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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훈 해설위원 Feb 19. 2018

인생 후반전 생각해야 하지 않아? 그리고 대답






“팟캐스트 정치신세계 녹음을 끝내고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멤버들에게 맥주 한 잔 마시자고 했다. 난 미리 정하지 않은 술자리를 타인에게 청하지 않는다. 나랑 술자리를 가져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만큼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기실 전날 있었던 프로레슬링 경기 승패보다도 몸 여기저기 아픈 것이 너무나 이례적이었다. 데뷔 15년을 넘어가는 시점에서도 매우 특이하고 낯선 상황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온몸이 아팠다. 겨우 십 분 넘는 경기 가지고 이렇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하였기에 더욱 기운이 빠졌고 늦은 밤 실례임에도 불구하고 술자리를 청했던 것이다.

송 작가님이 술을 마셔도 괜찮냐고 하셨는데 안 마시는 게 몸에 좋긴 하겠지만 더 나빠질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맨 정신에 근심 걱정 어린 상태에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을걸 생각하니 알코올이 필요했고 동료가 필요했다.

윤 소장님이 개그 드립을 몇 번 치다가 이제 인생 후반전을 위해선 전반전에 하던 걸 멈춰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본인의 경험담과 함께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은퇴란 단어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직전까지의 이 두 음절은 매직아이처럼 잠깐 보였다가 사라지곤 했다. 어쩌다 시선이 혼미해져야만 떠오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또렷이 보인다. 지금 들어와 있는 치킨집 벽면에 걸려있는 '마늘양념 20,000' 원처럼 시인성 좋게 한눈에 들어온다.

프로레슬링. 이가 부러지고 인대가 끊어지고 잠깐이나마 하반신이 마비되고 엠뷸런스로 이송될 때도 이런 느낌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다르다. 생득적으로 가진 체력이 별로 없기에 다 쓴 치약 튜브의 끝부분까지 접어서 쥐어짜듯 버텨왔고 이제 한계라는 낭떠라지 위에서 외줄 타기를 하고 있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고민의 늪에 빠졌고 DDT(*1) 2발로 인한 두통은 아직도 계속 중이다.”


이런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 포스팅으로 올렸고 몇 번을 읽어봤다. 왜 그랬냐 하면 지금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난 2년 2개월 만에 챔피언 방어전에 실패했다. 프로레슬링은 일정한 흐름이 있다. 스포츠이자 엔터테인먼트이고 엔터테인먼트이지만 스포츠이기 때문에 갖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속성이 프로레슬링엔 듬뿍 들어있다. 그러나 새드 엔딩 보단 해피 엔딩의 영화가 좋은 것처럼 어쨌든 패배 그리고 벨트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나에게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너무나 아팠다. 이렇게 아픈 적은 정말로 처음이었다. 경기를 끝내고 집으로 오자 고통이 동남아 몬순처럼 쏟아졌다. 처음엔 가랑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군데군데 묵직하게 쏟아졌고 나중엔 천지분간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이 쏟아졌다. 연말연시를 맞아 운동을 소홀히 한 것도 있고 방송 준비한답시고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몸을 망가뜨린 것도 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결정적으로 경기 삼 일 후 분당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경기 해설을 녹화한 후 운전을 하고 있는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에 주변을 둘러보니 역주행을 하고 있었다. 급히 차량을 세우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제 막 호감을 가지기 시작한 남녀가 술을 마시면 상대방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알코올 때문에 뇌가 상대방을 엄중하게 판단 하는 사고 작용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 더뎌진 연산은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이 사람을 놓칠지도 모른다고 재촉하게 만든다고 한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 고통이 그랬다. 어떤 선택을 하라고 마구 재촉하는 것 같았다. 빨리 결정하라고.


40대 중반의 나이다. 몸과 마음의 톱니바퀴가 어긋나기 시작하는 시기다. 몸의 성장판은 닫힌 지 20년 가까이 지났다. 하지만 마음은 다르다. 구덩이가 너덜거리고 에나멜 커버가 떨어져 나간 레슬링 부츠처럼 겉은 보잘것없어도 딱 신기 좋게 길이 들었다. 링 위에서 어느 쪽을 바라보고 소리쳐야 하는지 어디서 어떤 기술을 써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나온다. 바로 이 시기가 제일 위험하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몸을 망가뜨린 레슬러들이 어떻게 노후를 보내는지 알 수 있다. 미키 루크 주연,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연출의 영화 ‘더 레슬러’를 보면 시골 마을 작은 체육관에서 대회가 끝나고 은퇴한 레슬러들이 낡은 차를 직접 몰고 와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에 탄 채 겨우 십수 명의 관객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경기가 수록된 VHS 테이프와 싸인 팸플릿을 파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도 내 나이 정도 때까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인공들처럼 깎아 만든 대리석 몸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나는 몇 가지 패턴을 따른다. 우선 집안일을 한다. 아니 해일이 닥치는데 무슨 조개 줍는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건 아주 중요한 행위다. 내 주변의 아주 사소한 것부터 확실하게 매듭지어놓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묵직한 선택에 필수 불가결한 첫 단계다. 미국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 씰’(Navy Seal) 사령관 윌리엄 맥레이븐(William H.McRaven)은 2014년 모교 텍사스 주립대 졸업 축하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아침에 일어나 침대 정리부터 하십시오. 여러분이 자고 난 침대를 정리했다면 그날 하루의 가장 작은 미션을 완수한 것입니다. 그 성취감과 용기는 계속 이어지는 더 크고 어려운 미션을 완수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A4 용지에 줄을 그어서 안방, 거실, 주방, 화장실 별로 나누어서 정확히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놓는다. 구글 킵 이나 원노트 같은 앱을 써도 되지만 종이 위에 이것저것 적어 놓고 일을 끝낼 때마다 볼펜으로 쭉쭉 그어버리는 쾌감은 디지털이 절대 따라올 수 없다. 집안일이라는 것이 대충해선 테도 안 나는 데다가 제대로 하려면 빠트리는 일이 없도록 미리 메모해 놓고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혼잡도가 가장 높은 서재에 있는 책들을 모두 끄집어내서 더 이상 읽지 않을 책들을 골라 중고서점으로 직행하도록 코스트코 쇼핑백에 넣는다. 표지, 속지를 두루 살펴서 혹시 저자 사인이 있는지 천 원짜리 몇 장이라도 넣어둔 건 없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어서 소파, 식탁, 침대 등등에 널려있던 의류와 수건들을 모두 모아서 겉옷과 속옷으로 나누어서 세탁기에 돌린다. 화장실 깔개를 꺼내서 샤워기로 한 번 씻어놓고 욕조에 물을 받아 그 속에 재워 놓는다. 이렇게 ‘일상의 시간’을 몇 시간 보내다 보면 혼잡했던 정신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한다. 바로 눈 앞에 있는 것들을 집중해서 처리하니 살짝 땀방울이 나고 청소기를 움직이다가 휙 돌아보니 집 안이 점점 깜 뜸해지고 정돈되어가는 모습에 마음이 놓인다. 노동에 대한 즉각적인 보상에 조금씩 즐거움을 느낀다. 인풋과 아웃풋이 정비례한다. 세상만사가 다 이러면 좋을 진데 그렇지 않으니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닌가. 집안일을 하면서 세상 일까지 생각하다가 보면 어느새 모든 게 정돈된 상태로 끝을 맞이한다.


마트 위에 진열된 밀봉된 딸기처럼 잘 정돈된 집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간다. 이제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집은 안심과 안정을 제공하지만 한정된 정보와 제한된 선택을 강요한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많은 정보가 들어올수록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가장 좋은 것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마침 오늘 예정되어있던 녹음이 취소됐다.

합정역 카페로 나가 2층 좌석에서 통유리로 떨어지는 햇빛을 쬐며 시간을 보내볼까 아니면 스쿠터를 타고 강화도 동막해변 편의점에서 돈가스 도시락을 먹고 올까 이런저런 선택지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벼락처럼 떨어지는 갑작스러운 여유, 나 같은 일용직 프리랜서가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장점이다. 후보군을 점점 늘려가다가 작년 가을 모터사이클로 떠났던 제주여행이 떠올랐다. 서풍과 동풍을 찾아 한라산과 해안도로를 몇 바퀴 돌았는지 모른다.

스마트폰으로 제주행 왕복 비행기표, 숙소, 카쉐어링까지 예약을 끝냈다. 바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갔는데 연결 항공편 문제로 2시간이나 기다렸다. 짜증내는 승객도 있었지만 내 입장에선 그렇게 공항 의자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떠오르는 것들을 메모하고 책을 읽고 다시 반복하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수년간 이렇게 시간을 보내 본 적이 없었다. 배낭에는 이틀 치 입을 양말과 속옷, 선크림, 보조 배터리 정도만 챙겼다. 좁은 통로를 절반쯤 걸어 들어가다가 내 자리에 착석했다. 잠시 후 200톤 가까운 이 쇳덩어리는 수 분내에 지상 수천 미터까지 상승할 것이다. 백팩에서 재러드 다이아몬드 박사의 ‘총, 균, 쇠’를 꺼냈다. 언제 샀는지도 모르지만 처음 보자마자 그 간략한 제목과 반하는 큼직하고 근엄한 폰트, 동아전과 저리 가라 하는 엄청난 두께를 보며 괜스레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본인이 직접 말을 타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튼실하고 숨 가쁘게 올라간 허벅지를 가진 말을 보며 기뻐하는 마 주처럼 말이다. 하지만 서문만 1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수십 페이지 이상 읽어보진 못했다. 수학의 정석에서 집합 부분만 시커멓게 손때를 탄 것처럼 이 책은 내 서재에서 그 알록달록한 표지를 자랑하며 중앙에 위치하는 장식품으로 기능했다. 그러다 이번 제주여행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전혀 관련 없는, 지금 고민과 연관성이 전혀 없는 책을 읽는 것은 앞서 집안일처럼 마음을 편안히 안정시키는데 훌륭한 보조제 역할을 한다. 비행기 기내의 백색소음은 묘하게 집중력을 높여 주었고 드디어 마의 백 페이지를 뛰어넘는 데 성공했다. 너무 기뻐서 사진으로 찍어놨을 정도다.


제주공항에 도착해 셔틀로 이동해 카쉐어링으로 예약을 해둔 레이를 찾았다. 일단 숙소로 이동했고 출발이 늦어진 탓에 일몰을 보려 달린다는 애초의 구상은 무너졌지만 달뜬 마음은 여전했다. 다음 날부터 하루 150~250km를 달렸다. 특히 서귀포에서 시계방향으로 애월까지  족히 다섯 번은 달린 것 같았다. 왜 그런 때 있지 않은가. 태어나서 처음 와보는 길인데 괜히 낯익고 반갑고 정겨운 느낌이 들 때 말이다. 물론 이 루트가 나에겐 처음은 아니었지만 손에 익은 좋아하는 소설책 페이지를 넘길 때처럼 그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따라 들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작년 모터사이클 투어 때 점찍어두었던 맛집들을 다시 찾아가 그때의 기억과 비교해가며 식도로 음식물을 집어넣어봤다. 돼지고기 전문점을 다시 찾아가 봤는데 사장님이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손님이 홀에 많았던 탓에 그리 살가운 대화를 나누진 못했는데 식사가 끝나갈 무렵 캡틴 아메리카 방패만 한 큰 쟁반형 접시 내 테이블에 툭 떨어지는 게 아닌가. 3명은 넉넉하게 먹을 수 있는 해물 국수인데 서비스로 나온 것이다. 섬 남자들의 애정표현은 이런 것인가. 이미 돼지고기 600g을 모두 먹어치운 탓에 더 들어갈 리 만무하다. 내가 곤란한 표정으로 다시 가져가길 애원했는데 사장님이 한마디 툭 던진다. “자신을 믿으세요.”


수월봉 지질공원으로 향했다. 원래 목적지로 정했던 곳은 아니었지만 아까 호박 다방에서 호박 케이크를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 커플이 “꼭 가야 할 곳” 어쩌고 하면서 수월봉을 화제로 삼고 있었다. 나도 그 옆을 지나가기만 했고 안쪽으로 올라간 적은 없어 이왕 온 김에 가기로 했다. 평일이어서인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서울에 비해 춥진 않았지만 그래도 영하 1도는 해안가 특유의 강풍과 함께 만만치 않은 날씨였고 햇살은 피부 진피층까지 좀 더 깊숙하게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수월봉에서 자구내 포구까지 엉알길을 쭉 걸어가 봤다. 왼편엔 바다가 있고 오른편엔 단층이 있다. 자연이 만든 USB 메모리고 해야 할까. 화산 폭발과 융기, 단층이동 등 1만 8천 년의 역사가 빼곡히 정리된 거대한 엑셀표는 시각적으로도 위대함이 느껴졌다. 일단 나보다 커야 한다. 아무리 위대한 기록이라고 하더라도 내 키보다 낮았다면 이런 경외감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고개를 치켜세울 정도로 그런 극적인 신체 자세 변화가 있어야만 무언가 느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난 참 속물스러운 아니 속물 그 자체인 사람이다. 1933년 1월 독일 수상에 취임한 아돌프 히틀러는 베를린을 위대한 ‘게르매니아’의 수도로 만들겠다는 망상에 가득 찬 구상을 끄집어냈다. 대도심 중앙을 모두 정부, 정당, 공공건물로만 채워 놓겠다는 것. 100만 명이 모일 수 있는 광장, 길이 500미터 회랑을 가진 지도 자궁, 제국의회, 18만 명이 모일 수 있는 거대한 돔을 만들려고 했다. 사이즈에 굴복하는 나 같은 속물 어쩌면 인간의 본성을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엉안 길을 걷다 켜켜이 쌓인 단층이 족히 30m는 될듯한 곳에 이르러서는 절로 탄성이 나왔다. 이 엑셀표에 나는 몇 칸쯤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계측할 수 있는 단위에 들어갈 수나 있을까.


합정역 할리스 2층 창가에서 접이식 키보드를 펼치면 다른 곳에 비해 원고 산출량이 많은 편이다. 내 집 거실, 동네 카페,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 통 틀어서 가장 많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그 이유를 얼마 전에 찾았다. 이 창가 자리에서 홍대 쪽을 바라보는 형태로 앉으면 바깥쪽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들어온다. 내 왼편에 있는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차량이나 횡단보도를 분주히 오가는 롱 패딩을 입은 사람들을 보인다. 야구장으로 치자면 외야석의 시점이다. 외야석에 있을수록 선수 개개인의 움직임은 보기 어렵지만 큰 그림을 볼 수 있다. 경기장 전체의 상황을 조망하듯 내려다볼 수 있다. 2층 창가 자리가 그렇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아무리 비싼 외제차가 신호 대기에 서있어도 핏이 살아있는 정장을 입은 남자가 메세나폴리스 쪽으로 멋있음을 풍기며 걸어가고 있었도 소용없다. 모두 내 시선 밑에 있는 존재들이니까. 이런 전혀 근거 없는 우쭐한 자신감은 키보드를 더욱 쉽고 용이하게 두드리게 만든다. 전쟁터로 가는 군인들이, 중요한 시합을 앞둔 선수들이 무언가 일생일대의 큰 시험을 앞둔 사람들이 한 발자국만 옆에서 봐도 어처구니없는 미신, 징크스 이런 것들을 따라가며 사소한 위안을 받으며 그걸 확대 해석하려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것이다.


수월봉 지질공원에선 그 반대다. 이 무채색의 퇴적 단층이 하나의 인격을 가졌을 리 없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확실하게 난 올려다보고 있고 이 단층은 하나의 거대한 시선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고 압도하고 있다. 살짝 9v 박스 건전지의 전극 단자를 혀끝에 댄듯한 찌릿한 전율이 흘렀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바람도 더 세차게 부는 것 같다. 차량이 있는 곳으로 가는데 가도 가도 사람들이 안보였다. 작년 이맘때 핀란드 수오멘린나(Suomenlinna) 해상요새에 갔을 때도 그랬다. 100명 남짓 태운 통통배가 출발한 지 20여 분 만에 해상요새에 도착해 승객들을 선착장에 풀어놓으면 한동안 시장통처럼 왁자지껄했다가 이내 각자의 코스, 도보 속도에 따라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진다. 다시 살짝 겹칠 때도 있지만 잠시 뿐이고 트랙킹의 상당 시간을 혼자 왔다면 혼자 걸어야 한다. 그때의 생경함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졌다.


숙소로 돌아와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이 자리를 빌려 K, P, L, P, S, L, J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어떤 이와는 아주 짤게 또는 아주 길게 이야기를 나눴다. 통화 분량과는 관계없이 모두들 나를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고 응원해주는 고마운 이들이다. 난 이 착한 사람들에게 어떤 확인을 받고 싶었나 보다, 내 의지에 대한 확인을 스스로 못하는 어른답지 못한 모습이지만 "나 며칠 전에 역주행했잖아"라고 하면서 스스로 변명거리를 먼저 들이댔다. 물론 이런 겉포장 없이도 이야기가 가능한 사람들이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주행 비행기표를 예약할 때 이미 난 프로레슬링 현역 지속을 마음먹고 있었다. 그만둘 거면 제주도까지 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집과 멀리 떨어진 원격지에서 시간을 보냈고 많은 고민을 했다는 일종의 후불 정산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에게 있어 프로레슬링은 시지프스의 고통 같은 것이다. 신에게 도전했던 시지프스는 무거운 돌덩이를 끝없이 산꼭대기로 밀고 올라가야만 했다. 힘들고 어렵고 지루한 형벌. 하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끊임없는 역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알베르토 카뮈가 이야기한 산정(山頂)을 향한 투쟁, 행복한 시지프스란 무엇일까. 돌덩이를 밀지 않는 시지프스는 시지프스일까. 나에게 있어서 프로레슬링 여집합으로 무엇이 남을까. 그래 정체성에 관한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나 자신을 위해서 싸우지 못하면서 내가 누구를 위해 싸울 수 있을 것인가.


링 안, 박진의 세계. 아직 놓치기엔 이르다.

계속 싸우겠다.



*1

DDT : 프로레슬링 기술. 상대방의 목을 겨드랑이에 끼워 넣고 뒤로 넘어지면서 정수리 부분을 링 바닥에

충돌시키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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