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라는 카페

배달노동자의 교육학 수업

by 명중호

나는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이자, 교육학을 가르치는 강사이다. 배달 일을 시작한 계기는 단순했다. 다들 짐작하다시피 코로나 때문이었다. 예정되어 있었던 교육학 강의도 코로나로 인해 무기한 연기되었고, 아내가 운영하던 플라멩코 무용학원도 회원들이 급격하게 줄면서 문을 닫기 일보 직전으로 몰려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는 농담반 진담반 "이거 한번 해보는 게 어때?"라며 말을 건네 왔다. 배달!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무척 불편했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이 작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철가방, 오토바이, 과속 운전, 시끄러운 경적 소리'와 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을 스쳤고, '이런 일까지 꼭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불끈 치솟는 순간이었다.

"여보! 한 번 해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관두면 되지." 역시나 생활력 면에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나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배달과 다르다고 하니 한 번 해봅시다." 2020년 9월 16일 토요일 오후. 아내의 손에 이끌려 첫 배달을 시작하였다. 도보(徒步), 걸어서 첫 배달에 도전한 것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날씨도 내 마음을 아는지 해가 났다, 비가 왔다 엉망진창이었다는 것이다. 이윽고 내 휴대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커피 배달을 하라는 알림이었다. 자양동에 위치한 '카페 욜로'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1잔을 픽업해서 길 건너 가정집에 배달하는 일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카페에 들르니 여성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머, 어서 오세요!!!"

사장님께 받아든 커피를 들고 정해진 주소지에 이르러 전달하고 나니 '2,900원 배달료'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렇게 시작된 첫날의 도보 배달은 오후 내내 이어졌고, 가게에 들어가 음식을 픽업하는 것도, 해당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시도해보지 않고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상상만 하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함께 동행했던 아내는 이내 울상이 되어버렸다. 나는 휴대폰에 나온 지도를 보고 금방 픽업지(가게)와 전달할 장소를 파악하였지만, 아내는 이 길이 그 길인지, 저 길이 이 길인지 무척이나 헷갈려 하였다. 말 그대로 "길치"였던 것이다. 나는 픽업지를 재빠르게 찾아 들어가 물건을 수령했지만, 아내는 바로 앞에 가게를 두고도 전혀 찾지를 못하였다.

오후 6시까지 6건, 22,000원의 소득을 올린 우리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물론 나만 가벼운 마음이었고, 아내는 상심이 컸다. 배달하는데 가장 중요한 길찾기가 그녀에게는 엄청난 시련이었고 악몽이었기 때문이다. "여보, 이 일은 내 적성에 맞으니 나 혼자 할게." 그날 저녁 아내와 그렇게 합의를 보았고, 9월 17일부터 본격적인 배달 일에 나서게 되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배달 첫 날, 첫 번째 배달을 '카페 욜로'에서 하게된 것이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사장님처럼 반갑게 맞아주는 분이 아니라 어쩌다 마주치는 무표정하고 퉁명스러운 가게 사장님이나 아르바이트생이었더라면, 이 일을 다시 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지 모른다. 배달일이 험하고 어렵다는 생각, 그리고 예전에 가졌던 배달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재확인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포기해야할 여러 이유를 찾았을게 분명했다.

반갑게 맞아준 그 사장님 덕분에 나는 지레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일만큼은 나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품을 수 있었던 계기였다. 오래전 일이었지만, 지면을 빌어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해 드리고 싶다. "덕분에 마음 편히 배달을 시작했습니다. 돈을 벌어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가게의 무궁한 발전을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돈 많이 많이 벌어 부자되세요!"


#해커스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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