근처에 사는 ‘동네 사람’이 되어주었다.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는 그 무게를 힘겨워하는 기색 없이 너끈히 감당해냈다. 어쩌면 타인의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것이 그의 타고난 소명이었을 것이다.


그 후로 한동안 우리는 각자의 궤도 위에서 바쁘게 살았다. 시간은 내게 그리 너그럽지 않았다. 왼쪽 무릎의 인대는 의사가 ‘0.1mm도 남아있지 않다’고 선고한 상태였다. 진통제에 의지하지 않으면 한 걸음 한 걸음이 고문이었고, 계단은 에베레스트처럼 느껴졌다. 거동조차 불편한 지경에 이르자 육체의 통증은 영혼을 갉아먹었고, 좁아진 반경만큼이나 마음의 세계도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야심 차게 시작했던 프로젝트는 동력을 잃은 돛단배처럼 지지부진하게 표류했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내려앉는 듯한 무력감 속에서 나는 천천히 침잠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그를 보았다. 여전히 명쾌한 목소리로 누군가의 헝클어진 마음에 길을 내어주고 있는 모습. 그 순간,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이다. 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는 수년 만에 그에게 연락했다.


우리는 도넛 전문점 2층의 소란스러운 창가에 마주 앉았다. 먼저 연락한 것은 나였지만, 대화의 주도권은 순식간에 그에게 넘어갔다. 형식적인 안부 인사는 1분 만에 끝났다. 그는 마치 숙련된 의사가 환자의 병색을 살피듯 단박에 나의 침체를 간파했다. 그리고는 주저 없이 ‘미션’을 던지기 시작했다.


“새 책을 써. 지금 구상하고 있는 거 말고, 완전히 새로운 거. 당장 시작해.”


“강연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어야지. 지금의 나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걸로. 내가 도울게.”


그의 말은 단순한 제안이나 권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명령에 가까운, 거부할 수 없는 에너지의 파동이었다. 마치 할머니가 손주 녀석의 숟가락 위에 잘 발라낸 백숙 살점을 뚝 떼어 올려주듯, 그는 자신의 활기와 확신을 내게 떼어주고 있었다. 어디서 저런 지치지 않는 힘이 솟아나는 걸까. 브래드 피트를 꼭 닮았다는 그의 배우자와의 안정적인 삶에서 오는 여유인가-미남과 함께 사는 여자는 대개 매우 행복하다-하고 시답잖은 농담을 속으로 삼켰다. 그것도 모자라 그는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고는 “이 사람하고 당장 연결해줄게”, “저 사람한테는 내가 미리 말해둘게”라며 새로운 인연의 다리를 순식간에 놓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꺼져가던 화롯불에 누군가 마른 장작 한 아름을 던져 넣고 힘껏 풍구를 돌리는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데, 이상하게도 그 소용돌이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 에너지가 내 안의 녹슨 태엽을 억지로 감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놀라운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그의 ‘미션’을 이정표 삼아 새로운 책의 기획안을 쓰고, 흩어져 있던 생각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원고를 채워나가자, 내면의 고통이 문장이 되어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이하게도 나를 옭아매던 왼쪽 무릎의 통증이 점차 옅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체중을 감량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병행한 덕이 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쇠약한 몸을 일으켜 헬스장으로 향하게 한 힘, 무거운 바벨을 다시 들어 올리게 한 의지는 결국 마음의 부담이 가벼워진 데서 왔다는 것을. 육체와 정신이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그는 내게 끊어지기 직전의 그 끈을 다시 엮어준 셈이다.


그리스 신화의 아폴론은 이성과 빛, 예언과 의술, 그리고 음악의 신이다. 그는 다재다능함으로 문명의 길을 밝히고, 병든 자를 치유하며, 리라를 연주해 황량한 마음에 조화와 질서를 선물한다. 어쩌면 이 시대의 좋은 상담가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 혼돈에 빠진 이에게 질서를, 절망한 이에게 나아갈 길을, 상처 입은 이에게 치유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사람. 이호선 교수는 내게 그런 아폴론적 존재로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에너지를 나누어주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더 큰 에너지를 얻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온전히 자신의 긍정적 기운을 불어넣는 순간,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비범하고 경이로운 기적일 것이다. 그가 내민 불씨를 소중히 받아들고, 이제 나 또한 누군가의 어둠을 밝힐 작은 등불 하나를 든 셈이다. 이 자리를 빌려, 나의 프로메테우스에게, 나의 아폴론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그는 내 롤모델이다.


김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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