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남훈 해설위원 Aug 13. 2018

무례함

프로레슬링과 강연. 그 싸움에 대하여

프로레슬링과 강연은 다른 듯하면서 맥이 닿아있다. 프로레슬링이 링이라는 가로 세로. 6미터의 공간을 활용해서 관객의 시선과 심장을 사로잡는다면 강사는 연단에 키노트와 프리젠터를 이용해 청중을 끌어들인다. 경기장 관객이든 강연장 청중이든 그들의 태도는 항상 같다. "이놈 어디 함 보자" 다. 프로레슬링 쑈라는 거 어차피 아는데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 요즘 구글에 입력만 0.5초 만에 안 나오는 게 없는데 네까짓 게 떠들어봤자 거기서 거기지. 


프로레슬러와 프로'강사'는 이런 태도에 익숙해있다. 못 본 척하면서 묵묵히 시합을 그리고 강연을 해내지만 관객의 의도를 모를 리 없다. 때론 가늘고 질긴 피아노 줄로 일대다로 직결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저쪽은 쪽수를 믿고 이쪽을 깔보지만 어림없다. '프로'라는 접두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피아노 줄을 팽팽하게 당겨서 긴장감을 유지하다가 한 번에 풀어버리기도 하고 슬며시 당겼다가 풀면서 변죽을 올리다가 아예 옆으로 확 낚아채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들은 내심 이런 걸 기대하고 온 것이다. 자기들 손바닥 위에서 노는 프로레슬러를, 프로강사를 돈을 내고 만나고 싶은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좀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밟힐 준비가 되어 있는 손님들이다.


2012년부터 동기부여 강연을 뛰고 있다. 정확히 맞아떨어지지는 않겠지만 구글 메일함과 캘린더를 조사해보니 일 년에 80~100회 정도 연단 위에서 섰다. 신학기철이나 연말에는 초중고 특강을 나가기도 한다. 학교 강연은 기업 강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연료가 적기에 많은 강사들이 꺼려하는데 이것뿐만이 아니라 곤혹스러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 첫 번째 '서류'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 대기업 강연을 수 십 차례 했지만 그 어떤 대기업도 서류를 요구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주민등록증, 통장 사본인데 이것도 최근엔 문자나 구두로 번호만 알려주는 것으로 끝난다. 이미 나에게 강연 요청을 할 때 내가 어떤 주제로 어떻게 강연을 하는지 인터뷰, 강연 영상, 주변의 평판 등등을 통해서 종합적으로 판단을 끝냈기에 다른 서류가 필요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는 다르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 '성범죄 정보 조회 경력 동의서'는 약간 인상을 찡그리면서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강사 관리카드, 교안, 자격증명서 등등을 요구한다. 수집 자체가 불법인 주민등록번호도 이 서류, 저 서류에 적어야 하고 신분증, 통장 사본도 제출해야 한다. 오직 원고료 책정을 위해서 '윗선'에 제출해야 하는 강연 원고도 보낼 때마다 이게 뭔가 싶다. 한 번은 주제와 정말 동떨어진 에세이 파일을 잘 못 보낸 적이 있는데 그냥 통과된 적도 있다. 그 누구도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서류 형식은 HWP 아래아 한글이다. 맥 환경에서 워드와 페이지만 쓰는 내 입장에선 네이버로 옮겨서 네이버 워드로 편집하거나 하는데 여간 곤혼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체 강연 요청을 받은 것인 나인데 나 스스로 내가 얼마나 유능하였는지, 내가 얼마나 공부했는지, 내가 얼마나 유명한지를 왜 '증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받는 교사의 메일 주소가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민간 포털 메일 주소면 머리가 하얘진다. 과연 내 개인 정보는 제대로 폐기가 될까. 


두 번째는 '시설'이다. 데스크톱이 내장된 이른바 전자교탁은 운영 체계 및 오피스 프로그램의 업데이트가 안 된 지 한참이라 조금만 큰 용량의 파워 포인트 파일을 실행시켰다간 버벅 거리다가 멈춰버리고 만다. 프로젝터는 천장에 매달려 있지만 램프 교환 주기를 한참 지난 것을 그대로 쓰고 있기에 수증기가 가득 찬 목욕탕 창문처럼 희뿌여서 보이지 않는다. 마이크와 앰프는 있지만 고장 났거나 있어도 세팅이 엉망이라서 노트북 스피커 단자에 플러그를 꽂는 것만으로도 '부~~' 화이트 노이즈가 줄어들지 않고 강연 내내 지속된다. 학생들은 학교의 역사와 함께 한 듯한 먼지 투성이 강당에 의자도 없이 맨바닥에 책상다리로 앉아있다. 점심시간 직후라면 잠에 빠지는 게 당연하다. 학생 입장에선 정규교육과목도 아닌 특강이란 형식의 1인 강연을,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교실에서 강당으로 강제 이동 조치된 후, 매캐한 먼지와 스피커의 화이트 노이즈와 희뿌연한 화면을 바라보며 쉬는 시간 없이 90분 동안 책상다리로 앉아있어야 하는 사실상 '저강도 고문'을 받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면 '교사'다. 익숙지 못한 환경에 처해지면 대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는다. 학생 입장에선 스마트폰을 쳐다보거나 옆 학생과 잡담을 하거나 자버리는 것이 생면부지의 40대 중년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보다 훨씬 남는 장사다. 그럼 나도 '그래 어디 함 해보자. 내가 너희들이 하는 게임보다 잡담보다 더 재밌게 만들어주겠어' 라며 전투의지가 불끈 솟아오른다. 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바다를 가드 채운 연합군 선단을 관측한 독일군 기총수의 심정이랄까. 풍선인형처럼 노스페이스 패딩 재킷을 입고 강당 바닥을 시커멓게 채운  학생들을 보면 비록 적이지만 그 웅대한 규모에 전율과 함께 승부에 대한 욕심도 끝까지 모두 돌린 수도꼭지처럼 콸콸 넘쳐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휴대폰 꺼라. 압수한다.' '떠들지 마라!' 고함을 치는 교사들이 있다. 아니, 지금 이 승부는 숫자로 치면 내가 불리하긴 하지만 분명 강사와 청중이란 구도로 진행이 되고 있는데 경기 흐름을 망치는 제삼자의 개입이라니. 내분비 조직에서 아직 성장호르몬이 나오는, 즉 뇌의 사고 구조만으로 움직이지 않는, 호르몬과 몸 근육이 직결된 학생들이 누군가 고함친다고 곧이 곧대로 들을 리 없다. 그 교사의 목소리는 일방통행 전통시장 뒷골목에서 접촉사고라는 불행을 맞이한 두 운전자처럼, 두 사람의 성량을 합친 것처럼 커지고 더 흥분한다. 학생들은 살짝 움찔한 듯하다가 스마트폰을 대신에 옆 친구랑 귓속말하기, 귓속말 대신에 스마트폰 슬쩍 보기처럼 본인들의 행동에 변화를 주되 그 본질을 잃지 않는 영리한 방법으로 대처를 계속한다. 이건 망한 거다. 완전히 망한 거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무례함을 질책한다. 말이 짧아지고 50번 사포처럼 거칠어진다. 하지만 묻고 싶다. 정말 무례한 것은 누구인가. 나는 학생들과 일합을 겨루기 위해서 며칠 전부터 준비를 했다. 학교 특성, 교과목, 나이 등등에 맞추어 강연 파일을 수정했다. 수도권 인근이라면 스타벅스, 맥도널드 드라이브 스루를 검색해 2시간 전쯤에 차로 이동해 컨디션을 조절하고 지방이라면 전날 숙박한다. 이렇게 까지 해야만 하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했으니까 여기까지 온 거다. 


나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 내가 그들을 만나는 순간 그들은 나의 고객이다. 내가 갖고 있는 동기부여 강연이란 아이템을 자의반 타의반 어쨌거나 구매한 고객이다. 그리고 이들은 곧 성인이 된다. 부모에게 용돈을 받든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든 취직을 하든 간에 본인 통장과 신용카드로 경제생활을 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다시 만난다. 내가 쓴 책을 사거나 내가 출연한 프로그램을 보거나 하다못해 내 소셜미디어에 좋아요 라도 한 번 눌러줄 기회가 올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 강연장에서 제대로 된 만족을 주지 못한다면 나에게 냉정하게 고개를 돌릴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다시 돌리는 것은 이미 짜버린 치약을 다시 넣는 것처럼 어려울 것이다. 뭐든 첫 만남이 중요한 것이니까. 물론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 병원, 재활시설, 교정시설 등등에서 오는 강연을 마다 하지 않는 것이 '미래 고객의 포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살아왔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힘을 준다는 것 그래서 그들이 아주 잠깐이나마 다시 주먹을 쥐고 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것처럼 마이크를 붙잡은 이에게 힘이 되는 일이란 찾기 어렵다.


나와 학생들의 온전한 싸움을 기다려주었던 침착하고 인내심 가득한 분들도 계셨다. 다소 소란스러운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면서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깨질라 단호하고 조심스럽게 강연장을 부지런히 오고 다녔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 내 싸움에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과의 만남은 이래서 즐겁다. 나도 한 방 한 방 날리면서 앞으로 전진할 수 있으니까. 그런 날은 그냥 느낌이겠지만 두툼한 맥북에어의 시스템 종료 버튼을 누리고 화면을 덮을 때 상쾌한 바람이 휙 부는 것 같다. 강연장 문을 닫고 나올 때 발걸음이 가볍고 퇴근길 정체에 꽉 막힌 도로 위에서도 콧노래를 부르며 핸들을 붙잡을 수 있다. 온전하게 제대로 싸웠으니까. 그리고 대개 나의 승리니까.











작가의 이전글 엠비가 구속되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