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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훈 해설위원 Jul 31. 2019

마냥 좋은 일은 없다.
마냥 나쁜 일도 없다. (2)

어른들에겐 참 못된 습관이 있어. 자기가 살면서 얻었던 경험들을 임의대로 나열하고 멋대로 교훈을 만들어내서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강요를 해. 아니 스스로 일단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이 어떤지는 일단 좀 물어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래 좋은 뜻에서 그런 다는 거 백보 양보해서 선해해 줄 수도 있겠지.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있어. 살면서 고통스러웠고 괴로웠던 일들. 그땐 정말 미칠 것 같고 죽을 것 같았던 일들에 대해 나중에 막 의미를 부여해. “그때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이지. 교사에게 당했던 학교 폭력, 군대에서의 가혹행위, 혹독했던 신고식, 극단적인 철야 노동. 분명 도덕적으로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가해자는 처벌받아야 하는데 피해자가 스스로 그걸 미화하는 거야. 그 심정 약간은 이해가 돼. 그렇게라도 안 하면 그 혹독했던 고통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억지로 사후 보정을 하는 게 아닐까 싶어. 본인에겐 너무나 힘들었던 그 시간들이 그저 가해자의 화풀이나 심술의 대상이었다고 하면 얼마나 슬프겠어. 뭐 여기까지는 정신승리 차원에서라도 고개가 끄떡거리기도 해. 최악은 이걸 바탕으로 자신보다 어리거나 힘이 없는 사람에게 ‘이런 고통’을 선사하는 거야. 나중에 네가 알게 될 거야. 내가 얼마나 널 위해서 이러는지를. 이러면서 말이지.


이 말을 왜 하냐 하면 좀 걱정이 돼서 그래. 혹시 나도 내 경험을 이야기하며 나에게만 한정적으로 적용되는 귀납적으로 도출된 결론을 강요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내가 따귀를 때리거나 발로 걷어찰 일도 없으니까 안심해주길 바라. 뭐 맘에 안 들면 백스페이스 누르고 밖으로 나가면 되니까.


“마냥 좋은 일도 없다. 마냥 나쁜 일도 없다 2”잖아. 앞서 1에서 좋은 일이 좋은 일로 꼭 끝나지만은 않는다는 걸 이야기했어. 이번엔 나쁜 일을 말할 차례겠지.


내가 살면서 겪었던 나쁜 일이라면 글쎄다. 평범이란 범주에 들어가는 삶이라고 하기엔 다소 거리가 있다 보니 별에 별일이 있었단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하반신 마비 일 거야. 프로레슬링 경기를 하다가 목에 있는 연수 신경을 다쳤고 몇 달간 꼼짝을 못 했어. 간신히 비틀거리며 걷기까지 몇 개월. 거의 1년 가득히가 내 삶에서 사라졌지. 이 이야기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해서 자세히 말했으니 함 봐봐. 참 엿같은 시간이었어. 다시 간신히 걷게 되었고 다시 뛰게 되었고 프로레슬링에 복귀까지 했지. 복귀전을 펼치다가 잠깐 관중석을 바라봤어. 회복이 완전하지 못해 내 기술 동작이 이상하거나 로프반동에서 뒤뚱거릴 때마다 어떤 관객은 웃음을 터뜨렸고 그간의 사정을 어떤 아는 어떤 관객은 박수를 그리고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어.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거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군. 내가 내 몸의 절반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했던 몇 달은 진짜 최악이었어. 그런데 내가 나 자신에게 화를 냈던 시간은 내가 움직이지 못할 때가 아니었어. 방바닥에 붙박이 상태로 누워있을 땐 아예 포기하는 마음도 있었으니까 화가 나진 않았어. 프로레슬링 복귀전까지 마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바이크를 타고 이동하는데 문득 사고가 나서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까지를 떠올려봤는데 별다른 기억이 없는 거야. 그냥 백지야. 몇 개 떠올려봤자 누워서 똥 쌌던 기억들 뭐 이런 거밖에 없어. 아니 뭐야. 그래도 뭔가 기억이 좀 나야 되는 거 아냐? 뭐가 이렇게 허무해. 그래도 내 인생인데. 너무 화가 나서 바이크를 갓길에서 세우고 헬멧을 벗고 그냥 땅에 대고 막 욕을 해댔어. 뭐야 이 엿같은 허무함은.


자 이것 말고도 두 번의 나쁜 일이 있었어.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말해줄게. 난 격투기 해설자로도 일을 했는데 정말 재밌었어. 한 달에 한 번 라이브 중계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녹화 프로그램을 만들었지. 아주 큰돈이 들어오는 건 아니었지만 좋아하던 분야를 다루면서 벌이까지 얼마나 좋아.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어. 그런데 케이블 방송국이 다른 곳에 인수 합병되면서 내 자리가 없어졌어. 갑이 을을 인수했으니 을에서 일하던 사람은 어떻게 되겠어. 나가야겠지. 이때 참 막막했어. 고정적으로 들어오던 수입이 없어지니 지출을 줄여야만 했고 나중에는 타고 있던 바이크도 팔아야만 했지. 바이크는 그러니까 오토바이는 택배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오직 ‘취미’를 위해서 즉 타고 놀기 위해서 존재하는 물건이야. 그러니 그걸 팔 때 얼마나 속이 쓰리겠어. 3년 넘게 이 일만 하면서 다른 쪽은 별로 찾아보지 않은 상태여서 바로 직장을 구하는 것도 어려웠어. 그래서 다시 서울에 처음 왔을 때처럼 온갖 일을 다했지. 하객 알바, 세미나 알바 같은 것도 했어. 이렇게 손님인 척하는 알바는 뷔페 식사를 하면 2만 원을 받았고 안 먹으면 3만 5천 원인가를 받았어. 조금 얼굴이 팔린 사람이라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가 뭐 죄 진 것도 아니고 창피하거나 하진 않았어. 다만 저 차액 때문에 뷔페 밥을 못 먹고 돌아올 땐 약간 서글퍼졌지. 몇 달간 이렇게 바닥에서 구르면서 해설 이외의 다른 일을 계속 찾았어. 그러다가 일 년에 한두 번 강연을 했던 걸 생각해냈지. 아 이걸 전문적으로 해보자. 예전에는 그냥 누가 불러주니까 그냥 파워포인트 몇 장 만들어서 스포츠 스타들은 어떻게 성공했고 이런 이야기들을 했는데 아예 내 이야기를 해보자. 마침 이때 한창 강연 업계에서 도전과 역경을 다룬 주제들이 인기를 끌 때였어. 나한테 가장 큰 시련은 몇 년 전에 있었던 하반신 마비잖아. 그리고 지금 다시 걸어 다니고 있잖아. 그럼 이걸로 강연을 만들어보자. 누워있다가 기어가는 것에 도전을 하고 일어서는 것에 도전을 하고. 이렇게 단계별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갔는지 사람들에게 말해보자. 그런데 이게 먹힌 거야. 다른 유명인의 이야기가 아닌 강사 본인의 이야기다 보니 사람들이 집중하기 시작했어. 청중들에게 편지를 받았고 디엠을 받았고 댓글이 달렸지. 감동적이었다고. 본인들도 힘을 내겠다고 말이지. 허리 이하의 감각이 사라졌던 그 엿같은 사건은, 해설자에서 잘리는 그 엿같은 사건은. 시간의 함수 속에서 묘하게 블렌딩이 되면서 ‘수입 다변화’로 연결이 되었던 거야.


가장 최근의 일을 말해볼까. 작년 12월 프로레슬링 해설을 그만두게 되었어. 피동형 서술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자의는 아니었지. 하지만 이 결정에 대해서 방송국의 입장을 난 십분 이해해. 채널은 달랐지만 2012년부터 프로레슬링 해설을 해왔으니 새로운 사람과 함께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겠지. 난 방송국 덕분에 2주 지연으로 더빙 해설만 하다가 스튜디오 녹화도 했었고. 레슬 마니아 현지 참관에 서머 슬램 생방송 중계도 해봤어. 나한테 언제나 정중했고 따뜻했지. 아직도 고마운 마음만 갖고 있어. 그리고 예전과 다르게 이거 하나 없어진다고 생계에 타격이 있거나 하진 않은 상태였어. 앞서 사건 때문에 강연, 연재, 다른 방송 등등 금액 자체가 크진 않지만 수익 다변화가 이뤄냈거든. 대신 엄청난 상실감이 몰려왔어. 특히 작년 한 해 아시아 최초로 미국과 동시 생중계를 도입하면서 고생을 좀 했거든. 내가 사는 곳이 일산이고 스튜디오는 분당인데 아침 방송 9시 생방 시작 시간에 맞추려고 아예 5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했어. 미리 7시쯤 도착해서 기다렸다가 메이크업을 받고 스튜디오에 들어가는 거야. 거리는 겨우 40킬로 남짓이지만 교통정체 때문에 7시 출발했다간 2시간은 족히 걸려. 매주 수요일 오전 5시 기상. 그런데 수요일뿐만 아니라 다른 날에도 첫새벽에 잠이 깼어. 수면의 질이 나빠졌어.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해졌고 폭식과 음주를 반복했지. 그리고 해설을 그만두고도 계속 눈이 떠지는 거야. 몸이 먼저 반응하고 일어나게 된 거지. 그럴수록 허무함이 몰려왔고. 다시 폭식과 음주를 하려는 순간. 마음을 바꿔먹었어. 앞서 경험들이 하나의 샘플이 모범사례가 된 거야. 46살의 내가 지금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봤지. 건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 몸이 많이 안 좋다고 생각했거든. 실제로도 그랬어. 자다가 이유 없이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고 피곤함이 사라지질 않았지.


지금 밝히는 건데 한창 프로레슬링 해설을 할 때 몸무게가 126 킬로였어. 계단 한 두층 올라가는 것도 헉헉댔지. 일단 술을 끊었어. 식사를 조절했고 합정역에 마침 새롭게 문을 연 코리안탑팀 격투기 도장에 등록을 했지. 매일 한 시간 고강도 운동을 했어. 힘들었어. 몸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처음엔 힘들었어. 나중에 다른 꼭지에서 말하겠지만 내 나이에 스파링 하다가 고등학생들에게 두들겨 맞을 땐 아프기도 하고 쪽팔리기도 하고. 원래 꿈을 안 꾸는 사람인데 일주일에 몇 번씩 꿈을 그것도 불타는 건물에서 뛰어내리거나 기차에 매달리는 ‘키 크는 꿈’을 꾸기도 했어. 하지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자 운동의 즐거움을 몸과 마음으로 만끽하고 시작했고 관원들과도 한 대 때리고 웃고 한 대 맞고 웃고 정겨운(?) 사이가 되었지. 한 달이 지나자 5킬로가 단숨에 빠졌어. 그다음 달엔 3킬로 빠졌어. 6개월이 지나자 20킬로가 빠졌지. 106킬로가 되자 몸이 가벼워졌고 얼굴 턱선이 살아났어. 뭐 그래 봤자 아주 잘생긴 미남은 아니지만 아무튼 봐줄 만하네 라는 소리를 들었지. 


이때 ‘좋은 일’도 생겼는데 정말 오랜만에 방송국에서 텔레비전 엠씨 제안이 온 거야. 이게 또 기가 막힌 것이 10킬로 정도 빠졌을 때였거든. 조금씩 몸매가 잡혀가던 때였는데 만약 살을 하나도 안 뺀 상태였다면 화면에 잡혔을 때의 모습이 아무래도 안 좋아 보이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의상이 큰 문제였을 꺼야. 작년까지는 맞는 옷이 없어서 내가 이태원에서 산 검은색 양복 상의 한 벌로만 때웠거든. 그런데 본격 텔레비전 방송물에선 그렇게 할 순 없지. 방송국에서 준비를 해준다고 하더라도 그런 빅사이즈 의상은 개인이 준비해야 하거든.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었어. 왜냐 사이즈가 맞으니까. 매주 새로운 디자인의 의상을 입으면서 신이 났어. 뭐야 메이크 업 받고 옷 좀 빼입으니 나도 괜찮아 보이는데? 특히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셨어. 갑자기 아들이 살도 빼고 옷도 쫙 빼입고 텔레비전에 나오니 얼마나 좋아. 게다가 그동안 격투기, 프로레슬링처럼 아들 얼굴 보겠다고 다소 숭한 것들만 보다가 일반시민이 제작한 영상을 틀어주는 다소곳한 방송물이라니 너무 좋으셨던 거지. 이것뿐만이 아냐. 더 큰일이 있었어. 시간이 조금 난 김에 종합 건강검진을 4년 만에 받자고 했고 대장내시경을 했는데 용종이 나온 거야. 예전에는 없었거든. 바로 제거를 했고 시편을 검사했는데 다행히 양성이래. 그런데 양성이라고 하더라도 발견 안 하고 그냥 놔뒀으면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거야. 만약 계속 해설자를 하고 있었더라면, 체중 감량을 안 했더라면, 만약 종합검진을 안 받았더라면. 글쎄다. 아마 좋은 일은 없었겠지?


좋은 일이라고 해서 마냥 좋은 일은 없어.

나쁜 일이라고 해서 마냥 나쁜 일은 없어.


몸을 다치고 직업을 잃는 일이란, 삶에서 되도록 없었으면 하는 일들이야. 하지만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 때 내가 중심을 잡고 있으면 그러면서 버텨내면 분명 시간이 지났을 때 어느 순간 도움이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어.


격투기 링을 생각해보자.

내 왼손이 상대를 맞혔다고 오른손을 너무 풀파워로 던졌다간 중심을 잃은 상태에서 카운터를 맞고 떨어질 수도 있어. 맞으면 아파. 당연히 아파. 무조건 아파. 익숙하지 않은 체육관 땀냄새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지금 막 글러브를 처음 껴 본 신입도 아프고 라스베가스 메인이벤트 뛰는 챔피언도 아파. 누구라도 아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중심을 잡는 거야. 그렇게 버텨내면 언젠가 반격할 수 있어.  


격투기 시합과 다르게 인생의 링은 살아있는 동안 계속 이어진다. 즉 계속 다음 라운드가 있는 거야. 이번 라운드에 점수를 많이 땄다고 너무 자만하지 말고 이번 라운드에 너무 두들겨 맞았다고 실망하지 마. 

어쨌든 다음 라운드가 있으니까. 왼손은 관자놀이에 오른손은 턱 쪽에 가드 올리고 스텝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때리더라도 맞더라도. 앞으로.


들어봐.

쉭쉭. 이 소리는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녀. 주먹에서 나는 소리지.


다음 편 예고 : 결국 좆밥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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