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돈으로 보인단다
'끝판대장', '타노스'
바로 강연 업계에서 여러분들을 일컬을 때 쓰는 말들이야. 나는 주로 기업 강연을 많이 하지만 종종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교 특강도 가곤 하지. 내가 "내일 어디 어디 중학교 특강을 갑니다" 하면 같은 일들을 하시는 강사 선생님들의 위로 댓글이 주르륵 달려.
살아서 돌아오세요.
미리 조문합니다. 조의금은 어디로 입금하면 되나요?
오늘 소고기 먹어두시고 우황청심환도 내일 꼭 드시길.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피식 웃기도 하겠지만 정말 이 업계에서 같은 밥을 먹는 사람들에게 중고등학교 강연이란 건 너무나 힘든 일이란다. 나 같은 강사들은 대개 강연 업체의 연락을 받고 출강을 뛰는데 공공기관, 기업체는 일단 성인들이고 무엇보다 자기가 속한 조직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자기 본능을 억누르면서 자리에 앉아 있어. 강연이 재미없거나 본인에게 안 맞아도 대놓고 자거나 딴짓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너무 졸리거나 또는 도저히 못 앉아있겠다 싶으면 휴대폰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면서 아주 급한 전화가 왔다는 시늉을 하면서 밖으로 나가지. 그렇게 하고선 아예 안 들어와. 나도 잘 알지만 모르는 척해주는 거지. 나중에 사회 나가보면 알겠지만 이렇게 '척' 해주는 게 사회생활의 기법이자 무기가 되거든.
그런데 말이다. 너희들은, 너희들은 다르다. 직장에서 매달 급여를 받는 갑근세 노동자들은 자신의 평판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대학생도 교수 눈치는 본다. 그런데 너희들은 다르다. 학교에서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이런 특강이 내신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기존 수업과는 다르게 맘껏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이지. 선생님들이 계속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지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그분들도 포기할 수밖에 없어. 맘만 먹으면 자고 싶으면 자고 게임하고 싶으면 게임하고 친구랑 떠들고 싶으면 떠들면 돼.
사람 허리 정도 되는 연단 위에 서서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리면 이런 상황이 마치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용산 CGV 아이맥스 스크린처럼 거대하게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좀 안보였으면 좋겠는데 이런 된장 눈에 다 들어와. 심지어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는데 카톡을 하는 건지 페북을 하는 건지 게임을 하는 건지 손 움직임, 호흡, 자세 이런 것들을 보면 판단이 설 정도라니까. 그래서 저 멀리 뒤편에 앉아있는 애꿎은 선생님들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거나 벽에 걸린 시계 또는 아예 일부러 조명을 계속 쳐다보면서 시신경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강사들도 있지.
그런데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잖아. 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게 느껴져.
아까 교장실에서 교장 선생님과 차 한잔하는데 "우리 애들이 착해요"라고 하셨는데 착하긴 개뿔
"내가 이런 대접받으려고 여기 왔나"
여기 길이 막히긴 왜 이렇게 막혀? 지각 안 하려고 예정보다 1시간 일찍 출발했는데 간신히 도착.
그런데 주차장에 차가 빼곡 주차도 간신히 했네.
"내가 이런 대접받으려고 여기 왔나"
여기 프로젝터 왜 이래? 화면이 너무 흐릿하잖아. 램프를 대체 언제 교환한 거야?
스피커 화이트 노이즈 때문에 내 귀가 아프고 머리까지 아프네.
"내가 이런 대접받으려고 여기 왔나"
결정적으로 여기 애들 왜 이래. 뭐가 이렇게 산만해. 가만히 앉아있는 녀석이 한 명도 없네.
잠깐 저기 세 번째 줄 저 녀석은 아예 코까지 골고 있네? 헐
"내가 여기 이런 대접받으려고 여기 왔나"
이런 생각들이 불규칙 난수로 심장과 머리에서 쏟아지면서 온 몸 구석 구속 돌아다니다가 터져버리는 거야.
화를 내는 거지. 성질을 내는 거야. 강사들이 화를 내는 것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 두 가지 종류가 있어. 첫 번째는 말 그대로 불같이 화를 내는 거야. 학생들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지만 이미 설득이나 훈육의 언어는 아니야. 욕만 안 했을 뿐이지 자기가 지금 얼마나 기분이 나쁜지 그대로 드러내는 거야.
두 번째는 노트북 화면과 교재만 보면서 무슨 주문 외우듯이 줄줄 읽어대는 거지. 이것도 화가 난 거야. 그런데 밖으로 완전히 드러내지는 못하겠고 이런 식으로 소극적으로 화풀이를 하는 거지. 그래 너희들은 떠들어라. 나는 그냥 이러다가 간다. 그래도 강연료 25만 원은 들어온다. 그런데 90분 강연에 25만 원이라니. 다시 열 받네. 이게 말이 돼. 에이 썅.
내 이야기냐고? 내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왜. 나도 학생들이 내 강연에 집중하지 않으면 속이 뒤틀려. 어찌나 뒤틀렸는지 위 벽 어딘가에 붙어 있던 어제 먹은 코스트코 피자 조각이 다시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해. 그런데 그렇게 안 해. "똑바로 앉아"라고 소리치지도 않고 자료만 보면서 웅얼대지도 않아. 아무리 상황이 최악 이락이라고 하더라도 내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해. 때론 강연과 관련이 없는 농담들을 꺼내면서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하고 애교를 부리기도 하지. 그런 시도가 실패할 때도 있고 성공할 때도 있지만 결코를 화를 안 내. 정확히 말하지만 화가 났지는 화가 났다는 것을 표현하지 않는 거지. 아까 이야기한 화 안 난 '척'을 하는 거야.
'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해. 화를 내는 것보단 안 내는 게 훨씬 좋아. 삶이란 건, 그 사람의 인생이란 건 모두 선택의 적분이야. 몇 년, 몇 달 또는 몇 시간, 몇 분, 몇 초마다 선택을 하고 그 선택들이 모여서 내 인새의 방향을 결정하고 바로 또는 아주 나중에 그 결과를 받게 되지. 그런데 '화'를 내면 이 선택에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커져. 아주 작은 오류라면 어떻게 해결을 하겠지만 특히 청소년 시절을 지나며 성인에 들어설 무렵부턴 그 오류에 대한 책임이 거의 무한대를 향해 간단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화를 내지 않고 자신을 다스리면서 선택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연습하고 훈련해야 돼.
그럼 앞서 말한 상황에서 난 어떻게 '화'를 안 내는 것일까. 일 년에 수 십 회 이상 경험하지만 왜 지금까지 난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을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화가 났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강연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내가 갖고 있는 몇 가지 '기술'을 알려줄게. 이 기술들은 단계가 있어. 가장 쉬운 단계부터 설명할게.
먼저 인연을 생각해. 인연? 좀 고리타분해 보이지? 나도 쓰고 보니까 그래. 그런데 이 인연이란 거 정말 중요해.
불교 용어 중에 겁(劫)이란 말이 있아. 1겁은 세상이 한번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후 다시 만들어질 때까지의 시간을 말해. 부처님은 인연경에서 오백 겁의 인연이 있어야 옷깃이 한번 스치고, 일천 겁의 인연은 같은 나라에 태어나게 하고, 삼천 겁이면 하룻밤을 함께 묵게 되고, 오천 겁이면 한동네에 살게 하며, 칠천 겁이면 한집에 태어나 살게 하고, 팔천 겁이 되어야 부부의 연이 맺어진다고 하셨어. 아까 앞부분에서 이야기했지. '오늘 보고 언제 또 보겠냐고' 맞아. 오늘 아니면 또 직접 볼 일 있을까? 아마 없을 확률이 커. 강연을 뛰는 프로레슬러가 오늘 이 강연장에서 만난 너희들을 만난 것도 몇 겁의 인연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일 테고 아마 살면서 다시 만날 일은 아주 극히 매우 적어. 그 인연, 매우 소중한 것이야. 자고 떠들고 딴짓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공간에 같이 있고 강사와 수강생의 신분으로 만난다는 것, 90분 남짓이지만 스승과 제자의 끈이 이어졌다는 것. 내 입장에선 정말 귀하고 고맙단다. 그럼 그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내가 이성을 잃은 모습을 보여선 안 되겠지. 무엇보다도 지금 나의 모습이 너희들에게 기억되는 유일한 김남훈이 될 거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은 아주 구체적인 이미지로 말이야. 또한 그 기억을 소중하게 남기는 것은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 맥이 통한단다. 난 나를 소중히 생각하니까.
인연만으론 역부족이야. 정말 힘들다. 이럴 땐 너희들이 아니라 대신 미워하고 짜증 낼 존재를 머릿속에서 그려보는 거야. 바로 호르몬이지. 너희들 특히 사춘기를 지배하는 호르몬은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이라고 할 수 있어. 남자 청소년의 2차 성징에 영향을 끼치는 테스토스테론은 성인에 비해 무려 45배나 많다고 해. 이런 호르몬들은 모두 뇌를 자극하고 폭발적으로 성장시켜. 어른으로서 정신적 활동을 할 수 있는 하드웨어적 준비를 이때 마쳐놓는 거야. 그런데 아쉬운 부분이 있어. 뇌의 모든 부위가 한 번에 발달하지 않는다는 거야. 과학자들이 연구를 했는데 감정에 관여하는 뜨거운 뇌는 빠르게 성장하는 반면 이 감정을 조절하는 차가운 뇌는 상대적으로 천천히 성장한다고 해. 감정을 담당하고 있는 영역과 인지를 담당하고 있는 영역들이 동시에 균일하게 발달하지 못하다 보니 여러 문제점이 생겨. 엔진 배기량은 크지만 브레이크 성능이 떨어지는 자동차 같은 것이지. 그리고 그 자동차 수백 대가 내 눈 앞에 있네. 헐. 다시 생각해보는 거야.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아수라장은 이 녀석의 자유 의지가 아니다. 호르몬 때문에 생긴 불균형 때문이다. 따라서 이 친구들 잘못이 아니다. 그러니까 호르몬을 미워하자. 호르몬을 혼내주자. 그런데 사람 몸속에 있는 호르몬을 혼을 낼 방법이 없네. 방법이 없으니까 포기.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자. 아까 보여주지 않았던 애교나 한번 더 부려보자. "니코 니코 니~"
아무리 그래도 나도 사람이다. 인연을 넘어서 호르몬 단계까지 왔는데도 내 감정을 추스리기가 힘들어. 짜증과 좌절이 명징하게 직조해낸 분노의 카펫 위에 아까부터 내가 서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어. 이럴 땐 정말 마지막 남은 방법이 하나 있지. 여기까지 왔던 적은 별로 없지만 이 방법이 실패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그야말로 최종병기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돈'을 생각하는 거야. 돈? 그게 무슨 소리야. 강연비를 생각하라는 거야? 아냐, 내가 짜증을 내건 화를 내건 어차피 강연료는 익월 말일에 세금을 떼고 은행통장으로 들어와. 내가 말하는 돈은 강연비가 아니라 너희들을 지칭하는 거야.
나는 콘텐츠 생산자야. 내가 만드는 콘텐츠는 방송, 강연, 책이 있겠고 넓게 보면 프로레슬링 시합도 들어가겠지. 내 콘텐츠를 보고 읽고 듣고 사람들이 바로 소비자야. 즉 나는 지금 내 강연을 듣고 있는 강연 소비자를 만난 것이고 이 기회를 잘 활용해서 호감을 얻는다면 추후 내가 판매할 다른 콘텐츠도 구매할 확률이 커지는 거야.
어느 날 서점에 갔는데 김남훈 신간이 매대에 올라와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내가 성질내고 짜증을 냈다면 " 이 아저씨 그때 그 진상 아냐?"라며 그냥 지나치겠지. 그런데 그 반대라면 어떨까. TV 채널을 돌리다가 "어? 나 저 아저씨 아는데"라면서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지 않을까. 친구 따라 프로레슬링 경기장을 갔는데 내가 체어샷(의자로 상대를 내리치는 반칙기술)을 쓰는 걸 보고 환호를 보내는 유일한 관객이 되지 않을까. 난 대기업 정규직도 아니고 정년이 보장된 것도 아냐. 내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내 콘텐츠를 구매하는 '고객'이고 난 그 고객과 첫 번째 만남을 가진 거야. 그런데 화를 낸다고? 그럼 장사할 생각 말아야지. 때려치워야지.
난 이 3단계 자존감 방어전략을 통해 강연장에서 화를 안 냈던 거야. 사람은 자존감이 무너지면 그걸 수습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여기저기 자기감정을 난사하기 마련이거든. 그런데 이 3단계 비책 어쩌고 이전에 아주 근원적인 이유가 있어. 그것 때문에 나는 최소한 너희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 거야. 뭐냐면 바로 내가 '어른'이라는 거야.
어른에겐 의무가 있어.
좀 더 나은 사회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의무가 있어.
그게 바로 인간이란 생명체가 지구에서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그 의무를 지키려고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야.
의무. 어른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아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끔 해주는 것. 그런데 지금 나와 같이 살고 있는 동시대의 어른들은 정말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일까. 분명 과거에 비해 경제적으로 성장도 이루었고 정치적으로도 민주적으로 발전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어른들끼리 서로 떠드는 것일 뿐 정말 지금 너희들도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이점에 있어서 정말로 자신이 없다.
뉴스를 봐라. 대체 어른들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놨는지.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물론 내가 직접적으로 사회에 위해를 가한 적은 없지만 이점에 있어선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고 봐. 조금이라도 책임을 나누어 가지는 것. 그게 바로 어른의 자세라고 봐.
어른으로서 너희들에게 부끄럽다. 그래서 화를 못 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