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포기하지 말라고
강연장에 앉아있는 학생들은 50여 명 남짓. 그러나 박수소리와 기세가 만만치 않다.
자세히 보니 생김새 또한 범상치 않다. 강당이라고 하는데 정문엔 지문인식 장치가 있고
창문엔 철창이 덧대어 있다. 그렇다. 이곳은 법무부 소년 교정시설 이른바 '소년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과의 첫 인연
지금으로부터 4년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일반적인 강연 섭외와는 다르게 전화기 너머 속 목소리에서 무언가 굉장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섭외 주신 분은 청소년 관련 재단에서 일하시는 분이셨는데 아동보호시설에서 강연해줄 수 있냐고 하셨다. 일단 메일로 관련 내용을 정리해 달라고 했다. 이곳과의 첫 번째 인연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만 19세 이하에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아래와 같은 처분을 소년법원에서 받게 된다.
불처분: 보호처분을 할 수 없거나 할 필요가 없는 경우
1호 처분: 보호자 또는 보호자를 대신하여 만 10세 이상의 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자에게 감호를 위탁하는 처분이다. 보호처분의 내실을 기하기 위하여 보호자의 보호능력이 부적절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자원보호자 제도를 활용, 자원지도자의 지도와 감독을 받도록 하고 있다. 감호 위탁 기간은 6개월로 6개월 연장이 가능하며 2·3호 처분과 병행하여 효율을 높이고 있다.
2호 처분: 만 12세 이상의 소년에게 100시간 이내의 수강명령을 내리는 처분이다.
3호 처분: 만 14세 이상의 소년에게 지정된 기관에서 200시간 이내의 사회봉사명령을 내리는 처분이다.
4호 처분: 보호관찰관에게 단기간 동안 보호관찰을 받게 하는 것으로 그 기간은 1년 미만으로 한다. 만 10세 이상인 자에게 명할 수 있으며 보호관찰은 전국 12개 보호관찰소와 6개 지소에서 담당한다.
5호 처분: 보호관찰관에게 장기간 동안 보호관찰을 받게 하는 것으로 그 기간은 2년 미만으로 하며 1년의 범위 안에서 연장이 가능하다. 만 10세 이상인 자에게 명할 수 있으며 보호관찰은 전국 12개 보호관찰소와 6개 지소에서 담당한다.
6호 처분: 만 10세 이상의 소년을 아동복지법상의 소년보호시설(아동복지시설)에 감호를 위탁하는 것으로 그 기간은 6개월로 하되 6개월의 범위 안에서 연장할 수 있다. 소년원 송치 처분에 비하면 강제적 요소가 약한 대신 복지적 성격이 강하고 사회 내의 비수용 처분과 시설 수용 처분 사이의 중간적 처분이다.
7호 처분: 만 10세 이상의 소년을 병원, 요양소, 소년 의료보호시설에 감호 위탁하는 것으로 그 기간은 6개월로 하되 6개월의 범위 안에서 연장할 수 있다.
8호 처분: 만 10세 이상의 소년을 단기로 소년원에 송치하는 것으로 그 기간은 1개월을 초과하지 못한다.
9호 처분: 만 10세 이상의 소년을 단기간 동안 소년원에 송치하는 것으로 그 기간은 6개월 이내여야 한다.
10호 처분: 만 12세 이상의 소년을 장기간 동안 소년원에 송치하는 것으로 그 기간은 2년 이내여야 하며, 자유에 대한 강제적 제약 정도가 가장 중대하다.
나한테 연락을 주신 곳은 7호 처분 즉 감호 위탁 시설에서의 강연이었다. 이곳은 수련원 등등의 형태로 민간
에서 위탁 운영되기도 하는데 겉으로 보기에 기숙학원의 형태를 취한 곳이기도 하다. 겉으로 기숙학원처럼 보이지만 그 안은 법무부 보안시설이기도 하다. 일정기간 사회로부터 격리를 해야 하는 만큼 보안은 상당한 편이었다. 그곳에서 '학생'들을 처음 만났다. 소년이라고는 하나 10대 중반부터 후반의 나이, 이미 신체적으로는 성인 아니 그 이상의 피지컬을 가직 이들이 내가 지금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던 아우라를 뿜어내며 빼곡히 모여 앉은 곳에서 했던 강연은 지금까지 했던 수 백회 강연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이었다.
학력고사를 경험한 세대라면 '특강'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한 두 개 이상씩 갖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이 외부에서 아주 훌륭한 강사 선생님이 오셨다며 학생들을 갑자기 강당에 모이게 한다. 몸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호르몬과 교실에서 강당으로 이동하느라 아주 잠깐 동안의 외부 공기는 화학적 결합을 일으켜 아이들을 날뛰게 만들고 선생님을 하키 스틱과 휘두르고 욕설을 퍼부으며 제지시키려고 한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나면 '아주 훌륭한 외부 강사 선생님'이 입장하고 요즘 학생들은 너무 고생을 모르게 커서 나약하다는 둥 한국인은 팽이라서 맞아야 계속 돈다는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이야기한다. 학생들 태반은 어제 못 잔 잠을 자고 선생님들도 깨우다가 지켜서 나가떨어진다.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경험하는 중, 고등학교 기간 동안 자연재해 같았던 '특강'. 난 이런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싫었다. 이런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기 싫었다. 그래서 항상 내가 먼저 애교를 떨고 개그까지 하며 분위기를 띄웠고 수강생들 앞에서도 항상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려는 태도를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법무부 교정시설에서도 똑같이 했다.
'1타 강사'라는 말이 있다. 해당 과목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는 사람을 말한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같은 유명 강연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동기부여, 자기 계발 같은 분야에는 정말 많은 훌륭한 강사님들이 계시다. 그분들과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교정시설 분야에선 1타 강사가 되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전국의 소년원을 돌아다닐 예정이다. 그런 자격이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누군가 불러주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소년원은 없고 학교만 있다? 소년원은 "보호소년의 처우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치된 법무부 범죄예방 정책국 소속 특수교육기관. "소년법" 및 "보호소년의 처우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가정법원 및 지방법원 소년부의 보호처분에 의하여 송치된 소년을 수용하여 교정교육을 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특수'교육기관'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소년원은 대외적으로는 '학교'라는 명칭을 쓴다.
오늘 방문한 곳은 대산학교(대전 소년원). 이곳은 8호 처분을 받거나 재판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수용된 곳이다. 갑자기 나타난 외부 손님에게 경계심을 나타냈던 학생들 앞에서 내가 우스개를 던지며 친근감을 표하자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런 형태의 강연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니 중간중간 프로레슬링 복면을 쓰거나 프라이팬을 구부리는 것 같은 차력쑈도 하면서 분위기를 계속 즐겁게 유지한다. 전설적인 업적을 남긴 파이터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환경에 굴복당하지 말고 역경에 맞서라고 말한다. 혹시 내가 수십 년 전에 들었던 '외부 강사'처럼 보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한다.
강연 전 원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곳에 있는 학생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어요. 정말 그렇습니다. 죄를 지었지만 가장 관대한 처분을 받았고 이곳을 나가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거나 아니면...."
강연이 끝나자 몇몇은 팔씨름을 해보자며 나에게 즉석 도전을 하기도 했고 어떤 학생은 "팔 한 번 만져봐도 돼요?'라고 했다. 좀 더 열심 히 운동을 해야 할 백 가지 이유 중에 하나가 더 추가된 날이기도 하다. 이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들보다 나이가 많고 힘이 세지만 자신들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너희들도 존중받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하는 각종 범죄 뉴스들 특히 공분을 자아내는 소년 범죄. 나도 기사를 읽을 때마다 엄청난 분노를 느낀다. 그러면서도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 이 학생들의 웃음을 보며 어떤 혼란을 느낄 때도 있다.
맞다. 법은 엄정해야 한다. 엄격하게 집행해야 한다. 그렇게 가해자를 처벌하고 사회에 경각심을 심어주어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한편으론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거나 새로운 삶을 위해서 나아가려는 사람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나란 사람이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20여 년 전 맨 몸으로 서울로 상경했고 지금은 아주 풍족하지는 않아도 크게 부족함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인생 자체가 너덜거릴 정도로 힘겨운 위기와 고비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행운 그리고 좋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난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공동체의 수혜를 톡톡히 받은 셈이다. 그럼 이제 어떤 형태로라도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용기를 잃어버렸을 때 희망을 잃어버리고 희망을 잃어버린 이는 모든 것을 불태우겠다며 종말적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경기를 포기한 파이터처럼 볼썽사나운 것도 없다. 그러나 인생을 포기한 이는 주변까지 위험에 빠뜨린다.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아직 라운드가 남았음을.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계속 더 뛰어보라고.
아직 기회가 있음을. 그걸 알려주고 싶었다.
얼굴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몇몇의 눈동자만큼은 기억난다. 내 진의를 알아차렸을까? 내 속마음을 읽었을까. 그런 학생이 몇 명이나 될까?
여러 걱정과 기대 속에서 다시 서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