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초 산수유는 사람들 모르게 희미한 노란꽃을 피워낸다. 이어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어나고, 목련도 피어나고, 그러면 사람들은 그제야 "봄이 왔다"고 말한다. 애써 먼저 꽃을 피워낸 산수유가 섭섭할 이야기이지만 그렇다. 그리고 3월 중순이면 나팔수선화가 샛노란 꽃을 피워내고, 같은 색의 민들레가 길가 여기저기에 꽃망울을 터뜨린다.
3월말, 4월초에 이르면 벚꽃이 하얀 또는 분홍의 꽃들을 피워내면서 본격적인 봄임을 알리고, 사람들도 겨울옷을 장롱 속에 집어넣기 시작한다. 4월 중순에 이르러 벚꽃이 허공에 꽃잎을 날릴 때면 철쭉이 꽃을 피워내고 사촌인 영산홍도 꽃망울을 벌리기 시작한다. 여기에 짙은 향기를 뿜어내는 라일락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이어서 양귀비, 튤립, 작약, 모란 등도 꽃을 피우며 동네 꽃잔치에 한 몫을 거든다.
그런데 이 와중에 희한한 광경이 벌어지는데, 나팔수선화라는 꽃이 그렇다. 나팔수선화는 진달래나 개나리와 비슷한 시기에 꽃망울을 터뜨리는데, 진달래와 개나리가 꽃잎을 떨어뜨린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 샛노란 꽃을 아름답게 유지한다. 벚꽃이 지기 시작하는 무렵까지도 한껏 예쁘게 피어있던 나팔수선화는 철쭉과 영산홍, 라일락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4월 중순이면 한꺼번에 져버린다.
음지고 양지고 가릴 것이 없다. 모든 나팔수선화의 샛노란 꽃잎이 누렇게 마르고 쪼그라들어 버린다. 진달래든 개나리든 벚꽃이든 그래도 어떤 것들은 음지에서 늦게 피어서 친구 나무들이 다 질 때까지도 저 혼자 뽐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나팔수선화는 며칠 상간에 싹 꽃잎을 거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꽃 중의 꽃, 장미는 언제쯤 꽃을 피울까?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5월이 되어야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는데, 늦게 핀만큼 오랫동안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12월초 영하를 오르내리는 시기까지 장미꽃들은 피어났다 지기를 반복한다. 다른 꽃들은 길어야 3개월 남짓인데, 무려 6개월 이상을 꽃을 피워내며 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꽃과 잎을 떨구고 겨울에 드러내는 표독스런 가시를 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4월 중순과 말 무렵에 생각지도 않았던 나무에서 꽃이 피어난다. 바로 은행나무와 소나무다. 은행나무는 수꽃과 암꽃이 좀 다른데, 바람이 불거나 하면 연두색과 연노랑의 꽃술들을 도로 바닥에 쏟아낸다. 소나무꽃(송화[松花])는 종류에 따라 어떤 것은 길고, 어떤 것은 짧고 뭉툭하다. 비가 내리고 나면 도로 여기저기 물이 고인 가장자리에 노란 송화 가루를 뿌려놓는다. 노란색의 무늬로 가는 봄을 아쉬워하면서 도로와 길가를 얼룩덜룩 치장하는 것이다.
4월말과 5월에는 이팝나무꽃이 먼저 피고, 아카시아꽃, 밤나무꽃이 차례로 피어난다. 6월에 접어들면 우리나라 꽃 무궁화가 피어나고, 배롱나무라고도 하는 백일홍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두 꽃 모두 가을이 오는 9월까지 계속 꽃을 유지한다. 모두 한여름 모진 장마와 뜨거운 햇살을 견디어 내는데, 그래서 "무궁하다"는, "백일이나 꽃을 피운다"는 이름이 붙여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나무가 배롱나무다. 배롱나무는 잎이 붙고 꽃이 피어있을 때는 여느 나무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가을에 이르러 꽃을 떨구고 이어 잎을 떨구고 나면 그 모습이 완전히 달라진다. 다른 나무들은 잎을 떨구더라도 잔가지들이 붙어 있지만, 배롱나무는 자신에게 붙어있는 잔가지들을 모조리 버려버린다는 사실이다.
꽃도 떨구고 잎도 떨구고, 그 꽃과 잎을 지탱하던 잔가지들을 떨구고 완전한 나목(裸木)이 된다. "나체 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맨질맨질한 큰 가지들만 남아서 어찌 보면 죽은 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난 백일홍은 5개월 가까이를 죽은 나무처럼 보내다가 4월말에 이르러 잎과 함께 잔가지들을 뿜어내며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과시한다.
가을은 꽃을 피워냈던 나무들이 열매를 길러내는 시절이다. 국화, 채송화, 봉숭아, 분꽃, 코스모스를 비롯한 갖가지 들꽃들이 가을을 장식하고, 나무들은 꽃 대신 나뭇잎으로 아름다움을 뽐낸다. 봄과 여름 동안 꽃에게 빼앗겼던 사람들의 시선을 나뭇잎들이 가져가려 애쓴다. 실상은 사람들과 상관없이 잎들이 죽어가는 과정이지만,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가을꽃도 지고, 12월까지 남아 열정을 뽐내던 장미도 지고, 나뭇잎들도 바람에 쓸려 떨어지고 나면, '침엽수'라 일컬어지는 나무들만이 잎을 가진 식물로 남는다.
햇수로 5년을 배달하면서 지켜보았던 풍경들은 이랬다. 계절은 흐르고 생명은 철에 맞추어 틀림이 없었다. 배달일을 하기 전에는 무심코 흘려보냈던 풍경과 생명들이, 실은 엄청난 규칙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며 소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의 흐름에 따르면서 피고 자라나 저물어 가는 과정을 소문 없이 지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것일 뿐, 자연과 생명들의 흐름은 언제나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생명들은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열심히 피어났고, 열심히 자라났고, 열심히 열매를 맺어 내년을 준비하였다. 꽃을 떨구고 잎을 떨군 나무라 해서 아무런 노력 없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생명들은 기회만 되면 피어나려고 했고, 자라나려고 했고, 그래서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적절치 않은 시기에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5월 중순이면 꽃이 완전히 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철쭉에서 꽃 한 송이가 피어나 6월말까지 꿋꿋이 버티어냈다. 심지어 7월에도 8월에도 꽃이 피어났다. 민들레, 질경이를 비롯한 작고 여린 식물들은 조그만 문틈, 건물의 갈라진 틈, 어두운 가설 계단 아래 등, 어디든 비집고 들어가 꽃을 피웠다. 이미 누렇게 변해버린 화분의 나무는 바짝 말라버린 몸을 뚫고 새파란 가지를 드러내며 자신이 아직 죽지 않은 생명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런 광경은 비일비재했고, 그 광경을 보면서 때론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생명은 생명이기에 아름다웠고, 또 가치가 있었다. 사람이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꽃과 나무는 하얗게 노랗게 푸르게 붉게 자신들의 세상을 꾸며냈다. 그 안에서 사람과 동물과 곤충은 역시 자신들의 세상을 열어가고 있었다.
배달일을 하면서 생명들을 통해 전에는 몰랐던, 아니 주목하지 않았던 신기하고 경이로운 일들을 경험하였다. 특히나 "생명"이라는 그 자체의 힘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경험했던 경이로운 일이라는 것이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인간만이 자연을 거스르며 살고 있기에 모든 생명에게 적용되는 그 "법칙"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오늘 어린이대공원과 중랑천변을 달리며 꽃을 보고, 나무를 보고, 새소리를 들었다. 어제는 한강공원, 성수동 골목 여기저기를 지나며 민들레 홀씨와 날벌레들의 습격을 받았다. 때론 기쁘고 때론 성가신 그 존재들로 인해 나의 배달은 보다 풍성하고, 보다 아름답고, 보다 유쾌해지고 있다. 계절의 흐름을 따라서, 또 배달길을 따라서, 생명인 나는 성장하고 변화하며 법칙에 따라 살아가려 애쓰고 있다. 참으로 어렵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