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부터 새로운 삶을 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IB스포츠에서 WWE 스맥다운 해설을 하고 있는 김남훈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지난 2018년 12월 12일 스맥다운 생중계가 끝나고 제작진으로부터 하차통보를 받았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제 다가오는 새해부터는 다른 분이 해설을 맡게 되십니다.
올해부터 아시아에서 최초로 WWE콘텐츠 라이브 방송 시스템이 도입되었습니다.
내년 2년 차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 싶다는 것이 IB스포츠의 생각이라고 합니다.
저도 많은 애착을 갖고 있는 일이었던 만큼 약 3초 정도 어안이 벙벙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내 저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스튜디오를 나와 다음 목적지인 논산으로 향할 때쯤이면 거의 모든 것이 정리된 상태였지요.
제가 WWE 아니 WWF와 인연을 맺은 것은 국민학교 다니던 1980년 대까지 올라갑니다. 당시 친구네 집에서 우연히 AFKN 채널을 통해서 제시 벤추라, 헐크 호간을 접하게 되었고 이내 그 박진감 넘치는 세계에 푹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실제 링 위에서 시합을 갖게 되었습니다.
2013년이었을 겁니다. FX 채널에서 방송되던 슈퍼스타즈를 통해 처음으로 WWE 해설위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처음으로 스튜디오에 들어가던 때의 긴장감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기차 화통 저리 가는 수준의 성량을 자랑하는 민경수 캐스터의 목소리는 소문대로 대단했습니다. 더빙용 스튜디오이기에 생각보다 작았던 박스형 스튜디오의 바닥 질감도 기억이 납니다. 이후 IB스포츠를 통해 스맥다운을 중계하였고 정찬우, 김영인 캐스터와도 같이 일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논산에서 군부대 강연을 마치고 올라오는 길에 "내가 나이가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팬이 아니라 업계 사람으로 이왕표 선생님을 뵈었던 것이 20대 후반이었고 그때 선생님은 40대 후반이셨습니다. 즉 지금의 저와 나이 차이가 그리 크게 나지 않으셨을 겁니다. 2000년대 초반이었나요. 제가 디씨에 갤러리를 만들고 그분들과 교분을 나누다가 가끔 번개를 치기도 했습니다. 이때 나왔던 분들 중엔 중3, 대학생, 운동 마니아 등등도 있었는데 이젠 이분들이 선생님, 회사 임원, 선수를 거쳐 관장이 되었습니다. 네.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던 것이고 그 흐름 위에 저도 작은 배를 하나 타고 계속 같이 흘러내려갔던 것이겠지요.
천안을 접어들 무렵 새로 부임하게 될 해설위원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스맥다운 해설을 하게 된 것을 축하했고 앞으로 멋진 해설 부탁한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분이 어떤 분인지는 제가 글로 옮기지 않겠습니다. 채널에서의 정식 발표가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당사자께서 직접 주변에 알리는 그 기쁨을 제가 먼저 스포일러로 김을 빼고 싶지는 않아서요. 저도 그 기쁨을 잘 알거든요.(웃음)
제가 처음 해설을 하게 되었을 때 부모님은 친구분에게 부탁해 스마트폰으로 녹화를 해 놓으셨습니다. 저의 카카오톡으로 지인들이 보낸 사진과 동영상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이런 즐거움을 새로 맡으실 분께서도 많이 충분히 누리셨으면 합니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의 시간 그리고 올 한 해는 라이브 중계를 했습니다. FX는 물론 IB스포츠와는 즐겁고 복된 기억뿐입니다. 특히 레슬마니아 31 현지 참관을 통해 메가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의 위력을 맛보았고 저의 우상 헐크 호건을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직접 알현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2018년 서머 슬램을 현지 생중계함으로써 전 세계 WWE 유니버스에게 제 얼굴을 3초나마 알릴 수도 있었지요.
세상에나 WWF 키드가 WWE PPV를 현지 중계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중계를 끝내고 호텔방으로 돌아와 한참 동안 고양된 기분과 뛰는 심장이 가라앉지 않아 애를 먹었던 것이 생생합니다.
6 년 동안 꿈을 보았습니다.
6 년 동안 꿈을 좇으며 살았습니다.
6 년 동안 꿈속에서 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WWE 유니버스 즉 WWE를 사랑해주시는 여러분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거듭 감사 말씀 올립니다.
저에 대한 칭찬, 조언은 물론 비난과 질책 모두 고마웠습니다.
WWE RAW에서 빈스 회장이 이야기했듯 WWE의 존재 이유는 팬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이 멋진 콘텐츠를 시청자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은 저의 의무입니다. 그래서 저는 최선을 다해야 하고 시청자분들의 모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저의 존재 이유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의 부족했던 부분 다시 한번 사과 말씀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저는 요즘 동기부여 강연 연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선 기업, 학교뿐만 아니라 구치소, 소년원, 교도소 등을 자주 방문하며 그곳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보호소에서 만났던 이를 소년원에서 재회할 때도 있습니다. 그땐 힘이 한순간에 주욱 빠지기도 하지만 궁극의 배틀 스포츠인 프로레슬링에서 쌓아 올린 경험과 배짱을 이용해 겉으로나마 담대하게 넘어갑니다.
2019년 새해부터는 前 해설위원으로 제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미력하나마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더 찾아보겠습니다. 그것이 그간 6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해오며 여러분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던 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새롭게 단장된 2019년 IB스포츠 WWE중계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스포츠 채널 업계에서 WWE를 핸들링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수고, 노력 그리고 비용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프로레슬링 대국 일본에서도 아직까지 WWE 생중계를 하지 못하는 것은 그 허들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합니다. 이분들의 노력을 인정해주시고 무엇보다 새롭게 해설을 하게 될 그분에게도 많은 용기와 사랑 부탁드립니다.
39살부터 45살까지의 삶이란 FX 채널, IB스포츠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제 인생에 마치 벼락처럼 떨어진 축복이었습니다. 특히 같이 중계에 임했던 민경수, 정찬우, 김영인 세 분께 깊은 사의를 표합니다. 업계 최고의 캐스터분들과 만났습니다. 저에게 크나큰 행운이었습니다. 첫 인연을 맺었던 씨앤컷 미디어 제작진을 비롯해 IB스포츠 실무 제작진께도 감사인사 올립니다. 열정적인 모습 언제까지나 기억하겠습니다.
6 년 동안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2018년 12월 24일 마지막 해설을 마치고
김남훈 올림
추신 1: 신임 해설위원님께. 서머타임 적용 시 생중계 시작은 9시인데 오전 7시 30분까지 분당 스튜디오에 도착해야 합니다. 저는 일산-> 서울, 서울-> 분당이라는 세계 최악 교통정체구간이라 매번 새벽 5시에 일어나 출발을 했습니다. 댁이 강북 쪽이라면 미리 일찍 출발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일찍 도착해서 24시간 영업하는 미정국수에서 제육덮밥을 드시고 인근 스타벅스에서 해설 준비를 하시면 됩니다. 이곳 스타벅스는 오전 7시부터 영업합니다. 주차는 스튜디오가 위치한 건물은 주차 할인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풍림 아이원 빌딩에 주차하고 출구 부스에서 6시간권(6600원)을 구매해서 사용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점심은 IB가 사주는데 8,000원 상한이 있습니다. 건물 1층에 있는 후쿠오카 나베와 건너편 2층 중국집을 자주 가게 될 겁니다. 전자는 매운 삼겹 덮밥 후자는 해물짬뽕 추천합니다.
추신 2: 이 글은 24일 스맥다운 크리스마스 특집(녹화중계)을 마치고 쓴 글입니다.
저의 마지막 중계는 26일 오전 10시에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