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대하여
꿈, 진로 이런 것에 대해서 한번 말해볼까 해. 아 그런데 키보드로 이 문장을 두드리자마자 너희들의 짜증 난 얼굴이 막 떠오른다. 어른들이 말하는 꿈이란 거 너무 패턴이 정해져 있지. 맞아 아마 그럴 거야.
"지금 꾹 참고 미래를 향해서 투자해라"
"3년만 참으면 돼, 3년 그것도 못하니?"
"안정적인 직업이 취고야"
"그런데 그 성적 가지고 할 수 있겠어?"
"현실을 직시해야지"
"남들 다하는 거 넌 왜 못해?"
"남들 다하는 거 그대로 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하나 더 말해줄까. 지금 부모님 포함해 주변의 친인척 포함 '어른들'이하는 저런 이야기는 아마 너희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거나 사회인이 되고 또는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도 똑같은 패턴으로 이야기를 할 거야. 조언과 타박이 뒤섞인 감정을 쏟아내는 거지. 혹시나 나도 그렇게 보일까 봐 좀 걱정이 되네.
자. 솔직히 말할게. 어른들이 이중적이야.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우리나라 현대를 만든 정주영 회장, 미국 애플 신화를 만든 스티브 잡스. 어른들은 이런 사람들을 존경한대. 그러면서 저런 사람들을 다룬 책을 사서 읽고 막 감명받아서 블로그, 페북에 내용 요약해 서서 올리고 막 그래. 그런데 정작 자기 자녀가 저런 사람이 되기 위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하면 질색팔색을 해. 이른바 '고소득 전문직'이거나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라고 자녀에게 강요하지. 너무 웃기지 않아? 그러다 보니 조언과 타박도 뒤섞이면서 스텝이 꼬이는 거야. 남들 다하는 거 그것도 못하냐고 했다가 남들 따라 해서 뭐하냐고 하고 큰 꿈을 가지라고 하더니만 현실을 직시하라고 하고.
진짜 웃기지? 그런데 어른들도 나름 사정이 있어. 40대 중반부터 50대 후반이라면 특히 사정이 있어. IMF라고 나라가 정말 망한 적이 있었단다. 우리나라야 뭐 일제 강점기에 625 전쟁 연이은 군사 쿠데타까지 별에 별 일이 있었지. 그런데 IMF는 그때까지 계속 상승곡선을 그리며 밝은 미래를 보고 살아왔던 그 세대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어. 아주 간략하게 말하자면 대한민국이란 나라 전체를 전 세계가 '신용불량'으로 지정한 거야. 외화가 빠져나가자 나라에 돈이 떨어졌고 나라에 돈이 떨어지니 어떻게 됐겠어? 재벌이 망했어. 중소기업이 망했어. 금고에 돈이 가득 있을 것 같은 은행들이 망했어. 그러니 작은 회사들, 자영업자들은 말을 다했지 뭐. 그렇게 망할 때마다 거기에 연관된 수많은 개인의 삶이 아작이 났어. 나도 그때 대학생이었는데 휴학을 하고 노래방, 음식점, 주차장에서 알바를 해야만 했지. 난 그나마 나은 편이었어. 아주 심한 경우도 있었어. 매일 같이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뉴스가 쏟아졌고 좀 지나자 너무 흔한 일이라 아예 다루지 않게 되었단다. 이때를 경험한 대기업들은 벌은 돈을 재투자하지 않고 금고 안에 꽁꽁 감춰두기 시작했어. 그때를 보낸 20대의 우리들도 그랬어. "인생에서 안전이 최고다." "인생에서 돈이 최고다" 이 믿음은 굳건한 가치관으로 자리 잡았고 어른이 아닌 너희들에게 강요하기 시작한 거야.
그런데 어른들의 이러한 관점은 아주 큰 문제점이 있어. 일단 돈을 최고로 친다는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을 떠나서라도 이 조언엔 결함이 있어. 바로 자신들이 선행적으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직업을 추천하고 있다는 거지. 기술이 발달하고 사회는 변화해. 그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어. 이젠 사람들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야. 4급 공무원 중에 서기관 이란 직함이 있어. 이건 원래 중세에 필경사에서 온 직업에서 나온 거야. 당시엔 책을 출판할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로 사람이 펜으로 책을 하나하나 썼지. 당연히 글을 아주 잘 쓰고 내용도 이해해야 했어. 고소득 전문직이었던 거지. 그런데 구텐베르크가 인쇄기술을 만들었더니 어떻게 됐어? 이제 이름만 흔적으로 남은 거야. 변호사? 의사? 변호사인데 빚을 못 갚아서 신용불량량자가 되었다는 뉴스는 이제 너무 흔한 뉴스라서 방송에서 취급도 안 해. 의사? 솔직히 말해주지. 집안이 원래 부자였거나 할아버지가 병원장이 아니라면 의사라서 가운을 입는 순간부터 부귀영화가 펼쳐지는 일은 존재하지 않아. TV 틀면 수많은 의사들이 나와서 자기 홍보를 해대잖아. 왜 그러겠어? 그만큼 경쟁이 엄청나게 치열하기 때문이야.
필경사라는 직업이 이름만 남기는 데는 물경 천 년 가까이 걸렸어. 하지만 근현대에 이르러 기술이 발달하면서 새로 생기고 없어지는 직업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나 얼마 전에 차를 바꿨어. 무려 15년 만에 차를 바꿨지. 반자율 운전기능이라는 걸 써봤는데 세상에 서울 외곽에서 서해안 휴게소까지 거의 100 km를 차 혼자 가더라. 난 가끔 핸들만 손에 갖다 대 주고 옆에서 갑자기 끼어드는 차가 있나 없나 만 보면 됐어. 예전엔 단순한 자동차 운전도 매우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는 전문직이었어. 자동변속, 파워핸들도 없던 시기에는 운전도 엄청난 고급 기술이었지. 하지만 지금도 숙련도에 따라 대우가 다르겠지만 엄청난 고급 기술로 취급받진 않잖아.
어른들이 권하는 진로엔 이런 맹점이 있어. 본인들이 약 20년 전에 겪었던 경험을 가지고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을 살아갈 자녀들에게 그 생각을 강권한 다는 거지. 만약 어른들이 권하는 진로와 너희가 생각하는 진로가 갖다면 그건 약 5천만 원짜리 복권 당첨된 거야. 그러니 그 행운을 즐기며 열심히 노력해. 그런데 만약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어른들의 조언은 한 쪽귀로 듣고 한 쪽귀로 다시 흘려. 그래도 그 마음만은 이해해주자고. 스물몇 살이라고 해봤자 너희들과 몇 살 차이도 안나. 그 나이 때 나라가 경제적으로 파산을 하면서 지옥을 본 거야. 생생하게 라이브로. 세상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걸 본 거지. 그 사이로 사람들이 떨어져 죽는 걸 직접 봤고 어떤 사람은 떨어졌다가 천신만고 끝에 구사 회생. 또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어. 그때의 공포는, 링에서 일 년에 몇 차례씩 거한들과 레슬링 시합을 뛰는 나에게도 생애 가장 무서웠던 일로 남아있단다. 정말이야. 진짜야.
이제 너희들에게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너희들은 어떤 때 행복해? 어떤 때 즐거움을 느껴? 꿈, 진로를 통해서 뭘 이루고 싶은 거야? 세계평화 같은 마블 히어로 같은 거창한 거 말고 딱 자기 혼자만을 중심으로 생각해보자. 결국 내가 이 길을 가야겠다, 내가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는 것은 행복하게 살고 싶기 때문 아닐까. 그렇다면 여기서 한 번 적어보자. 난 어떤 때 행복한지. 그걸 정리해보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먼저 나부터 정리해볼게.
1. 모터사이클을 타고 동쪽으로 달릴 때
2. 프로레슬링에서 멋진 경기를 했을 때
3. 내가 쓴 글을 사람들이 많이 읽고 좋아했을 때
4. 가족, 연인, 친구와 기분 좋게 놀을 때
5. 아주 색다르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6. 방송/강연을 할 때
7. 책 탈고했을 때
8. 사랑한다/존경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9. 누군가를 물질적으로 도울 때
10. 신제품 언박싱할때
대략 열 가지 정도를 써봤어. 이 열 가지가 내가 행복함을 느낄 때야. 그렇다면 이 행복을 계속 누리기 위해선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생기겠지. 난 모터사이클을 좋아해. 개방형 머신을 타고 동쪽으로 달리며 산들바람을 몸으로 느낄 때가 참 좋아. 이걸 지금 뿐만 아니라 50살, 60살, 70살 돼서도 느끼기 위해선 몸이 튼튼해야겠지. 아프거나 몸이 불편하면 모터사이클을 탈 수가 없잖아. 그렇다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건강관리를 해야겠지. 건강은 모든 행복요소에서 절대적이다. 난 정신력을 안 믿어. 정신은 육체라는 껍데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건강이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질 수 있어. 자 이런 식으로 내가 행복을 소유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보는 거야. 신제품 언받싱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겠지. 생필품을 사고도 여윳돈이 좀 있어야 할 거야. 사랑한다/존경한다는 말을 들으려면 불법, 탈법적인 일을 해서는 안 되겠지.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하더라도 법에 저촉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는 일은 해선 안되는 거야.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해야겠지. 마음으로 응원한다? 어른이 그런 말을 하면 그건 비겁한 거야. 몸으로 응원하고 돈으로 응원해야지. 그래서 여러 현장을 찾아가고 후원도 한단다. 방송, 강연을 하고 책을 쓰려면 나도 공부를 해야겠지. 머릿속에 뭐 든 게 있어야 말도 하고 글도 쓸 수 있잖아.
이런 행복을 계속 느끼고 위해서 난 프로레슬러가 되었고, 강사가 되었고 강연자가 되었고 작가가 되었어. 내가 하고 있는 일 자체가 경제적 수단이기도 하고 그걸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행복이기도 하지. 참 운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프로레슬러 입문을 비롯해 거의 모든 것이 20대 후반과 40대 초반에 이루어진 것을 보면 나도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십 수년 이상을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왔던 거야.
이런 식으로 해보자. 먼저 내가 어떤 때 행복함을 느끼는지 정리해보고 거기에 필요한 것들을 정리해보자. 그리고 필요한 작업들을 실제 몸으로 해보자. 머리로 해보자. 그러다 보면 꿈, 진로 이런 것들이 추상화가 아닌 정물화로 떠오를 거야. 그 정물화는 이정표가 된다. 그럼 그 화살표를 보고 따라가면 된다. 그리고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다시 고민하고 다시 정하면 된다.
내가 언제 가장 행복한지를 먼저 파악해보자.
그 행복한 것들을 오랫동안 느끼기 위해선 어떤 일들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다른 친구들이 이미 목표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는 것을 보니 불안하니?
괜찮아. 조금 늦게 출발해도 괜찮아.
어디로 갈지를 계속 고민하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수정하고 노력하는 것.
그게 인생이란다.
다시 말하지만 조금 늦게 출발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